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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7

       온통 붉게 변한 세상을 내달린다.

         

       ‘운이 좋았어.’

         

       주변을 뒤덮는 가공할 기공이 첫 공격이었던 건 그야말로 운 좋은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놈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고심하고 있던 백우진에게 순간이나마 상대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 방법을 안겨준 셈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금세 따라잡힌다.’

         

       한순간 눈과 감각을 속이긴 했지만, 얼마 안 있어 그는 자신을 쫓아올 것이다.

         

       이곳은 그의 심상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세계.

         

       본질이 드러난 이상, 그가 자신을 찾을 수단은 무궁무진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금 내리는 혈우(血雨).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 비를 맞고 있는 모든 대상을 특정할 수도 있을 터다.

         

       그렇기에 달리는 내내 한 번씩 내달리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기파를 쏘고 있다.

         

       잠깐이나마 그의 감각에 혼선이 올 수 있도록.

         

       ‘기회는 단 한 번뿐.’

         

       지금이야말로 탈출할 수 있는 적기 중의 적기다.

         

       거침없이 넓어진 기감에 수없이 많은 혼란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과 푸르른 하늘을 잃고 혈우에 온통 빨개진 주민들의 두려움과 혼란스러움.

         

       이는 주민들뿐만 아니라, 혈교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새빨간 비라니….”

       “이, 이건 피잖아.”

         

       광증이 뇌까지 치밀지 않은 이들은 이 상황을 두려워했고.

         

       “피, 피다….”

       “새빨간 피…, 크흐!”

       “꿀꺽…, 꿀꺽…!”

         

       골수에까지 광증이 치민 이들은 쏟아지는 빗줄기에 제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끔찍한 광경.

         

       그러나 백우진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포위망이 뚫렸다.’

         

       가로막힌 탈출구에 구멍이 생겼다.

         

       백우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내달려 그들의 틈을 지나쳤다.

         

       “배, 백우진이다!”

       “쫓아라!”

         

       일부가 그를 발견하고 곧장 쫓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대다수는 혈우에 취해 있거나, 두려움에 떨고 있었기에.

         

       그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쓸모없는 것들.”

         

       싸늘한 말 한마디와 함께 입을 벌리고 서 있던 무인들의 목이 달아났다.

         

       푸슈슛…!

         

       솟구치는 핏물 사이를 가로지른 혈교주가 백우진의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놈…, 절대 그냥 보내지 않겠다!”

         

       분노에 찬 목소리가 거대한 통로에 쩌렁쩌렁 울린다.

         

       이를 들은 백우진이 대답했다.

         

       “나 잡아 봐라~!”

         

       혈교주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 * *

         

         

       제갈연지가 공수해 온 천양보활단으로 활력을 되찾은 신룡조원들.

         

       신중하게 탐색하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목적지가 정해져 있었기에 그들은 빠른 속도로 되돌아온 산속을 내달렸다.

         

       이윽고 도착한 장소는 크고, 작은 연못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곳.

         

       이를 본 제갈연지가 마른침을 삼켰다.

         

       ‘확실히 무언가를 숨기기엔 어려운 곳이야.’

         

       각우가 말했던 대로 땅 대부분이 축축하게 젖은 데다, 크고 작은 연못들로 인해 무언가를 숨기기엔 부적합해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느꼈다.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진실이 아님을.

         

       ‘진법의 흐름이 느껴져.’

         

       멀리서는 느끼지 못했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진법이 자아내는 이질적인 흐름이 명확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말인즉, 이곳에 무엇이 됐든 진법에 의해 숨겨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뜻.

         

       “이곳 어딘가에 진법이 설치되어 있어요.”

       “진법이라니…, 그렇다면 정말 이곳에 무언가 있다는 거잖아.”

       “각우…, 그자가 우릴 속였구나.”

       “이 빌어먹을 작자가…!”

         

       각우가 자신들을 몇 날, 며칠씩이나 속였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을 때.

         

       그들의 뒤를 묵묵히 받쳐주고 있던 혈수마녀가 앞으로 나섰다.

         

       “연지.”

       “네, 선배님.”

       “본녀와 조원들이 너의 곁을 지켜줄 테니, 너는 진법을 찾아 파훼하도록 해라.”

       “…네!”

         

       조원들이 제갈연지를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중앙에는 그녀의 곁에 혈수마녀가 함께 걸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호위벽을 얻은 제갈연지가 온전히 흐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뒤틀리고, 충돌하는 흐름.

         

       그러한 꼬임이 가장 강한 곳은 다름 아닌…, 눈앞의 연못이었다.

         

       연못에 손을 밀어넣는 제갈연지.

