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69

        

         ‘미친…! 늦었나?? 관통해버렸잖?! 아니, 아니야. 괜히 제3자 시점에서 봐서 피가 많아 보여서 그렇지… 앞쪽에 덕지덕지 기워 입은 전술 장비들을 빼면 충분히 얕았어…!’

         

         이게 연출된 장면도 아닐진대 누군가가 상처입거나 죽어가는 모습을, 그 부상 척도를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슬로우 모션으로 돌려보며 살핀다는 건 역시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고 할까.

         

         예상대로, 몸으로부터 격한 거부 반응이 마구마구 솟구쳤다.

         

         스너프… 고어…. 으으, 굳이 개인의 성향을 지배와 복종이라는 양극단으로 나눈다면 남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고 상황을 주도하는 걸 태생적으로 즐기는 이들이 있다는 건, 어쩌다 보니 이 시대의 사회적 강자들을 꽤 많이 만나보게 되어서 알게 되었지만.

         

         이런 적나라한 상처와 폭력 그 자체를 바라는 취향은… 아직도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니까?

         

         봐라. 꽤 익숙해졌다 자부한들, 저 자리에 있기는커녕 현실 감각이 피드백 되지도 않는 상태의 코끝에 벌써 비린내가 감돌며 피부가 찌릿찌릿해지는 것 같잖아.

         

         …그나마 조금만 더 참으면 방관자 입장이랑도 안녕이라 망정이지.

         

         – 절단상에 가까운 자상 크기와 출혈량, 일단 제 판단상으로도 치명상은 분명합니다만. 정말 그저 즉사가 아닌 것만으로도 충분하십니까? 아나스타샤님께서는 영락없이 저 남자의 극적 생존을 기대하고 계신 줄로 착각했습니다. –

         

         “어허, 착각이 아니야! 그리고 말을 좀 부드럽게 해 봐, 누가 잘못 들으면 내가 헬레나한테 뭘 사주한 줄 알겠어! 단지 지금은 저걸로 괜찮은 것뿐이라고!”

         

         지금부터 상층에 있는 드로이드를 전속력으로 움직여도, 제 시간 안에 구호 활동이 힘들 거라는 부정적이고 불안한 전망을 내놓는 제로에게 당장은 기다려도 된다는 답을 돌려주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니까… 백분율로 따지자면 사실 60이나 70% 정도는 이대로 가만히 지켜봐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응, 아직까진 전혀 문제없다. 아마도.

         

         이 막대한 초조함과 긴장이 안심하기 이르다는 걱정으로부터 파생된 감정이라면, 반대로 두근거림과 안도감은 드디어 확정된 이야기의 주인공이 생각보다 꽤 상식적이고 얘기가 통할 것 같은 인물이라 여겨도 될 거란 전망에서 나온 것.

         

         진짜 최악 중의 최악, 지켜봐야 할 게 인간 쓰레기에 가까운 놈이었다면. 대체 어떤 강도의 갱생 프로젝트를 준비해서 굴려야 협조적인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깊었는데 말이지.

         

         우리 헬레나에게 감히 위험하게스리 총질을 한 건 화가 좀 나지만. 그건 뭐 원래 프롤로그의 결착에 가까운 고정 액션이자, 피하는 게 가능한지도 모를 숙명 같은 저항 행위의 일환이었으니 그 부분은 살짝 넘어가도록 하자. 음.

         

         아까 헬레나가 높이 평가한 것처럼 끈기라던가, 다른 어조로 그녀의 요구를 거절할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소속 용병단과의 의리를 지키려고 한 점은 분명 꽤 긍정적인 신호이니까.

         

         어? 그럼 내가 저 자리에 있었어도 총을 쐈을 거냐고??

         

         무슨 소리야, 애당초 지금 내가 근방에서 알짱거리다 헬레나한테 들켰으면 ‘왜 귀띔을 해달라고 부탁하나 했더니… 몰래 언니를 따라왔구나!’하고 벌써 샘플 케이스랑 세트로 묶여서 집까지 잡혀갔어.

         

         거 너무 무의미한 가정은 하지 말자고, 우리.

         

         “……쯧.”

         

         하여간 일은 이미 터졌으며 결착 또한 지어졌다.

