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66

       변명하자면, 나는 그걸 실행한 적은 없다.

        

       생각만 했다. 생각만.

        

       스토리 도중에 황제를 암살해야 할 때를 대비해, 하수도 안쪽에 폭탄을 설치해 제도를 아래로 움푹 꺼지게 할 계획 같은 거 말이다.

        

       물론 건물이 위로 높으면 아래로도 깊게 파서 기반을 다져야 하는 법이고, 그런 설계는 황궁도 마찬가지였다.

        

       바닥에 폭탄을 깐다고 황궁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은 어렵다. 하수구가 무슨 황궁 주변을 빙빙 돌면서 있는 것도 아니고.

        

       무너진다고 해도 일부만 무너질 텐데.

        

       “…….”

        

       “…….”

        

       앨리스와 클레어가 나를 뚫어져라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만, 저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정말이야?”

        

       앨리스가 못 믿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정말입니다. 고려는 해봤지만.”

        

       “고려는 해봤다는 거 아냐! 설마 드레드노트 전함 내부를 알고 있던 것도 그런 식으로 몰래 들어가 봐서 알고 있던 거 아냐?”

        

       “…….”

        

       음…….

        

       드레드노트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많이 알고는 있는데.

        

       황궁 내부에 숨겨진 비밀도서관이나, 폭탄이 터졌을 때 병사들과 기사들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라던가…… 이것저것 실험은 많이 했다.

        

       내가 눈을 피하자, 앨리스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래도, 폭발시켜본 적은 없다는 말이지?”

        

       “부수적인 피해가 너무 크니까요.”

        

       어떤 일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피해가 너무 커서는 안 된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데, 확인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나도 피곤해지니까.

        

       하지만 게임 속의 저 실비아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잠깐!]

        

       실비아는 이제 막 돌아보았을 뿐인데, 레오는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

        

       [잠깐, 잠깐만. 실비아, 잠깐만 기다려 줘.]

        

       [레오?]

        

       앨리스가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레오를 보았다. 인물의 그래픽은 그렇게 많이 바뀌지 않았는데, 모션 자체는 조금 추가된 모양이다. 전작의 모션, 아니, 동사에서 나온 게임의 다른 모션들을 질리도록 우려먹는 이 게임에서 보기 드물게 내가 본 적 없는 모션이었다.

        

       [실비아, 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벌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들키고도 벗어날 방법이 있다는 건 알 것 같아.]

        

       [……무슨 확신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가 그저 당황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는데요.]

        

       [아니, 그렇지 않아.]

        

       레오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검술 훈련을 했으니 그 정도는 느낄 줄 알아.]

        

       […….]

        

       [그리고 네가 어떤 방법을 쓰건, 우리는 기억도 하지 못하겠지.]

        

       [레오?]

        

       이번엔 클레어의 반응이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그건 어떤 확신으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뭔가, 방법이 있는 모양이긴 하구나, 그렇지?]

        

       레오는 실비아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가며 말했다.

        

       [내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것이 신경 쓰이나 봐?]

        

       레오가?

        

       으음,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다 지나와서 알고 있는 내용이긴 했지만, 만약 실비아가 자기 자신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다면 저 말에는 속지 않을 것이다.

        

       여신의 능력에 대항할 수 있는 존재는 팬그리폰의 피가 흐르는 이들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중에서도 피가 진하게 흐르는 적합자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바로 레오 옆에 서 있는 클레어가 아니라면, 동시대에는 대항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클레어는 원작에서 죽었었지.

        

       하지만 만약 레오가 환상 속의 세상에 있을 때처럼 뭔가를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앨리스와 나를 처음 만났던 레오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었다.

        

       하지만 여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의 레오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앨리스와 클레어를 금세 자연스럽게 대했다.

        

       그게 남매가 된 나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보다는 레오가 ‘이전 시간대’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세계도, 그런 부작용이 생길 만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돌려서 생겨난 것이라면, 그 중심에 끼어있었을 레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는 것도 그럴싸하다.

