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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6

    <366 – 진상조사>

     

    가면은 편리하다.

    자신의 표정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근육의 작은 변화로 마음을 읽히거나 공격 타이밍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

    공격에도 방어에도 유리한 수단.

    즈앙에게 가면은 그런 존재였다.

     

    ‘꽤 오랜만이네. 오크노디의 주변 사람 앞에서 다시 가면을 쓰는 건.’

     

    지젤의 부름을 받았을 때부터 그녀는 왠지 모를 감각이 들었다.

    태풍이 불기 전에 하늘이 고요하고 운수가 좋지 않을 날에 액자가 떨어지듯이, 평소 그녀가 등굣길에 올라타던 나뭇가지가 뚝 소리를 내며 꺾였다.

     

    ‘경계의 상대가 지젤이 될 줄은 몰랐지만.’

     

    지젤은 좋은 사람이었다.

    벨로카시오 선배의 악덕계약에서 학생들을 구해주고 훨씬 넉넉한 가격에 많은 물품을 구매했다.

    독점한 재료를 가지고 독과점의 매운 맛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제국교수나 교관들이 강의시간이나 장소가 변경되어도 알려주지 않는 것을 대신 공지하며 1학년들의 원활한 아카데미 생활도 도와주었다.

    학년 내에서의 지지는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학년 최강자가 이슈타르, 최고권력자가 매스각키, 학년수석이 오크노디라면 차기 학생회장은 제국학생들조차도 지젤을 손꼽을 정도였다.

     

    -삼대공신가문 녀석들하고는 어떻게 친해졌어?

    -누구나 힘든 시기에는 고향의 음식을 그리워하지 않습니까? 그분들이 요리를 하는데 필요한 재료나 요리도구 등을 수배해드렸습니다.

    -흐응~ 그래? 똑똑하네.

     

    적에게도 쉽게 척을 지지 않고 경계를 낮추며 좋은 인상을 심어둔다.

    그 속에 변방과 제국의 대화창구를 자신 하나로 좁히고 그 사이에서 이득을 보는 계획이 숨어있음을 깨달아도 즈앙은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의도야 어떻든 자신을 포함해 많은 학생들이 지젤의 도움으로 아카데미 생활을 편하게 하고 있으니까.

     

    “조사의뢰. 대상은 조나 와이히엠하이. 이게 얼마나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인지는 당신도 알지?”

     

    서로가 서로에게 득이 되는 관계일 때, 사람은 서로를 편하게 대할 수 있다.

    하지만 한쪽이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할 때에도 그 관계는 이어질 수 있는가?

    즈앙의 가면은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려운 부탁이지만 의지할 수 있는 분이 즈앙 당신밖에 없습니다.”

    “그건 당신의 사정이야.”

    “오크노디양의 집사와 관련된 일입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까?”

    “부족하지. 그 사람이 뭘 하는 사람이든, 어떻게 살아온 사람이든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이제 막 일어난 실종사건의 진상조사와 관련된 일입니다.”

    “그럼 더 위험하네. 그 무시무시한 실력자가 작정하고 벌인 일의 뒤를 캐내는 일이니까.”

     

    즈앙은 잠시 무언가를 고민했다.

    기프트 아카데미.

    이 대단한 교육시설에 그녀가 찾아온 이유는 암살자로서 한층 더 높은 성장을 이루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오크노디나 티토소가 같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었고.

     

    “입학시험의 넘버링 티켓. 얻었어?”

    “넘버링…? 상급반 우대티켓이라면 아쉽지만 입수에 실패했습니다.”

     

    지젤은 이상함을 느꼈다.

    넘버링 티켓은 일종의 보증수표.

    상급반 후보생으로 만에 하나 입학시험에서 탈락하더라도 하급반 시험을 재차 치를 수 있는 여분의 도전권과 같은 개념이었다.

    넘버링 티켓을 입수한다면 첫 인상이야 뚜렷하게 남길 수 있다.

    남들과는 다른 될성부른 씨앗의 자질을 초창기부터 보였다는 증거이니까.

    하지만 입학 이후로 벌써 반년도 넘게 지났다.

    이제 와서 다 지난 티켓의 소지유무를 묻는 것은 다소 엉뚱하게 들렸다.

     

    “없나보네. 그럼 이야기는 끝이야.”

    “넘버링 티켓의 소지자를 수배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알다시피 암흑상회의 정보력은 1학년 내에서는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오크노디 개인의 정보력보다도?”

    “…그녀는 규격 외입니다.”

    “킥킥. 알아. 조금 심술 부려봤어. 당신이 저지른 심술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잖아?”

