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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5

   상황은 마곡, 세계의 틈에서 아우라를 흡수할 때와 유사하다.

     

   블랙 후드가 훔칠 대상은 최흉의 씨앗.

   씨앗을 주로 이루는 힘은 다름 아닌 세계 침식의 힘이다.

     

   크라슈의 손아귀 안.

   최흉의 씨앗이 맹렬히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라슈의 팔이 거칠게 떨렸다.

   최흉의 씨앗 내부에 깃든 세계 침식의 힘이 모조리 들어오기 시작했다.

     

   ‘방식은 그때와 같다.’

     

   크라슈는 식은땀을 쏟아내며 들어온 세계 침식의 힘을 불살랐다.

     

   그 당시에 크라슈는 아우라를 어떻게든 몸 내부에 가둬놓고자 아우라의 내단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때와 달리 지금은 그런 번거로운 방법을 거칠 필요가 없다.

     

   ‘전부 세이블에 박아 넣으면 될 일이니까!’

     

   크라슈의 몸 내부, 세계 침식의 흑염이 거세게 타올랐다.

   더불어 바로 앞에서 세이블의 공간 또한 열렸다.

     

   세이블의 공간은 무한에 가깝다.

     

   크라슈는 손을 세이블을 겨눔과 동시에 세계 침식의 흑염을 모조리 쏟아내기 시작했다.

     

   ‘들어가라.’

     

   흑염이 세이블의 공간 너머로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크라슈 또한 내부에 품은 최흉의 씨앗을 미친 듯이 불살랐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입에서 검은색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몸이 흑염의 고열로 거칠게 타오르며 세계 침식의 폭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

     

   크라슈는 두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자신의 전신에 창제무신의 묘리를 적용했다.

     

   어떠한 충격을 받더라도 부서지지 않는 그릇이 스스로 된 것이다.

     

   ‘어떻게든 전부 소화해낸다.’

     

   크라슈가 이를 아득 부딪쳤다.

   겨누어진 손에서 흑염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도 최흉의 씨앗은 아직 한참 남았다.

     

   크라슈의 머리 위, 비구름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최흉의 씨앗에 모든 에너지를 부어 넣고 있던 비의 잔등이다.

     

   크라슈가 최흉의 씨앗을 불태워 버릴 때마다 그 규모도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크라슈와 한참 떨어진 성벽 위.

   그곳에서 거의 반평생을 근무해온 병사가 매일같이 먹구름이 꼈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

     

   그가 넋 놓은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평생토록 먹구름 낀 하늘만이 존재할 거로 생각했던 비의 잔등이다.

     

   그런 비의 잔등 위.

   처음으로 먹구름이 사라지며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계를 요동치게 했던 금역의 힘이 차츰차츰 줄어가고 있다.

     

   이 기이한 광경을 보고, 그의 두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그리고 그건 그만이 아니었다.

   이 광경을 직접 보고 있는 건 천하십강 투왕 자이드도 있었기 때문이다.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약재를 덕지덕지 바르고, 붕대를 둘러맨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근방에서 생활하던 투왕이 지금껏 관리해왔던 금역 비의 잔등이다.

   그런 비의 잔등의 힘이 급속도로 약해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영원할 것만 같았던 금역이 종식되고 있다.

   이 광경은 천하십강인 투왕조차 경악하게 했다.

     

   “비앙카, 이건.”

     

   그리고 투왕과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하링이 비앙카를 불렀다.

   그러자 비앙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라슈 님이에요.”

     

   크라슈가 최흉을 지우고 있다.

     

   그 광경을 본 비앙카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지금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절실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크라슈 님.”

     

   비앙카는 양손을 꼭 쥐었다.

   그가 부디, 무사히 돌아오기를.

     

   비앙카는 간절히 바랐다.

     

     

   * *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크라슈가 메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그의 입술을 타고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크라슈는 아득한 정신 속에서 최흉의 씨앗을 계속 태우고 있었다.

