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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9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상대하던 여신은 ‘질서’의 여신이다. 그렇지?

        

       우리가 이쪽 세상에 와서 ‘섞이지 못할 것’을 대비하여 각자 쓸 주민등록증까지 만들어둔 존재라고.

        

       게다가 그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벌어질 일을 걱정하기라도 했는지 이 세상의 시스템에 제대로 녹아들게 해두기까지 했단 말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우리가 태어난 날짜를 선정하고, 그 날짜에 공무원이 출생등록을 한 것처럼 꾸미고……

        

       게다가 우리가 성인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학교도 제대로 나왔다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법정의무교육은 초등학교, 중학교가 아니던가. 그 9년의 기록이 없다면 우리는 정상적으로 행동할 수도 없다. 우리 부모—여기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부모—를 찾아 죄라도 물어야 할 일이니까.

        

       차라리 우리가 떨어진 곳이 주민등록이 의무가 아닌 국가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하필이면 이 나라는 주민등록증을 받으며 지문등록까지 하는 게 필수인, 행정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내기 더럽게 까다로운 나라라는 말이다.

        

       차라리 우리 유전정보를 이쪽 세상에 꿰맞추는 쪽이 훨씬 쉬울걸? 그건 그냥 우리 신체만 적당히 조작하면 되는 일이니까.

        

       만약 이쪽 세상의 질병 중 우리 목숨에 심대한 지장을 미칠 것이 있었다거나, 반대로 우리가 가진 질병 중 이쪽 세상에 심각한 팬데믹을 불러올 질병이 있었다면 이미 난리가 났을 것이다.

        

       우리는 아예 호텔까지 잡아두고 수많은 사람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관광까지 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헌혈하는 것이 큰 문제는 없을 거라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야, 여신이 ‘질서’의 여신이니까.

        

       조작하기는 더 쉽지만, 반대로 미칠 영향은 훨씬 더 심각하다.

        

       여신이 과연 가만히 두었을까?

        

       애초에 이쪽과 저쪽 세상이 호환되는 것부터가 이상하지.

        

       그런 생각을 여신이 해두지 않았다면, 나를 이쪽에 다시 내동댕이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도 없이 그저 나에게 보복하겠답시고 내던져놓고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하고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여신의 업보였고.

        

       “정 곤란할 것 같으면, 일단 헌혈은 미루도록 할까요. 일단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음.”

        

       앨리스가 고민하는 사이에, 살짝 떨어진 곳에 서 있던 클레어가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짓는 게 보여서 나는 쓰게 웃었다.

        

       “너무 걱정할 건 없습니다. 영화관 가격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인 건 아니니까요.”

        

       공짜로 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쪽이 좋지만, 그렇다고 절대 보지 못할 정도의 가격은 아니다.

        

       게다가—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영화관 어플을 켰다.

        

       그래.

        

       영화 시간에 상관없이, 가장 처음 상영하는 영화는 조조할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시간은 아직 열 시였고, 회사에 출퇴근하는 사람들 기준으로는 평일이다.

        

       “역시 있네요.”

        

       평일 중에서도 가장 바쁠 월요일이었으니 당연히 아침 영화를 예약한 사람은 거의 없다.

        

       열시 반, 조조할인을 받을 수 있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 영화관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할인받을 수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만, 보러 가시겠습니까?”

        

       “응!”

        

       내 물음에 클레어가 눈을 반짝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귀엽기도 하지.

        

       클레어랑 앨리스가 아제르나에서 공포영화를 본 적 있으려나?

        

       *

        

       그리고, 내가 잊고 있던 사실이 있다.

        

       나도 공포영화를 본 지 몇 년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당연히 공포영화에도 어느 정도 내성이 있었던 나였지만, 원래 그런 ‘깜짝 놀라는’ 류의 장면에 대한 내성은 그런 영화나 게임을 하지 않으면 천천히 줄어드는 법이다.

        

       문제는, 그런 공포영화를 보며 ‘무섭다’라고 느낀 것이 나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엉성하게 달려드는 상대가 있다면 이쪽의 기술로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 먹은 팝콘 통을 들고나오면서, 앨리스가 진지하게 영화의 사실성에 대해 고찰하고 있었다.

        

       그렇다.

        

       영화 자체는 촬영 기술과 분장, 그리고 CG가 발전함에 따라 상당히 사실적이 되었지만, 반대로 그런 발전한 사실성 때문에 그런 ‘현실’을 잘 알고 있을수록 괴리감이 느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차라리 아예 연극을 보았다면 ‘저건 다 가짜’라는 생각을 하며 볼 테니 조금 나았을 텐데, ‘칼’을 들고 ‘실제로’ 싸움을 해본 앨리스의 기준으로는 고작 식칼 ‘따위’를 들고 달려드는 ‘민간인’ 남성 따위는 별것 아닌 상대라는 것이다.

        

       “쯧쯧.”

        

       진짜로 혀를 차는 것도 아니고, 혀 차는 효과음을 육성으로 낸 클레어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앨리스를 향해 말했다.

