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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7

       카우렐리아 대통령과의 일정을 마친 뒤, 나와 로즈마리는 최고급 호텔에 묵게 되었다.

       

       “언니, 있는 대로 뒤져 봐요.”

       “안 그래도 다 둘러봤어. 도청용 구슬이나 카메라 같은 건 없더라.”

       “그렇다면 얘기해도 되겠네요.”

       

       로즈마리는 퀸사이즈 침대에 발라당 누우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지난 2년간 저는 여러가지로 첩보활동을 했어요. 이곳 카우렐리아에 사람을 푸는가 하면, 틈날 때마다 스코프로 정탐을 하기도 했었죠.”

       “그건 알아.”

       “그러는 동안 이 나라는 점점 곪아가고 있더군요. 금안족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데다가, 마왕이 남겨 놓은 경제적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결국 카우렐리아의 일이 정리될 때까지는 쉴 수 없다는 거지?”

       

       대자로 뻗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로즈마리.

       

       “이렇게 된 이상 조만간 혁명이 터질 거예요. 도미노 이론을 따진다면 우리나라도 위험할 수 있겠고요.”

       “그러면 뭘 어떻게 하게?”

       

       참고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다.

       

       복잡하게 정치질하고 그러는 건 잘 모르거니와, 국가 간의 정사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물음에 로즈마리는 대답을 내놓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죠.”

       “즐겨?”

       “네, 시간이 되는 대로 그들의 수뇌부와 접촉할 계획이에요.”

       

       수뇌부와 접촉한다, 라.

       

       “졸업식 때 레니냐한테 말했으면 됐던 거 아니야? 혁명세력의 주동자가 레니냐의 삼촌이라고 했잖아.”

       “엣.”

       

       로즈마리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설마.

       

       진짜로 생각 못하고 있었다고?

       

       “블루베리야?”

       

       대답이 없다.

       

       “피곤한 척하지 말고 빨리 대답해. 까먹고 놓친 거야, 아니면 큰 그림을 위해 일부러 그런 거야?”

       “이, 일부러 그런 건데요.”

       “정말로?”

       “정말로.”

       “진짜로?”

       “진짜, 진짜루다가.”

       “네 언니 정령이다.”

       “…….”

       

       왜 대답이 없어.

       

       “정령 상대로 거짓말은 안 통하는 거 알지? 이런 몸이 된 이상 악의나 음모에 되게 민감하게 반응하거든.”

       

       로즈마리는 질겁하며 물구나무를 섰다.

       

       “거짓말이에요! 사실 깜빡하고 있었어요…!”

       “나도 생각할 수 있는 걸 왜 까먹어?”

       

       “막아야 한다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죠. 그, 그렇잖아요! 사람이 가끔 실수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더니 이런저런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이것 말고도 다른 것도 신경써야 해요. 집정관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문서 작업도 해야 하지, 아랫사람 사고치면 돌봐야 하지. 심지어 철화의 저주도 풀려서 옛날처럼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안 돌아가요!”

       

       로즈마리는 애통하다는 듯 가슴을 팍팍 쳐댔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사소한 걸 놓쳤다는 게 어처구니없는 모양이다.

       

       나는 로즈마리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나는 가만히 있을 테니까 네가 레니냐를 찾아서 잘 설득해 보라고.”

       

       그 말에 로즈마리의 눈동자에 총기가 서렸다.

       

       로즈마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

       

       “후후. 그녀를 설득하는 일이라면 앉아서 떡 먹기 수준이에요.”

       “과연 그럴까?”

       “이걸 보면 생각이 달라지실걸요?”

       

       톡.

       

       블루베리는 로즈마리 꽃이 조각된 머리핀을 떼어내 만지작거렸다.

       

       – 민주주의 국가에서 혜택은 차등하여 주는데 세금은 동일하게 걷어간다면 차별이라는 말이 나올 겁니다.

       –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

       

       뭐야.

       

       “그거 녹음 기능 있었어?”

       

       “아, 이 정도는 당연하죠.”

       

       로즈마리는 간만에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뭔가 불안하다. 이 녀석이 이런 웃음 지을 때마다 나라가 하나씩 망하던데.

       

       틱, 틱.

       

       로즈마리는 머리핀을 조작하여 녹음된 내용의 나머지를 재생했다.

       

       – 민주 국가에선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 카우렐리아는 국민 주권을 가진 국가입니다. 국민의 동의 없이 기존 정책을 어지러이 바꿀 수 없습니다.

       

       깔끔하다. 음질 저하도 없고.

       

       “지금 들어도 개소리가 많네요.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는 걸 어디에 뿌려야 효과적일까요?”

       “으음, 국민들 앞에서?”

       “땡!”

       “정답이 뭔데?”

       “정답은 반란군이에요. 반란군에 이 정보를 제공하면 저희는 그들에게 까임 방지권을 얻는 것이죠.”

       

       나는 그만 감탄하고 말았다.

       

       “적으로 둘 수는 없으니, 아군으로 만들겠다는 얘기구나.”

       “어떻게 보면 그렇죠.”

       

       쓸데없는 곳에서 허당인데, 또 이런 곳에서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로즈마리였다.

       

       굳이 비유하자면 수능 수학 98점 맞는 학생이라고 해야 할까?

