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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7

   덜컹!

     

   크라슈가 아스트리아를 받아들인 직후.

   그가 타고 있던 마차가 대뜸 멈췄다.

     

   멈춘 마차에 아스트리아가 정신을 차리며 부끄러워졌는지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다, 당신 나 평생 책임져! 진짜 평생 책임져야 해!”

     

   그래, 그러려고 품은 거잖아.

   입술을 꾹 깨물면서도 아스트리아는 크라슈의 옷깃을 꾹 잡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한 번 잡았으니 절대 놓지 않겠다는 절절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크라슈는 그런 그녀를 보며 짧게 웃곤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 어디 안 간다.”

   “누, 누가 뭐래!”

     

   자기 마음을 눈치채버린 크라슈에게 아스트리아는 부끄러움에 앙칼지게 외쳤다.

   하지만 까칠한 아스트리아는 크라슈에게 익숙한 모습이었기에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보다 마차가 왜 섰지.’

     

   크라슈는 에벨아스크에게 물어보기 위해 문 쪽으로 몸을 일으켰다.

     

   덜컹!

     

   하지만 그 순간 크라슈보다 먼저 문을 열어버린 이가 나타났다.

     

   열린 문 너머, 바다색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런 머리카락 사이로 호박색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크라슈는 그녀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시즐리.”

     

   시즐리 에파니아.

   에파니아 제국의 4황녀다.

     

   “요, 반갑구나.”

     

   시그린이 죽고, 이제는 단 한 명뿐인 황녀가 뜬금없이 마차 문을 열고 나타났다.

   시즐리를 본 크라슈는 황당한 얼굴을 했다.

     

   “시즐리, 너 황녀라는 녀석이 이렇게 막 다녀도 되는 거야?”

     

   지금 이곳은 숲속이다.

   세계가 이렇게 된 만큼 어디에서 뭐가 일어날지 모르는 마당.

     

   그런데 여기에서 시즐리가 나타났으니 크라슈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가는 길목을 알고 있었으니 대기했을 뿐인 게다. 무엇보다 급히 전할 말들도 몇 개 있었고.”

     

   시즐리는 아무렇지 않게 마차 위에 올라탔다.

   그러자 마차 밖에 있던 그녀의 호위 세라 베텔라가 크라슈에게 고개 숙이는 게 보였다.

     

   얼굴이 수척해진 게 오랜만에 시즐리에게 거침없이 휘둘린 모양이다.

     

   게다가 그녀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백룡 기사단원들 또한 그녀의 주위에 같이 있었다.

     

   저 멀리 시즐리의 호위로 활동하고 있는 평민의 영웅, 펠레이가 보였다.

   그는 크라슈와 마주치자 미소 짓곤 살짝 고개를 까닥거렸다.

     

   녀석,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는 백룡 기사단에도 호위받는 거냐.”

   “후후, 세계에 하나뿐인 황녀니, 말이지.”

     

   그녀는 그렇게 웃으며 마차 안쪽을 꿰차 앉았다.

     

   “무엇보다 제국에서 입지를 다져 놓았으니.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게다.”

     

   시즐리는 제국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다.

     

   그 과정에서 시그린의 세력을 흡수함은 물론.

   시즐리만의 독자적인 세력 형성 또한 마쳤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크라슈조차 질린 반응을 보였다.

     

   누가 제국 제일의 두뇌가 아니랄까 봐.

   남다른 짓을 서슴없이 해준다.

     

   ‘이 녀석이 마음먹으면.’

     

   정말 제국을 집어삼키는 것도 어렵지 않겠지.

     

   제국만이 아니다.

   시즐리는 언젠가 전 세계를 집어삼킬지도 모른다.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바람이야 늘 잘 불고 있지 않더냐. 네게 부는 바람으로 인해 나도 휘청일 지경인 게다.”

     

   시즐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웃음을 지었다.

     

   “무엇보다 낭군이 이렇게 노력하고 있지않느냐. 약혼녀로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

     

   그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 중인가.

     

   “폐하께서 아이는 셋 이상 낳으라고 하니. 참고해 두거라.”

     

   크라슈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로 했다.

   그러던 시즐리는 갑자기 나타난 그녀 때문에 영문을 몰라 가만히 있던 아스트리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오랜만에 뵙는군. 성녀님, 아, 이 호칭은 별로인가?”

   “아뇨. 상관없어요. 성녀긴 했으니까요.”

     

   아직도 성녀라고 더 많이 불리고 있는 아스트리아다.

