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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5

       시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벌써 2년이구나.”

       

       2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시에, 3학년에 막 올라왔던 대학생들이 학사모를 쓸 때까지 걸리는 시간.

       

       “졸업 축하해.”

       

       나는 로테와 프레이에게 라일락 꽃잎을 뿌려주었다.

       

       “히히 고마워!”

       “에테르도 같이 졸업했으면 좋았을 텐데.”

       “어허, 교수님이잖아?”

       

       꽃다발을 든 학부 졸업생들의 모습이란 말 그대로 아름답다. 또한 눈부시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지구에서 학사모를 던졌던 시절이 그립… 지는 않네. 곧바로 대학원에 들어갔으니까.

       

       어쨌든 지금은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다. 교수라는 인생 목표를 달성했으니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얘들아, 기분이다. 오늘 내가 쏠게.”

       “에테르는 정령이라 돈 없잖아.”

       “그거라면 문제없지.”

       

       나는 내 곁에 있는 소녀를 흘겨봤다.

       

       “블루베리, 부탁할게.”

       

       로즈마리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절약해야 하는데….”

       

       로즈마리는 요새 근검절약하고 있었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엘프국 때문이었다.

       

       2년이 지났지만 카우렐리아와 에테리아의 관계는 여전했다.

       

       전쟁만 일어나지 않았을 뿐. 서로 경제제재를 하네, 핵무기를 배치하네 그러면서 싸우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로즈마리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고 늘 말했다.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긴축하더라도 이런 건 필요한 지출이야. 너, 특히 로테와는 이제 가족인데 그런 거 하나 못 해줘?”

       “알아요, 알고 있다구요. 제가 쏠 테니까 모두 상가로 가요.”

       

       우리는 점심 시간대를 피해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이 이후에는 여자아이들의 전형적인 특징이 나온다.

       

       “밥 먹었으면 디저트지!”

       “너희는 배부르지도 않냐?”

       “여자는 밥 들어가는 배랑 케이크 들어가는 배가 다른 거 몰라?”

       

       이건 아직도 공감하기 어렵군.

       

       몸이 어려서 그런 건가?

       

       그런 의구심도 들었지만, 생각해 보니 나는 원체 식사를 적게 했다. 밥 먹을 시간에 책이나 한 줄 더 보는 게 이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디저트 카페에는 나, 아카샤, 로즈마리, 로테, 프레이, 그리고 레니냐를 위시한 몇몇 학생까지 끼었다. 평소 안면을 트고 지냈던 졸업생들은 전부 모였다고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카페테리아가 왁자지껄했다.

       

       “다들 사회에 나가면 무엇을 할 건가요?”

       

       로즈마리가 커피를 쪽쪽 빨며 화두를 던졌다.

       

       “난 대학원 갈래.”

       

       그리고 시작부터 센 게 나왔다.

       

       프레이가 콜라를 뿜으며 목을 켁켁거렸다.

       

       “로, 로테야. 그게 무슨 소리니?”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대학원에 가면 나쁜 지도교수를 만날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몇 년은 노예처럼 굴러야 한다구!”

       

       로테는 고개를 털어냈다. 눈동자는 사냥에 나온 매처럼 흔들림이 없고, 허리는 올곧게 폈다. 조만간 대사를 치를 사람처럼 흔들림 없는 모습이었다.

       

       “괜찮아.”

       

       로테가 프레이를 향해 웃어주었다.

       

       “컨택은 이미 끝났으니까.”

       

       곧 로테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낌새를 알아차린 로즈마리가 커피를 뿜으며 입을 열었다.

       

       “뭐, 뭐, 뭐, 뭔가요! 저 몰래 둘이서 전속 노예계약을 맺으셨다고요?”

       “블루베리, 말이 심하잖아. 노예계약이라니….”

       “언니가 대학원생을 돌보면 저랑 있는 시간이 줄어들잖아요! 이건 불공평해요.”

       “이 녀석, 본심이 튀어나왔구나.”

       

       나는 로즈마리의 볼살을 쭈욱 잡아당겼다.