        

       이런 식의 클리셰 중에서 유명한 대사를 떠올려보자면, ‘어라, 어째서 눈물이……?’라는 거다.

        

       시간을 그냥 돌리는 것이 아니라, 움직인 것을 원위치로 바꾸고 생겼던 기억을 지우고 고치는 것이다. 몇 번이고 반복되면 너무 깊게 새겨져 지우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는 것 아닐까?

        

       [……아뇨, 당신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정작 그렇게 말하는 실비아의 목소리에는 다소 의문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의문을 떠올린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아직은 모르기 때문인지는 모른다.

        

       [그 폭탄을 터뜨리려고?]

        

       […….]

        

       [지금 여기서 같이 나가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 여기 서 있겠어. 네가 설치한 폭탄이 폭발하는 것에 내가 같이 휘말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와 함께 나가줘.]

        

       [만약 당신이 말한 ‘방법’이 실존한다면, 제가 여기서 당신들을 죽여버리고 다시 돌려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실비아?]

        

       앨리스는 실비아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실비아를 불렀다.

        

       실비아는 앨리스 쪽을 보지 않고 레오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그쪽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그리고, 나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레오가 말했다.

        

       [너는 그러지 못해. 그러고 싶지 않은 거잖아. 만약 그랬다면 이미 기폭장치의 버튼을 눌렀겠지.]

        

       실로 소년만화에 나올법한 대사였다.

        

       ……하지만 진실이기도 했다.

        

       나는 그러지 않았을 거다.

        

       레오도, 클레어도, 실비아도, 샤를로트도, 절대 죽이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고작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 애들의—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애들의 안전을 칩으로 걸지는 않았을 거다.

        

       […….]

        

       실비아는 잠깐 침묵했다.

        

       [언니…….]

        

       자길 부르는 클레어를 흘끗 본 실비아는,

        

       [……그렇습니까. 역시, 당신은 지나치게 예리한 부분이 있네요.]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야?]

        

       [아뇨,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죠.]

        

       [그게 무슨—]

        

       [당신들에게 들키지도 않고, 필요 없는 부분만 확실하게 절제해낼 수 있는, 확실한 방법.]

        

       [실비아!]

        

       허무하다는 듯 말하는 실비아에게서 뭔가 느낀 듯, 앨리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실비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다시.]

        

       실비아가 말했다.

        

       *

        

       쿵.

        

       [어?]

        

       갑작스러운 폭음에 레오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보았다.

        

       [저건……?]

        

       황궁 쪽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상황을 눈치챈 시민 몇 명이 비명을 질렀다. 순식간에 주변이 아비규환이 되고—

        

       [……아버지?]

        

       근처에 있던 앨리스가 멍하니 중얼거리고—

        

       그리고—

        

       *

        

       [……어?]

        

       [레오, 집중 안 해?]

        

       다시 장소가 바뀌어, 이번엔 카페에 레오와 클레어, 앨리스와 샤를로트가 앉아있었다.

        

       [복습 중에 멍하니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설마 시험 기간 멀었다고 느긋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지? 너 그랬다가 시험 때 큰일 난다.]

        

       클레어가 나무라는 소리에, 레오는 눈을 몇 차례 깜빡이고는 피식 웃었다.

        

       [아, 미안. 잠깐 정신이 다른 데 팔렸나 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어……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레오가 조금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클레어는 보란 듯이 크게 한숨 쉬었다.

        

       [그냥 멍때리고 있었다는 소리 아니야…….]

        

       [너무 그러지 마세요, 클레어.]

        

       샤를로트가 쓰게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가끔은 머리를 식히는 시간도 있어야죠. 잠깐 차라도 한잔할까요?]

        

       [그래, 그 말에는 동의해.]

        

       샤를로트의 말에 앨리스가 대답했다.

        

       [그럼 잠깐 쉬는 시간 뒤에 이어서 공부하기로 할까?]

