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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8

        

         나는 원래도 인터넷 망령이라기보단 아무래도 겜창… 커흠!! 잠시 실례.

         

         집에서 홀로 취미를 영유하는 고상한 하드코어 게이머 쪽에 더 친근하고 가까운 생활 패턴과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하지만. 뭐, 아무튼.

         

         그런 나라도 가끔 본 영상이나 유머 짤 중에는 그런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사용한 카메라의 녹화 프레임 레이트와 로터 회전 수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서 공중 부양하는 것처럼 움직이는 헬리콥터라든가, 반대로 촬영 빈도가 너무 떨어져서 흡사 순간 이동하듯 기록된 고속 피사체라든가.

         

         일단 머리로는 그 원리를 충분히 알고 있더라도, 막상 눈으로 구경했을 때 즐길 수 있는 특유의 묘한 만족감과 재미가 있지 않나?

         

         음음, 아마 이건 나만 떠는 호들갑이 아니라 어느 정도 모두가 이해할 만한 보편적인 감성이라 본다.

         

         고로 이것도 하나의 정제된 속도감을 실감할 수 있도록 미리 살짝 보여준 기예技藝이자 뽐내기.

         

         자신과 한판 뜨겠단 결정을 함부로 내리려 드는 상대에게 지대한 의문을 첨가하는 기선 제압 쪽에 가까운, 일종의 헬레나 식 오프닝 패턴이 아니었을까.

         

         “오? 오, 이야. 와아…!!”

         

         빠각! 하는, 듣기만 해도 뼈가 저릿저릿한 사운드.

         

         메인 이벤트에 앞서 펼쳐진 주인공 씨의 지지부진하고 안전 지향인 원맨쇼 공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무심코 흐트러졌던 자세를 바로 하고 다시 초집중하는 모드로 돌아가며 감탄사를 토해냈다.

         

         

         관측 드론이 발산하던 고주파 파장이 고속 이동에 의한 난반사로 일순간 흐트러졌고.

         헬레나의 체온이 남긴 잔상이 스러지는 무지개의 최후처럼 아련한 동심원을 그린 채 퍼졌으며.

         돌연 폭증한, 밀집된 처리 데이터량에 폴리곤(Polygon; 컴퓨터 그래픽스에서 입체 도형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의 다각형) 연산이 어긋나며 화질이 미친듯이 내려갔지만…. 외려 그런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현장의 심각한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만 같았으니.

         

         

         그러니까 내 화면에서는 흡사 가시화된 후광이나 명확한 전투 의지가 기세를 타고 뿜어져 나오듯, 이게 대체 개인이 몽둥이 한 번 휘둘러서 뿜어낸 게 맞냐는 수준의 격한 파동이 그대로 탐지되었다는 뜻이다.

         

         ……엥? 이 급격한 난이도 경사가 고작해야 프롤로그 파트에서 튀어나오는 게 맞냐고?

         

         뭐요, 내가 따로 조작해서 성사시킨 확정 패배 이벤트가 아니잖아. 요즘 길거리가 하도 뒤숭숭하니까 저 언니가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발품을 판 건데.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이기는 판에만 끼어들며 살려고 해~ 가끔 발 삐끗하거나 실수하면 이런 불합리한 전장에 떨어지는 신세가 되기도 하는 거지.

         

         – 애당초 상대가 안 되는 싸움, 균형이 성립하지 않는 대립이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럼 저자에겐 아무런 이득이 없으니 적극적으로 피해야 했던 전투가 아닙니까? –

         

         “아, 조금 이상하게 들릴 막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거시적 측면에선 꼭 승리 조건이 이기는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더군다나 헬레나가 엄청나게 봐주고 있는 상황이니 비벼 볼만 하다 착각했을 여지도 있고. 제로 너랑 언니가 직접 싸운 적은 없더라도, 얼추 견적은 분석해봤을 거 아니야? 네 성격에.”

         

         – ……. –

         

         “야, 임마.”

         

         어차피 너라면 만약에 만약을 대비해서 헬레나와 적대하게 될 가능성도 상정하지 않았냐~ 같은 농담 겸 진담을 했더니, 왜 정확하게 이 때만 무섭게 조용해지는지 모르겠다 얘는.

         

         원칙에 예외를 둘 수는 없습니다…! 뭐 그런 건가.