         

       이윽고 꺼낸 손에 물기 하나 묻어 있지 않음을 확인한 그녀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이 가짜 연못 아래에 무언가 숨어 있는 게 확실해요.”

         

       혈수마녀의 시선이 연못으로 향한다.

         

       진법에 대해선 알지 못하는 그녀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연못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놀라웠다.

         

       ‘본녀의 눈마저 속이는 진법이라니….’

         

       현경에 다다른 고수의 감각마저 속이는 진법에 놀랐고.

         

       이러한 진법을 고작 흐름만으로 찾아내는 제갈연지에 감탄했다.

         

       ‘저 아이 또한 천재로구나.’

         

       어찌 괴물 같은 녀석의 옆에 마찬가지로 천재나, 괴물밖에 없는지.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그야말로 찰떡 같이 어울렸다.

         

       “파훼는 가능하겠느냐.”

       “자, 잠시만요.”

         

       신중한 태도로 진법을 살피는 제갈연지.

         

       그녀는 이내 입가에 작은 미소를 그리며 혈수마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것 같아요. 물론…, 시간은 조금 필요하겠지만요.”

         

       혈수마녀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늘 그렇듯, 시간이 문제다.

         

       이미 시간이 흐를 만큼 흘러버렸기에 조금도 지체하고 싶지 않건만.

         

       그녀가 초조한 마음에 되물었다.

         

       “시간이 걸린다면 파괴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그러자 제갈연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안 돼요! 그랬다간 이 밑이 폭삭 내려앉고 말 거예요. 만약 여기가 혈교의 본거지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라면….”

       “…아, 알았다.”

         

       극렬한 반대에 부딪친 혈수마녀는 천천히 끌어올리고 있던 기운을 다시 갈무리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진법에 관해선 그녀를 따를 자가 없으니, 조용히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최대한 서두르거라.”

       “네, 노력할게요.”

         

       그녀의 냉철한 시선이 주변을 훑는다.

         

       주변에 얽히고 설킨 흐름이 꼭 아무렇게나 뭉쳐 놓은 실타래를 보는 듯하다.

         

       진법을 유지하는 핵심 기물을 찾기 위해선 이 실타래를 풀어야만 한다.

         

       뭉친 실타래의 시작점.

         

       그곳 어딘가에 핵심 기물이 숨겨져 있을 테니.

         

       “흣….”

         

       단 한시도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릅뜬 눈이 붉게 충혈된다.

         

       수백, 수천의 가닥들을 일일이 풀어가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거슬러 올라가기를 반 시진째.

         

       “하아, 하아…!”

         

       뭉친 실타래를 풀기 위해 끊임없이 쥐어짜인 머리에서 열이 펄펄 끓는다.

         

       정신과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져 비틀거리면서도 그녀는 앞으로 나아갔다.

         

       흐릿해져 가는 시야 너머로 보이는 단 하나의 실.

         

       그녀는 힘겹게 손을 뻗어 그곳을 가리켰다.

         

       “저, 저기에 기물이 있을 거예요.”

         

       그렇게 손가락으로 짚은 곳만 무려 열여섯 군데.

         

       일반적인 진법이 세 개에서 네 개.

         

       많아 봐야 여섯에서 여덟 개 정도의 기물을 가지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

         

       손가락이 가리킨 위치를 모두 기억한 혈수마녀가 몸을 날렸다.

         

       선홍빛 기운으로 물든 손이 땅을 두부 가르듯 손쉽게 파고들어 그 안에 꼭꼭 숨겨져 있는 무언가를 손아귀에 쥔다.

         

       ‘이것인가.’

         

       그것을 손아귀 안에서 으스러뜨린 뒤, 곧장 손을 털어내고 나와 다른 곳으로 향한다.

         

       그렇게 열여섯 군데에 자리한 핵심 기물을 모조리 파괴하자, 연못의 형상 아래로 숨겨져 있던 거대한 통로가 드러날 즈음.

         

       삐리릭-!

         

       기묘한 소리를 내는 비수 하나가 제갈연지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아…?”

         

       의문 섞인 어조를 토해내는 사이 지척까지 날아든 비수가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지친 몸으로는 피할 길이 없어 꼼짝없이 죽겠구나, 하던 그때.

         

       “하앗!”

         

       어느새 나타난 도경이 장도를 휘둘러 비수를 막아냈다.

         

       털썩!

         

       놀란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린 제갈연지가 그자리에 주저앉자, 도경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쪼그리고 앉아 그녀의 팔을 감쌌다.

         

       “괘, 괜찮으세요…, 언니?”

         

       아직까지 남자로 살아온 시절의 말투를 다 버리지 못한 도경의 어색하기 짝이 없는 물음.

         

       “…고마워.”

