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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8

       – 렌치 안 가져왔는데?

       – 뭐? 너 미쳤어? 그걸 왜 안 가져온 건데?

       

       두 남자가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린다.

       

       – 그만 깜빡했지 뭐야.

       – 이런 곳에 빨갱이들이 숨어 있기 딱 좋단 말이야. 렌치가 안 되면 마법이라도 사용하라고.

       – 시내에서 공격마법 사용은 불법이잖아. 잘못하다가 나 잘리면 네가 책임질 거냐?

       – 멍청아. 공무집행할 땐 해도 돼.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단속반이 맞다.

       

       레니냐는 숨을 죽여 기다렸다.

       

       이윽고 쿵, 쿵, 하며 걸쇠가 흔들린다.

       

       엥켈톤은 선반에서 빠루를 꺼내왔다. 혹시 문이 뚫린다면 그대로 팔을 휘두를 작정이었다. 그의 딸인 블랑카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볼트액션 소총의 몸통을 쥐고 자세를 낮추었다.

       

       쿵, 쿵, 쿵.

       

       셋, 둘, 하나.

       

       속으로 숫자를 센다.

       

       그리고.

       

       쿠웅!

       

       “커헉!”

       

       문이 열렸다. 엥켈톤과 블랑카는 동시에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나 보기 좋게 헛스윙하고 말았다.

       

       공무원 정복을 차려입은 남자 둘이 맥없이 쓰러진다. 문에 맞아서도, 빠루나 개머리판에 당해서도 아니었다.

       

       쓰러진 두 남자의 뒤로는 여인이 한 명 있었다. 선글라스를 착용했고, 말쑥한 정장을 입은 사람이었다.

       

       둥글납작한 귀.

       

       엘프는 아니었다.

       

       “누, 누구시오?”

       

       엥켈톤의 물음에, 여자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조용히 벗었다.

       

       “…동무?”

       

       노란색 눈동자.

       

       그녀는 금안족이었다.

       

       “동무…는 아닙니다. 그저 당신들과 같은 종족일 뿐이지요.”

       

       여인은 예를 갖춰 인사했다. 인사말에서는 제국식 억양이 느껴졌다.

       

       “에테리아인이오?”

       “그렇습니다. 잠시 말씀을 나눌 수 있을까요?”

       

       엥켈톤과 블랑카는 눈을 보고 낮췄던 경계심을 다시 높였다.

       

       같은 금안족이라고는 해도 일단 외국 사람. 차별하지는 않으나,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에 레니냐는 2년 동안 틸레트에서 수학하면서 제국인과 대화하는 방법을 숙지하고 있었다.

       

       레니냐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여기 어찌 오신 것인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네. 저는 에테리아 집정관 각하의 명령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요.”

       “그게 누구인가요?”

       

       여인이 레니냐를 빤히 바라보며 질문한다.

       

       “실례지만 성함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레니냐예요.”

       “레니냐….”

       

       여인이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었다.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기절한 두 남자를 문밖으로 뻥 차버렸다. 이어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뒤 편지봉투를 건넸다.

       

       “이게 뭔가요?”

       “열어보십시오.”

       

       봉투 속에는 에테리아 집정관의 인장이 찍힌 편지 한 장과 로즈마리 꽃을 조각한 머리핀이 들어있었다.

       

       [에테리아 금안족 대표│로즈마리 살리에르 배상(拜上)]

       

       “로즈마리….”

       

       에테르 선생님의 의자매.

       

       과거 마왕군의 간부였던 동족. 그러나 카우렐리아의 위정자들보다는 훨씬 믿을 만한 사람이다.

       

       레니냐는 편지를 뜯어 한 줄씩 음독해나갔다.

       

       [그간 안녕하셨나요? 제 의자매의 제자분께서 본국으로 돌아가신다고 하여 직접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저는 지금 카우렐리아에 와 있습니다. 금안족 권리 신장을 목적으로 대통령과 회담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어쩌면 레니냐 학생도 저와 아이젠 대통령이 회동했다는 소식을 접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회의는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마음 같아선 이곳에 더 남고 싶었으나, 추후 일정이 있어 저는 그만 본국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아마 제 비서를 통해 이 편지가 전달되었을 즈음에는 짐을 싸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밀회담에서 대통령 각하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이 유의미했습니다.]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비밀회담 내용이 담긴 녹화를 제 부하 편으로 보내드립니다. 꼭 청취하신 뒤, 편지와 녹음기는 불태워 없애 주시길 바랍니다.]

