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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6

    그렇게 예르나와 그가 준비한 장소로 향하고 있을 때쯤, 이상함을 감지한 그가 백미러를 조작하며 뒤를 살폈다.

     

    ‘역시나.’

     

    벌써 몇 분 째, 시야에 같은 차량이 들어오고 있었다.

    단순히 가는 길이 일치했다고 보기에는 미묘하게 차량간격을 유지하며 뒤를 밟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 마음에 걸린다.

    게다가, 현재 그들이 차를 모는 방향은 평범한 사람은 그다지 향할 이유가 없는 외딴 창고시설.

    아무래도 아직까지 따라온다는 것은, 명백한 미행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심지어 진한 선탠이 발라진 차창 너머로 보이는 운전자의 실루엣도 상당한 거한인 데다가, 얼핏 보이는 눈빛까지 굉장한 기세를 뿜고 있지 않은가?

    이는 그에게 곧 확신을 갖게 했다.

     

    “또 다른 미행이 붙은 것 같군.”

    “……네? 미행이요?”

     

    그의 말에 아까부터 다른 생각을 하다가 미행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예르나가 뒤늦게 목소리를 높였다.

     

    “뭘 전혀 몰랐다는 듯이……. 설마 무슨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냐?”

    “…….”

     

    그의 질책에도 예르나는 할 말이 없었다.

    다이튼의 수명 문제를 의식하게 된 이후 걱정거리들이 줄줄이 이어져나온 것을 어쩌란 말인가?

    생각해보면 다이튼 뿐 아니라, 현 가족의 구성원 중에서 장수종은 자신을 제외하고는 없다.

    루크는 안 그래도 불안정한 키메라에 과거 시한부 판정까지 받았던 아이고, 디아나도 평균수명 100년을 못 넘기는 인간 아이다.

    정령화가 가능한 파이리스는 어떨 지 모르겠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혼자 남게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외로움은 예르나를 감상에 젖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런 예르나의 생각을 읽은 그는 낮게 한숨을 한번 내쉰 뒤, 보라는 듯이 턱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저 차량, 아까부터 쭉 우리를 따라오더군. 어디선가 뒤를 밟힌 모양이다.”

     

    그 말에 고개를 돌린 예르나는 자신들을 미행하는 차량을 보고는 눈썹을 모았다.

     

    ‘저 차량, 왠지 낯이 익은데.’

     

    우연인가?

    다이튼의 차량과 동일한 모델처럼 보인다.

    선탠이 진하게 되어서 잘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의 실루엣도 왠지 몸집이 큰 것 같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차량번호가 다이튼의 차와 똑같다.

     

    “설마……?”

     

    예르나는 창문을 내리고는 머리를 창 밖으로 내민 뒤, 눈가에 힘을 주며 진한 선탠을 투과해 보기 위해서 애를 썼다.

    그리고, 이내 예르나의 표정은 경악에 물들었다.

     

    “다이튼!”

     

    아는 동생, 테너의 연락을 받고 그들을 쫓아온 다이튼이었다.

     

    “다이튼? 그게 누군데?”

    “제 남편이요!”

     

     

     

    —–

     

    자신들을 미행한 것이 남편이라는 예르나의 말에, 그는 차를 갓길에 대어둔 채 내렸다.

    그러자, 미행하던 차량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멈춘다.

     

    잠시 후, 차량에서 내린 것은 역시나 다이튼이었다.

     

    그의 어마어마한 몸집을 본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예르나를 바라본다.

     

    “저게 네 남편인가? 몸집이 장난 아닌데. 밤이면 꽤나 고생하겠어.”

    “……혹시, 노망나셨어요?”

     

    예르나는 그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주먹을 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그가 풋내기시절 자신을 가르친 선생이나 다름없던 전 상사였다는 점과, 이미 노쇠한 그를 실수로 잘못 때렸다가 크게 다칠까 염려되는 마음에 그러질 못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그런 순수해 보이는 모습을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되어 즐거울 따름이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현재 가족을 만나 예전 일은 완전히 털어낸 모양이었다.

     

    그는 가슴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끼며 예르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그런데 대체 네 남편이 왜 우릴 쫓은 거지?”

