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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8

    <368 – 과거의 인연>

     

    조나는 실험실의 사용을 선뜻 허락했다.

     

    “제가 돌아왔으니 이곳의 보안은 시설이 버려졌을 때처럼 수월하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는 공식적인 허가를 받고 다니십시오.”

    “삐빅. 대상스캔을 완료합니다. 신규사용자 <오크노디>가 등록되었습니다.”

    “저기, 나는?”

     

    즈앙의 물음에 조나는 매정하게 선을 그었다.

     

    “친구분은 아가씨와 동행하면 습격을 받지 않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물론 동행하지 않아도 신장 150cm 이하일 때에는 출입이 가능하지만 언제든지 보안정책이 바뀔 수 있음은 인지해주십시오.”

     

    그의 호의는 오직 아가씨를 위한 것.

    즈앙이 혜택을 받는 것도 아가씨의 ‘친구’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조나가 그녀를 높이 평가하거나 마음에 들어해서가 아니었다.

     

    “그럼 재료템 파밍해도 돼요?”

    “얼마든지 이용해주시길.”

     

    신이 난 오크노디는 실험실 곳곳의 상자를 벌컥벌컥 열어대며 안에 쌓인 재료템을 가방에 마구 넣었다.

    오크노디야 무지성으로 챙기기 바빴지만 즈앙은 이 기묘한 상자들의 정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재료는 교수가 다 챙겨온 거야?”

    “자동수집입니다. 이전 사용자의 영민한 지혜를 빌려 수집된 물품을 가공, 보관하는 시스템을 갖춘 실험실입니다. 재료수집에 시간이 들어서는 연구를 할 시간이 부족했기에 벌인 생산성향상작업의 일종입니다.”

    “굉장하네. 재료수집은 그 골렘들이?”

    “입으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눈으로 직접 보는 편이 빠르겠군요.”

     

    조나가 특정한 마력주파수의 파장을 퍼뜨리자 천장이 벌컥 열리며 쥐떼가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

     

    죽을상을 한 즈앙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 불결한 존재들이 가져온 재료를 실험에 써도 좋은 거야?”

    “자세히 보십시오. 이것은 생물쥐가 아닙니다.”

    “…?”

     

    뚫어져라 쥐를 쳐다보던 즈앙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쥐치고는 묘하게 얌전한 녀석들.

    자세히 보니 생김새도 무언가 좀 달랐다.

    재료를 수납할 수 있는 주머니나 등짐이 있고 몸통도 일반적인 쥐보다 각이 졌다.

    조나의 <금속조작>을 떠올리면 정체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메탈쥐?”

    “무인도에서 보았던 블루메탈쥐의 열화판입니다.”

     

    한 마리를 붙잡아다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면밀히 살펴보니 위생도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작은 쥐에게 운동성향상, 기억각인, 식별재료수집, 오토클린, 은밀향상, 자동회복 등의 인챈트가 빼곡하게 들어가 있었다.

    주인이 없이도 오랜 시간 고장 나지 않고 재료를 수집해올 수 있었던 것도 다 비결이 있던 것이다.

     

    “용케도 아카데미에서 이런 쥐들이 무사할 수 있었네. 1학년이라면 몰라도 고학년들은 붙잡아다가 소유권을 약탈하려고 들지도 모를 텐데.”

    “교내에서 사역마의 소유권 약탈은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학생이 아니면 함부로 저지르지 않습니다. 특히나 인챈트 수가 일정횟수를 넘어가는 사역마라면.”

    “주인의 실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니까?”

     

    즈앙이 생각하기에도 퍽 섬뜩한 일이었다.

    지나가던 메탈쥐 하나가 쓸만해보였다고 덥썩 붙잡아다가 자기 걸로 삼았더니 오밤중에 교수가 나타나는 광경이란…

    그 길로 교수에게 붙잡혀 실험실로 끌려가 주말내내 실험을 돕는 노예짓만 하다가 간신히 풀려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학생에게 붙잡히면 더 자잘하고 성가신 작업을 해야만 하겠지.

    들키지만 않으면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안전이 보장된 1학년도 저지르기 무서울 짓인데 고학년이 되고도 저런 실수를 저지르면 정말 무슨 꼴을 겪을지 섬뜩해진다.

     

    “그러니 아가씨도 부디 조심하십시오.”

    “괜찮아. 안 들키면 돼!”

    “…조언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군요. 유감입니다.”

     

    재료수급의 비밀에 대해서는 이해했다.

    그러나 메탈쥐들의 주머니에 담긴 재료의 양을 보고 즈앙은 이상함을 눈치 챘다.

     

    “이 정도 양의 재료를 며칠 주기로 수집하는 거야?”

    “주 단위로 채집된 재료의 양에 대해서는 사용자 자격을 지닌 이가 마나패널을 조작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가씨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놈의 아가씨무새.

    즈앙이 얄미운 집사복을 흘겨보았다.

     

    “오크노디를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지 않아?”

    “아가씨를 위해 대신 설명 드리자면 가령 채집난이도가 낮지만 약효가 적은 쓸개풀은 비슷한 성질을 지닌 약재의 혼합효과를 검증하는 실험용도로 매주 100g을 채집합니다.”

    “귀한 재료는?”

    “특정 계절에만 채집할 수 있는 재료도 있기에 생태계가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한 많이 채집을 합니다. 9월의 희귀재료로는 태양초가 있군요. 8월 초부터 9월 말까지 매주 200g를 채집합니다.”

     

    크고 작은 상자들 사이에서 태양초보관함의 용적을 발견한 즈앙은 상자의 크기가 그 많은 무게의 태양초를 전부 보관하기에 무리임을 깨달았다.

     

    “상자가 너무 적어. 그렇게 많이 채집하면 보관할 곳이 없지 않아?”

