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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7

        

       어두컴컴하다.

       착 달라붙는 습기와 곰팡이의 냄새.

       왠지 모르는 싱그러운 생명력과 음습한 태동이 느껴진다.

         

       [ 저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묻습니다. 그곳은 어디입니까? ]

         

       [ 그곳은 내려가는 곳입니다. ]

         

       [ 죽은 자들이 마땅히 도착하는 곳입니다. ]

         

       [ 의로운 사람도 ]

         

       [ 사랑받던 사람도 ]

       

       [ 용맹하던 사람도 모두 그곳으로 갑니다. ]

         

       숨을 쉴 때마다 코의 점막에 들러붙는 곰팡이의 감촉이 불쾌함을 자아내고, 혀끝부터 뿌리까지 그 맛이 몸서리를 치게 만든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음에도 털끝이 흔들흔들 흔들리는 느낌이 들고, 습기를 머금은 듯한 바람에는 곰팡이의 향기에 더해져서 약간 역겹게 느껴지는 냄새가 난다.

       제초 작업을 할 때 맡는, 식물이 죽어가는 냄새와 아주 흡사한 냄새였다.

         

       [ 그곳은 빛이 없습니다. ]

         

       [ 그곳은 아주 깊은 구덩이이며, 한 번 내려가면 올라올 수가 없습니다. ]

         

       [ 눈 있는 자들은 어둠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으며, 눈이 없는 자는 눈이 없기 때문에 볼 수 없습니다. 혀가 있는 자는 혀가 굳어서 말을 할 수가 없고, 혀가 없는 자는 혀가 없어서 말을 하지 못합니다. 어두운 골짜기의 가장 깊숙한 곳보다도 더더욱 어두우며, 가장 깊숙한 동굴의 끝자락보다도 습하고 축축한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

         

       [ 그곳에는 불이 없고, 열이 없습니다. 추위는 있지만 이는 실제로 추워서 그런 것이 아닌 하나로 오롯이 존재하시는 분의 시선이 닿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생기는 추위이며, 우리는 그분의 눈에 보이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떨고 있습니다. 깊고 깊은 구덩이의 깊이는 우리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

         

       풀숲이 무성하게 자란 곳을 낫으로 치고, 제초기로 평탄하게 만들고, 제초제를 뿌리고.

       그렇게 보기 좋게 만들고 났을 때 나는, 식물들이 죽어갈 때 내는 냄새들이 이리저리 뒤섞여서 나는 냄새.

         

       그 냄새 속에서 무인은 눈을 떴다.

         

       “여, 기는…?”

         

       하지만 눈을 떴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지하실은 빛 한 점 찾아볼 수 없이 깜깜한 공간.

       눈을 떴어도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그저 보이는 것은 누군가 눈을 가리기라도 한 것처럼 새까만 시야뿐.

         

       [ 죽은 자들이 거니는 그곳에는 냄새가 있습니다. 썩어가는 시체가 풍기는 냄새보다도 지독하고, 유황보다 머리를 아프게 하는 냄새입니다. 그 냄새는 아무리 맡아도 익숙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그 냄새는 쉬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다만 신앙심으로 마음을 붙잡고 있자면 그 냄새는 점차 무뎌지게 될 것이며, 뼈에 각인시킨 신앙심만이 그 냄새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주겠지요. ]

         

       오감 중 시각이 마비되었다.

       새까만 어둠 때문에, 아무것도 느껴지질 않는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다.

       몸에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몸의 감각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려 해도 제대로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으며, 몸이 제대로 움직이고는 있는 것인지, 몸이 어딘가에 묶인 것인지, 어디 다치지 않은 것인지조차 의문이 들게 했다. 거기에 더해 정신도 은근히 몽롱한 것이, 무슨 약을 쓰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끄으윽….”

         

       무인은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입술을 비틀어 소리를 내었다.

         

       소리가 난다.

       소리가 정상적으로 났다.

       그가 내려고 했던 소리가, 정확하게 났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그가 약에 취해서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당연히 말이 어눌하게 나오고 발음이 뭉개져야 정상인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소리는 멀쩡하다.

       하지만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 하지만 이곳은 모두가 가게 될 곳입니다. 신실했던 야곱은 죽어서 이곳에 오게 될 것이고, 의로운 욥 역시 이리로 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던 다윗도 이곳으로 올 것이고, 선한 히스기야 왕도 이곳으로 오게 될 것입니다. 반역한 무리도 이곳에 올 것이고, 애굽 사람과 앗시리아 사람도 이곳으로 오게 될 것이고, 바벨론의 왕과 그 신하 역시 이곳으로 오게 될 것입니다. 선한 사람과 악인 할 것 없이 모두 이곳에 오게 될 것이며, 모든 사람은 이곳으로 옵니다. 이에수스께서도 잠시 이곳에 머무르다가 그분의 곁으로 갔으며, 성인 역시 잠시 머물렀다가 그분에게 가게 되었습니다. ]

         

       이러한 무인의 의문을 해소해주듯, 누군가가 그의 귀에 속삭였다.

         

       [ 이곳은 무덤입니다. ]

         

       히.

       히히히힛.

         

         

         

         

        * * *

         

         

         

       무인은 눈을 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눈을 뜬 것과 눈을 감은 것의 차이는 없었다.

       새까만 어둠이 손의 형상을 만들어 눈을 가린 것처럼, 그의 시야를 가렸기 때문이었다.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새까만 색뿐이었다.