         

         남자는 작동을 멈춘 천공기 옆에 쓰러진 채 숨을 헐떡이고 있고, 나와 제로는 저 밑까지 내려가 간섭하는 걸 일부러 자제하고 있는 상황. 이제 남은 건 헬레나의 반응뿐이었으니.

         

         착잡한 심경을 대변하듯 그녀는 못마땅한 신음을 냄과 동시에 카타나를 허공에 한 번 털어낸 다음, 힘 빠진 주인공 형씨의 옆구리에 끼어 있던 칼집마저 살짝 잡아당기는 걸로 무사히 회수하여 다시 제자리에 고정시켰다.

         

         물론 자신의 몸 일부나 다름없게, 손처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칼은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던 만큼 원래대로 되돌아가지 않았지만.

         

         “…아, 샘플이 완전히 망가졌네. 설마 진짜 이렇게 무덤으로 안고 사라질 줄은 몰랐는데.”

         

         이미 서로가 선을 넘어버린 마당에 다시 맨손을 써서 패자를 몸수색하는 건 전사에 대한 어떤 식의 모욕이라 여기기라도 하는 걸까, 도첨(刀尖; 칼 끄트머리)를 이용해 쓰러진 남자의 자켓을 들춰 그 밑을 대강 확인한 헬레나가 황망히 혼잣말을 우물거렸다.

         

         그녀가 저렇게 당황한 모습은 드물다.

         

         객관적인 척도를 가지고 비교하자면… 전에 처음 집들이를 왔을 때, 실내에 우글거리는 온갖 제로 모델들을 마주한 첫인상 수준?

         

         차이점은 나를 추궁하면 그만이었던 당시와는 달리, 이건 씁쓸하지만 헬레나 본인이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현장이라는 거고.

         

         아마 그녀의 가슴속에서는 여러가지 생각이 휘몰아치고 있으리라.

         

         비록 보호구는 부숴졌어도 회피에 실패한 건 아닌데, 덤덤하게 용서했어야 했나?

         그나마 말이 통할 것 같은 녀석이라 생각하고 협조를 강요할 게 아니라, 그냥 기절시켜서 끌고 나가는 게 맞았나?

         

         정답이 정해진 문제도 아니오, 책임은 져야할지언정 죄책감을 가질 만한 사건 또한 아니었다. 엄밀히 따져봐도 남자는 그저 자신이 상대를 확실하게 해치우지 못한 탓에 대신 죽어가고 있는 것뿐이니까.

         

         “아? 분명 드릴 추출기 칸에 표본이 남아있지 않았나? …아니면 공기 중에 오래 노출되면 산화돼서 빛이 안 나게 변하는 희귀 물질일지도. 잘못 봤나 보네.”

         

         아무튼 이제 와서 참격에 개박살 난 밀봉 케이스를 뒤적거려봐야 훼손된 무결성이 부활할 가능성도, 대략적인 설명만을 들은 채 투입된 심부름꾼에 불과한 용병이 뭐가 뭔지 알 리도 만무했지만.

         

         일단 쟁점이 되었던 회수 의뢰는 완수해야 하는 만큼, 헬레나는 어느새 시각을 교묘히 희롱하던 보라색 빛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진 운석 균열과 천공기에 남은 멀쩡한 샘플 케이스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내 자기로선 알 수 없는 과학적 이유가 있으려니 하고 단순하게 납득한 채 약간의 돌 쪼가리만 남은 케이스와, 약간의 갈등 끝에 쓰러진 남자의 팔 또한 잡아채 엘리베이터에 다시 훌쩍 올라탔다.

         

         물건도 챙겼겠다. 남자의 상태가 어설픈 구호 행위로 살아날 수준은 아니지만 지표면까지 데려갈 여유는 있겠다. 헬레나의 관점에서 이 해프닝은 이제 조용히 빠져나가기만 하면 얼추 종료된 사건.

         

         하지만 관측자인 우리는 행방이 묘연해진 물건의 사연을 알고 있다. 똑똑히 볼 수 있었다.

