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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7

       “처음보다는 조금 더 빛나는 것 같지?”

        

       클레어가 조금 자신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클레어가 들고 온 지보를 바라보고 있었다.

        

       클레어와 앨리스가 이쪽으로 날아오는 데 쓰였다는 지보였으니, 당연히 우리가 돌아갈 때도 이걸 써야 할 것이다. 여신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질서가 깨진 틈에 여신의 힘을 강탈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보를 사용하는 것. 그게 우리가 지금까지 세운 추론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질서가 충분히 깨져야 했다.

        

       아직 우리 방송을 보는 사람 중 우리의 정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 힘이 돌아오는 기미는……

        

       “으음…… 조금 밝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앨리스도 조금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을 만큼 미미했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조금은 더 밝아 보이는 것 같았지만, 그게 정말로 밝아서 그런 것인지, 그냥 기분 탓인지는 의심스러웠다.

        

       “뭐, 지금 고민해도 바뀔 건 없으니까. 시간을 조금 더 길게 두고 생각해도 괜찮을 거야.”

        

       사실 확신은 없었다.

        

       내가 저쪽으로 갔을 때 이쪽의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았던 것을 보면, 반대의 경우에는 무지 빠르게 흐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이쪽에 있는 이상 저쪽의 상황을 알 수가 없으니까.

        

       “…….”

        

       “…….”

        

       “…….”

        

       잠깐 분위기가 우울하게 가라앉았다.

        

       “……치킨이라도 시켜 먹을까요?”

        

       “찬성!”

        

       “이러다 살찌는 거 아닌지 몰라.”

        

       우울할 때의 특효약을 주문하자는 말에, 두 명 모두 찬성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방송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거 봐, 우리가 저쪽 세상에서 넘어온 것이 아니냐는 글이야.”

        

       “아마 우스갯소리겠지.”

        

       실제로도 글에는 ‘ㅋㅋㅋ’가 거의 절반이라서 그냥 웃자고 쓴 글이라는 것이 훤히 보였다. 댓글도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이런 글도 없었던 것이 방송 초기였다.

        

       “다음에는 주민등록증이라도 인증해보기로 할까요.”

        

       나의 말에, 앨리스와 클레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여주면 안 되는 거라고 하지 않았어?”

        

       “번호와 주소만 가린다면 괜찮을 겁니다. 우리 이름이 진짜로 ‘팬그리폰’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거니까요.”

        

       그리고 그러면 분명 누군가는 경찰에 신고할 것이다. 우리 주민등록증이 위조라고 신고하겠지.

        

       하지만 우리도 멍청이는 아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으로도 등본 정도는 쉽게 뗄 수 있다. 당연히 클레어와 앨리스의 주민등록증이 진짜라는 것은 그걸로 이미 직접 알아보았다.

        

       그리고 내 신분증이 진짜라는 것은 이미 인터넷을 재개통할 때 확인했고. 그게 가짜였다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지내고 있을 수도 없었을 테니까.

        

       “으음…… 우리가 ‘진짜’라는 걸 증명하는 건가…….”

        

       앨리스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혹시 싫으시다면—”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내 말에 앨리스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우리가 진짜라고 증명하는 것 자체가 조금 웃겨서 그래. 사실 이 게임 속의 스토리야말로 이 사람들에게는 진짜잖아. 애초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사람들이고.”

        

       ……그런 의미였나.

        

       “흘러가는 이야기가 달랐는데, 우리가 ‘진짜’ 팬그리폰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웃기지 않아?”

        

       “그리고 내 이름은 팬그리폰이 아니라 그레이스라고, 언니.”

        

       “……세 자매라고 하니 그냥 편의상 그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클레어의 태클에 나는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개명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이름은 개명할 수 있어도, 성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저희가 귀화한 외국인이라면 성을 골라서 들어올 수 있었겠지만, 기록에는 그조차 없으니까요.”

        

       딱 나이에 맞춰서 이 나라에 태어난 것으로 되어있었으니 당연하다.

        

       “뭔가,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오히려 더 이상해지네.”

        

       “그게 틈인 거겠죠. 우리는 그 틈을 파고들면 됩니다.”

        

       “아.”

        

       앨리스와 내가 대화하는 사이에 클레어가 작게 탄성을 질러서, 우리 두 사람의 시선도 클레어 쪽으로 돌아갔다.

        

       “뭔가 떠오른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이제 1분만 있으면 치킨 도착한대. 준비하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

        

       저 낙천적인 성격은 조금 부럽다.

        

       앨리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는 쓴웃음이 피어올랐다.

        

       *

        

       [와 진짜임?]

       [주민등록증 위조하면 벌 받아요]

       [중범죄 아님?]

        

       “기대에 못 미쳐서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주민등록증을 위조한 적은 없습니다. 이건 정말로 저희 신분증입니다.”

        

       [그럼 부모님 성도 팬그리폰인가요?]

        

       “이쪽 세상에는 계시지 않는 부모님이죠. 모두 아제르나에 계시니까요.”

        

       참고로 ‘이쪽 세계’에서의 부모님의 존재는 찾을 수 없었다.