       

       뭔가 멍청하면서도 중요할 때 똑똑하다.

       

       로즈마리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모았다.

       

       “그러면 슬슬 행동해 볼까요?”

       

       [최상급 고유마도 ─ 스코프(Scope)]

       

       야심한 밤, 탐색의 시간이었다.

       

       

       **

       

       

       레니냐는 눈앞의 소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앞머리는 부분부분 가렸으며, 눈은 고리눈이었다. 바늘처럼 가는 동공에서 미묘한 광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무엇보다 머리카락.

       

       머리카락이 자신과 같은 암적색이다.

       

       레니냐와 같은 머리색은 정말로 보기 드물다.

       

       “아, 이거 말인가요? 원래 이런 머리는 아니었습니다. 동무를 존경하기에 염색한 것입니다.”

       

       소녀는 자기 옆머리를 돌돌 꼬아말며 수줍게 말했다.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블랑카. 엥켈톤 씨의 딸이라고 하면 아실까요?”

       “아.”

       

       엥켈톤 아저씨에게 딸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만나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레니냐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려 했다.

       

       “고개 숙이실 필요는 없어요. 나이는 동무가 저보다 많으니까요.”

       

       도리어 블랑카가 고개를 깍듯하게 숙이며 예를 표했다. 처음 보는 소녀에게 정중한 인사를 받다니,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블랑카가 눈빛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일리야드 아카데미 입학에, 졸업은 틸레트에서 하시다니요. 동무는 엄청난 분이세요.”

       “그, 그런가?”

       “그럼요. 민중을 위해 싸우는 인텔리라는 느낌이 물씬 들어요.”

       

       인텔리라니.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레니냐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씰룩였다.

       

       블랑카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레니냐의 손을 맞잡았다. 그녀의 입에서 레니냐를 찬탄하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레니냐는 그 말들을 들으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만큼 부끄러웠다.

       

       그렇게 10분에 걸친 예찬을 들은 레니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우리 혁명전선에 잘 왔어요. 동무 같은 분이 생겼으니 분명히 이번 거사는 크게 성공하겠지요.”

       “무, 뭐? 거사?”

       “네. 조만간 수도 메르헤름을 제외한 전국에서 봉기를 일으켜 민심을 한 차례 흔들어 놓을 예정입니다.”

       

       탁. 때마침 엥켈톤이 스튜를 내오며 말을 받았다.

       

       “봉기라고는 말했지만, 사실 시위에 가깝다. 무턱대고 무력을 사용하면 안 될 거야.”

       “그건 그렇죠. 무고한 사람까지 죽일 수는 없으니까요.”

       “내 딸이 벌써 그 정도까지 생각할 줄 알게 되었구나.”

       

       엥켈톤은 블랑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무장봉기는 최후의 수단이다. 섣부르게 행동하면 안 돼. 네 삼촌도 그것을 알고 있으니 신중하게 행동할 거다.”

       “막시 삼촌은 지금 어디 계시나요?”

       “수도 근처에서 잠입하고 있다. 그곳에서 세실 르네이 총장과 주기적으로 접촉하고 있지.”

       “네?”

       

       세실 르네이.

       

       “일리야드 총장님 성함이 왜 거기서 나와요?”

       “2년 전 네가 에테리아로 도망칠 수 있게 도와준 것이 그 총장 아니더냐?”

       “그건 그래요.”

       “그 이후로 르네이 총장은 우리가 벌인 플로반스 주의 소요를 달래러 오셨다.”

       

       엥켈톤의 말대로였다.

       

       소요를 ‘진압’한 것이 아닌, 달래려고 온 것.

       

       “그 사람의 노력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엥켈톤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우리가 벌인 일은 금세 무산되고 말았지.”

       “그래서 지금 이렇게 숨어 지내는 거군요. 기회를 보려고 말이죠.”

       “그것도 있어.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뭔데요?”

       “바로 단속이야.”

       

       이른바 반국가단체의 단속.

       

       플로반스 주의 소요 사태를 겪은 정치인들은 신분과 권력에 위기감을 느끼고 안보 정책을 강화했다.

       

       “이제 우리를 ‘빨갱이’라고 부르며 만나는 족족 옥에 넣어버리더구나.”

       “금안족들을, 전부요?”

       “전부는 아니다. 자신이 무죄라는 걸 소명하기만 하면 잡아가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 말인즉, 실제 현장에서 집행하는 공무원의 성향이나 마음에 따라 체포 여부가 갈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불공평한 처사였다.

       

       “말이 안 돼요.”

       

       빠득.

       

       이가 갈리려던 찰나였다.

       

       쿵, 쿵, 쿵!

       

       “이크. 놈들이 또 온 모양이군.”

       

       엥켈톤은 입가에 검지를 가져갔다. 그와 동시에 불온한 소리가 가까워졌다. 레니냐는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움직였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요리하던 이도, 스태프를 손질하던 이도, 놀이판을 벌이던 이들도.

       

       전부 숨을 죽이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 거기 안에 누구 계십니까?

       

       덜컹덜컹.

       

       출입구가 요란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총명한 레니냐는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는 것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 야, 이거 잠겼는데?

       – 안에 누가 있을지도 몰라. 렌치로 따버려.

       

       소위 말하는 ‘불순분자’ 색출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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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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