         

         – 직전에 적외선 파동 및 에너지가. 엔트로피 관측이…. 아니, 방금 현상은 제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이론과 가설로는 차마 완벽한 설명이 불가능하군요. 이래서 문제의 ‘공허 광물’이 그렇게 특별하다 여러 차례 강조하셨던 겁니까? –

         

         “…당연하지 인마. 에테르(Aether), 타키온 입자(Tachyonic particle). 손에 넣었던 연구자마다 하도 다른 특성에 집중해서 명칭을 제멋대로 부르는 통에 나도 정확한 정의는 모르지만, 저건 그냥 질량 보존의 법칙마저 개무시하는 유례없을 기생 물질이나 순수 에너지라 보면 돼.”  

         

         흡사 세상에 풀려났던 악귀가 재차 봉인되듯, 혹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신들과 다르게 아직 펄떡이는 육체에 흥미를 느낀 무언가가 새로이 둥지를 틀 듯.

         

         보금자리를 잃고 외부 공기에 노출된 시점부터 어쩔 줄 몰라 하며, 일렁이는 안개처럼 흐느적거리던 공허 광물이 남자의 가슴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걸 실시간으로 목도한 제로와 나는 나름 건설적인 토론을 시도했다.

         

         뭐, 저 순수한 힘과 가능성의 결정을 내가 품었을 때도 같은 효험을 볼 수 있었다면 어쩌면 나 또한 욕심을 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확한 원리도 모르는 채로, ‘에너지 결정체 근처에서 생사의 경계를 오가다가 잠재력을 올려주는 외계 물질에 기생 당하기’를 고르라고?

         

         아무리 주인공의 임플란트 한계치나 후천적 특성 획득 범위를 넓혀준다 한들 그게 내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데다가, 심지어 저렇게 그림 같은 원작 재현도로 프롤로그 이벤트를 몸소 끝까지 수행한 당사자 분까지 계신데?

         

         아서라. 미련이 아예 없다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내가 쓸 수 있는 수단이나 여력이 모자란 편도 아니니 이런 건 순리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어야 하는 법이다.

         

         – 곤란하군요. 허면… 저런 식으로 융합한 다음에는 탐지할 방법이 현시점에선 존재하지 않는 겁니까? –

         

         “지금은 저게 깃든 물건을 가져다 배를 갈라보지 않는 이상 전혀 없지. 그러니까 여기저기 흩뿌려진 미지의 에너지원을 회수하겠다며, 나중에 기업들이 한바탕 난리를 피우는 셈이고.”

         

         아무리 에나마의 재생 시술이나 재구성 서비스가 실재한다지만 당장 천천히 일어나고 있는 것만 해도 사자소생의 기적.

         

         우연치 않게, 여기처럼 깊은 곳이 아닌 지표면 근처에서 발굴된 공허 광물이 깃든 다른 파편을 먼저 얻은 사람들의 무슨 욕심을 부리고 있을지, 이걸 어떻게 몰래 비싼 값에 팔아 치우나 고민하고 있을지. 그 혼란이 충분히 예상되지 않나?

         

         결국 저걸 이용한 신기술이 자연히 개발되고… 기업들은 또 싸우고, 그 과정에서 메트로폴리스 정세가 한도 끝도 없이 교란되는 와중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는 용병의 일대기. 그게 바로 네오 헤이븐의 메인 스토리라는 얘기가 되시겠다.

         

         헬레나 발렌타인이라는 최상위 용병이 오늘 이후에 재회한 시점부터 동료로 영입 가능해지는 것도 그 일환.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피를 봤다 자책한 그녀가 바이탈 체크 결과 늦었다고 판단하고 떠나간 뒤, 기적적으로 살아난 주인공을 보고 술과 취미만으로 무료하던 일상에 다른 관심을 가질 곳을 알게 된 것이리라.

         

         첫 등장에서 이렇게 싸운 것과 대비되게,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플레이어들의 메인 히로인. 마음의 상처를 안고 조용히 살아가던 네오 헤이븐의 늑대.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자기가 실수로 죽였던 녀석이 난데없이 살아 돌아왔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놈이 또 한 번 진짜로 죽을 때까지는 같이 어울려주자~ 같은 결심일지도 모르겠지만!

