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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5

       

       

       

       넓은 안방에 둘러앉아 배달 온 요리들로 식사를 하던 중, 나는 백노평 쪽을 바라보았다. 백노평은 거동이 쉽지 않은지라, 계춘희가 젓가락으로 요리를 집어 떠먹여주고 있었다. 

       

       “응, 맛이 좋구나…… 춘월아, 한잔 더, 콜록! 따라 보거라.”

       

       춘월(春月)은 계춘희의 예명이었다. 

       

       “아이고 영감님. 약주를 더 하셔도 괜찮겠어요?” 

       “이년아! 안 될게 무어 있니? 이 좋은 날에……”

       

       백노평은 기분이 좋은지 연신 술을 청했고, 계춘희는 빈 사발에 재차 술을 따랐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계춘희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슬쩍 눈짓을 주었고, 계춘희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 계춘희는 아무도 보고있지 않은 틈을 타서, 

       

       베에- 

       

       술이 따라진 사발에 침을 한 방울 떨구고는 백노평의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자아, 영감님. 쭈욱-”

       “응, 응.”

       

       백노평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맛있게 받아먹고 있었지만, 독성 분비 능력을 가진 계춘희의 침은 그 자체로 독성 물질. 

       

       저 독을 대량으로 마시면 사망이나 뇌사에 이르고, 소량을 마시면 기절 또는 마비, 극소량을 마시면 운동신경의 상실과 정신의 혼란이 일어난다. 

       

       물론 아무리 극소량이라도,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러한 독을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몇달 가지 않아 사망에 이르겠지만…… 

       

       백노평은 각성능력까지는 아니어도 체질상 독성에 어느정도 내성이 있는 체질인지라, 소량의 독을 장기적으로 복용해도 심신미약 비슷한 상태까지만 갈 뿐, 목숨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그것이 내가 처음부터 계춘희를 매수해서 백노평을 맡긴 이유였고 말이다. 

       

       아무튼 백노평이 완전히 정신적으로 무방비 상태가 된 것을 확인한 이 즈음에서, 나는 입을 열었다.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으응? 무어냐?”

       “저는 내일 경성으로 되돌아갈까 합니다.”

       

       우선 꺼낸 용건은, 방학 중 집에 머물러있지 않고 경성에 있겠다는 것이었다.

        

       “서울로 말이냐? 그건 왜 그러니?”

       “방학중에 학교에서 합숙수업을 하기로 되어서요. 여기……”

       

       나는 합숙수업 통지서와, 각종 상장을 꺼내서 백노평에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통지서와 상장은 당연히 일본어로 쓰여져 있었고, 백노평은 일본어라고는 말도 못하는 까막눈. 

       

       “으음!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구나. 춘월아, 네가 읽어주련.” 

       “영감님, 저도……. 그냥, 작은도련님더러 읽어보라고 하시죠.”

       

       백노평 옆에서 수발을 들던 계춘희는 최근 학교를 다니고 있기는 해도, 아직 몇 달 되지도 않은데다가 어려운 한자가 난무하는 통지서같은 것을 읽을 수는 없었기에, 다시 나에게 돌려주었다. 

       

       그러자 이복형 백철우가 나에게 말했다.

       

       “철연아. 이리 줘 보아라. 내 읽어보마.” 

       

       뭐지? 뭔가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트집을 잡아볼 셈인가. 내가 ‘그러시든가’ 하는 기분으로 통지서와 상장들을 건네주자, 백철우는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쓰고는 느릿느릿한 말투로 읽기 시작했다.

       

       “어디…… 다음과 같은 우수 생도들을 대상으로 합숙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학부모 귀하의 협조를 바라며…… 음. 방학중에 우수 생도들을 학교로 모아서 가외수업을 진행하는 모양입니다. 우수 생도 6명 중에 철연이의 이름도 있네요.”

       

       당연히 교육도 제대로 받았을테고, 인천에서 사업을 한다고 하니 일본어가 능숙함은 당연할테고, 아마 서류가 진짜인지 위조인지 정도는 보는 눈도 있겠지.

