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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9

        

       와타나베는 메일을 확인했을 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 불안감은 가슴을 꽉 메웠고, 폐부에 깊숙이 침투해서 숨통을 쥐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가슴속에 돌이라도 얹힌 것처럼 무겁게 가라앉았고, 척추에서부터 그 불안감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그의 온몸에 솜털을 곤두서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경종을 울리듯, 끊임없이 그에게 소리쳤다.

         

       움직이지 말라고.

         

       그것은 공포와 같은 감정이었다.

       위험 앞에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들고, 죽음 앞에 사람을 추하게 만드는 것.

         

       그 공포라는 것은 메일을 시작으로 그의 몸을 지배하였고, 그에게 이러한 결정을 하게 만들었다.

         

       추하지 않냐고?

       추하다.

       그건 와타나베 본인도 알고 있었다.

         

       용맹을 증명하지는 못할망정 꼬리 내린 개처럼 움츠러드는 꼴이라니.

       거기다가 다른 이들이 따졌을 때 이유를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고 궁색한 변명이나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렇게 추한들 어떠하리.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있던가?

         

       그는 군인이 아니다.

       국가를 위해서 한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지기를 각오하며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용맹한 전사도 아니다.

         

       그는 그냥 무인이었다.

       화족 가문의…그래, 속된 말로 하자면…개.

         

       화족 가문의 개였다.

         

       그는 화족 가문이 귀여워하는 개였으며, 용맹함과 멋짐을 과시하려고 끌고 다니는 애완동물과 같은 신세였다. 물론 그가 무공을 익혔고, 가문 사람들을 보호해주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개가 하는 일이 아니던가?

         

       주인을 지키고, 집을 지키는 것 말이다.

         

       고상한 말로 표현하자면, 번견(番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게 불만인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 매여있게 되기는 했지만, 어차피 모든 사람은 한 곳에 매여있기 마련이 아니던가? 회사원은 회사에 매이고, 군인은 군대에 매이고, 직업이 없는 이들도 가정에, 마을에, 공동체에 매여있는 신세다. 크게 보자면 일본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나라에 매여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어딘가에 매여있다는 것 자체는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다.

         

       게다가 그 대우까지 좋은데, 불만이 있겠는가?

         

       노예처럼 다뤄지는 것도 아니고, 정말 애지중지 여겨지고 있다.

       게다가 질리면 버릴만한 존재로 보고 있지도 않고 말이다.

       아마 그가 늙어서 제대로 경호할 수 없게 되더라도, 아마 가문에서는 그를 대우해주면서 새로 들어오는 경호원들을 훈련하는 교관의 역할을 제시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가문을 지켜준 노고에 감사하며 시골에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줄 수도 있고.

         

       그래.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삶이다.

       위험한 일도 하지 않고, 더러운 일도 하지 않고, 버려질 염려도 없고, 안정적으로 노후까지 보장된 삶이다.

         

       그렇기에 그는 목숨이 가장 소중했다.

         

       명예?

       공?

         

       있으면 좋다.

       하지만 목숨과 맞바꿀만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이름이 더럽혀졌다고 한들 가문으로 돌아가면 그는 대접받을 것이며, 조금 눈초리를 받기야 하겠지만 그는 평소와 비슷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공포에 굴복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이건 자기 합리화일지도 모르지.’

         

       물론 이 생각이 그냥 공포에 겁을 먹었다는 부끄러움을 어떻게든 회피하기 위해 떠올린 생각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는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더라도, 무인이라는 것에 어느 정도 자부심을 품고 살아온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곱씹어봐도 이 선택이 옳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길해.’

         

       주술사의 거처다.

         

       주술 불모지 출신?

       젊은 나이의 주술사?

         

       그래, 분명히 우습게 볼만한 요소기는 하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벌써 세 명이 잡혀있다.

       메일을 보내서 도움을 요청한 세 명이 지금 나타난 상황인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당연히 경계를 올려야 하며,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주술사의 거처에 잠입하는 것처럼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분명히 옳은 태도였고 말이다.

         

       하지만 저들의 모습은 어떤가?

       상황에 심각성을 느끼기는 하지만, 아직도 박진성이라는 주술사를 우습게 보는 시선을 거두지 못하지 않았잖은가. 준비하기는 했지만, 그냥 가지고 있는 것에서 끝났고, 작전을 짜기는 했지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는 작전은 짜지 않았다.

         

       그냥 들어가서 구출하고 나온다.

         

       이게 전부였단 말이다.

         

       게다가 더 웃긴 것도 있었다.

         

       비전투원의 참가.

         

       후방에서 컴퓨터나 두들기고, 가지고 온 잠입용 장비나 정비해줘야 하는 사람들이 무슨 바람이라도 든 것인지 극구 참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자기들이 무슨 역전의 용사나 구원투수라도 되는 것처럼 나서는 꼴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아무리 썩어도 이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능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그냥 권총을 든 강도랑 싸워도 이기지 못할 무력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 대체 거기서 무슨 도움이 되겠다는 걸까?

         

       『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보안 장치를 무력화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직접 그 장소에 가서 보안 장치를 무력화하도록 하겠습니다! 』

         

       말은 옳다.