    “……사실, 남편하고 다시는 이런 위험한 거 안 하기로 약속했거든요.”

    “이런 위험한 거라니. 그게 무슨……. 아.”

     

    상황을 이해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의 허락 없이 시작한 일이었나.

    예르나는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참 말괄량이로구만.

     

    이윽고, 그들에게 다가온 다이튼은, 격노가 담긴 싸늘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예르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으, 응?”

     

    예상치 못하게 다이튼의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한 예르나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고보니, 다이튼이 화를 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은 현재, 아는 사람이랑 잠깐 만나고 온다고 해 놓고 몰래 시설 잠입을 하려다 들킨 상황이다.

    그러니,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쪽은 자신이었다.

     

    아무리 루크를 위해서라지만, 분명 이런 위험한 짓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었는데 먼저 그 약속을 어긴 건 자신이었으니까.

    예르나는 그 일로 다이튼이 자신에게 약속도 못 지키는 여자라고 실망할까봐 두려웠다.

     

    “아니, 그……. 그게.”

     

    예르나의 두려움이 섞인 반응에 다이튼은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예르나, 왜 네가 저 사람이랑 만나서, 이런 곳까지 온 거야?”

     

    예르나는 그런 다이튼의 모습을 처음 보아 당황한 마음에 머리가 잠시 굳어버린데다, 미리 생각해 둔 변명거리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곧장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예전에 루크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고양이 사진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 이야기도 다이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다 지난 옛날 일로 지금 자신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느냐는 이유였었지.

     

    그래,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그냥 놔두기엔 너무나 마음에 걸리지 않는가.

    예전에 우연히 ‘딜런트’를 마주쳤을 때처럼, 그냥 덮고 살아가면 루크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 지 모르는데.

     

    “……히끅.”

     

    ……그런 말을 내뱉어야 하는데, 나오는 건 오로지 딸꾹질 뿐이었다.

     

    그 때, 예르나가 마치 혼나는 아이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 마냥 우물거리기만 하는 모습에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 광경을 곁에서 지켜보던 노인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일단은 진정하게. 젊은이.”

    “진정?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그리고, 당신은 대체 누구야?”

     

    다이튼은 사나운 맹수와도 같은 표정으로 그를 내려보며 강압적으로 물었다.

    그는 그런 시선을 능숙하게 받아넘기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아아, 그래. 일단 내 소개를 하지, 내 이름은 고든일세. 여기 예르나와는 예전부터 함께해온 오랜 인연이지.”

    “고, 고든? 네?”

     

    그의 소개에 예르나는 기겁했다.

    설마 여기서 그가 자신의 본명까지 말한다니?

    게다가 ‘오랜 인연’이라는 말은 또 그만큼 오랜 시간 작전을 함께해온 사이라는 뜻으로, 그 또한 숲에 몸담고 있는 조직의 일원이었다는 것까지 밝히는 말이었다.

    이는 그가 그만큼 다이튼을 신뢰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지금 하면 다이튼이 좋아할리 만무하다.

    옛 부대의 동료와 함께, 드라이브나 하자고 이런 외딴 시설이 있는 장소로 온 건 아닐 테니까.

     

    아니나다를까, 그런 소개를 들은 다이튼은 인상을 더욱 찌푸렸다.

     

    ‘오랜 인연’이라니, 대체 언제부터 이런 관계를 유지해왔단 말인가!

    다이튼은 이를 악물며 씹듯이 말했다.

     

    “오랜 인연이라고?”

    “……응.”

     

    이제는 정말 끝이라는 생각에 예르나는 안절부절 못하며 단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다이튼은 아까까지 머릿속 가득 들어차있던 분노가 역치를 넘어 싸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아까부터 시종일관 저 고든이라는 노인을 향해 주먹을 쥐는 모습과, 그리고 자신을 보기 위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짓던 그 경악과 환희가 섞인 반응, 그리고 차에 올라탈 때에 짓던 그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 한 표정들…….

     

    이내, 그는 확신했다.

     

    그녀는 뭔가, 가족으로 약점이 잡힌 게 분명하다.