       

       [평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편지는 전부 읽으셨나요?”

       “네.”

       “그 머리핀이 비밀회담의 내용입니다. 핀 부분을 두 번 딸깍거리면 재생될 겁니다.”

       

       레니냐는 여인의 말을 따라 녹화본을 틀었다.

       

       – 금안족의 출국 제한 조치를 풀어주세요.

       – 어째서입니까?

       – 민주 국가에선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 카우렐리아는 국민 주권을 가진 국가입니다. 국민의 동의 없이 기존 정책을 어지러이 바꿀 수 없습니다.

       

       거기까지 들은 블랑카가 옆에 놓인 탁자를 뒤집어엎었다.

       

       “이거, 완전히 미친 새끼들이로군요.”

       

       레니냐도 이를 갈았다.

       

       “말로는 국민 국민 하면서, 우린 목소리는 여전히 듣지 않겠다는 거지?”

       “엄밀히 말하자면 듣지 않는 게 아닙니다. 듣고, 문제를 이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하는 것이지요.”

       “왜?”

       “그래야만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여인은 다시 선글라스를 끼며 말을 이었다.

       

       “정치의 기본은 네거티브입니다. 공공의 적을 만들고, 그들을 헐뜯는 것이죠. 위정자는 그것으로 표를 모읍니다. 누군가를 같이 욕하고 돌을 던짐으로써 ‘우리 편’이라는 감정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억까’나 ‘억빠’가 여기서 생겨난다고, 여인은 덧붙였다.

       

       “현재 금안족을 비호하는 전계정령의 개체 수가 1천 체를 넘었습니다. 더는 장애 종족이라 불릴 이유가 없죠. 그렇다면 무얼 가지고 당신들을 헐뜯겠습니까? 바로 ‘마왕군의 잔당’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시위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여야 합니다. ‘우리는 마왕군의 잔당이 아니다’. 또한 폭력보다는 논리를, 부정보다는 긍정을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필요한 것은 저희가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여인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럼, 건투를.”

       

       여인은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쾅.

       

       문이 닫힌 후, 잠시간의 정적.

       

       레니냐는 여인이 두고 간 머리핀을 몇 번이고 되감으며 아지트의 동무들과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그러고는 바닥에 쓰러진 두 남자를 바라본다.

       

       “…레니냐 동무.”

       

       스윽.

       

       그새 어딘가를 다녀온 블랑카가 붉은색 완장을 내밀었다.

       

       “동무도 차세요.”

       

       시간은 가고 있다.

       

       이제 무얼 해야 할지는 명백했다.

       

       투쟁.

       

       앞으로는 평등을 위한 투쟁뿐이었다.

       

       

       **

       

       

       카우렐리아 방문 일정은 대강 끝났다. 로즈마리는 짐을 싼 뒤 에테리아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더 안 있을 거야?”

       

       내가 물었다.

       

       “여기 더 있으면 붉은 파도에 휩쓸릴 거야.”

       

       로즈마리는 그리 대꾸하며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단순히 장난스레 떨어대는 것이 아니라는 건 잘 안다. 과거 한 왕국의 왕족이었던 로즈마리와, 앞으로 혁명 파도의 중심에 자리할 레니냐의 상성은 최악이다.

       

       레니냐는 연양(連陽)이라는 스태프를 사용한다. 로열 블러드는 이 스태프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치명상이다.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었지만, 여신이 정한 법칙이 또 그렇다.

       

       생각해 보니 이건 이것대로 연구할 맛이 있겠는걸.

       

       “혁명이 터지기 전에 빨리 튀어야겠다.”

       

       로즈마리는 곧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비서를 데리고 귀국했다. 

       

       그리고 에테리아의 수도인 틸레트로 돌아오자마자 일이 터졌다.

       

       [우린 마왕군이 아니다]

       

       그런 구호를 내건 금안족, 그리고 그 뜻에 찬동하는 엘프들이 전국 각지에서 일제히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 더는 우릴 금안족으로 부르지 마라. 우리는 눈이 노란 인간이나 엘프일 뿐이다.