       

       “아니, 그전에 에테르 언니의 성씨도 살리에르잖아요? 피가 맺어지지 않았다고는 해도 가족은 가족! 논문 심사 과정에서 비리라도 생기면 어떡해요?”

       

       좋은 지적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선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 정령인데?”

       

       나쁜 짓 하다가 들키면 좆된다. 세상의 다른 존재라면 몰라, 정령족의 명줄은 여신이 꽉 쥐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불안하거나 그렇지는 않다.

       

       2년간 정령계를 들락거리고 여러 임무를 맡아본 결과, 여신이 악신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한 쪽에 속한다. 하는 짓이 석사 1년차 대학원생 같아서 그렇지.

       

       아무튼 논문 심사를 날조한다거나, 표절을 장려하는 등의 정신나간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게 요지이다.

       

       “어차피 나는 그런 거 제일 싫어하거든. 무엇보다 로테가 그런 일을 벌일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로테는 천재의 반열에 드는 아이다. 심지어 이번에 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사실 당연한 수순이었다. 내가 1등이고, 로테가 2등이었으니까.

       

       “그리고 박사논문 심사 자체는 외부에서 전문가를 여럿 초청받아 하는 거니까,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어.”

       “우.”

       

       로즈마리는 입을 비죽일 뿐이었다.

       

       “그래서 프레이는 이제 뭐 하고 살 건데?”

       “나?”

       

       프레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는 신령님과 같은 사람이 될 거야. 요호족뿐만 아니라, 수인족을 두루 도와줘서 더 많은 친구들이 뛰어난 일을 해 줬으면 좋겠어!”

       

       프레이는 원래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다.

       

       에테리아가 생겨났으니, 그 목표는 얼추 달성된 셈이다. 그러니 다음 목표를 수인족의 문명화로 잡았다.

       

       평소 술에 찌들며 살긴 하지만, 프레이는 짐승보다 인간에 가까운 친구였다. 음주가무를 제외하면 자기 절제력이 뛰어나고, 학식도 풍부했다.

       

       무얼 하든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서쪽에 다녀올게!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그래. 하다가 지치는 일 있으면 연락하고. 언제든지 도와줄 테니까.”

       

       프레이는 히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뒤로 몇 명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는 로테처럼 대학원에 간다고 하는 한편, 또 누군가는 취업한다고 한다. 군 복무를 하겠다는 이도 있었고, 배운 마도를 활용하여 창업해 보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젊다는 건 좋구나.”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제 내 시선은 어느 엘프 소녀에게로 향했다.

       

       “레니냐.”

       “네, 넷!”

       

       내 부름에 레니냐는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

       

       “죄송해요. 무언가 생각하고 있어서요….”

       

       “미래에 할 일 말이니?”

       “네. 모두 다 생각이 있는데, 저만 마땅한 게 없는 것 같아서 고민이에요.”

       

       그렇구나.

       

       사실 이게 정상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도 방황한다. 내 진로가 무엇인지, 무얼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정답을 찾아내든, 찾아내지 못하든.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다 죽는다.

       

       “당장 하고 싶은 게 없단 말이지?”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 제가 잘할 수 있을지를 몰라서….”

       

       “뭔데?”

       

       레니냐는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혁명이요.”

       

       딸그락.

       

       로즈마리의 손에 있던 포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

       

       

       로즈마리는 소리를 지르며 집무실로 돌아왔다.

       

       “비상! 비사앙!!”

       

       에테리아에서 집정관 지위에 오른 로즈마리였다.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입장. 당연히 그 어떤 사람의 말이라도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그래, 여기까지 이해는 하는데.

       

       나로선 왜 로즈마리가 왜 이렇게까지 당황하는 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나는 황망히 움직이는 로즈마리를 붙잡으며 숨을 고르게 했다.

       

       “진정해 봐. 뭐가 그리 문제인데?”

       “저게 혁명을 한다고 하잖아요. 보통 혁명이라 하면 뭘 말하겠어요?”

       “뭐, 대대적인 개혁이나 국내 쇄신 같은 걸 말하는 거 아닐까?”

       “그러니까 그게 뭘 의미하는 거겠냐고요!”

       

       로즈마리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PTSD 환자처럼 동공이 좁아졌다.