        

       여신이 생각이 있다면 뭔가 행정적인 처리가 되어있겠지만, 거기서 더 찾으려면 동사무소라도 가서 뒤져봐야 할 텐데,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괜히 일이 복잡해질 테니까.

        

       그리고 일이 복잡해질 거면 우리끼리만 아는 복잡함이 아닌, 사회적인 복잡함이어야 했다.

        

       그래야 여신이 더욱 당황할 테니까.

        

       “못 믿으시겠으면 경찰에 신고라도 하시죠. 저희가 결백하면 그게 진짜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으시겠습니까? 참고로 저희는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있습니다.”

        

       원천징수 3.3퍼센트라면 알아서 떼고 주니까. 정산이야 어차피 내년의 일이고.

        

       “우리가 아제르나에서 넘어왔다는 건 믿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이런 이름이라는 게 진짜라는 건 사실이야.”

        

       옆에 앉아있던 클레어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그 머리카락도 진짜임?]

        

       “응? 머리카락?”

        

       클레어가 고개를 갸웃거려서, 나는 저렇게 묻는 이유에 대해 말해주었다.

        

       “이 세상에서는 머리카락 색깔이 그렇게 다양하지 않습니다. 앨리스의 금발은 존재하지만 푸른 머리카락은 자연적으로 있을 수 있는 머리카락 색이 아니니까요.”

        

       “정말?”

        

       클레어는 깜짝 놀랐다.

        

       “붉은색까지는 어떻게 있을 수 있지만, 소피아 같은 보라색 머리카락이나 당신의 푸른 머리카락은 무조건 염색으로만 만들 수 있는 머리카락입니다.”

        

       “와, 진짜로?”

        

       클레어는 눈을 반짝였다.

        

       [아니 진짜냐곸ㅋㅋㅋㅋ]

       [당연히 염색이겠지]

        

       “유전자 검사라도 해볼까요?”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굳이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다.

        

       저 사람들이 혼란스럽다면 그걸로 괜찮다.

        

       ……스토커만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뭐, 그것도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

        

       [그런데 그런 인증은 왜 하는거?]

        

       “질서의 여신과 싸우는 중이니까요. 여러분이 저희의 말을 믿으면 믿을수록 저희 승산이 점점 더 높아집니다.”

        

       [ㅋㅋㅋㅋㅋㅋㅋ]

       [ㅋㅋ컨셉 확실하고]

       [그런데 컨셉이라도 범죄는 좀]

        

       “범죄라고 생각하신다면 저희가 범죄자라는 것을 증명하면 될 일 아닙니까?”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채팅창은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너무 당당하니 혹시라도 진짜가 아닌가 하고 고민하는 이들도 있었고, 절대로 믿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욕하는 놈들은 죄다 밴 해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쌍욕은 하면 안 되지.

        

       참고로 시청자 수는 지금까지 시청자 수 중에 가장 많았다. 누가 캡처라도 해서 어디 올리기라도 한 모양이지.

        

       어디 위키라도 올라가면 좋지 않을까?

        

       보고 믿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되니까.

        

       혹시라도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릴 것 같으면…… 사실 거기까지 사건이 커지면, 우리는 도망갈 준비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잡담은 이만하고, 게임이나 해볼까요.”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채팅창은 그대로 두고, 평소처럼 아제르나 전기의 최신작을 켰다.

        

       *

        

       이후로 내가 게임을 하는 동안 채팅창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실비아가 시간을 돌린 이후로 아직 다른 캐릭터들이 그 능력에 대해서 눈치채지 못해, 스토리는 내가 내 친구들과 겪은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물론 게임에서의 실비아는 나보다 훨씬 딱딱하고 무감정해 보였지만.

        

       지난번에 시간을 돌린 이후로 더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날은 게임을 하는 내내 스토리의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해 그대로 방종한 뒤, 평소처럼 가볍게 방 청소를 하고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언니, 언니!”

        

       클레어가 나를 격하게 흔드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창문으로는 푸른 빛이 흘러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새벽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창문의 푸른 빛보다 더 밝은 푸른 빛이 눈에 띄었다.

        

       “이것 좀 봐!”

        

       그건 클레어가 꺼내든 지보에서 흘러나오는 빛이었다.

        

       “확실하게 밝아졌지?”

        

       “…….”

        

       물론 우리가 저쪽 세상에서 봤을 때만큼의 빛은 아니지만 말이야.

        

       지보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이쪽으로 온 뒤에 본 것 중에서는 가장 선명했다.

        

       “우리, 조만간 집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클레어는 지보를 흔들어 보이며 그렇게 말하고는 씩 웃어 보였다.

        

       “……그럴 것 같습니다. 아마 이대로만 계속 가면 되겠네요.”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앨리스를 슬쩍 보고, 나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클레어를 보았다.

        

       우리가 선택한 이 방법은, 확실하게 옳은 방법인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생각을 해봤는데…

    이 세계를 즐기는 사람이 세 사람뿐이면 조금 아쉬울 것 같지 않습니까?

    어차피 외전인데 조금 더 질러보는 건 어떨까요?

    너무 긴장된 분위기보다는 느긋한 분위기로 약간만 더 이어나가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는 오늘 오타를 수정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월요일 오전에 한번에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알려주시는 분들, 모두 너무나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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