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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8

       클레어와 앨리스가 한글을 익힌 이후에는, 이 방 안에서 만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래도 좋다고 허락했다.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책도 있었고,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데다 마침 블루레이 디스크가 돌아가는 콘솔기기도 있었기에 영화 블루레이도 꽤 갖춰두었으니까.

        

       사실 외국어 중 영어는 따로 배우지 않아도 의미가 어느 정도 통했다. 불규칙하게 변하는 단어들의 경우는 따로 외울 필요가 있었지만, 두 사람 눈에는 외국어라기보다는 방언처럼 읽히는 모양이었다.

        

       뭐, 굳이 자막을 틀어놓고 볼 필요는 없었지만. 애초에 문자가 아닌 언어는 우리 귀에 번역되어 들리기도 했고.

        

       그리고, 두 사람에게도 스마트폰이 생겼다.

        

       내게 있는 주민등록증처럼, 이 두 사람의 주민등록증도 가짜는 아니었기에 개통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방 안에 와이파이 기기가 있으니 인터넷 비용이 부담되지도 않았다. 어차피 우리 셋은 거의 언제나 함께 움직였으니까.

        

       다만, 기기 가격이 문제였다.

        

       이 두 사람에게 너무 쓰기 애매한 저가형 제품을 사주고 싶지는 않았다. 왜, 그런 말 있지 않은가. 종종 효자폰이랍시고 지나치게 성능 낮은 스마트폰을 내놓는 회사들을 보고 ‘부모님도 좋은 거 쓰고 싶다’라고 하는 거.

        

       이 두 사람이 이제 막 전자기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해서 성능 나쁜 것을 사주기는 싫었지만, 그렇다고 최신 스마트폰을 사는 건 조금…… 그랬다. 방송이 잘 되고 있고, 후원이 들어오는 빈도도 늘어서 생활이 훨씬 안정되었지만, 두 사람 몫의 스마트폰을 한꺼번에 질러서 수백만 원의 비용이 발생하거나 너무 비싼 요금제에 드는 일은 조금 피하고 싶었다.

        

       결국 선택한 것은 중고 거래였다.

        

       상대방이 나의 외모에 놀라서 어버버하는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좋은 가격에 2년 정도 된 상태가 매우 좋은 스마트폰을 구할 수 있었다.

        

       “방송이 더 잘되면 이건 처분하고 새것으로 사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응? 아냐, 이 정도도 충분한데?”

        

       “그래. 너무 무리할 건 없어. 결국 도움받는 쪽은 우리 둘이니까.”

        

       클레어와 앨리스가 각각 그렇게 대답하는 것을 듣고 어째 가난에 찌든 가정의 맏이가 된 기분이 들었지만, 뭐, 그건 그런대로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평소에도 스마트폰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종종 내 스마트폰을 빌려서 놀기도 하는 두 사람이었으니, 솔직히 나는 두 사람이 스마트폰을 받으면 계속 그것만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었지만—

        

       “그래도 스마트폰 때문에 언니랑 대화가 끊어지는 건 싫어.”

        

       “이쪽에서 배울만한 건 이거 말고도 많잖아. 게다가…… 계속 영상만 보고 있으니 뭔가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스마트폰에 푹 빠져서 약 사흘을 보낸 뒤 두 사람이 보인 감상은 그런 것이었다.

        

       기특하기도 하지.

        

       그런 것 치고는 클레어가 밤에 늦게 자는 빈도가 늘어나고, 앨리스는 모바일 게임에 흥미를 보이는 것 같긴 했지만 일단 그냥 기특한 거로 알고 넘어가기로 하자. 적어도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처럼 TV 보겠다고 밥을 안 먹으려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밥 이야기가 나와서 식사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두 사람은 나름대로 이쪽 입맛에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누가 영국이 모티브가 된 나라 아니랄까 봐 3분 카레를 아주 좋아했다.

        

       ……나는 학생이었을 때 너무 많이 먹어서 질려버린 음식이긴 했지만. 그래도 진짜 비싼 카레가 아니라 3분 카레 정도로 만족해주는 것은 다행이었다.

        

       지나치게 매운 것만 아니면 이것저것 다 맛있게 먹는 둘이라 다행이었다.

        

       우리 세 사람 중에서 그나마 요리 실력이 가장 낫다고 할만한 사람은 나였기에, 보통은 내가 요리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 두 사람을 건강하게 먹이고 싶어도, 종종 너무너무 요리하기 귀찮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럴 때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컵라면이나 레토르트 식품들이었다.

        

       그렇다. 두 사람이 같이 살기 시작해도 내가 먹는 요리는 이쪽 세상에서 먹던 자취 요리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나마 그거라도 기억하고 있는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했다. 너무 오래 요리를 안 해서 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

        

       클레어가 영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가 방송을 쉬는 날 아침이었다.