    “아가씨의 친구분답게 날카로운 지적이군요. 이 또한 좋은 친구를 사귄 아가씨의 안목이 돋보입니다. 칭찬해드리지요.”

    “헤헹. 조나가 나 칭찬했다?”

     

    지적은 내가 했는데 왜 오크노디가 칭찬 받냐고.

    어이없음에 미간을 찌푸리자 오크노디가 물었다.

     

    “혹시 질투해?”

    “안 했어.”

    “조나는 안 돼. 내 거야. 그러니까 참아야해?”

    “안 했다니깐.”

    “흐응~ 정말로? 조나는 굉장한 집사인데? 근력도 높고 민첩도 높고 지능도 높고 필요한 일은 뭐든지 척척 다 해내는 만능집사인데?”

    “질투를 하길 바라는 거야 말길 바라는 거야?”

    “하면 안 돼! …그래도 조금은 했으면 좋겠어!”

    ‘어쩌라는 거야.’

     

    갈대 같은 오크노디의 마음은 참 종잡기 어렵다며 즈앙이 피식 웃었다.

     

    “이야기를 마저 해도 되겠습니까?”

    “넹!”

    “과채집된 재료는 상위제조아이템의 재료로 사용되기에 양이 많아도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낭비되는 채집자원이 없도록 최적화 시스템이 잘 갖추어졌다는 뜻이다.

     

    “이전 사용자라는 사람들은 다 어디 갔어? 당신 따라서 졸업?”

    “모두 사망했습니다.”

    “!?”

    “한 가지 정정사항이 있군요. 한 명은 사망이나 다름없는 행방불명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전부 다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네.

    조나에게서 더 이상은 캐묻지 말라는 무거운 분위기가 엿보였다.

    공기가 무거워졌음에도 오크노디는 혼자 해맑았다.

     

    “동기들이었어요?”

    “아가씨에게 드릴만한 이야기는 못 됩니다.”

    “그래도 알고 싶어요! 신규이벤트인걸요.”

    “…아가씨께서는 저택에서도 이벤트라는 것을 아주 좋아하셨죠. 마치 이사장께서 운명이라는 것을 좋아하셨던 것처럼.”

     

    무언가를 고민하던 끝에 조나는 이사장과 겹쳐보이는 오크노디의 특이성이라면 믿어도 괜찮으리라 여기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실험실의 출입자는 세 부류였습니다. 하나는 저와 함께 이 실험실을 만든 동기들. 그들이 지금은 기록이 말소된 <이전 사용자>입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기록은 왜 사라졌어요?”

    “누군가 그들의 기록을 엿보게 된다면 곤란해지기 때문입니다.”

    “조나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두 번째 부류는요?”

    “아가씨 이전의 다른 아가씨들이었습니다.”

    “엣.”

     

    오크노디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긴 사람이 드나든 흔적도 그닥 없는데요? 가져간 재료도 전부 만땅이었고요!”

    “아가씨들은 모두 기프트 아카데미에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항. 전부 중퇴하셨구나!”

    “…”

    “마지막은 불법침입자죠?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네요!”

     

    즈앙은 그 불법침입자들이 들어왔다가 골렘한테 찍히면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라 조용히 침묵을 유지했다.

     

    “근데 조나는 재단의 사람이잖아요?”

    “지금은 그렇습니다.”

    “그럼 돌아가신 분들의 정보는 재단이 지켜줄 수도 있지 않아요?”

    “반대입니다. 저는 제 친우들의 정보가 재단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았기에 정보를 말소한 겁니다.”

    ‘재단의 거물아가씨한테 저런 말을 해도 되는 거야?’

     

    즈앙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조나는 아가씨의 앞에서만큼은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셋이나 되는 아가씨들을 떠나보냈기에.

    친우들의 과거를 모두 지운 것도, 그들과 함께 만든 비밀실험실을 아가씨들에게 공개한 것도, 오크노디와 즈앙의 침입을 허용한 것도 모두 같은 이유였다.

     

    ‘응? 그러면 이야기가 이상해지는데. 오크노디는 분명 여기에 왔다고 했지만 흔적이 없던 것이나 재료가 많은 이유에 대해서는 방금 처음 안다는 것처럼 이야기했어.’

     

    그 말이 사실이라면 오크노디는 여태껏 기껏 실험실까지 와서 사람이 드나든 적 없는 흔적을 보면서도 상자에서 재료를 꺼내간 적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때는 아직 뭐든지 안에 집어넣어도 용량의 한계가 보이지 않는 배낭이 없을 때여서 그랬나?

    언제나 그렇듯 핀트가 맞지 않는 아이.

    터널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들여다볼수록 더 깊은 어둠이 느껴지는 다크프린세스.

    즈앙은 언제나 그렇듯 그런 오크노디의 어둠이 암살자답다고 생각하며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서 위화감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은 조나 와이히엠하이가 도비라는 학생의 실종에 관여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일종의 진상조사.

    그렇다면 한 가지 확인해야만 하는 사항이 있다.

     

    ‘혹시 여기에 특별한 재료상자가 있다면 지젤의 우려는 적중한 거겠지. 가령… 사람을 재료로 삼아서 채워지는 재료상자라거나.’

     

    죽어버린 동기들, 퇴학한 아가씨들, 조나 와이히엠하이의 과거와 엮인 사람들은 실종자가 너무 많았다.

    충분히 그런 의심을 해볼 정도로.

    그래서 열심히 뒤졌고, 한 가지 수상쩍은 상자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편지?’

     

    찾던 인간재료상자는 아니지만 그만큼 흥미진진한 것이 나타났다.

    바로 조나 와이히엠하이의 ‘아가씨’가 남긴 편지가 들어있는 편지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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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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