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367

       몇 번의 저항이 유의미한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결국 본인이 화령냥이가 되어야 했던 날로부터 며칠 전.

       

       “대체 메… 어쩌구 하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리 험악하게 싸운 것이냐.”

       

       엔리와의 가열찬 말싸움 끝에 패배한 본인에게 바루가 이런 물음을 던졌다.

       

       거기에 대답을 해준 것은 내가 아닌 엔리였다. 일전의 논쟁에서 승리한 그녀는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입꼬리와 함께 바루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바루는 스마트폰이라는 기기 자체에 대한 신기함을 드러내다 이내 메이드 복의 사진을 보고는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다만.”

       “모르면 하지 마라.”

       “너무 노출이 과한 것이 아닌가? 세상에. 아녀자가 허벅지를 그대로 드러내다니. 이런 옷을 아라가 입는다고?”

       “네! 내기에서 패배하셨거든요!”

       “대체 무슨 내기를 했기에.”

       

       그것은 시간 내기였다.

       

       심지어 내가 먼저 말로 꺼낸 내기. 반나절이 지나기 전에 돌아오겠다는 약조와 함께 내뱉어 버린 멍청한 이야기.

       

       본인은 저를 지키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빙궁의 아해에게 지껄이고 싶은 이야기도 많이 참았고, 어머님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많이 참았단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반나절을 넘겨버리고 말았다.

       

       5분.

       

       단 5분이었지만 어쨌든 늦은 것은 늦은 것.

       

       현실을 부정한다하여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빌어먹을 엔리! 그대가 어찌 이토록 철저하단 말인가.

       

       평소처럼 허술하게 굴란 말이다! 허술하게!

       

       왜 본인이 떠나자마자 시간을 재기 시작한 것이냔 말이다!

       

       그리고 말이다! 5분 정도는 인정해줄 수 있는 오차이지 않은가.

       

       약속을 잡을 때에도 5분이라면 별 문제 되지 않는 시간일 터이거늘!

       

       “아라 씨. 제가 지난번에 말하지 않았나요? 이 원한. 잊지 않겠다고.”

       “피로 피를 씻어야 만족하시겠습니까. 엔리 씨.”

       “하. 할 수 있으시다면 얼마든 해보시죠.”

       

       엔리. 내 그대를 친우라 믿었거늘! 수많은 일을 처리하고 나서 돌아온 나에게 돌려줄 말이 이것 뿐이더냐!

       

       두고 보자! 피를 피로 씻겠다는 그 발상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낼지 알려주겠노라!

       

       곰방대를 문 채 기분 나쁜 티를 냈지만 그를 신경 쓰는 자는 없었다.

       

       어느새 합세하여 버린 바루와 엔리는 이게 좋겠다 저게 좋겠다 하는 이야기를 나눌 뿐 나 따위는 시선에 두지도 않았고,

       

       백호 녀석 같은 경우에는 내가 죽을 쓰지 못하는 것이 즐거운 듯 웃음을 참느라 고생을 하는 중이었다.

       

       백호야.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을 잊고 있구나.

       

       내 바루와 엔리에게는 험악하게 굴지 못한다만 그대에게는 다르단 사실을 말이다.

       

       백호 녀석의 두개골을 붙잡아 친절하게 지압을 해주었더니 히죽대던 그 얼굴이 일순에 일그러졌다.

       

       그러게 적당히 눈치를 봤어야지. 이 놈아.

       

       흐음. 그나저나 바루와 엔리의 표정을 보아 저 둘의 이야기가 쉬이 끝나지는 않을 것 같구나.

       

       이미 다른 화제로 넘어갔는데도 이야기가 잘 이어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항시 생각하는 것이지만 엔리의 친화력이 너무도 높다. 저것은 이미 하나의 기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백호야. 네 사장이라는 작자에게 연락을 할 수 있느냐?”

       “네? 그건 갑자기 왜 물어보시는.”

       “예. 아니오로 답하거라.”

       “가능합니다. 연결해 드릴까요?”

       “그래.”

       

       백호는 동물의 형상을 한 상태에서 자신의 발톱을 활용하여 능숙하게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이걸 영상으로 찍어 마이튜브에 올리면 분명 화제가 되지 않을까.