        

       “원래 영화라는 건 연극의 연장선이잖아. 눈에 띄는 장면이 있더라도 눈감아주고 받아들이는 마음도 필요한 법이야.”

        

       영화의 비사실성보다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다는 사실 자체에 기분이 좋은 듯, 클레어는 웃는 얼굴이었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살아남는 등장인물이 하나도 없는 ‘공포영화’를 보고 나왔다는 거다.

        

       설마 진짜로 나만 무서웠나?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니까, 나는 영화를 보는 도중에—

        

       “언니, 으꺅, 하고 소리 질렀었지?”

        

       …….

        

       “이후에는 살인마가 들고 있는 칼끝만 보고도 덜덜 떨었고.”

        

       옆에 있던 앨리스가 거들었다.

        

       “……저는—”

        

       “아, 그래!”

        

       클레어는 신이 나서 말했다.

        

       “그래도 언니, 공포영화 좋아하는 거지? 영화표는 언니가 샀잖아.”

        

       “…….”

        

       아니, 뭐, 내가 사긴 했는데. 좋아하기도 나름 좋아하고.

        

       중간중간 놀라더라도, 사실 공포영화는 그런 맛으로 보는 거니까. 물론 공포영화 중에는 점프스케어 없이 무서운 것도 있고, 나도 그런 쪽을 선호하긴 하지만, 오히려 호불호가 갈리는 건 그런 쪽의 영화다. 공포영화에 점프스케어가 나오는 것은 거의 정형화되어있다 보니 보는 사람에 따라 점프스케어 없이 분위기로만 나아가는 공포영화는 ‘무섭지 않다’라고 느끼기도 하는 모양이니까.

        

       다만, 내가 공포영화를 보는 것과는 별개로, 클레어가 하려는 말은 조금 무서웠다.

        

       무슨 아이디어를 생각했기에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설마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공포영화만 찾아다 연속으로 시청하자는 말이라도 하려는 건가?

        

       “아, 맞다.”

        

       하지만 클레어는 긴장하던 나를 두고 다른 쪽으로 말을 돌렸다.

        

       “영화 보고 나오니 점심시간이잖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았습니까?”

        

       클레어가 갑자기 말을 돌리는 것을 보고 내가 그렇게 물었지만, 클레어는 능청스럽게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으~응? 아니, 그런 적 없는데?”

        

       라고 할 뿐이었다.

        

       “뭐, 점심시간인 건 사실이니까.”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던 앨리스가 끼어들었다.

        

       “점심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밖에서 먹을래? 아니면 집에 가서?”

        

       “…….”

        

       앨리스가 클레어의 생각을 읽은 것은 아니리라.

        

       자매 아니랄까 봐 은근히 닮은 점이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 사실만큼은 격하게 부정하기도 했고, 자란 환경이 달라서인지, 아니면 어머니가 달라서인지 절대로 닮았다고 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상하게 마음이 통할 때가 있다.

        

       바로 나를 곤란하게 만들 때.

        

       지난 몇 주 동안 둘과 거의 붙어서 생활하며 느낀 것이다.

        

       생각을 공유할 만큼 이심전심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둘 중 하나가 ‘재미있는 생각’을 한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린다. 그리고 대놓고 협력은 하지 않지만, 은근히 멍석을 깔아준다.

        

       지금 상황이 그랬다.

        

       뭐…… 이쪽으로 와서 은근슬쩍 매운 것을 먹이거나, 안 매울 것 같은 색의 음식이지만 사실 매운 음식을 먹이거나, 대놓고 매운 것을 먹으면서 그다지 맵지 않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하긴 했지만, 그래도 둘이 연합하는 건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단 것도 많이 사줬었는데.

        

       “……좋습니다.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은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우선이겠죠.”

        

       하지만, 뭐, 이 정도는 속아주기로 할까.

        

       두 사람이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짓을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두 사람의 마음이 확실하게 겹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부 겹치는 곳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선을 넘지는 말자는 것이다.

        

       대놓고 말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그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기왕 나온 김에 밖에서 먹고 가기로 할까요?”

        

       “좋아!”

        

       “나도 좋아.”

        

       내 말에, 두 사람은 너무나 좋아하는 티를 냈다.

        

       ……하긴, 주민등록증에나 성인으로 되어있지, 아직 열여섯이니까.

        

       맏이인 내가 조금 당해줘도 괜찮겠지.

        

       *

        

       그리고, 클레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공포게임 말씀이십니까?”

        

       “응.”

        

       “방송에서?”

        

       “응.”

        

       내가 식겁해서 클레어를 바라봤더니, 클레어는 어느 애니메이션 속의 유명한 신발 신은 주황색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안 돼?”

        

       “…….”

        

       그런 클레어를 나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생각해 둔 게임은 있습니까?”

        

       “물론!”

        

       뭐, 공포게임도 한 적은 많으니까.

        

       하긴, 방송이 계속 원 패턴이면 그것도 문제겠지.

        

       그렇다고 한숨이 안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업로드하려고 들어오다가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문구가 떠서 식겁했네요

    서버 터진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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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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