     

    웃음이 차갑다.

    즈앙과의 거리가 빠르게 멀어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여기서 동요하는 건 삼류다.

    지젤은 속으로 차가운 호수를 떠올렸다.

    일그러지고 겉으로 드러나려는 표정을 모두 차가운 호수 속에 담가버린다.

    호수 밑바닥까지 차갑게 식은 채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는 광경을 상상하면서.

    그것은 즈앙과는 다른 지젤만의 가면이었다.

     

    “신용이 의심받는 상황이니 믿음을 살만한 정보를 하나 열어드리죠. 저희 암흑상회에서는 현 학생회 임원 중 한 명과 접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학생회의 지배구조, 수익모델, 주요권리 등의 정보를 제공받는 대가로 포인트와 노동력을 지급하고 있죠.”

    “그래서?”

    “넘버링 티켓이 기존의 인식과 달리, 어떤 비밀을 지니고 있는지는 언제라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네가 원하는 대가를 받고 싶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교섭을 하는 것이 유일한 기회다.

    지젤의 교섭에 즈앙이 가면 아래로 비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거래조건을 제시하겠어. 넘버링티켓 소유자를 찾아. 그리고 내 앞으로 티켓을 양도시켜줘. 이 조건이라면 실종자조사에 착수하겠어. 물론 결정하는 건 지금 이 자리에서. 다음 기회는 없어.”

     

    가치를 모르는 넘버링티켓의 양도.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가치가 걸린 대가일지도 모른다.

     

    “드리겠습니다.”

    “!”

     

    즈앙은 솔직히 의외라고 생각했다.

     

    “상인은 이윤을 따지지 않아?”

    “이윤만 생각했다면 제가 이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의 입학은 오직 한 아이의 안위를 위해서.

    지금의 결정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가면 너머 즈앙의 얼굴에서 조금은 냉랭함이 줄었다.

     

    “그 마음 변치 않는 게 좋을 거야. 나 같은 위험한 여자를 밤중에 단둘이 마주치고 싶지 않으면.”

     

     

    * * *

     

     

    객관적이지 못한 암살자는 모두 죽은 세상에 당연하다면 당연할 이야기지만 즈앙은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암살에 한해서는 은패급 실력자를 사살할 수 있으며 은신에 한해서는 금패급 실력자조차 속일 수 있다.

     

    은패. 상위 1%. 지역대피령 발령.

    금패. 상위 0.1%. 국가재난.

     

    몬스터 위험등급 분류체계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세간에서 그녀의 은신과 암살을 막아낼 실력자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대륙십대도적의 일원인 목숨도적의 하나뿐인 제자로서 그녀의 표적은 극히 드문 고수들이 되어야만 했다.

    교수급 실력자들은 모두 최소 금패에 해당하는 자.

    은퇴한 전대용사 디스트로이어 수준의 교수는 백금패급 실력자로 손꼽힌다.

     

    조나 와이히엠하이가 그 정도의 고수인가?

    여름방학, 크루즈선에서 목격한 광경은 확실히 보통이 아니기는 했다.

    그 많은 학생들이 속수무책으로 쓸려나간 마족계약자 로우를 상대로 단신으로 대등한 결전을 벌였다.

     

    동원되는 마나총량의 거대함.

    그를 버텨낼 튼튼한 신체와 정신.

     

    적절한 환경이 갖추어진 최상의 포텐셜은 백금패를 넘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객관적인 조나 와이히엠하이의 실력은 결코 백금패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의 강함은 <금속조작>을 원활히 펼칠 수 있는 환경에서 비롯된다.

     

    ‘아카데미에서 가지고 다닐 금속이 많아봤자 얼마나 많겠어?’

     

    강의시간에는 실습용으로 많은 금속을 (교관들이) 가져오지만 평상시에까지 철괴가 가득 담긴 금속상자를 안은 교관들을 주변에 데리고 다니진 않겠지.

    기척을 피해 은밀하게 간격 속에 발을 들이니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역시 몰라.’

     

    애초에 즈앙이 조나를 염탐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오크노디를 면회하기 위해 아카데미를 방문했던 조나를 가로막고자 디스트로이어가 경계변형의 영역을 펼쳤을 때.

    막대한 중력이 이중 삼중으로 경계를 그리며 짓누르는 가혹한 결계를 그 출구에서부터 역순으로 파고들어 지켜보았다.

     

    <마나연공법>

    <철갑기공>

    <호신기 – 은산철벽銀山鐵壁>

     

    조나의 금속조작술은 시선에서 비롯되는 폭압적인 중력의 제약을 거스를 정도로 튼튼했다.