         

         어쨌거나 예상하고 있던 건 물론이요, 그런 철저한 부분까지 믿고 내 안전 문제의 대부분을 맡겨 놓은 채 안심하고 지내는 거라, 차마 뭐라 하기도 미묘하니 이건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하여간 이제 결국 남은 건, 샘플 케이스를 두고 둘이서 신나게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분비되는 도파민과 차츰 진해지는 전투 열기에 손속이 독해지고.

         

         둘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론 정확히 책임 소재와 선후를 따지자면 헬레나의 위압과 폭력 시위에 한계에 도달한. 즉, 생명의 위협을 느낀 주인공 쪽이 어설프게 급발진 하는 순간 그대로 상황 종료. 끝나는 거지 뭐, 안타깝고 슬프게도.

         

         “…아니지? 나름 남들은 못 얻어서 안달인 인색 역전 찬스인데, 영원히 말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게 맞나?? 그야 물론 더럽게 아프고… 무서운 경험이긴 하겠다만.”

         

         그나마 당사자는 나처럼 결말을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수술대에 오른 수면마취 환자 같은 신세일 테니 다행이리라.

         

         옆구리에서 허벅지로, 마치 시원한 체벌을 하듯 있는 대로 가속도를 넣은 칼집 옆면이 빡!

         위에서 아래를 향해… 얼얼하다 못해 시야가 뒤흔들릴 세기로 정수리 근처 방독면 테두리에 깡!!

         

         “이만 포기하지? 별로 근성 있는 걸 싫어하지는 않는데, 불쌍한 척한다고 헛수작질을 못 본 체 넘겨줄만한 사이도 아니잖아 우리가?”

         “악!? 끄아악!! 씹, 누님. 누님!! 잠깐만, 그 미친 속도랑 파워에 적응할 시간이나 연습할 기회라도 제발 주고 좀…!!”

         

         “와, 은근 학대파인 것 좀 봐. 일부러 뼈 때린다 뼈.”

         

         20세기 한국에서조차 만약 선생님이 학생을 저런 식으로 팼다면 인권 유린이란 소리가 나오진 않았을지 걱정되는 수준의 정신머리 개조 겸 괴롭힘.

         

         양손을 다 쓰지도 않은 채 한 손으로 연달아 휘두르는, 몽둥이 찜질에 가까운 칼집 타격으로 주인공 형씨를 무자비하게 몰아붙이는 헬레나의 늠름한 자태-그래봐야 귀신처럼 늘었다 줄었다 일렁이는 폴리곤 그림자긴 하다만-를 구경하고 있으려니 옛날 생각이 솔솔 났다.

         

         흐으음… 역시, 이 동네 초인들의 운동은 아예 결이 다르다니까? 몸싸움은 최대한 피하되 다른 방면에서 찍어 누르는 걸로 생존 전략과 그 가닥을 바꿔 잡기를 정말 잘 했어.

         

         내가 조금만 더 객기부리는 성격이었으면, 스타팅 포인트였던 에나마 연구소에서 탈출해보지도 못하고 추적자한테 그냥 보쌈 당했을지도 몰라.

         

         “…그래도 방아쇠 살살 당긴다고 총알이 덜 아프게 나가는 건 아니니까 뭐.”

         

         새삼 체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점에 맞닥뜨릴 줄도 모르고선 ‘체형? 피탄 면적은 작을수록 이득임.’, ‘육체 능력? 임플란트 박은 건데요~’ 같은 안일한 마인드를 보유한 과거의 나 자신을 노려보듯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하며 생각을 잠시 다른 방면으로 날렸다.

         

         레벨(Level)이라는 편리한 척도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용병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지표, 성과의 측정도에는 무엇이 있을까.

         

         당장 저 두 사람만 비교해도 같은 용병이라 뭉뚱그려 묶기엔 전투력이랄까, 단적으로 순수한 강함의 차이가 가혹하리만치 꽤 나지 않나?

         

         한때 완벽한 육각형 만능 캐릭터이자 게임 클리어를 위해 가장 유리한 빌드를 지향하고 실제로 성공하기까지 했으나… 이제는 졸지에 해킹 특화 요원 겸 나름 네임드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되어버린 내가 보기엔 그 수단이 확실히 적기는 했다.

         

         괜히 주인공이 겁없이 덤벼들도록 시나리오가 짜여져 있던 게 아니라 해야 하나?

         

         아, 그래. 아예 몸담은 해커 업계를 예시로 들어볼까?

