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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9

       아름드리 드리워진 혈수마녀의 심상 속.

         

       강하하는 늑대들의 요격에 호신강기를 주변에 두른 채 요지부동하고 있던 혈교주의 주변으로 이변이 나타났다.

         

       그녀의 선홍빛 강기와는 사뭇 다른, 탁하기 그지없는 검붉은 색의 기운이 요동치며 그녀의 심상을 밀어내기 시작한 것.

         

       이는 분노였다.

         

       혈수마녀를 꾀어내기 위해 자존심까지 굽혀가며 입에 발린 말들을 연신 내뱉었건만.

         

       “백우진,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때마침 끼어든 백우진의 말 몇 마디가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려놓고 말았다.

         

       차라리 아무런 동요조차 없었다면 이토록 아쉽고, 화가 나지는 않았을 터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히 일순간 동요했다.

         

       제 말에 구미가 당긴다는 듯, 망설임을 가졌단 말이다.

         

       조금 더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면 현경의 고수를 품을 수 있었을 터.

         

       “네놈만큼은 반드시 내 손으로 찢어 죽이고 말 것이니라.”

         

       그가 은은하게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잘근잘근 씹어 내뱉자, 백우진은 웃었다.

         

       그것도 아주 가소롭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비죽 말아 올리며.

         

       “너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냐?”

       “뭐라…!”

         

       혈교주가 발끈하자, 백우진은 곧게 편 검지로 자신과 혈수마녀를 번갈아 가리키며 그를 조롱했다.

         

       “너는 혼자고, 우리는 둘인데 감당할 수 있겠냐고, 자식아.”

       “…….”

         

       머리 끝까지 치솟아 있던 왕성한 혈기가 조금은 가시는 듯하다.

         

       ‘확실히…, 내게 더없이 불리한 상황이다.’

         

       비로소 보인다.

         

       혈수마녀와 백우진.

         

       두 명의 현경의 고수를 동시에 상대해야만 하는 제 처지가.

         

       ‘한 명씩이라면 얼마든 격파할 수 있을 터.’

         

       일 대 일이라면 절대 지지 않을 것이다.

         

       대체 어쩐 일인지 혈수마녀는 이백 년 전과 비슷 또는 그보다 약해 보였고, 백우진은 이제 막 현경에 올라 심상 세계조차 펼치지 못하는 반푼이.

         

       따로따로 상대한다면 혈수마녀는 삼백 초 이내에, 백우진은 오십 초면 충분했을 터.

         

       문제는 그 두 사람이 한패라는 것.

         

       제아무리 반푼이라곤 하나, 현경에 오르자마자 심검을 구현하여 제 낙원을 부순 놈이다.

         

       ‘이 빌어먹을 년놈들!’

         

       분하다.

         

       지난 이백 년간 땅속에서 숨어 지낸 이유가 무엇인가.

         

       더 이상 누구에게도 고개를 조아리지 않고 당당하게 살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그는 지금 살 길을 찾고 있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 다음을 도모할 생각만 하고 있단 말이다.

         

       이러한 치욕을 겪느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사생결단을 내고 싶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이백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치욕 속에서 버텨온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을 이끄는 자신이 이곳에서 멋대로 행동하다 죽게 되면 그들은 복수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바스러지고 만다.

         

       “후우.”

         

       그는 들끓는 감정을 최대한 정제하여 다시 기운을 일으켰다.

         

       검붉은색의 혼탁한 기운.

         

       그러나 조금 전의 거친 움직임 대신 질서정연한 흐름이 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늑대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기운은 천천히 그녀의 세상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이 세상을 잠시 지우고 드리운 그녀의 심상 세계.

         

       그것을 또 지우고 그 속에 자신만의 심상을 꽃피운 것.

         

       “확실히, 지금은 본좌가 불리하구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무덤덤한 말투가 백우진에게로 향한다.

         

       “그러니 오늘의 만남은 여기서 끝내기로 하지.”

         

       이에 백우진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허, 이 새끼 봐라. 누구 마음대로 끝을 내?”

         

       그러자 혈교주가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당장 생사결을 펼친다면 본좌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기정사실일 것이다. 허나….”

         

       그의 주변으로 넘실거리던 검붉은색의 기운이 날카로운 송곳 모양으로 변한다.

         

       송곳의 날카로운 첨단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신룡조원들.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이 본좌 하나만은 아닐 게다.”

         

       송곳의 끝에서 똑, 똑 하고 떨어지는 핏줄기가 요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는 지금 이리 말하고 있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면, 네놈이 아끼는 동료들을 모조리 길동무로 삼겠다고.