   그러니 그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나는 이쪽이 더 입에 붙으니 성녀라 부르도록 하지.”

     

   시즐리는 그렇게 말하며 크라슈와 아스트리아를 번갈아 보았다.

     

   “그래서 성녀님도 낭군이랑 결혼하기로 한 건가?”

     

   다음 말이 떨어지자 아스트리아가 몸을 굳혔다.

   그녀는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입술을 우물거렸고, 크라슈는 시즐리를 빤히 보았다.

     

   분명 조금 전에 마차에서 대화한 이야기인데.

   무슨 눈치길래 저렇게 빨리 알아차리는 거지.

     

   다시 봐도 대단한 관찰력이다.

     

   “황녀를 얕보지 말거라.”

   “남의 속마음 멋대로 읽지 마.”

   “멋대로라기보다는 멋대로 보이는 이가 잘못한 게지. 그보다 잘된 일이로구나. 축하해주지.”

     

   황녀는 무려, 제국의 하나뿐인 황녀가 축하해주는 일이라며 잔망 맞게 박수를 짝짝 쳤다.

   아스트리아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곧 물었다.

     

   “저, 4황녀께서는 신경 안 쓰시는 건가요.”

     

   비앙카와는 이야기가 됐다 쳐도.

   시즐리는 제국과 스타론이 직접 공인한 크라슈의 약혼자다.

     

   그런 약혼자의 옆에 자꾸만 여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그걸 그냥 넘어가도 괜찮은 건지 아스트리아는 의문이었다.

     

   “흐음, 애초에 나도 굴러 들어와 박힌 돌이고.”

     

   비앙카라는 선례가 있는 만큼 시즐리는 새삼스러울 필요가 있냐는 반응이었다.

     

   “게다가 낭군님이 워낙 유능해서 말이지.”

     

   그러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시즐리가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내 기준으로서는 차라리 이게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크라슈의 곁에 있는 여성들은 하나 같이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이다.

     

   지위와 실력, 재화 등.

   어느 것 하나 세계 어디에서도 꿀릴 것 없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크라슈라는 중심으로 힘을 모으는 것만으로.

   세계 각지가 크라슈를 통해 힘을 모으는 것이 수월하다.

     

   시즐리는 이것을 가장 적극적으로 잘 이용할 수 있는 이였다.

     

   “나로서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세계적으로 팍팍 늘리는 것도 어떨까 싶은데.”

     

   시즐리가 눈을 거세게 반짝였다.

   그건 마치, 크라슈로 이루어진 세계를 꿈꾸기라도 하는 표정이었다.

     

   “무서운 소리 마라.”

   “아직도 후보는 잔뜩 있지 않더냐. 마황의 딸이라던가 세계 침식자도 있고, 포세우스 공주도 있잖나.”

     

   대체 어디까지 자신의 인간관계를 다 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시즐리, 너 내 스토킹이라도 하고 있냐.”

   “낭군의 사생활에 관해 아내가 몰라서 쓰나.”

     

   아는 정도가 넘어선 것 같은데.

     

   “그래서 본론은.”

     

   시즐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만 온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니 크라슈가 용건을 묻자 시즐리가 천천히 웃었다.

     

   “내가 이래서 낭군을 좋아하지 않더냐. 네 말대로다. 따로 볼 일이 하나 있지.”

     

   시즐리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익시온과의 전쟁으로 인해 세계는 지금 금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크라슈, 낭군은 금역을 닫을 수 있지?”

     

   이미 전해졌나.

   크라슈는 부정하지 않았다.

     

   “현재 제국은 낭군을 중점으로 금역 공략대를 구성하고 있다. 방어대와는 별개의 공략대지.”

     

   그리고 시즐리는 자기 손가락 네 개를 펼쳤다.

     

   “더불어 4왕국도 마찬가지다. 그들 또한 낭군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였다.”

   “시즐리, 네가 한 거야?”

     

   그 단시간에 그들이 이 정도로 빠르게 대처할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크라슈가 놀란 얼굴을 하고 있자 시즐리는 고개를 저었다.

     

   “제국 쪽은 나도 손 쓰기는 했지만, 4왕국의 경우에는 별개다.”

     

   시즐리는 크라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건 순전히 공략대의 중심에 서게 될 게 낭군인 덕이다.”

     

   크라슈의 눈이 서서히 떠졌다.

     

   “제국조차 내가 손 쓰기 전부터 이미 지원하고자 했다.”