    그녀는 분명히 그에게 가족으로 협박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그녀가 저항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난 가족이 되어서 혼자서 이렇게 맘고생을 하게 하다니…….’

     

    이내 다이튼은 조용하게 읊조렸다.

     

    “예르나.”

    “그러니까, 이건 말이지…….”

     

    여전히 상황을 어떻게든 설명해보려는 예르나의 발악 같은 모습에 다이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도 알아, 어떤 상황인지. 말 할 필요 없어.”

    “그, 그래?”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니까.”

    “다이튼…….”

     

    다이튼의 말에 예르나는 그가 자신의 생각을 알아주고 이해해주었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감동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일체 마법주문의 강화효과 없이, 그저 순수하게 단련된 근육에서 뿜어져나온 압도적인 물리력이 그의 턱에 정확히 들어가 꽂혔기 때문이다.

     

    -빠각!

     

    “크헉-!”

     

    “다 이 자식이 협박해서 꾸민 일이지!”

     

    그에, 예르나는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달려들 수 밖에 없었다.

     

    “아냐, 아냐! 그건 오해야!!”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불행한 오해였다.

     

    —–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준비된 양의 행운과 불행이 있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희귀병으로 시한부를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는 건강 따위는 일체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오래오래 살다가 제명을 다해 죽는 사람이 있듯이.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자연스레 자신의 운 또한 정해져서 태어난다는 이야기다.

     

    그것을,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부른다.

     

    “…….”

     

    루크는 제 손에 들린 작은 사각형의 종이조각을 바라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온천 여행권’.

     

    뽑기의 1등 상품으로 기획되어있던 상품이, 어째선지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참으로 이상하다.

    이는 운명의 장난인가?

    어쩌면, 이 몸에 주어진 운명적인 불행이 며칠동안 있었던 일로 다 떨어져버린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고작 꽃병이 좀 떨어지고, 길을 걷다 물웅덩이에서 물이 좀 튀는 수준의 불행이 인생에 준비된 불행의 전부라면 참 빈약한 수준이다만…….

     

    헌데, 1등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1등이 주어지는 것은, 과연 행운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불행이라고 불러야 할까?

     

    루크는 1등 상품이 필요 없으니 2등이나 3등으로 바꾸어 달라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부탁에 한 학생이, ‘상품을 바꿔 달라니, 너는 지금 우리 부모님이 운영하는 온천이 그렇게 싫다는 거야, 뭐야?’라고 반발하는 바람에.

     

    허나,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팔면 되니까…….’

     

    4인 가족 여행권이니, 그래도 최신식 휴대폰이나 청소기 정도의 값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우와, 바로 1등이야! 온천 여행권!”

    “저기, 언니. 온천이 뭐야? 혹시 먹는 거야?”

     

    루크의 뽑기를 곁에서 바라보던 파이리스와 디아나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디아나는 일행에서 1등이 나왔다는 것이 마냥 즐거운 모양이고, 파이리스는 인간의 언어로 온천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는 모양이다.

     

     

    “응, 온천이라는 건, 지맥에 흐르는 뜨거운 마나로 덥혀진 물이 솟는 샘을 말한다. 수질이 좋으면, 사람들이 목욕을 하기도 하지.”

     

    온천을 궁금해하는 파이리스에게 적당히 대답하자, 파이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목욕? 거기서 하면 집에서 하는 거랑 다른가? 난 목욕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러자, 디아나가 대꾸했다.

    “엄청 다르지! 온천은, 엄청 크다구! 거기서 목욕하면 엄청 개운할 걸.”

    “진짜아? 궁금하다.”

     

    “…….”

     

    그 모습에 결국, 루크는 그 티켓을 팔아버리겠다는 생각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벌써 온천 생각에 들떠 있는 아이들에게, ‘이건 팔아서 돈으로 바꿀거니까 신경쓰지 말거라.’ 라고 말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역시 운명은 이상해.’

     

     

    이렇게되면 하는 수 없이 휴대폰과 청소기는 제 돈으로 사는 수 밖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일 1루크 할당제로 오늘도 마지막에 짧게 얼굴을 비춘 루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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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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