         

       이는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허장성세가 아니었다.

         

       혈교주의 실력은 명백히 자신이나 혈수마녀보다 한 수 또는 두 수 위.

         

       만약 그가 죽을 각오로 덤벼든다면 자신들 또한 상처 입는 것은 물론이요.

         

       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조원들의 목숨 또한 장담할 수 없을 터.

         

       마구 일그러진 백우진의 얼굴을 확인한 혈교주가 더욱 짙은 미소를 그리며 팔을 뻗는다.

         

       “자아, 네놈이 선택하거라. 이 자리에서 날 죽일지, 아니면 만남을 끝낼지.”

         

       악에 받친 백우진이 그를 비난했다.

         

       “치졸하기 짝이 없는 놈.”

         

       허나 혈교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네놈에게 칭찬을 들으니, 참으로 감미롭구나.”

         

       악에 받친 상대의 비난은 칭찬이나 다름없기에.

         

       “후….”

         

       짙은 한숨을 내쉰 백우진의 시선이 혈수마녀에게로 향한다.

         

       그러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이에 백우진은 손에 쥔 검을 도로 집어넣으며 혈교주를 향해 경고했다.

         

       “며칠만 기다리고 있어. 조만간 네놈의 목을 베러 돌아올 테니까.”

       “흐흐…, 기대하고 있으마.”

         

       그렇게 첫 맞대결은 검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한 채 끝이 나고 말았다.

         

         

       * * *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친 뒤, 백우진을 비롯한 조원들은 모산 인근의 마을로 향했다.

         

       도교의 성지를 찾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에서 가장 큰 객잔의 별채를 빌린 그들은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난 진짜 이번에야말로 조장이 죽은 줄 알았다니까?”

       “음음, 그런 생각이 들 만했지.”

       “그런데 봐! 혈교에 들어갔다가 살아 돌아왔잖아? 이게 뭐겠냐고!”

       “바퀴벌레도 울고 갈 생명력이지.”

       “그래, 그거야!”

         

       위기에 봉착해 혈교의 본거지까지 들어갔다가 살아돌아온 백우진을 향해 장삼과 구왕수의 칭찬 아닌 칭찬이 쏟아진다.

         

       이때 백우진은 잠시 고민했다.

         

       욕인지, 칭찬인지 구분하기 난감한 말만 골라서 하는 저놈들을 한 대씩 후려갈겨서 그대로 재워버릴지, 아니면 그냥 둘지.

         

       ‘에이, 됐다.’

         

       그냥 두기로 했다.

         

       혈교에서 머문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그 시간 동안 자신을 찾느라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심했을 조원들 아닌가.

         

       오늘 하루쯤은 원 없이 풀게 놔두어도 괜찮겠지.

         

       “흐헤헤…, 가가아….”

         

       얼큰하게 취한 도경은 제 오른팔을 붙잡고 말을 쭉쭉 늘리며 얼굴을 비벼댄다.

         

       “하아…, 당신 때문에 마음이 다 타버릴 것 같아, 정말.”

         

       제 왼편에 앉은 당선영은 요염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붉어진 얼굴로 푸념을 늘어놓는다.

         

       “히이잉…, 이제 우리 두고 어디 가시면 안 돼요…!”

         

       설수연은 제 등에 업히다시피 한 채로 들러붙어 칭얼거리고.

         

       스륵

         

       스르륵

         

       송희연은 제 그림자 안에 숨어 무얼 하는지 계속 뒤척거리고 있다.

         

       “우으…, 원래 저 자리가 내 자리였는데.”

       “…예전에도 저 자리는 당신의 자리가 아니었어요.”

       “뭐얏?!”

       “내가 틀린 말 했나요?”

       “너, 이 씨…!”

         

       맞은편에 앉아 이쪽을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던 신예화와 유화연은 갑자기 자기들끼리 싸움이 붙어선 반쯤 풀린 시선으로 서로를 노려보느라 바쁘다.

         

       이를 전체적인 그림으로 보면 딱 이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개판이구만.”

         

       그야말로 개판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

         

       별채를 통째로 빌렸으니 망정이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랬다간 얼마나 우스웠을지.

         

       여기저기 엉겨붙은 탓에 불편했지만, 백우진은 차분하게 그들의 말을 모두 받아주었다.

         

       “그래, 그래. 다들 나 때문에 고생 많았다. 그치?”

         

       그들의 푸념은 모두 자신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조금만 더 몸을 소중히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그들이 마음 졸이진 않았을 테지.