         

         대부분의 도시에서 용병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면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정보가 몇 가지 있다. 내용은… 어디 고급지게 말하면 업무 평가서, 좀 없어 보이게 내려치자면 서비스 리뷰 정도가 되겠네.

         

         양지 혹은 음지에서 활약한 날짜, 총 의뢰 수주 건수, 투입된 임무의 성공률, 거기에 마지막으로 고객이 친히 남길 수 있는 만족도 평점까지.

         

         이것조차 사실 협조성과 수행 능력을 일부 수치화한 것일 뿐, 실전에서 얼마나 괴물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냐에 대한 지표라 하기엔 애매하다.

         

         …나처럼 성공률 99%대에, 평점 9점 후반을 꾸준히 유지하는 인재라면 또 모를까. 엣헴!

         

         조작? 일반적으로 용병은 일손이자 동시에 주된 소비 고객이기도 한만큼, 이건 암시장에서 다중 DB에 나눠 관리하는 주요 자산이나 다름없는데. 내부자인 레오나르 경조차 블랙마켓 공식 계정으로 인증 마크 남기는 게 고작이었던 걸… 뭐 어떻게 교차 검증 보안을 뚫으시게.

         

         일단 나보고 시도하라 한다면 우선 자료 대조 절차에 고의적으로 지연을 유발하는 것부터 시도한 다음, 갱신된 고유 값이 인식 및 비교되기 전에 타임 어택을 하는 것처럼 가상 공간에서 시스템을 위조해가며 미친듯이 파고들어야 하겠지만…. 그런 건 힘들지, 응. 그럴 이유도 없고.

         

         아무튼 이런 골자 자체는 일반적인 힘쓰는 전투 용병이나 블랙 마켓과 연계가 미약한 만능 해결사 분야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결국 실전은 눈치와 기세 싸움. 혹은 사이버웨어나 장비를 이용한 퀵 스캐닝 테크닉을 쓰는 정보전.

         

         수치화할 수 없는 압도적 강함을 난데없이 마주치게 되면, 그 앞에 기다리는 것은 아득한 절망뿐.

         

         헬레나의 경우, 은근히 그걸 실감한 이들의 입소문과 목격담을 제외하면 겉으로 딱 봤을 때 실질적인 능력이 와닿질 않으니 특히나 더 악질이지.

         

         심지어 나라는 경제적 후원자…? 아니, 가족끼리 그건 좀 글러먹은 표현이고.

         

         그간 원작과 어긋날까 봐 괜히 멀리한 게 미안해서, 어울리거나 좋아할 것 같은 장비를 보면 무지성으로 선물해주는 내가 있어서 그런가.

         

         ‘늑대’가 고작 준수한 신인이라니. 헬레나의 경력이 몇 년인데!

         

         직접 겪어본 사람들이야 그 도깨비를 마주한 듯한 막막함에 치를 떤다는 우리 언니께선. 내 기억보다도 더 각박한, 무슨 ‘취미로 용병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수준의 극단적이고 망가진 지표를 유지하고 계셨기에.

         

         “끄억?! 흐억컥!!”

         

         “…너, 꽤 끈질기네.”

         

         고로 아무런 경험없이 ‘뭐, 그래봐야 얼마나 괴물이겠어. 힘 좀 쓰는 용병이겠지’ 같은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달려든 저 주인공 형씨가 뼈를 못 추리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예.

         

         복부 근처로 날아온 돌려차기를 어설프게 팔로 가드하려다 데굴데굴 굴러간 그가 튕기듯 일어서는 게 약간 오뚝이가 생각나기도 하고.

         

         헬레나가 완전 진심으로 두들겨 패는 게 아닌 만큼 기회가 많이 주어지긴 한다지만. 하도 반격에 많이 실패해서 혹시라도 포기하는 건 아닌가… 그럼 모든 게 어긋나는데 하고 걱정했거늘, 과연 근성 하나는 넘쳐 보여서 다행이었다.

         

         남자에겐 또 평균적으로 높은 근력 증폭 효율과 충격에 강한 안정적인 무게감이라는 큰 장점이 있으나.

         헬레나도 그렇고 마사나리도 그렇고, 태생적으로 무게마저 덜 나가는 여성이 저만한 근력은 물론 탄성과 유연성까지 보유한 채 달려드는 건 보통 예상밖의 악몽이리라.

         

         물론 실제로 힘이 약한 건 맞지만, 나를 보고도 근접전이 미숙할 것이라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나? 피부 접촉이 가능한 조건하에서 독하게 마음먹는다면, 정말 산지옥을 맛 보여줄 수 있는 독사를 감추고 있음에도 말이다.