       

       “그리고…… 학교장의 도장도 찍혀있고, 전화번호도 있고. 정말인가 봅니다. 이러면 철연이가 내일이라도 서울로 돌아가긴 가야할 듯 한데요.” 

       

       그야 물론 정말이지. 교장이 직접 만들어준 통지서니까 가짜일리 없었다. 그렇게 큰아들까지 증언해주니,

       

       “으응, 그렇다면 에구, 어쩔 수 없구나. 우수 생도라니, 콜록! 잘 되었다. 내일 서울로 돌아가려무나.”

        

       백노평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해 주었다. 좋아. 여기까지는 쉬웠다. 나는 내친 김에 조금 더 어려운 용건도 곧바로 꺼내 보았다.

       

       “그리고 천오백 원 정도 돈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만……”

       “으응? 무어?”

       

       헤롱헤롱하던 백노평은,  

       

       “너는 어찌, 콜록! 돈 달라는 말부터 하느냐? 그것도 학생이, 천오백 씩이나 무에 쓴단 말이냐?”

       

       돈 얘기가 나오자 대번에 눈이 번쩍 뜨이고 돌변하며 날카롭게 물어왔다. 하긴 한두 푼도 아니고 꽤나 큰 돈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나 역시 그럴듯한 핑계를 준비해두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사업을 해볼까 합니다.”

       “사업?”

       “예. 가게를 하나 인수하려는데요……”

       “가게? 너는 일본 군대의 장수가 되어야 하는 놈인데, 콜록! 그런데 무슨 바람이 들어 주판이나 튕기는 장삿꾼이나 될 셈이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장사꾼이 될 셈은 아닙니다. 장사에는 사람을 따로 쓰고, 저는 관리만 할 겁니다. 사업이 잘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못해도 제 용돈벌이는 되겠지요. 앞으로도 돈을 쓸 일이 많은데, 모든 것을 아버님께 손을 벌리는 것보다는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백노평은 내 말이 그럴싸하다는 듯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렇잖아도 나에게 부쳐주는 돈을 아까워하는게 뻔히 눈에 보이던 노인네였다.

       

       나한테 다달이 백 원씩을 주기로 한 것이 아까웠는지, 내가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최근 두 달은 은근슬쩍 50원 씩만 보내왔던 것이다. 물론 그것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렇게 백노평이 고민하고 있자니, 

       

       “철연이가……” 

       

       내 건너편에 앉아있던 이복형 백철우가 느릿느릿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장사를 하는 것은 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연이가 제 돈 벌어 제 씀씀이에 쓴다는데 반대할 것이 무어 있나요. 또 사업이 잘 되어서 아예 그쪽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고……” 

       “너는 무얼 안다고 그러니? 철우 너는 사업인지 뭔지를 한다지마는, 저애는 일본 군대의 장수가 되어야 할 터인데, 콜록! 괜한 바람 넣지 말거라!”

       

       백노평의 화살이 백철우에게 향했지만, 백철우는 꿋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건 그렇습니다마는 철연이가 장교든 하사관이든 되는 것은 적어도 학교를 졸업하고의 이야기지요. 그 전까지는 경제활동을 배우는 것도 철연이 스스로를 위해서나 우리 집안을 위해서나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군인도 일개 병정이라면 모를까, 하사관이나 장교만 되어도 금전감각이 없으면 곤란한 일이니까요. 또한 철연이가 높은 사람들과 교류하려면 그럴듯한 직함 하나쯤은 있는 편이 좋겠지요…….” 

       

       정작 나는 가만히 있었음에도, 백철우는 내 편을 들어주며 백노평을 설득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그런 백철우의 설득이 그럴듯했는지,

       

       “음…… 그것도 그렇겠구나.” 

       

       하고 백노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다소 의문인 것은, 이복형 백철우는 어째서 나를 편들고 도와주는 것일까? 

       

       사실 그것은 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나를 편드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잇속을 노리는 속셈이었다.  