   그의 몸은 그야말로 용광로가 따로 없었다.

     

   몇 번이고 고꾸라지려던 몸을 간신히 견뎠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두 눈을 떴다.

     

   크라슈의 눈동자 속 붉은 기운이 서렸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최흉의 씨앗은 마곡 때보다도 더 지독하기 그지없었다.

     

   최흉의 씨앗은 금역의 마지막 발버둥이다.

   당연히 마지막 발버둥만큼이나 지독한 것은 없다.

     

   그러나 딱 하나.

   그런 발버둥보다도 더 지독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크라슈의 독기 섞인 정신력이었다.

     

   “후으, 흐.”

     

   입안 가득 숨소리를 내뱉은 크라슈가 손아귀에서 거센 흑염을 마지막으로 태운 순간.

     

   틱-

     

   그의 손에서 모든 검은 불꽃이 꺼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크라슈는 그대로 바닥에 무너졌다.

     

   쿵!

     

   바닥에 머리를 박은 크라슈가 반복적으로 숨을 내쉬었다.

   혼미한 정신이 자꾸만 끊길 듯이 깜빡거렸다.

     

   그러나 아직이다.

     

   “그윽, 으웩.”

     

   그 순간 크라슈의 입에서 새까만 덩어리가 하나 굴러 나왔다.

   그것은 다 타버린 듯한 모습의 씨앗이었다.

     

   크라슈는 그것을 보며 속을 몇 번 게워내더니 땅에 머리를 박았다.

     

   크라슈가 뱉어낸 그것은 최흉의 씨앗 내부 모든 세계 침식의 힘이 불사질러진 뒤 남은 씨앗이었다.

     

   어쩌면 한 세계의 마지막 모습.

     

   그러한 씨앗은 이내 바스러지더니.

   불어온 바람을 따라 잿가루처럼 흩날려 사라졌다.

     

   온몸에 힘이 없다.

   크라슈는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로 그대로 누워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스스로가 최흉의 씨앗을 태울 그릇이 되었는데.

   몸 상태가 멀쩡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크라슈는 길게 쉴 수 없었다.

     

   “에, 벨아스크.”

     

   부름과 함께 시체쥐가 또 한 번 그림자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건 시체쥐만이 아니었다.

     

   에벨아스크가 함께 나왔기 때문이다.

     

   “진짜, 이게 뭔 꼴인데.”

     

   에벨아스크는 반쯤 울먹인 표정으로 크라슈를 들었다.

   그러고는 시체쥐에게 영양분을 압축시켜놓은 벽곡단을 받아 뜯어 크라슈의 입에 넣었다.

     

   “커흑, 컥.”

     

   하지만 크라슈는 뜯어준 벽곡단을 삼키지 못하고 내뱉었다.

   식도가 다 터버린 느낌이라 삼키지를 못한 것이다.

     

   에벨아스크는 그것을 보고 발을 동동 굴리더니.

   이내 벽곡단을 냉큼 들어 올렸다.

     

   “진짜,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마!”

     

   에벨아스크는 벽곡단을 입에 넣고는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고는 시체 쥐가 가져다준 물을 입 안에 머금고는 그대로 크라슈의 입을 벌렸다.

     

   에벨아스크가 입을 통해 크라슈의 입에 씹은 벽곡단과 물을 건넸다.

     

   처음에는 멈칫했던 크라슈지만 이내 받아먹었다.

   당장 영양분을 보충 안 하면 몸이 망가질 판이기 때문이다.

     

   이후 에벨아스크는 남은 벽곡단과 물, 영약까지 크라슈에게 먹여줬다.

     

   덕분에 크라슈의 얼굴은 한결 밝아졌다.

   간신히 고비는 넘긴 표정이었다.

     

   “고마워.”

