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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6

       로즈마리는 집무실을 빛과 같은 속도로 빠져나왔다.

       

       “언니, 시간 되면 저와 두 달만 함께해 줘요. 아니, 무조건 함께해야 해요.”

       “그러지 뭐.”

       

       로테가 대학원 등록을 할 때까지 그 정도 시간이 남아있다.

       

       나는 로즈마리를 따라 역으로 향했다. 로즈마리는 에테리아에서 높으신 분이었기에 수행인이 수십 명 따라붙었다.

       

       “집정관 각하, 어딜 가시렵니까?”

       

       금빛 눈동자를 지닌 수행비서가 로즈마리에게 물었다.

       

       “카우렐리아로 갈 거예요.”

       “목적이 어찌 되십니까?”

       “잠입.”

       

       비서가 어이없다는 듯 받아쳤다.

       

       “잠입이요? 높으신 분께서 직접 첩보 활동을 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나도 그게 의문이었다.

       

       마왕군이었을 때와는 달리 로즈마리는 한 국가의 수반이 되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함부로 자기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된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어서 그래요.”

       

       비서가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공개적으로 방문하시는 게 뒤탈이 없을 것입니다.”

       “들어보니 당신 말이 맞군요. 차라리 그게 낫겠어요.”

       “네, 즉시 수행단을 꾸리도록 하겠습니다.”

       

       비서는 뛰어난 훈련받은 경호원을 즉시 발탁했다. 더불어 카우렐리아에 그녀의 방문을 전하는 공문서를 써서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그 사이에 로즈마리는 플랜을 여럿 세웠다.

       

       문득 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카우렐리아에서 너 오라고 허락해 주긴 할까?”

       “할걸요? 오히려 이런 시국이니 무조건 오라고 할 거예요.”

       

       그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반응이 나타났다.

       

       [현지 시각 10시 56분, 로즈마리 살리에르 집정관의 방문 의사에 대통령께서 환영한다고 답하였습니다.]

       

       “이것 봐요. 제 예상이 맞았잖아요.”

       

       로즈마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즉시 카우렐리아의 수도 메르헤름으로 향했다.

       

       입국하자마자 나는 불가시 모드를 켜고 로즈마리의 머리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두 정상은 가볍게 악수했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입니다. 아이젠 대통령님.”

       

       두 사람의 입은 웃고 있었으나, 눈은 그렇지 않았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철천지원수. 그런 분위기였다.

       

       “대통령께서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요새 업무가 많아서….”

       

       오랜만에 본 아이젠 대통령은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그동안 국민의 질타를 더럽게 많이 받은 모양이다.

       

       “국빈 방문을 환영합니다. 급하게 성사된 일인데, 차로 가면서 가볍게 담소를 나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로즈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정상은 무수한 카메라 셔터를 견디며 이동했다.

       

       로즈마리는 대통령과 같은 차를 탔다. 탁, 하고 골렘의 문이 닫히자마자 아이젠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워낙 급하게 방문하셔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혹 어떤 일로 방문하셨는지 듣고자 합니다.”

       “한 번 맞춰보세요.”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해서입니까?”

       “그것도 하나죠.”

       

       잠시간의 정적.

       

       아이젠 대통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본국에서는 에테리아 집정관 여러분이 본국과 원만한 관계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

       

       뚝, 하고 대화가 갑작스레 끊겼다.

       

       숨 막히는 분위기.

       

       나도 모르게 호흡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물론 정령은 숨 안 쉰다고 죽거나 하지는 않지만.

       

       “…국가 중대사가 저희의 몇 마디로 실타래 풀리듯 풀려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허허, 동감입니다.”

       

       두 위정자가 냉소를 지으며 대화를 마무리한다.

       

       이윽고 회담 장소에 도착한 두 사람.

       

       하이얀 계단 위에서 로즈마리가 입을 열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그리하시지요.”

       

       로즈마리는 치맛자락을 붙잡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녀는 타르케닐 예법에 맞춰 대통령궁까지 걸어갔다.

       

       정오부터 12시 45분 사이에 오찬이 진행되고, 뒤이어 비밀 회담이 열렸다.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수행비서와 사관을 전부 내보내도록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리 조치했습니다. 저희의 대화가 바깥으로 새어 나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이에 로즈마리가 감사를 표하며 자리에 앉았다.