         

       새삼 느낀다.

         

       제게 제갈이라는 같은 성씨를 가진 오라비와 동생 말고도, 언니와 동생이 생겼음을.

         

       백우진의 품을 독차지할 수 없어 잠시나마 껄끄러워했던 그들이, 이제는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서로를 인정하는 사이가 되었음을.

         

       “다들 전투 준비!”

         

       연못에 가려진 통로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낼 즈음.

         

       사방팔방에 숨어 있던 적들의 기척 또한 드러났다.

         

       거의 수백에 달하는 숫자.

         

       그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 마을에서 쉬겠다던 도우들이 어찌 여기에 있는 것이오?”

         

       지금껏 그들을 기만했던 각우였다.

         

       도경의 도움을 받아 힘겹게 몸을 일으킨 제갈연지가 그를 노려보며 입술을 뗀다.

         

       “자꾸 이곳이 눈에 밟혀서요.”

         

       웃는 눈꺼풀 사이로 요사스러운 눈빛이 번뜩인다.

         

       “제갈세가의 여식답구려. 아주 영특해.”

       “칭찬 감사드려요.”

       “한데 나와 동료들이 이곳에 숨어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나 보오.”

         

       이에 제갈연지는 가볍게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충분히 예상했어요. 적진으로 들어서는 길이라면 매복이 있을 수도 있을 거라고.”

         

       각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걸 예상했으면서 왔다니…, 그리도 죽고 싶었소?”

       “그럴 리가요.”

         

       그녀의 얼굴에 핀 미소가 한층 화사해졌다.

         

       “여러분 모두를 상대할 자신이 있어서 온 거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룡조원들의 무위는 이미 초절정의 끝자락에 다다랐을뿐더러, 그들의 곁에는.

         

       “본녀의 시간을 빼앗은 죄, 그 목숨으로 갚도록 하여라.”

         

       혈수마녀라는 거대한 존재가 함께였기에.

         

       그녀가 마음먹고 기운을 일으키자, 각우를 비롯한 혈교도들이 기함을 토했다.

         

       “이, 이 무슨…!”

         

       아차 하는 사이.

         

       바람이 불었다.

         

       잔혹하리만치 예리한 칼날과 황홀하기 그지없는 아리따운 선홍빛을 머금은 바람이.

         

       양 떼 속을 누비는 한 마리의 늑대.

         

       혈수마녀가 붉게 물든 손을 휘저을 때마다 그자리에 서 있던 혈교도들의 신체가 사라졌다.

         

       “크아아악!”

       “끄악!”

       “커허헉…!”

         

       들려오는 것은 오직 끔찍한 고통을 머금은 비명뿐.

         

       각우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돌아볼 수 없었다.

         

       저 불가해한 존재와 눈을 마주하는 순간, 제 목숨 또한 달아나버릴 것만 같아서.

         

       그렇게 고작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흐른 뒤.

         

       주변이 적막에 휩싸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몰살(沒殺).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여 대기시킨 동료들이 모두 목숨을 잃고 말았다.

         

       털썩!

         

       넋이 나간 표정으로 주저앉는 각우.

         

       그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혈수마녀는 느꼈다.

         

       연못으로 가려져 있던 거대한 통로.

         

       그 안에서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이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음을.

         

       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혈수마녀가 굳은 얼굴로 조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당장 이 자리에서 벗어나거라!”

         

       어떻게든 조원들만이라도 도망치게 하기 위하여 급하게 손을 휘저었으나, 늦었다.

         

       앞서 달려오던 이가 통로에서 빠져나와 하늘 위로 높게 솟구쳤다.

         

       “큭…!”

         

       그녀는 결심했다.

         

       무리하는 한이 있어도 그가 아끼는 조원들을 반드시 이곳에서 빼내고 말리라고.

         

       굳은 다짐과 함께 기운을 끌어올리며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뺀질거리고, 능글맞기 짝이 없으나 탁월하게 잘생긴 얼굴로 이마저도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얼굴 천재.

         

       “앗, 누이!”

         

       심지어 손까지 흔들고 있다.

         

       백우진밖에 부를 수 없는 호칭까지 써가며.

         

       “배, 백 공자!”

       “조장!”

       “우진아-!”

         

       하늘로 솟구친 백우진의 눈에 동료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들어온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다름 아닌 혈수마녀.

         

       그녀를 본 순간,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자신감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바닥에 내려앉은 그가 더 이상 내달리기를 관두었다.

         

       그리고 자신을 열심히 뒤따라오고 있을 혈교주를 향해 소리쳤다.

         

       “나 잡아 봐라~!”

         

       오면 넌 뒤졌어, 아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 이제 누가 도망쳐야 하지?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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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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