       

       장남이자 적자인 백철우는 이미 노인네의 재산을 자기 것마냥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노인네가 나에게 거액의 학비와 용돈을 다달이 보내는 것 역시 몹시 탐탁치 않게 여겨왔을 터.

       

       그러니 내가 용돈이나마 스스로 돈을 벌겠다는 것을 반갑게 여기는 것이다. 

       

       게다가 백철우는 인천에서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사업을 한다고 하면, 자기가 형으로서 또는 업계 선배로서 거드럭대며 고나리질을 할 거리가 생기니 좋다고 보는 것이리라. 

       

       어쨌거나 백노평은 거의 넘어왔고, 그런 백노평에게 막타를 친 것은, 

       

       “타가(他家) 아녀자의 몸으로 극히 외람된 말씀이오나……”

       

       다름아닌 이유하였다.

       

       “어르신께옵서는 철연으로 하여금 황군의 장수가 되어 가명(家名)을 드높이기를 바라시지만, 뛰어난 장수가 되려면 무엇보다 이끌어줄 주군을 잘 택해야 하며, 주군을 택하는 데에는 ‘정성’이 필요한 법이라 생각되옵니다.” 

       “정성? 정성이라면……” 

       “그러하옵니다. 그러니 철연은 이 ‘정성’을 다루는 법을 우선 배워야 하겠지요. 비록 소녀의 미천한 소견이오나 이는 만고불변의 이치이니, 어르신께옵서는 부디 깊이 헤아려 주시옵소서.”  

       

       당연하지만 이유하가 ‘정성’이라고 표현한 것은 돈을 돌려 말한 것이었고, 이유하는, 

       

       ‘높은 위치의 군인이 되려면 줄을 잘 서야 하고, 줄을 잘 서려면 뇌물이 필요하며, 뇌물을 마련하려면 돈 다루는 법을 알아야 한다’ 

       

       라는 말을, 아주 공손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비유를, 아무리 몸이 아프고 반쯤 심신미약 상태가 되었을지언정 못 알아들을 백노평은 아니었다.   

       

       “으음! 네 말이 옳구나. 네 할애비와는 달리 세상 사는 지혜를 아는 아이로구나. 끄응……” 

       

       하여간 백노평도 여러 사람의 말을 들으니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래…… 옳다! 하지만 기왕지사 장사를 한다면 천오백 원으로 되겠느냐? 삼천 원을 줄 테니, 할테면 크게 해 보아라!” 

       

       삼천 원! 무려 두 배였다. 

       

       “하지만 이것은 그냥 돈이 아니니라! 내가 죽어지고 나면 어차어피에 그만한 돈은 물려줄 돈이다. 철우 너에게도, 철연이 너에게도 줄 몫을 이미 다아 마련해 두었다. 그때 줄 돈을 조금 떼어 지금 주는 것이라 생각하거라.” 

       

       나는 앉은 채로 깊이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이로써, 수원에 내려온 목적은 달성하고도 남았다. 오히려 기대 이상의 수확.

       

       슬슬 눈치를 봐서 안방을 빠져나와 잠이나 자러 갈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곁에 앉은 이유하를 보니 몸을 내 쪽으로 기우뚱하며 눈을 껌뻑이고 있길래 물었다.

       

       “졸려?”

       “……조금 노곤하구려.” 

       

       하긴, 나도 지금 꽤 피곤한데 체력 딸리는 얘는 오죽할까. 오전에는 거대 요로미미즈와 싸우고, 오후에는 열차를 타고 이동했으니 몹시도 피곤할 것이다. 

       

       열차에서는 별다른 일은 안하긴 했지만, 원래 먼 거리를 이동하는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다. 게다가 노인네 설득한답시고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아닌게 아니라 슬슬 자러 갈 시간이기는 했다. 

       

       나는 손님인 이유하를 손님방으로 안내해주겠다는 핑계를 대고, 이유하를 데리고 안방을 빠져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돈 얘기 하는 부분이 좀 길어졌네요. 원래 남의 돈 빼먹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법이죠……

    그래서 연참! 바로 다음편 이어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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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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