     

   크라슈는 그동안 수많은 곳을 다니며 그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직접 본 이들은 모두 단연코 그를 돕기를 꺼리지 않았다.

     

   그는 정말로 한다면 하는 인간이었으니까.

     

   세계가 금역의 폭주로 인해 위험한 상황.

   크라슈라면 이런 상황도 전력으로 헤쳐 나갈 그런 독한 놈이다.

     

   이를 제국과 4왕국이 모두 동의한 것이다.

     

   “익시온 때, 낭군이 시작점이었으니까.”

     

   시즐리는 그리 말하며 크라슈를 직시했다.

     

   “끝점까지 낭군이 마무리할 수 있도록 나는 도울 게야.”

     

   크라슈의 이름은 역사 전체 깊숙하게 남게 될 것이다.

   시즐리는 반드시 크라슈를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녀는 크라슈에게 이성적 감정을 품었고, 황가에 내려오는 욕심을 품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그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시즐리, 넌 제국만을 위하냐.”

     

   시즐리는 제국의 황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녀는 제국이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많은 준비를 했다.

     

   그렇기에 크라슈의 질문은 사실 당연한 거기도 했다.

     

   그러나 시즐리는 그녀 특유의 잔망스러운 웃음을 가득 거닌 채로 무릎 위에 팔꿈치를 대었다.

     

   “내 욕심이 그것밖에 안 될 것 같으냐?”

     

   시즐리의 눈동자 속, 제국을 넘어선 화려한 욕망이 서슴없이 드러났다.

     

   “기왕 목표로 한 거 제국이 아닌 세계 전체로 봐야지 않겠느냐.”

     

   시즐리는 이제 제국만을 노리고 있지 않다.

   그녀는 더 나아가 크라슈가 뻗어 나갈 세계 자체를 노리고 있다.

     

   크라슈를 최정상의 꼭대기 위에 세워둘 장대한 계획이 말이다.

     

   실제로 시즐리는 서서히 자신의 손아귀에서 세계를 쥐어 움직이고 있었다.

   크라슈라는 빛을 등에 업은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한껏 펼치고 있었다.

     

   ‘어쩌면.’

     

   크라슈는 시즐리를 보며 생각했다.

     

   크라슈가 죽기 직전.

   정말로 세계는 그녀의 발아래에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계 제일의 천재.

   그 말이 딱 어울리는 그녀다운 포부였다.

     

   “물론 낭군이 싫다면 안 하겠다.”

     

   시즐리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발을 헛디뎠는지 시즐리의 몸이 숙였다.

     

   크라슈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시즐리를 받았다.

   그러자 어느새 크라슈의 얼굴 앞에 도착한 시즐리가 크라슈의 볼에 입맞춤했다.

     

   순식간에 당해버린 크라슈와 아스트리아가 벙찐 표정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즐리는 얼굴 가득 잔망 섞인 미소와 함께 크라슈의 품에서 일어났다.

     

   “낭군이 싫어할 만한 짓은 처음부터 한 적 없지만 말이다.”

     

   시즐리는 그리 말하며 자기 입술도 손가락으로 쿡하니 가리켰다.

   그 행동에는 크라슈가 싫어할 만한 짓에 입맞춤 또한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담긴 행동이었다.

     

   순식간에 마차 안을 휘저은 시즐리는 호위 기사인 세라가 열어준 문을 따라 걸어 나왔다.

     

   “그럼 할 일이 태산이니 나는 이만 가보마. 여기저기서 지원이 와도 놀라지는 말도록.”

     

   크라슈는 크라슈답게 그들을 받아들이고, 이용하면 된다.

   시즐리는 그렇게 말해두고는 호위 기사들과 함께 가버렸다.

     

   정말 다시 봐도 폭풍 같은 사람이었다.

     

   “……나 뭔가 진 기분이야.”

     

   그렇게 시즐리가 떠난 자리.

   아스트리아만이 퉁명함이 가득한 얼굴을 지었다.

     

   그러고는 크라슈의 볼을 빤히 바라보기에 크라슈가 손을 들었다.

     

   “괜히 덧씌워야겠다거나 그러지 마라.”

   “누가 모래.”

     

   아스트리아는 흥하고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새침데기스러움은 버리지 못한 그녀였다.

     

   그리고 다시 나아가기 시작한 마차가 왜인지 조금 더 억세졌다.

     

   [ 난봉꾼 같으니. ]

     

   크림슨가든은 한결같은 눈으로 크라슈를 볼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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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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