       아니, 그가 보는 것은 어쩌면 색의 부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검을 수 있겠는가.

         

       [ 누군가가 말하기를, 그는 지옥을 보았다고 합니다. 폭력과 약탈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 죽음의 강에 걸쳐진 좁은 다리를 건넜을 적 그는 끔찍한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

         

       [ 그곳은 낮이 없고 항상 밤이었으며, 어둡고 추웠다고 합니다. ]

         

       [ 모두가 추위에 돌처럼 차가워져 있었으며, 바람은 소리 없이 불었음에도 아래위를 모조리 얼리며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였다고 합니다. 그 고통에 남자들과 여자들이 비통해하며 크게 울부짖고 있었으며, 그들은 추위에 떨고 흙을 먹으며 울음을 짓고 있었지요. 얼굴에 못이 박혀 땅에 고정이 되어 있었으며, 그 못은 놋쇠 빛깔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

         

       [ 못은 손과 발과 얼굴에 박혀 있었으며, 그 숫자는 무도하게도 이민족이 모시는 신을 뜻하는 숫자였습니다. 사악한 이민족들은 죽어서도 우상을 섬긴 죄로 그 우상을 의미하는 숫자를 몸에 박은 채 끊임없이, 끊임없이 비통해하며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악마들은 그들이 아무리 애원하여도 들어주지 않았고, 그들이 울부짖어도 피하게 해주지 아니하였습니다. ]

         

       [ 이것이 지옥입니다. ]

         

       다만 앞이 보이지 않아도 오감은 분명히 살아있었다.

         

       그 증거로 누군가가 그의 귓가에 속삭이는 말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으니까.

         

         

         

         

        * * *

         

         

         

       무인이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암흑이었다.

       곰팡이가 모여 빛 한 점 통과하지 못할 새까만 천을 만들고, 그 천이 눈을 가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곰팡이의 불쾌한 냄새가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으며, 몸이 마치 곰팡이로 이루어진 것처럼 강하게 풍겼다.

         

       머리가 아프다.

         

       곰팡이의 냄새가 어찌나 강한지,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아팠다.

         

       무인으로서 나름대로 거친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하였는데, 고작 곰팡이 때문에….

       고작 곰팡이의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지다니.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몸이 숨을 쉴 때마다 곰팡이가 나갔다가 들어오기를 반복하며 몸 전체에 달라붙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으며, 코와 입을 토양으로 삼아 나무처럼 피어오르며 뇌까지 침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상상마저 일으킨다.

         

       너무 짙은 곰팡이의 냄새만이 오감의 전부.

         

       누가 손으로 귀를 틀어막기라도 한 듯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입을 달싹여서 무언가 말하고 싶어도 입이 제대로 움직이는 것인지 굳어있는 것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소리가 나는지는 더더욱 알 수조차 없으며, 그저 아무런 문제가 없기를 빌 수밖에 없다.

         

       나는 왜 이곳에 있지?

       이 역겨운 곰팡이의 냄새는 뭐지?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어둠 속에서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하며 시간은 제멋대로 흘렀고, 생각의 속도에 따라 다시 한번 변화한다. 생각이 빨라질 때마다 시간은 느리게 가고, 생각하지 않을 때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밀실이나 다름없기에 시간의 흐름조차 제대로 인지할 수가 없으며, 내공을 일으키거나 몸을 관조해서 시간의 흐름을 탐구하는 것은 감각이 없기에 할 수가 없다.

         

       그는 갇혀있었다.

         

       어둠이라는 감옥에, 갇혀있었다.

       오감의 부재는 그의 몸을 칭칭 휘감은 밧줄이 되었고, 쇠창살이 되었다.

         

       그 어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멀쩡하리라 여겼던 그의 육신은 오감이 사라지자 너무나 쉽게 그의 통제에서 벗어났으며, 그의 믿음을 너무나 손쉽게 버려두고 오직 생각만을 육신에 가둔 채 그를 가둔 감옥 일부분이 되었다.

         

       산 채로 얼어붙은 사람이 딱 이러할까?

       모든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직 생각만이 살아있음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누군가가 나를 이 감옥에서 꺼내줬으면!

       누군가가 나를 이 지옥에서 꺼내줬으면!

         

       무인은 간절히 빌고, 간절히 기원했다.

         

       자신이 겪은 적 없던 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차라리 피가 튀기고 고통에 울부짖게 되는 고문이라도 좋으니, 이 무감각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를!

         

         

         

         

        * * *

         

         

         

       빌딩의 지하에는 감옥이 있었다.

         

       그곳에는 악령과 악귀가 머무는 집이 있었다.

       그들은 주인 된 자의 명에 따라 항상 거기서 머물며, 주인이 목줄을 풀어주었을 때만 가끔 산책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즐길 수 있도록 썩은 냄새가 가득 풍기고 음기가 풍성하였으며, 양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아늑한 환경이었다.

         

       그곳에는 식물이 있었다.

       그 식물은 동물의 피를 빨아먹고, 마약성 물질을 분비하여 동물이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든다.

         

       그곳에는 악령이 되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그들은 힘이 약하나 사람에게 증오를 품고 있으며, 사람을 홀리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한 사람의 명을 따른다.

         

       “재료들이 알아서 들어오니, 너무나 기쁜 일이로다.”

         

       그곳에는 제단이 있었다.

       그곳에는 악령과 악귀, 귀신들의 경애를 받고 식물을 조종할 수 있는 지하의 주인이 있었다.

         

       그곳에는, 박진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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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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