       

       그러고 보니 얘, 레니냐한테 얻어맞은 적이 있었지.

       

       “이대로라면 우리나라가 무너질지도 몰라요. 어떻게 세운 금안족의 나라인데!”

       “금안족, 인간, 수인족의 나라지.”

       “표면적으로는 그렇죠. 하지만 우리가 주축이 되어야만 과거와 같은 수모를 겪지 않을 거예요. 왜 제가 언니랑 정령 계약을 맺고 싶어했는지 아세요?”

       “글쎄?”

       

       모른다.

       

       “그냥 나랑 한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야?”

       “그것보다 더 깊은 목적이 숨어있었죠. 금안족도 정령과 계약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다는 의미에서!”

       

       아.

       

       이해했다.

       

       “너 생각보다 음흉하구나.”

       “덕분에 그동안 에테리아에선 이렇다 할 차별이 없었죠. 하지만!”

       

       로즈마리는 목에 힘을 주어 말을 이었다.

       

       “혁명이라는 단어는 종족 초월적이에요! 금안족이고 뭐고, 이데올로기의 파도 앞에선 전부 뎅겅뎅겅이라고요!”

       

       로즈마리는 왕족이었다. 푸르고 푸른 노블 클래스. 때문에 혁명이라는 단어에 민감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

       

       “혁명을 일으키려면 일단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하잖아. 그래서 그 이데올로기가 뭔데?”

       “두말하면 잔소리죠.”

       

       로즈마리가 양쪽 손을 활용하여 낫 모양을 만들었다.

       

       “공산주의.”

       “뭐? 설마.”

       

       농담도 아니고.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언니는 레니냐의 삼촌이 누구인지 아세요?”

       

       촤라락!

       

       로즈마리가 ‘1급 기밀’이라고 적혀 있는 서류를 몇 장 꺼내 보여주었다.

       

       “2년 전, 플로반스 주에서 반국가적 무장봉기를 일으킨 사람이에요. 혁명가라고요. 언니도 알잖아요. 이 봉기는 현재에 이르러서 조금 잠잠해졌지만, 아직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어요.”

       “레니냐가 그 삼촌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을까?”

       “그랬을 가능성이 높죠. 제가 보아하건대, 조만간 카우렐리아는 안에서부터 무너질 거예요.”

       

       무너지든 말든 상관은 없다.

       

       나는 정령이다. 학술적인 것은 가르쳐 줄 수 있어도, 정치나 종교처럼 예민한 문제에는 끼어드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질문 정도는 할 수 있다.

       

       “카우렐리아가 무너지는 게 여기랑 무슨 상관인데?”

       

       그리 질문하자 로즈마리가 가꾸로 물었다.

       

       “언니, 도미노 이론이라고 알아요?”

       “도미노 이론?”

       

       예전에 들어본 적 있었던 것 같은데.

       

       혹시 하인리히의 도미노 이론을 말하는 건가?

       

       “그거라면 알지. 논문을 제출했을 때 300번의 사소한 오타가 난다 치면, 29번은 내용상의 중차대한 오류가 발견되고, 그중에서 한 번은 리젝될 만한 에러가…….”

       “아악! 전혀 모르고 있잖아!!”

       

       그래, 사실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자연철학자이니까!

       

       “어느 나라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 그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도미노처럼 줄지어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는 이론이죠. 옛 국제관계학 논문에서 여럿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그럴싸해서 유념해 두고 있었다고요.”

       

       과연.

       

       “카우렐리아에서 혁명이 성공하면, 과두정을 유지하고 있는 에테리아도 혁명의 전조가 생겨날지 몰라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레니냐가 혁명이라고 한마디 한 게 그리 위급할 일이니?”

       “위급한 일이죠!”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소파에 앉았다.

       

       정령이 되고 나니 세상 모든 일이 귀엽게 느껴진다.

       

       “뭐, 그래도 수십 년은 걸릴 텐데.”

       

       나는 로즈마리를 안심시키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로즈마리는 뒷목을 잡더니 짐을 싸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에피소드는 두 개 정도 남겨 놓았습니다.

    6월 23일까지 완결내 보도록 할게요 😀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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