        

       바로 지난주에 호텔에 다녀왔고, 생각만큼 지출이 컸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매주 호텔을 갈 수 있을 만큼 풍족한 것은 아니었기에 이번 주는 일단 집에 있으면서 뭘 하고 놀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언니.”

        

       점심때쯤 다시 한강으로 나가볼까 고민 중이던 내게 클레어가 말을 걸어서, 나는 고개를 들어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입 안에 아직 음식이 있었기에 말로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클레어가 망설이는 이유는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

        

       클레어가? 부탁을?

        

       슬슬 일상이 정형화되어가는 와중에 클레어가 그런 말을 해서 조금 신기했다.

        

       생각해보면, 클레어는 나한테 그런 식으로 부탁을 한 적은 없었다. 애초에 같이 살지 않았으니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클레어는 나를 언니라고 생각하고 있고, 나는 클레어를 나름대로 동생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일단 성씨부터 달랐으니까.

        

       게다가 나는 황녀고, 클레어는 귀족인지라 클레어가 ‘나에게’ 뭔가 부탁할 이유가 없었다. 필요한 게 있다면 그레이스 가에 말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탁한다면 앨리스 쪽이 하는 쪽이 자연스러웠지.

        

       그리고, 음…… 참 희한하게도, 조금 기뻤다.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굳이 따지자면 입양한 딸이 나한테 처음으로 ‘아빠, 부탁할 게 있어요’라고 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아무래도 클레어가 딸은 아니다.

        

       게다가 클레어는 이미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데 거리낌이 없기도 했고……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나의 말에도 클레어는 바로 기쁘다는 표정을 짓기보다는 오히려 더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

        

       그리고 클레어의 그런 반응에 식사하던 앨리스도 젓가락을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클레어의 부탁이 꽤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클레어의 입에서 나온 것은 나의 예상보다는 훨씬 가벼운 것이었다.

        

       “그, 영화를 보고 싶은데…….”

        

       아, 그런가.

        

       클레어와 앨리스는 영화를 좋아했다.

        

       그러니까, 아제르나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지구에서의 이야기다.

        

       아제르나의 영화는 이제야 태동기였다. 슬슬 영화다운 영화가 나오고는 있었지만, 아직은 흑백 무성영화 수준이었다.

        

       물론 흑백 무성영화 중에도 걸작은 많다. 21세기에 나오는 영화들의 기술력이 아무리 좋아도 그 존재감적인 측면에서 절대로 묻히지 않는 걸작들이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오락적인 측면에서는 ‘요즘 나오는 영화’만 한 것이 없다.

        

       그리고 내 방에는 이미 블루레이 디스크가 꽤 있었고, 나도 볼 겸 해서 OTT도 하나 결제 중이었으니, 클레어가 하는 말은 그 작은 모니터로 보는 영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리라.

        

       “영화관에 가고 싶으신 거군요.”

        

       “응!”

        

       클레어의 대답에 앨리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젓가락을 집었다.

        

       ……그러고 보니 이쪽으로 온 지 몇 주밖에 안 되었는데 젓가락질을 꽤 잘하네. 저것도 노력의 결과일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잠깐 한 후, 나는 클레어에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무료로라도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4DX니 뭐니 하는 것까지는 아직 조금 생각해봐야겠지만, 일반적인 영화는 이미 대학생 때부터 그 방법으로 여러 번 봤었다.

        

       “정말?”

        

       “예.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그리고 아플 수도 있고요.”

        

       내 말에 클레어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앨리스는 몸을 딱 멈췄다. 두 사람 다 다소 경악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애먼 생각을 하는 거라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매우 합법적이고, 성적인 일도 아니니까요.”

        

       나의 말에 두 사람 다 조금 안심했지만, 이번에는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공공기관에서 하는 일이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다시 한번 말했지만, 여전히 두 사람 모두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아, 그렇구나.”

        

       내가 헌혈의 집 앞에 두 사람을 데리고 와서야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헌혈의 집에서 헌혈하면 공짜 영화표를 받을 수 있다.

        

       마침 우리 셋 모두 만 16세는 지났다. 물론 주민등록증에는 18세였고.

        

       “헌혈?”

        

       클레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고, 앨리스가 설명했다.

        

       “사고로 피를 흘린 사람이나, 수술 중 피가 부족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하는 거야. 과다출혈로 죽지 않도록. 그런데 그 피를 그냥 공짜로 달라고 하면 해줄 사람이 거의 없으니, 이렇게 상품이라도 주는 거지.”

        

       “돈을 주고 사면 안 되는 거야?”

        

       “그건 분명 그것대로 문제가 될 테니까.”

        

       앨리스는 인터넷에서 읽었다는 모양이었다.

        

       설명을 마친 앨리스는 잠깐 고민하더니 나를 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왔는데, 우리 피를 다른 사람에게 수혈해도 괜찮은 걸까?”

        

       ……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당연하지만, 헌혈 해도 괜찮습니다.

    이것저것 따지면 너무 복잡해지니 다음화에서 간단하게 검사로 해결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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