    자신만의 영역을 착실하게 구축해서 어떤 영역에 침범해도 존재가 흐트러지지 않고 굳건히 자신의 성질을 유지한다.

    담금질 된 금속과도 같은 마나와 영역을 지닌 자.

    그는 끝내 디스트로이어의 영역을 뚫고 오크노디의 면회에 성공했다.

     

    ‘두 번째는 크루즈선과 무인도에서.’

     

    은신을 통해 기척을 감춘 채로 오크노디의 집사, 조나 와이히엠하이를 계속해서 관찰했다.

    그리고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조나 와이히엠하이가 디스트로이어의 영역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었음을.

    그의 영역은 예전과 달리 하나가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영역이 스프링에 꾹 눌러담긴 것처럼 중첩되어 있었다.

    강한 압력을 받아 짓눌려도 버틸 수 있도록.

    참고 또 참으며 견뎌내면 그 뒤에는 폭발적인 분출이 가능하도록.

     

    ‘만일 저 남자가 수상한 곳에 발을 들인다면 분명 그 영역을 색적에도 사용하겠지.’

     

    오크노디도 배낭을 얻기 전에는 나무등치에 먹을 걸 숨겨두거나 모래밭에 야생의 학생들을 습격해서 얻은 전리품을 숨겨두면서 늘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니까.

    단지 집사의 두리번거림은 오크노디와 다르게 스케일이 조금 다를 뿐이다.

     

    <마나연공법>

    <철갑기공>

    <색적기 – 격금음차擊金音叉>

     

    금속을 쳐서 소리가 울리듯이 퍼지는 영역.

    겹겹이 발산되는 영역은 강제로 주변 공간을 밀어내고 모든 마법적 영향력을 밀어내며 그 형체를 주인에게 낱낱이 고해바친다.

    이 영역 속에서 들키지 않을 방법은 오직 하나.

    자신의 마력반응을 철저하게 감춘 채, 다른 사물로 위장하여 무생물이 보일법한 최소한의 진동만을 보이며 감각을 속이는 것이다.

     

    <상급은신술>

    <경계속이기 – 물아일체物我一體>

     

    아카데미에서라면 어디에나 있을법한 과제더미가 수북하게 담긴 상자의 진동수를 모방해낸 즈앙.

    그녀의 감쪽같은 변장에 깜빡 속아넘어간 조나가 그대로 벽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그극.

     

    금속조작술을 통해 활짝 열리는 금속 벽.

    그 속의 계단으로 사라지는 조나.

    즈앙은 확신했다.

    저렇게까지 교묘한 수단으로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기는 하구나.

    닫혀가는 벽의 밖에서 진입을 고민하는 그때, 문으로 다가가던 그녀의 어깨에 누군가가 부딪쳤다.

     

    “아얏.”

    “!?”

    “헉! 위험하게 단검부터 꺼내면 어떡해?”

     

    목에 단검부터 겨누고 언제라도 체중을 실어 일격에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자세를 취했던 즈앙.

    그녀와 눈을 마주친 사람은 바닥이 뚫린 나무박스를 뒤집어쓰고 살금살금 벽을 향해 다가오던 또 다른 미행자, 금발에 리본머리띠를 쓴 오크노디였다.

     

    “여기서 뭐해?”

    “신규이벤트 탐색!”

     

    …상자를 뒤집어쓰고?

     

    “이번 주 과제는?”

    “다했어!”

     

    자세히 보니 상자 속에 과제가 잔뜩 담겨있다.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과제가 잔뜩 담긴 과제상자가 어디서 나타났나 했더니 오크노디가 뒤집어쓰고 다니던 상자였다.

     

    “언제 봐도 참 별나네.”

    “즈앙은 여기서 뭐해?”

    “너희 집사님 조사.”

     

    여전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재수 없는 소리를 천진하게 내뱉는 얼굴을 보아 오크노디로 위장한 누군가는 아님이 확실했다.

    그래서… 오크노디는 어떻게 나올까?

    친구의 집사를 염탐하려 했다고 화를 낼까? 우린 이제 절교라며 선을 그을지도 모르지. 그건 솔직히 좀 마음이 아픈데.

     

    ‘정말로 그런 말을 들으면 화풀이 삼아서 지젤을 찌를 거야.’

     

    품속의 나이프를 만지작거리는 그녀에게 오크노디는 해맑은 얼굴로 권유했다.

     

    “같이 들어갈래?”

    “좋아.”

     

    조나의 미행이 2인 파티로 늘어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응애암살자 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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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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