       보안 장치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자기들이 가야 한다는 말.

       얼핏 들으면 맞다.

         

       하지만 말이다.

       지금은 냉전 시대가 아니다.

       드론이나, 원격조종 로봇 같은 것을 이용해서 충분히 원거리에서도 작업을 할 수 있다.

         

       자위대에서 쓰는 군사 장비보다야 당연히 한없이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민간용 보안 장치 정도는 무력화시키기 충분한 성능을 가지고 있을 텐데….

       안전한 장소에서 장비를 조작해서 도움을 주는 대신에, 직접 현장으로 나간다고?

         

       헛바람이 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비전투원이 직접 나서겠다고 생각했을까?

       그것도 앞서 세 명이 함정에 걸려서 잡혀있는데도 말이다.

       그 세 명은 그냥 부주의 때문에 잡힌 것이고, 자신들의 능력이라면 그런 함정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라도 있는 것일까?

         

       ‘무인의 감으로도 인지하지 못한 함정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무인은 감각이 발달하여 있다.

       그런 무인을 갇히게 할 정도의 함정이라는 것은, 어디 산속에 깔린 곰 덫이나 올가미 같은 수준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함정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것을 우습게 본다고?

         

       ‘너무 낙관적이고, 자만심에 가득 차 있어.’

         

       와타나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들이 겪을 고초를 생각하니 저절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너희가 성공하면 그냥 비웃음이지만, 실패하면 큰일이 난다. 제발 성공해라….’

         

       그는 빌었다.

       제발 그들이 성공하기를.

       앞서 빌딩에 잠입했던 세 명에게 빌었듯 말이다.

         

       ‘그래. 차라리 성공해라. 제발, 성공해서 나를 비웃어다오.’

         

       하지만 어째서일까?

         

       『 주술사의 거처에는 절대로 가서는 안 돼….』

       『 나는 아직도 그 비명이 떨어지지 않아. 밤만 되면 꿈에 왜 나를 구하지 않았느냐면서 머리가 길쭉해진 군인들이 나와….』

       『 너는 절대로. 절대로 주술사와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가능하다면 네 아들에게도, 네 아들의 아들에게도 그리 말하도록 하거라….』

         

       할아버지의 넋두리가 떠오르는 것은, 대체 왜일까…?

         

         

         

        * * *

         

         

       ‘이곳이군.’

         

       와타나베가 숙소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그들은 박진성의 빌딩 근처까지 도달해 있었다.

       가문에서 챙겨준 장비 덕분에 CCTV 같은 영상 장비에 찍히지 않았으니 그들의 움직임은 거칠 것이 없었다. 게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원래도 인적이 드물었던 빌딩으로 가는 경로에는 사람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었고, 그 덕분에 그들은 사람 눈을 신경 쓸 필요도 없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운이 좋다.’

         

       그래.

       운이 좋다.

       마치 하늘이 그들에게 어서 동료를 구출하고, 이 실수를 수습하라고 떠미는 것 같았다.

         

       게다가 왜일까?

       그들의 마음속에는 충만한 자신감이 맴돌고 있었으며, 육감이 왠지 모르게 그들을 자극하며 어서 빌딩에 들어가서 동료를 구출하라고 등을 떠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자석의 S극이 N극을 보고는 끌어들이려 애를 쓰는 것처럼.

       그들은 빌딩에 왠지 모르는 끌림을 느끼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이상하게 컨디션이 좋기까지 했다.

         

       정신은 말똥했으며, 집중력은 한껏 끌어올려져 있었다.

       마치 에너지 음료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그들의 정신은 티 하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한 호수처럼 맑은 상태였으며, 오직 임무에 관한 것만 머릿속에 떠오를 정도로 집중력이 강화되어 있기까지 했다.

       거기다가 작전하고 있음에도 긴장감은 전혀 들지 않았고,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열의가 불타오르는 상태였다.

         

       이것이야말로 풍림화산의 진수가 아니겠는가.

         

       ‘정말 컨디션이 좋아. 마치 보약을 먹은 것 같군.’

         

       이러한 최상의 컨디션은 놀랍게도 그들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발걸음은 정말로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고, 몸 역시 그들의 뜻대로 휙휙 움직였다.

       너무나 빠릿빠릿하게 답해주는 신체 덕분에,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얼마나 피로에 찌들어 있었는가를 강렬하게 실감하고 있기까지 했다.

         

       시냅스를 새것으로 깡그리 바꿔버린 듯한 느낌이라니!

         

       최고였다.

         

       비전투원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은 크게 단련하지 않은 신체로도 무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으며,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운동을 했음에도 어딘가 불편해지거나 힘이 들지 않았다. 도리어 이제야 몸이 풀렸다는 듯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고, 곳곳에 나 있는 땀방울은 자신이 식기 전에 어서 몸을 움직이라는 듯 그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마치 스테로이드라도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참 좋은 징조가 아니겠는가?

         

       그들은 빌딩에 돌입하기에 앞서 장비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그렇게 점검하는 장비 중에는, 가문이 준 장비도 있었다.

         

       CCTV를 피하게 해준다는 귀한 장비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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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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