       – 우리는 마왕군의 잔당이 아닙니다. 우리는 평등만을 바랍니다. 우리는 평화만을 바랍니다.

       

       조악한 필름으로 찍은 영상이 집정관 집무실에 송출된다. 로즈마리는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파들파들 떨었다.

       

       나는 슬며시 웃었다.

       

       촛불집회를 보고 자란 세대라서 그런가? 밤하늘을 가득 수놓은 촛불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는….

       

       “아니 시발. 저건 촛불이 아니잖아.”

       

       자세히 보니 시위대는 랜턴 같은 것에 노란 번갯불을 담아서 행진하고 있었다.

       

       TV 화면은 이어서 상대편을 보여주었다.

       

       시위를 막는 진영. 정부쪽 사람들이다. 눈 파란 엘프 마도사들이 스크롤을 쥐고 일렬로 서 있었다.

       

       – 촤아아아아악!

       

       마전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대포들. 랜턴을 들고 행진하던 금안족과 엘프들이 마구잡이로 밀려난다.

       

       어질어질하다.

       

       아직 카우렐리아의 민주주의는 덜 성숙한 것일까?

       

       모른다. 나는 정치는 잘 모르니까.

       

       하지만 제아무리 과학을 하는 사람이라도, 정령인 몸일지라도, 저것이 잘못된 방법이라는 건 확실히 알겠다.

       

       불만 있으면 의회에서 싸워야지. 비폭력 시위대한테 폭력을 쓰는 게 뭐야.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네요. 저대로라면 시위대도 폭력을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안다.

       

       나와 로즈마리의 예상은 한치의 틀림도 없이 맞았다.

       

       어느 지역의 한 시위대가 물대포 공격에 못 참고 기어코 경찰 하나를 잡아끌어냈다. 그렇게 이어지는 구타 장면. 경찰은 피가 되도록 얻어맞고 전격에 지져지다가 실신하고 말았다.

       

       [정부 당국에선 이번 시위대의 폭력이 도가 지나쳤다며 유감을 표했습니다.]

       

       의회 상황도 말이 아니었다.

       

       – 마왕군 잔당 놈들 맞습니다.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들을 전부 감옥에 넣어 버려야 합니다.

       – 먼저 건드린 건 정부인데 이제 와서 왜 저들을 탓하나요? 당신들 양심도 없어?

       

       야당과 여당이 서로 뒤엉켜서 싸웠다. 소화기를 뿌리고, 백덤블링을 하고, 가발이 벗겨지기까지. 아주 난리도 아니다.

       

       카우렐리아의 엘리트들이 이러고 산다. 당연히 먹고 사는 게 팍팍한 국민은 쌍욕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의회 신임도와 국정지지율은 감소하는 추세에 있었다.

       

       결국.

       

       – 국회는 토론하는 곳이지, 싸움닭 키우는 곳인 줄 아쇼!

       

       국회의장이 망치를 땅땅 두들기며 내각불신임결의를 채택했다.

       

       레니냐가 고향으로 돌아간 지 어언 한 달. 오늘도 나와 로즈마리는 상황을 주시하기 위해 TV를 틀었다.

       

       [오늘 국회의장이 행정부의 재가를 받아 의회 해산을 명령했습니다. 일주일 뒤 국민 총선거가 실시될 것입니다.]

       

       “카우렐리아의 정치제도는 조금 다르나 보네.”

       

       일본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고. 대체 법이 어떻게 되어 있는 거야.

       

       “언니, 이것 봐봐요. 재미있는 애가 이번에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나오네요.”

       

       로즈마리가 선거 벽보 사본을 보여주며 웃었다.

       

       나는 사진에 찍힌 사람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얘가 나오네?”

       

       푸른 눈에 동글동글한 인상.

       

       이론은 완벽하지만, ‘마나 고갈증’이라는 선천적인 희귀병으로 인해 마법을 거의 사용할 수 없는 비운의 천재.

       

       동시에 일리야드 아카데미 시절 레니냐의 베스트 프렌드였던 소녀.

       

       [유피엘 피어바인]

       

       그녀가 플로반스의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나온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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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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