       

       “네. 사장님. 아라님께서 연락을 원하셔서. 네. 네. 지금 바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스마트폰을 받아들자 저 너머에서 피로에 찌들어있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라님?”

       “그래. 나다.”

       “무슨 일이십니까?”

       “당분간 이 백호 녀석을 내 마음대로 부리겠다.”

       “…네?”

       “네?”

       

       스마트폰 너머와 내 옆에서 동시에 의문사가 터져나왔지만 난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왜 이들 따위의 의향을 신경 써야 한단 말인가.

       

       “문제있나? 있다면 직접 항의를 하러 찾아가겠다만.”

       “아뇨! 없습니다! 당분간 마음대로 사용하십시오. 전속으로 빼두겠습니다.”

       “예? 사장님?! 사장님?!”

       “그래.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아. 그리고 나중에 회사에 한 번 들려주십시오. 드려야 할 말씀이 몇 가지 있어서 말입니다.”

       “시간이 날 때 방문하도록 하마.”

       

       전화를 끊고서 백호에게 되돌려 준 나는 황망해진 그의 눈빛을 보고서 웃음을 지어 주었다.

       

       “자. 내 그대에게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다. 당장 바깥으로 나가 바루가 입을 옷을 사오도록. 겸사겸사 가볍게 요기를 할 만한 것도 사오거라. 너무 과하지 않은 것으로. 아. 물론 비용은 알아서 처리하거라.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아니더냐.”

       “…”

       “무어냐. 싫으냐? 어디 한 번 즐거운 시간을 보내보도록 할까?”

       “아닙니다! 빠르게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등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인간의 형상을 취한 녀석은 재빠르게 문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기가 바싹 잡힌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 속에 쌓여 있는 분노가 풀리는 느낌이 드는구나.

       

       그리 생각을 하며 웃고 있으려니 옆에서 엔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분. 사람으로 변하는 게 가능했어요?”

       

       내가 포근함을 느끼기 위해 동물을 납치해왔다 생각했다는 엔리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녀의 머릿 속 내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졌다.

       

       허나 나는 그 물음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보다 먼저 바루가 엔리의 물음에 답해 주었으니까.

       

       “당연한 일이지. 본인보다 격이 높은 분이시니.”

       “대단하신 분이셨구나.”

       “그럼. 그럼. 아라이기에 막 대하는 것이지. 아라가 아니라면 고개를 숙여 경외해야 할 분이시다.”

       “와. 근데 바루님 한국어 엄청 잘하시네요.”

       “한국어가 무어냐? 본인은 본인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만.”

       “…네?”

       “그대도 무림의 세상에서 그랬듯 본인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나?”

       

       신나게 이야기를 하다가 무언가 이상한 부분을 깨달은 것일까. 바루와 엔리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가 그런 거 맞아요. 언어가 다르면 이야기하기 불편하니까.”

       

       여기까지는 한국어로 이야기를 한 것이고.

       

       “자동번역이라는 게지.”

       

       여기는 무림의 언어로 이야기를 한 것이다.

       

       본인이 처음 현대에 왔을 때에 언어 문제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바루에게 굳이 같은 고생을 시키기 싫어 말이 담긴 뜻이 자연스레 전해지도록 만들었지.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서로의 언어로 이야기하거라. 알아서 뜻이 전해질 테니 말이다.”

       

       나의 배려심에 감탄을 할 것이라 생각한 나였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대체 그대의 전능은 어디까지 뻗은 것인가.”

       

       바루는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고.

       

       “이제 아라 씨의 존댓말을 들을 수 없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

       

       엔리는 내가 예상하지도 않은 부분에서 기겁을 하고 있었다.

       

       본인이 존댓말을 하는 풍경이 그토록 귀했던 것이냐? 굳이 바란다면 못 해줄 것도 없다마는. 어쨌든 본인의 입에서 새나오는 한국말은 자연스레 존대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뭐어. 일단 그건 그렇다 치고. 아라 씨. 여기에 와서 이 옷 좀 보세요. 몇 가지 안이 나왔는데요.”

       “꼭 제가 봐야 하는 건가요?”

       “물론 안 보셔도 상관은 없는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장담드리지는 못해요?”

       

       …싫어도 보기는 해야겠구나. 아무리 끔찍한 미래라도 스스로 결정한 끔찍한 미래가 더 나을 터이니.