       

       동시에 나는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아마 희미한 악의인 것 같다.

       

       정령은 음험한 뜻을 지닌 사람을 미약하게나마 분별할 수 있다. 나는 직감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가의 커튼 뒤라든지, 선반의 밑부분 등등. 몰래카메라나 도청장치를 설치할 만한 장소를 위주로 확인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카우렐리아 당국에서 금안족의 출입국 허가령을 내려주세요.”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나는 불가시 모드를 유지한 채로 선반부터 차근차근 깊게 조사했다.

       

       “그건 어렵습니다. 카우렐리아에 사는 금안족 또한 동등한 우리 국민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혜택은 차등하여 주는데 세금은 동일하게 걷어간다면 차별이라는 말이 나올 겁니다.”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금안족의 출국 제한 조치를 풀어주세요.”

       “어째서입니까?”

       “민주 국가에선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카우렐리아는 국민 주권을 가진 국가입니다. 국민의 동의 없이 기존 정책을 어지러이 바꿀 수 없습니다.”

       

       딱히 이렇다 할 만한 물건이나 장치는 찾지 못했다.

       

       그 사이에 비밀 회담이 끝났다.

       

       “잠깐 일 좀 보고 다녀오겠습니다.”

       “예, 그러시지요.”

       

       로즈마리는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내게 속삭였다.

       

       “혁명을 막을 수는 없겠어.”

       

       어, 그래 보여.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도미노 이론이 적용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겠지.”

       “어떻게?”

       

       내 물음에 로즈마리는 입가에 검지를 가져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지금은 입밖에 내면 안 되는 모양이다.

       

       

       **

       

       

       레니냐는 틸레트 졸업장을 가지고 금의환향했다.

       

       아니, 이걸 금의환향이라고 할 수나 있을까?

       

       살아온 고향이 자신을 반기지 않는데, 어떻게 틸레트 아카데미를 졸업했다는 것을 주변에 얘기할 수 있을까.

       

       레니냐는 애석한 마음에 남부의 어느 도시로 향했다.

       

       플로반스.

       

       2년 전, 삼촌 막시가 혁명세력을 모아 봉기를 일으켰다는 지역.

       

       ‘여기라면 들어가도 괜찮겠지.’

       

       레니냐는 후드로 눈을 최대한 가린 채 플로반스 시내로 향했다.

       

       플로반스 지역은 대체로 잠잠했다. 얼마 전 봉기가 일어났던 지역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꼬르륵.

       

       ‘일단 밥이라도 먹어야겠네.’

       

       레니냐는 적당한 식당을 탐색했다. 그러다가 독특한 이름을 지닌 집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붉은별 호프집]

       

       ‘멋있다.’

       

       안 들어가고는 못 배기는 이름이다.

       

       레니냐는 환전한 엘프국 지폐를 품에 쑤셔넣고는 종종걸음했다.

       

       들어가자마자 웬 우락부락한 남자가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다.

       

       “뉘쇼.”

       “밥 먹으러 왔는데요. 혹시 영업시간 아닌가요?”

       “영업시간 아니오. 애당초 여긴 문 닫았으니 식사하려거든 다른 곳을 알아보고… 응?”

       

       거기까지 말하던 남자가 눈망울을 휘동그랗게 떴다.

       

       “너, 레니냐 아니냐?”

       

       “엥켈톤 아저씨?”

       

       레니냐도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어쩐지 친숙하다 했다.

       

       엥켈톤은 레니냐의 삼촌인 막시의 친구였다. 보기와는 달리 요리와 캘리그라피를 좋아하는 아저씨였다.

       

       “너 에테리아로 도망치지 않았더냐? 여긴 어쩐 일이냐? 아니, 그보다 왜 돌아온 거야?”

       “졸업했으니까 돌아왔죠.”

       “졸업했다고? 어디를?”

       “틸레트 마도 아카데미요.”

       

       레니냐는 또박또박 말했다.

       

       “심지어 차석으로 졸업했다고요. 어때요. 이 정도면 금의환향 맞죠?”

       

       신난다. 고향 땅을 밟고 나서 자랑할 곳이 없었는데, 여기에 자랑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리 생각한 레니냐는 어깨를 들썩이며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졸업장까지 보여주며 확인사살했다.

       

       “대견하구나. 우리 금안족에 이런 거물이 나오게 될 줄이야!”