         

         단순 게임 지식만으로 이 모든 흐름을 이해하려 했을 때는 그냥 그녀가 최소한의 자비를 베푼 거라 여겼는데, 무려 경찰 시절 내막을 직접 경험하고 조금 더 깊은 관계를 맺은 지금은 다른 방면의 해석이 가능해졌다.

         

         누군가의 심장을 꿰뚫고선, 그대로 지하에 내버려두고 떠난다.

         

         …다툼의 경우와 궤가 다르다 한들, 헬레나에게는 굉장히 트라우마 스위치에 가까운 우발적 사고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솔로 지향이던 그녀가 그래서 주인공을 더 챙겨주려 한 걸지도 모르겠고.

         

         정말, 우리 언니. 기분이 절대 좋을 수가 없겠네. 응.

         하아, 이따가라도 꼭 전화를 걸어서 속에 쌓인 응어리를 토해낼 수 있게 상담원 흉내라도 내야겠다.

         

         어차피 내일이나 모레쯤에 저 형씨가 살아있는 걸 확인하면 좀비나 도플갱어가 나타났다면서 기겁할지도 모르겠지만 뭐.

         

         그래도 얼추 다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다 정말.

         

         이제 저 베일에 쌓인 형씨 낯짝이나 좀 보고, 호구 조사 좀 미리 해두고 나중에 헬레나 추천 해커 전형으로 만나서 안면 트고 인사나 나누면….

         

         콰지직—!!

         

         “아?!! 제로, 방금 뭐야!”

         

         긴장을 풀고 방심한 게 화근이었을까? 그냥 시간이 많이 늦어지고 지체되어서 철수 타이밍이 늦은 게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시야 한구석이 갑자기 번쩍이더니 공유받고 있던 제로의 화면 중 하나가, 비록 준수한 방어력과 내구성을 보유한 드로이드는 아니었지만 드론 쪽이 몇 초 만에 신호 두절될 경우의 수가 뭐가 있을까?

         

         자, 1번. 사각지대에서 드론을 정확히 핀포인트 요격할 수 있는 의문의 실력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에게 꼬장을 부렸다.

         

         그리고 2번… 외부 폭동과, 그 틈을 타 조사 현장 쪽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에 기어이 출동한 폭동 진압부대가 여기까지 밀고 들어오면서 미등록된 전자기기들을 보이는 족족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있다.

         

         …굳이 설명이 더 필요하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예.

         

         – 지금이라면 미끼로 활용할 무인기 몇 대만 손망실 처리하고, 나머지 병력은 온존하여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만. –

         

         “챙길 이득이 없다면 쓸데없는 싸움은 안 하는 게 맞지. 그래, 안 하는 게 맞는데….”

         

         헬레나는 의뢰도 완수했겠다. 고새 험악해진 지상 분위기를 재빨리 파악하고 교전을 피해 알아서 잘 빠져나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라면 집에 돌아갈 때까지가 소풍이라고. 구석에 방치된 채 회복 중인 우리 주인공 형씨도 원래는 아슬아슬하게 깨어나서 탈출해야 맞지만…? 저기서 자다가 걸리면 현행범으로 즉시 체포여서 굉장히 곤란하지만…??

         

         “…응, 외계 물질이라 그런가. 신체에 안착하는데 오래 걸리나 보네.”

         

         그런데 왜 아무리 살펴봐도 제때 못 일어날 것 같냐고요!

         

         나야 네오 헤이븐을 플레이할 때는 칼침 맞고 화면 까매졌다 일어나면 변화가 끝나있으니까 그런가 보다 했지, 리얼 타임으로 기다리면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나.

         

         이런 걸 대비해서 시간 벌어주는 것 정도는 가능하게 준비해온 만큼, 아무래도 내가 몰래 나서서 도와줘야 하는 부분이겠지 이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죽음 직전의 각성 클리셰를 본편 시작에 맞춰 넣어 놓은 가혹한 게임. 어? 이거 완전…. ㅇ브읍

    거듭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다음 화로 마무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내일 에피소드 마무리가 도저히 힘들 경우, 완성되는 대로 최대한 빨리 토요일에 업로드하는 걸 목표로 노력하겠습니다.

    다들 온열 질환 조심하시고, 물도 많이 마시셔야 합니다! 통풍… 요로결석… 모두 끔찍한 저주입니다. 정말로.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