        

       [응…….]

        

       앨리스에게 대답하는 레오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눈썹은 살짝 내려가 어딘가 석연치 않은 것 같았다.

        

       *

        

       “…….”

        

       “…….”

        

       “그러니까, 아니라고 했습니다.”

        

       방송을 끄고 나서도 나를 빤히 바라보는 클레어와 앨리스에게, 나는 다시 한번 해명했다.

        

       “시간을 여러 번 돌리긴 했지만, 그런 대형 사고를 친 적은 없습니다.”

        

       “황궁 한가운데 폭탄을 던져놓는 건 대형 사고 아니고?”

        

       “그건 황궁의 병사들이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는지 알기 위해서…… 예?”

        

       앨리스의 돌발적인 질문에, 나는 순간 얼빠진 표정으로 그렇게 되물어보고 말았다.

        

       “싸울 때 칼과 마법을 대놓고 맞아가면서 다음 수를 생각했잖아.”

        

       클레어도 이어서 말하는 걸 보고, 나는 입을 멍하니 벌렸다.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십니까?”

        

       “음…… 그게, 사실 지금까지 기억이 이리저리 뒤섞여서 확신하지는 못했었는데—”

        

       “이쪽으로 넘어오고 나서 시간을 들여 기억을 정리하니 대충 어떤 법칙인 건지 떠올랐다는 거겠지. 나도 그렇거든.”

        

       “…….”

        

       아, 설마.

        

       여신의 힘에서 멀어지면서 그 권능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 돌렸던 시간대에 대한 기억도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일까?

        

       “사실 아직은 조금 희미하긴 하지만.”

        

       “응. 그래서 더 헷갈리기도 하고.”

        

       여신의 힘이 아직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나지 않아서 기억이 완벽하게 나지는 않는 모양이고.

        

       그리고, 만약 우리가 저쪽 세상으로 돌아가고, 여신의 힘이 세상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면—

        

       설마 그쪽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그 모든 기억이 다 돌아온다는 소리일까?

        

       ……돌아가지 않는 쪽을 한 번 고려해봐야 하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감사는 오늘 안에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

    빅괴군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여기 글을 쓸때만 해도 제가 소설을 끝까지 쓸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심지어 소설로 돈을 벌게 될 줄도 몰랐고요.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많은 독자분들의 응원을 받고, 칭찬을 받으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방향성을 정했다고 할까요? 기왕 꿈에 가까워졌으니, 그 꿈을 이루어보자는 마음으로 매일같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다녀왔어을 쓸 때쯤에는 아이디어가 떨어져서 다다음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지금은 또 아이디어가 하나씩 떠올라서 다시 쓰고 싶은 내용이 몇 개 정도 생겼네요. 말씀드린 것 외에도 이것저것 한번 많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그 다음 작품들도 독자 여러분의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언제나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어주시는데 쓰신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꾸준히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다시 한 번, 박괴군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예전에 읽던 라이트노벨의 권말 작가 후기에는 종종 라이트노벨의 등장인물들을 불러내 작가가 인터뷰하는 내용이 실리곤 했습니다. 물론은 대부분 개드립이었지만요.

    그때는 그게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감성이 너무 올드하다고 해야할까요…… 애초에 오래된 소설이니 올드한게 맞는 말이기는 한데, 요즘 와서 하면 정말 엄청나게 오그라들지 않을까요?

    하지만 독자님께서 팬그리폰 세자매의 방송 후원이라고 하셨으니, 일단 써보기는 하겠습니다!

    “후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때까지이긴 합니다만.”

    “언니, 그거보다는 조금 더 성의있는 대답을 해드려야지!”

    “나는 방송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성의없게 대답해도 괜찮은거야?”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언니, 이번에도 성의 없어.”

    “진짜 성의 없네.”

    “……다음부터는 두 사람이 하십시오.”

    제숗합ㅂ나다
    손발리오글라듀ㅔ러스 ㄷ더안ㄲ써져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