         

       그러니 어쩌겠나.

         

       전부 제 업보인 만큼, 그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도록 보듬어주는 수밖에.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흠냐, 음냐….”

         

       새벽이 되자 하나둘씩 탁자에 머리를 처박은 채 잠들기 시작했다.

         

       그쯤에는 백우진의 몸을 꽉 붙잡고 있던 구속력도 느슨해진 터라, 그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제 여인들을 하나둘씩 방으로 옮겨주었다.

         

       서로의 멱살을 붙잡은 채 기절하듯 잠든 신예화와 유화연까지 모두 방에 눕힌 뒤, 마지막 남은 것은 장삼과 구왕수.

         

       “…뭐, 알아서 하겠지.”

         

       그들은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굳이 남자 놈들을 업어다가 방으로 데려다주고 싶진 않았다.

         

       둘 다 초절정에 이른 고수들이니, 하룻밤 밖에서 잔다고 무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덧 고요해진 별채.

         

       백우진의 발걸음이 끄트머리에 자리한 방으로 향한다.

         

       드르륵

         

       침상 위에는 제갈연지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백우진은 의자 하나를 끌고 와 앉아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여인들에게 듣기로, 가장 많이 고생한 이는 다름 아닌 제갈연지라고 하였다.

         

       자신이 없는 동안 조원들을 훌륭히 잘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혈교의 본거지로 향하는 통로를 숨겨둔 고차원의 진법까지 해체했다던가.

         

       그러한 반동으로 그녀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초저녁부터 잠이 들었다.

         

       그것이 못내 미안했다.

         

       ‘그 소심하고, 수줍던 여인이 이토록 당차게 변할 줄이야.’

         

       동시에 흐뭇했다.

         

       제게 말 한마디조차 쉬이 걸지 못하던 여인이 이토록 훌륭하게 성장했음에.

         

       천천히 손을 뻗어 잠든 그녀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는다.

         

       그 속에 들어간 흐뭇함이 조금 과했던 탓일까.

         

       “으응….”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던 제갈연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윽고 드러난 어여쁜 눈동자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백우진의 얼굴을 담는다.

         

       “아, 백 공자….”

         

       그녀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백우진은 그녀의 이마를 콕 눌러 제지하였다.

         

       “그냥 누워 있어.”

         

       조용히 다시 눕는 제갈연지.

         

       “미안. 나 때문에 깼네.”

         

       백우진이 사과하자,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젓는다.

         

       “으응, 아니에요. 오히려 백 공자를 볼 수 있어 조, 좋은걸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잠시 침묵이 내려앉는다.

         

       입속에서 이런 말, 저런 말들을 굴려대던 백우진이 마침내 입술을 떼었다.

         

       “나 때문에 고생 많았지?”

         

       그러자 그녀가 볼을 부풀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맞아요. 백 공자 찾느라 정말 힘들어 죽을 뻔했어요.”

       “끄응.”

         

       너무나도 솔직한 대답에 더 큰 죄책감을 느끼는 그.

         

       이를 보며 빙그레 미소 지은 그녀가 말을 잇는다.

         

       “그래도…, 그런 과정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 끝에 백 공자가 있다면.”

       “제갈 소저….”

       “지, 지 매…, 라고 불러줘요.”

       “지 매.”

       “힛….”

         

       고작 달라진 호칭 하나에 바보처럼 웃는 그녀.

         

       무해함이라곤 요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사랑스럽기만 한 여인을 보고 있자니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못난 남편 때문에 고생했으니까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봐.”

       “나, 남편…!”

         

       낯설고도 달아오르는 단어에 얼굴을 붉게 물들인 제갈연지가 제 이불을 위로 끌어당겨 코 밑까지 덮어쓴 뒤, 조심스레 물었다.

         

       “아, 아무거나 말해도 들어줄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그러자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쉰다.

         

       “하아….”

         

       푹 뒤집어쓴 이불을 끌어 내린 뒤, 백우진을 향해 두 팔을 뻗어 용기 내어 제가 원하는 바를 입에 담았다.

         

       “아, 안아주세요.”

       “…….”

         

       이제는 당돌해지기까지 한 여인의 모습에 백우진은 이성을 잃고 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래 이 뒤에 곧장 19금씬이 이어져야 강호의 도리겠으나,

    조금만 뒤로 미루고자 합니다.

    일단 혈교 에피소드를 완벽하게 마무리 짓고, 그 뒤에 19금 씬을 써보도록 하겠읍니다.

    그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주 상세하게 적어 여러분께 풀어낼 테니 부디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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