         

         과신이 느리고 교활한 살인자인 것처럼, 요 선입견이란 건 엄청 무서운 거다.

         

         ……미친,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무리 내가 지켜보고 있다가 전화를 빨리 건다 쳐도. 방심한 그의 즉사를 치명상이나 중상 언저리로 약화시킬 타이밍을 도무지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네.

         

         사고 가속도 조절이 자유자재로 가능한 어비스 다이브 상태에서 체감 시간을 엄청 잡아 늘린 상태로 꾸준히 지켜보고 있어야 하나?

         

         지금 열심히 얻어맞다가 화내기 전에, 입만 나불댈 게 아니라 좀 태도를 진지하게 고쳐먹어야 할 텐데. …오오?

         

         팡——!!

         

         경쾌한 타격음.

         

         처음으로 패링(Parrying; 상대의 공격을 떨쳐내는 행위) 성공. 남자가 헬레나의 타격을 쳐내면서 뒤로 거리를 확 벌렸다. 아마 헬레나는 썩 흥미로운 태도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을 거고.

         

         “샘플 케이스를… 넘겨줄 마음이 전혀 없는 거라 봐도 되겠지, 이건?”

         “후우… 흐으. 흐어… 미안하지만 진짜 양보 못 하겠어. 앞으로 살아가려면 이게 꼭 필요하거든 난.”

         “…아, 그러셔?”

         

         주인공 형씨의 말투가 기억보다 다소 비장하긴 했지만 그쯤은 현실적인 오차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어쨌든 저거다. 저게 진행도가 오른다는 표시이자 내가 기다리고 전조이다.

         

         모니터에는 남자가 강화 임플란트를 오버클럭하고 있는 건지, 기묘할 정도로 심장 박동에 맞춰 욱신거리는 근육 움직임과 급격히 상승하는 체온이 똑똑히 잡혔다.

         

         연달아 성공하면 할수록 점점 미친듯이 샘솟는 아드레날린에 두 사람 모두 자제심을 잃은 채 사고로 이어지는 부정 나선.

         

         한결 정색한 분위기가 감돈다. 적어도 그렇게 추정된다.

         아무나 얼굴 표정…을 볼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지금 송출 환경에선 그건 지상으로 올라온 다음이나 나중에야 겨우 가능하겠고.

         

         “그럼 어디, 무덤까지 안고 가겠단 뜻으로 이해할게?”

         “!!”

         

         여지껏 휘두른 공세가 산들바람이었다면 이제는 숫제 폭풍.

         

         타격에 차차 적응할 정도로 눈이 좋다면, 억지로라도 그 고집불통 입에서 항복 소리가 나오게 만들어주겠다는 것처럼 하나 하나에 뼈를 부러트릴 운동에너지를 우겨 담은 강타가 이어진다.

         

         인간이 팔다리를 휘두르는 것만으로 인위적인 난기류를 만들어냈다면 누구나 코웃음을 치겠지만, 막다른 공동 안에서 쉼 없이 몰아치는 그 형세는 실제로 승강기 통로 안에 숨어있는 드론마저 흔들리게 만들었으니.

         

         떨어트린 핸드 나이프는 구둣발에 채이고 채이다 어디론가 처박혀 사라진지 오래.

         

         압도적 리치 차이에 수비 일색으로 버티는 걸 강요당하던 남자가 호흡기를 노린 헬레나의 명치 찌르기를, 최초로 완전히 피해내는데 성공하는 걸 본 나 또한 망설임없이 신경을 가속해 뇌를 극한으로 몰아붙였다.

         

         – 그가 노리는 바는 알겠습니다만. 꽤 악수惡手로군요. –

         “그렇지 뭐. 안타깝지만 주제를 모르는 자살행위에 가깝지.”

         

         쓸데없이 같은 의뢰를 받은 용병끼리 피를 보기 싫어서, 또 멍청하게 분쟁의 싹이나 물증을 현장에 남기기 껄끄러워서.

         

         그런 이유로 카타나도 뽑아 들지 않은 채 겁만 주던 늑대에게 감히 먼저 이빨을 드러낸다면 어떻게 될까.

         

         통렬한 찌르기를 피해낸 주인공이 가까스로 뻑뻑한 팔을 들어 검집을 옆구리로 고정한다.