       

       그리 생각을 한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서 엔리가 골라 놓은 옷들을 보았다.

       

       허벅지가 과히 드러나는 것. 가슴의 중앙과 어깨를 드러낸 것. 이미 옷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것. 치렁거리는 장식이 너무도 많아 이를 입고 움직이는 게 가능한 지 의심이 되는 것.

       

       “엔리 씨. 아니. 엔리야. 본인이 진심으로 화를 내는 걸 보고 싶으냐?”

       “그러게 같이 고르셨어야죠.”

       “엔리의 말이 옳다. 의견을 내지도 않고 불평만 하는 것은 좋지 못한 버릇이니라.”

       

       제기랄. 두 녀석이 같이 협공을 하니 도저히 말싸움에서 이길 방법이 없군.

       

       분명 작금의 본인은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올랐거늘 어찌하여 이 놈의 설전에는 이길 수가 없는지.

       

       “알았다. 알았어. 직접 고르면 되지 않으냐.”

       

       곰방대를 입에 문 본인은 엔리의 스마트폰을 받아 들었지만 주변의 깐쪽거림은 그치지 않았다.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 하며 남의 일이라고 제멋대로 이야기를 내뱉는 놈팽이들을 보고 있으면 짜증이 솟았다.

       

       세상 천지에 본인에게 이런 식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은 이 둘 뿐일 것이야.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가 고민을 하던 그 때에 백호가 문을 열고서 돌아왔다.

       

       한 손에는 분식을. 다른 한 손에는 옷가방을 들고 있는 그는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 것처럼 보였다.

       

       “와! 거기 XX분식 아니에요? 맛은 있는데 더럽게 비싸서 손이 잘 안 가는 곳인데!”

       “백만 마이튜버도 돈을 아끼는 것인가?”

       “직원들 돈 주고 나면 남는 것도 얼마 없어요.”

       

       엔리는 그리 이야기를 하면서 능숙하게 포장을 뜯어 식탁 위에 저를 올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던 바루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는 식탁 위에 올려지는 음식을 눈에 담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바루는 알까. 지금 그녀의 입술에서 침이 새어나오고 있다는 것을. 저토록 음식에 몰입하는 것을 보아 하니 음식의 냄새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야.

       

       “이… 이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현대의 음식 중 하나지. 맛있을 것이다. 내가 보증하마.”

       “저도 보장할게요! 여기 엄청 맛있어요!”

       

       식탁에 모든 음식을 늘어놓은 엔리는 나무젓가락을 바루의 손에 쥐어주면서 우선 떡볶이부터 한 입 해 보라고 이야기를 했다.

       

       바루는 시뻘건 음식의 색깔에 살짝 겁을 먹은 듯 했으나 우리 둘의 말을 믿고서 젓가락을 뻗었다.

       

       조심스레 떡 하나를 집어 입에 넣은 그녀는 자그마한 입술을 오물거리다 이내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물! 물!”

       

       얼굴이 시뻘개진 그녀는 입 안이 불타오르는 것을 견디기 버거운 듯 다급히 마실 것을 찾았다.

       

       이 상황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엔리는 같이 온 음료를 뜯어 바루에게 내밀었고 그녀는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서야 간신히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게. 음식이라고? 고문 도구처럼 느껴진다만? 심문을 할 때에 쓸 것 같다만?!”

       “그래도 맛있잖아요?”

       “…그건. 그런데.”

       “이게 참 신기한 게 엄청 매워서 견딜 수가 없는데 자꾸 입으로 들어간단 말이죠.”

       

       이렇게 치즈랑 같이 먹으면 훨씬 낫다 말하며 입을 움직이는 엔리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킨 바루는 다시 조심스레 젓가락을 내밀었고.

       

       이내 발을 동동 구르면서.

       

       “엔리! 나를 속이다니!”

       

       라고 소리를 쳤다.

       

       단언컨대 그 모습은 내가 본 바루의 모습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귀여운 모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맵지만 멈출 수 없어!

    —–

    크리슴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계속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끝이 날 때까지 즐거움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크한크시님! 2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일담이 끝나는 그 날까지 재밌는 소설을 쓰는 작가 되겠습니다!

    쿨라다이아몬드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하루되세요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