       

       엥켈톤은 순수하게 기뻐하며 레니냐를 안에 들였다.

       

       “여긴 사실 반란군이 사용하는 비밀기지란다. 들어올 때 간판 읽었지? 그런 게 암호란다. 아는 사람만 찾아올 수 있도록 해 놓은 거지.”

       “그러면 이 지역 반란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건가요?”

       “그래. 세실 르네이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어르고 달래서 지금은 소강 상태지만, 언젠가 트집을 잡아 전국적으로 봉기를 일으킬 생각이다.”

       

       그 말을 들은 레니냐의 입에서 오,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뭔가, 에테르 선생님과 함께 길라흐를 상대했을 때의 느낌이 살아나려 하고 있었다.

       

       “자, 들어가렴. 여기부터가 진짜 기지란다.”

       

       과연 문을 열어보니 암약세력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사람은 많았는데, 대다수가 금안족이었다.

       

       사람마다 하는 일이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총기를 손질하고, 누군가는 음식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구석에서 마력초를 피워대고 있다. 다들 제 할 일을 하며 따로 노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저들에게서 공통적인 점이 한 가지 보였으니.

       

       “다들 어깨에 완장 같은 걸 차고 있네요?” 

       

       붉은 바탕에 노란 문양이 그려진 완장을 차고 있다는 것이었다.

       

       “노란 문양은 금안족의 눈을, 붉은 바탕은 금안족이 흘린 피를 상징한단다.”

       “와아.”

       

       멋있다.

       

       차보고 싶어.

       

       레니냐는 그런 치기 어린 생각을 하고 말았다.

       

       “이런 사람들이 엘프국에 얼마나 있어요?”

       “예전부터 꾸준히 늘어나서, 지금은 20만 명 정도 있다.”

       “이, 이십만?”

       

       억대 인구를 자랑하는 카우렐리아에서 금안족의 숫자가 겨우 5만이다.

       

       “우리 뜻에 동조하는 인간이나 엘프들도 있는 거예요?”

       “말하자면 그렇지. 순수하게 평등과 재분배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니까.”

       

       모든 엘프가 금안족을 배척하는 건 아니라니.

       

       르네이 총장으로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낀다. 아무래도 금안족 혼자서는 대사를 도모하기에 머릿수가 딸렸으니까.

       

       “그나저나 삼촌은 어디로 갔어요?”

       “막시 말이지? 지금은 다른 지부에서 공작 중이란다. 조만간 돌아올 거야.”

       

       레니냐가 그에 수긍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프지? 기다리렴. 급한 대로 하나 만들어 올 테니까.”

       

       엥켈톤이 주방으로 간 사이, 레니냐는 높다란 의자에 앉아 풍경을 둘러보았다.

       

       가슴이 충만해지는 광경이다.

       

       그래도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과연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틸레트 아카데미에 편입했을 때, 레니냐는 악착같이 공부해서 금안족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생각을 품었었다.

       

       그러나 여러 교양 과목을 듣고 조금씩 공부하면서 그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차츰 깨달았다.

       

       심지어 이론이나 온건한 방법으로는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학문이나 사업으로 성공하여 후대의 귀감이 되겠다는 생각은 잎사귀 떨어지듯 시들어버린지 오래였다.

       

       ‘로테는 핵융합 전공인가 뭔가를 하겠다고 나섰고, 프레이는 수인족의 통합에 힘쓴다고 했었지. 그에 반해 나는 뭘까? 이루고 싶은 꿈은 멀고,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은 이리도 험준한데… 뭐부터 해야 하는 거지?’

       

       그런 물음에, 당장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뿐이었다.

       

       혁명.

       

       폐가는 철거하는 것이 도리이듯, 카우렐리아를 싹 다 밀어버리고 새 정권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

       

       이게 본능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는 모른다.

       

       단지 막연한 생각이었다.

       

       귀찮으니 한꺼번에 쓸어버리자는 생각.

       

       레니냐가 입술을 달싹이며 머리를 어지러이 굴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동무, 무엇을 그리 고민하시나요?”

       

       타분하고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과 똑같은 머리색을 지닌 금안족 소녀가 총대를 맨 채로 서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흘째 모기 하나랑 동거하고 있습니다

    이놈이 한 번도 저를 물어뜯지 않었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광릉왕모기는 아닌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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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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