         아니, 그냥 버티는 걸 넘어 상반신을 비트는 걸로 체중을 이용해 확! 잡아당기는 유도 기술에 더 가까웠다.

         

         일단 무기를 봉인했으니 발차기나 주먹질 정도는 어떻게든 한 방 버텨내겠다는 마음가짐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미 방어일변도로 얻어맞아가며 버티느라 화끈거리는 신경, 호신용 무기는 이미 잃어버린 탓에 남은 무장의 애매함, 똥인지 된장인지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는 급박한 대치 상황.

         

         내 것보다 훨씬 두껍고 큰 손이 권총을 뽑아 들자, 그것보단 일견 여리여리하지만 갈고리 같은 악력을 숨긴 헬레나의 손이 총구를 잡아챈다.

         

         힘 대 힘은 밀린다. 파운딩으로 이행 당할 자세에서 이대로 밀리면 그대로 패배다. 그렇다면 한 사람 몫의 용병으로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존심이 있지 이걸 그냥 줘버려??

         

         아니지, 아니야.

         

         모 아니면 도, 여기서는… 방아쇠를 당겨라.

         

         타앙——!! 그리고 콰직!!

         

         큰 돈에 대한 열망? 이게 아니면 답이 없다는 절박함? 무엇을 담고 있었는지 나로선 이제 정확히 알기 어렵다.

         

         발사된 탄환의 입사각이 괜찮았는지 아니면 재수가 없었는지, 도탄될 법한 총알은 그녀의 오토바이 헬멧 표면에 틀어박혀 요란한 파쇄음과 함께 하얀 거미줄을 만든다. 굳이 수리 센터에 들고가느니 새로 사는 게 나을 정도의 파손도.

         

         게다가 연결 부품마저 망가졌는지 쪼개진 바이저가 조각나서 떨어지며, 여지껏 감추고 있던 착용자의 맨 피부를 조금씩 하얀 조명 아래에 비로소 드러냈고.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무표정한 얼굴을 자랑하는 미인의 모습이 남자의 망막에 새겨졌다.

         

         자랑의 은빛 머리카락이야 몇 올 끊어져서 흩날렸을지언정 피 한 방울, 땀 한 줄기 흘리지 않은 서늘한 모습은… 종이 한 장 차로 빗나간 게 아닌, 애당초 닿지 못할 간극을 억지 부려서 좁히려 했던 거라는 걸 알려주었으며.

         

         “…제법.”

         

         지금까지 틈틈이 건넸던 말에 일말의 온기가 담겨있었다면 이제 남은 건 지독한 무미건조함.

         

         발버둥에 대한 인정? 차라리 아예 저항할 능력이 없는 무지렁이였다면 그냥 팔다리를 다 꺾어놓고 갔으리라.

         

         그리고 단순한 쌈박질 우격다짐이나 의견 충돌이라면, 과격한 직장 생활을 진절머리나게 많이 겪어본 게 헬레나 발렌타인인 만큼 웃어 넘겨줬을 테니까.

         

         그렇지만 머리를 노리고 총을 쐈다는 건, ‘다음’이 없는 선택.

         

         당기는 것 자체는 쉽지만. 황무지 개척촌, 전투 경찰, 용병, 그리고 도시 생활 어디에서도 단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는 뒤가 없는 선택. 돌이킬 수 없는 강. 허면 이제 남은 건… 당연한 권리이자 반사 행동, 정당방위.

         

         스르륵 하고, 성인 남자가 어깨와 팔로 고정하고 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헬레나의 손목 스냅을 따라 나노 강화 블레이드가 달린 일본도가 부드럽게 뽑혀져 나온다.

         

         새삼 잘도 저런 걸 막대기처럼 휘둘렀구나 싶은, 오오타치(おおだち; 대태도)라 불러야 할 것 같은 3척에 달하는 길이를 자랑하는 절단기가 인지할 틈이나 구분 동작도 없이 어느새 유려한 반월을 그렸고.

         

         서걱!

         

         남자의 가슴팍이 깊게 갈라지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런, 킴을 혼내주라는 독자 의견을 적극 받아들인 헬레나가 그대로 베어버렸습니다.
    이… 이, 무자비한 살인자들!!

    물론 농담이고, 많이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현재 에피소드 마무리까지 2화 정도로 예정하고 있어서, 알맞게 맞아 떨어지는 부분까지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고 추천 눌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적해주신 오타도 조만간 다 날 잡고 몰아서 예쁘게 고치겠습니다. 읽으시는데 불편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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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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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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