     

   겨우 숨돌린 크라슈가 말하자 새빨갛게 물든 얼굴을 자기 손으로 감싸고 있던 에벨아스크가 크라슈를 힐끗 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에벨아스크는 크라슈가 이러는 걸 지켜보는 게 무척이나 괴로웠다.

   이토록 괴로운 일을 혼자서 감내하고 있는 걸 도저히 그냥 지켜보고만 있기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야.”

     

   숨을 돌린 크라슈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에벨아스크는 크라슈가 일어나는 걸 말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게다가 금역은 아직 한참 남아 있어.”

     

   여기만 상황이 열세인 게 아니다.

   세계 각지 여기저기에 수많은 금역들이 지금 최흉의 씨앗을 꽃피우고 있다.

     

   크라슈는 이를 그냥 둘 수 없었다.

   그대로 뒀다간 결국 이전 세계와 똑같은 꼴이 될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나 혼자만 이러고 있는 건 아니잖아.”

     

   크라슈는 그리 말하며 힘겹게 미소 지었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이들이 금역과 맞서고 있어.”

     

   금역을 방치해 기어코, 일을 키웠던 회귀 전과 지금은 상황이 무척이나 다르다.

     

   크라슈 혼자 분투하는 게 아니다.

   모두가 지금 금역을 막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세계 전체가 금역과 전쟁 중이야.”

     

   그러니 크라슈는 쉴 시간 없다.

   모든 최흉의 씨앗을 전부 흡수해 부숴 버려야 하니까.

     

   “에벨아스크, 다음 금역으로 이동 좀 부탁하자.”

   “너.”

     

   에벨아스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크라슈의 눈을 보니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울음을 참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알았어. 데려가 줄 테니까 그동안이라도 제발 쉬어.”

   “고맙다.”

     

   그걸 끝으로 크라슈의 의식은 결국 뚝하니 끊겼다.

   육체가 회복을 위해 강제 취침에 들어선 것이다.

     

   에벨아스크는 크라슈의 몸을 받아 들었다.

     

   “……진짜, 이래도 나 첫 키스인데.”

     

   에벨아스크는 심통 난 얼굴로 크라슈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크림슨가든.”

   [ 그래,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저럴 놈이다. ]

     

   크림슨가든은 이미 크라슈를 말리기를 포기한 눈치였다.

     

   [ 전성녀 쪽에 종을 이용해 이 상황을 전해놓았다. 지금쯤 비의 잔등 입구 쪽으로 오고 있을 거다.

   널 이미 알고 있는 하링 그 애를 통해서라면 크라슈 놈과 합류시킬 수 있겠지. ]

   “아니, 직접 갈래.”

     

   에벨아스크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그림자에서 유령마가 이끄는 마차가 나타났다.

     

   “언제까지고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건 싫어. 같이 가겠어.”

     

   에벨아스크는 세계 침식자다.

     

   모습을 대놓고 드러낸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그녀는 크라슈를 위해서 남들 앞에 서기로 했다.

     

   “적어도 크라슈 곁에 있는 애들 앞에는 내가 직접 서야겠어.”

     

   에벨아스크가 참전 의사를 밝혔다.

   그것을 본 크림슨가든 쯧 혀를 찰 뿐이었다.

     

   [ 그게 네 선택이라면 그리 해라. ]

     

   크림슨가든도 반대하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숨어만 있어서는 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에벨아스크는 크라슈를 유령마 마차에 실었다.

   그러고는 이내 자신도 올라타며 마차를 움직였다.

     

   사람의 눈을 피해 언제까지고 히키코모리와 같이 살아갔던 에벨아스크 베나포치다.

   그런 그녀가 한 사내에 의해 다시금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것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를 잠든 크라슈는 알 길이 없었지만.

     

   세계는 분명 크라슈가 보지 못한 세계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세계 전역에 금역이 최흉의 씨앗을 꽃피운 그 날.

   그러나 어쩌면 세계에서 금역을 영원히 씻어낼 기회.

     

   세계와 금역의 서로의 끝을 보기 위한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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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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