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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9

       선거는 빛처럼 빠르게 치러졌다.

       

       그 결과, 플로반스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유피엘이 당선되었다.

       

       사실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유피엘은 피어바인 가문의 핏줄이다. 마나 고갈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렸지만, 엄연히 하이엘프 출신이다. 가문 이름만으로도 그녀를 지지해 줄 사람은 차고 넘치는 것이다.

       

       ‘정치하는 데 마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물론 가문의 위세도 한몫했다는 점을 부정하진 않는다.

       

       ‘오래 할 일은 못 돼.’

       

       유피엘이 정치에 입문한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이번에 벌어진 소요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딱 이 문제만 끝나면 은퇴할 거야. 높은 자리에 올라갈 생각은 추호도 없어. 이번 사태가 끝날 때까지만 열심히 뛰어보는 거야.’

       

       유피엘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게 국회외 입성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이, 이게 무슨….”

       

       출근한 유피엘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가루가 되도록 부서진 연단. 

       

       어지러이 떨어져 있는 국기. 

       

       얼굴을 붉히며 서로 삿대질하는 광경까지.

       

       국회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세기말이야 뭐야?”

       

       유피엘은 어이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자기 의석에 앉았다. 운이 좋지 않게도, 그녀의 자리는 여당과 야당 의석의 경계선이었다.

       

       틈만 나면 양쪽으로 막말과 삿대질이 오갔다.

       

       “아니, 생각해 보세요. 금안족 쪽에서 먼저 잘못한 거 아닙니까?”

       “그쪽 당에도 책임이 있죠. 시위가 벌어졌으면 대통령께서 유하게 대처하셔야 했었어요. 예?”

       “또 행정부한테 떠넘기네요. 그 레파토리 지겹지도 않습니까?”

       “그쪽이야말로 예전 정권 탓만 하면서….”

       

       못 들어주겠다.

       

       유피엘은 팔을 걷어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석을 갈아치웠는데도 싸우시는 겁니까?”

       

       한참이고 싸우던 두 의원의 시선이 유피엘에게 모인다. 그들이 불퉁한 표정으로 각각 대꾸했다.

       

       “누굽니까?”

       “새파란 청년 같은데, 잘 모르겠으면 3개월은 가만히 앉아서 지켜나 보십쇼.”

       

       그러고는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었다. 이가 꽉다물리고, 팔이 부르르 떨렸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라고?’

       

       못 한다.

       

       아니, 안 한다.

       

       유피엘은 토트백을 싸서 일어났다.

       

       “오자마자 어딜 가십니까?”

       “지역구로 돌아갈 겁니다. 돌아가서 제가 당선된 지역의 시민이나 잘 돌봐야죠.”

       

       모든 지역의 문제를 바로잡을 수 없다면, 자신이 당선된 지역만이라도 문제를 잠재우고자 한다.

       

       그것이 하이엘프로 태어난 자신의 최선이다.

       

       “이보세요!”

       

       유피엘이 계단을 타고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웬 노의원이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

       

       “피어바인 의원, 그냥 여기 있으시지요.”

       “저는 제 지역구로 돌아갈 겁니다. 국회를 채우는 건 비례대표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어요?”

       “지역구든 비례대표든 상관이 없어요. 당선됐으면 일단 이곳에 눌러앉아 있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 지역 가서 봉변 당할 일 있겠습니까?”

       “지지받아서 뽑힌 건데 왜 봉변을 당해요?”

       “민심이 흉흉하니까요.”

       

       유피엘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삼켰다.

       

       “그러니까 더더욱 가려는 거예요.”

       

       하이엘프 핏줄 덕이 있다고는 해도,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

       

       당연하지만 유피엘은 공약을 내걸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이 세운 공약을 지켜주길 바랄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지역구에 돌아가 점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점검해 봐야 했다.

       

       유피엘이 그런 의견을 피력해도 노의원의 한숨은 깊어질 뿐이었다.

       

       “이봐요, 젊은 친구. 국회의장과 대통령이 야합하면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잘못하면 이 의회도 금방 해산되고 말 텐데, 뭐하러 그런 곳 가서 공약을 지키려 하십니까?”

       “네?”

       

       유피엘은 적잖은 충격을 먹었다.

       

       “시민과 한 약속을 지키지 말라는 소리인가요?”

       “국민들도 어차피 다 알아요. 시늉만 한다는 거.”

       

       국회의원 임기가 불안정하다는 건 안다.

       

       그런데 그러면 뭐 어쩌라는 건가?

       

       노력하지 않으면 결과도 없다.

       

       국회에 더더욱 실망한 유피엘은 등을 돌렸다.

       

       “이봐요. 가면 안 됩니다! 못해도 투표는 하고 가세요!”

       

       투표?

       

       또 그저 그런 법안이나 만들겠지.

       

       유피엘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국회 건물을 떠났다. 그녀가 있어야 할 일터는 플로반스였다.

       

       

       **

       

       

       자동차로 이동하는 동안 유피엘은 꿈을 꾸었다.

       

       – 마나 고갈증이 있으면서 대학원에 오겠다고?

       

       목소리.

       

       – 못 받아줍니다. 솔직히 말해서 어려워요.

       

       자신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목소리.

       

       – 연구실이 꽉 찼거든요. 하하, 이걸 어쩐담.

       

       식은땀을 흐르게 하는 불길한 목소리뿐.

       

       덜컹거리는 소음과 함께 유피엘은 일어났다.

       

       “헉….”

       

       헛숨을 되삼킨다. 사막을 횡단하는 것처럼 목이 쩍쩍 갈라지는 듯했다.

       

       “의원님, 도착했습니다. 플로반스입니다.”

       

       유피엘은 골렘에서 내려 기지개를 켰다.

       

       남부 지역 특유의 쿱쿱하고 더운 날씨.

       

       벌써부터 와이셔츠가 눅어버리는 느낌이다.

       

       “시위대 동향은 어떤가요?”

       “시청을 중심으로 가도행진 중입니다.”

       “사상자 수는?”

       “오늘 시위대 쪽에선 다섯 명, 경찰 측은 두 명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중상은 없고, 경상은 양측을 합하여 서른 명 정도입니다.”

       

       하루 사이에 잃지 않아도 되는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더 생겨났다.

       

       유피엘은 입술을 씹어대며 계속 물었다.

       

       “시위대가 과격한 행동을 하면 어떻게 대처하고 있죠?”

       “먼 거리나 중간 거리에서는 물대포를 사용합니다. 폴리스 라인을 넘어오면 스태프로 가격하는 등 다소 위협적인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위대의 폭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라고 유피엘은 생각했다.

       

       “그런 조치는 일단 모두 중지하세요.”

       

       그러자 비서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폭력성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기어오를 겁니다.”

       

       유피엘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 여러분께, 기어오른다?”

       “…제가 말씀드린 건 마왕군 잔당입니다. 그들이 기어오를 여지를 주어선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어이를 상실했다.

       

       마왕군은 진작 괴멸됐다. 잔당? 있겠지만 이제 그들은 더는 잔당이라 부를 수 없었다.

       

       우선 마왕군 잔당의 표격인 로즈마리. 그런 소녀가 과연 세상을 멸망시킬 괴물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에테르 선생님. 흑주(黑晝)라는 어마무시한 병기를 만들었지만, 그 도구를 세상을 지키는 데 사용했다. 심지어 그녀는 정령까지 됐다.

       

       깊은 역사까지 파고들면 주객이 전도됐다.

       

       금안족은 피해자다.

       

       유피엘은 비서를 은근히 쏘아보며 말했다.

       

       “우선 그들을 만나보겠습니다.”

       “네? 너무 위험합니다!”

       “국민의 말씀을 듣는 것이 국회의원의 역할입니다. 대의민주주의가 무엇인지 혹 모르시나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의원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저도 여러모로 난처해집니다.”

       

       안다.

       

       그래서 뭐 어떡할 건가?

       

       레니냐가 틸레트로 전학 간 이후로, 일리야드의 수석은 항상 유피엘이었다. 일리야드는 매 학기 1등에게 총장이 표창장과 장학금을 수여하는 전통이 있었다.

       

       세실 르네이 총장은 학기마다 유피엘을 총장실로 불러 포상함과 동시에, 이런 말을 늘 하곤 했다.

       

       – 힘이 없더라도 올곧은 길을 가세요. 그래야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정령을 감동시키는 첫 번째 방법이라 했다.

       

       그 말 때문일까? 요새 정령과 계약하는 엘프 출신 마도사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정령들도 더는 엘프를 선량한 종족이라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비서가 따라가지 않겠다면 저 혼자만이라도 갑니다.”

       “아, 앗! 의원님! 단독 행동은…!”

       

       유피엘은 시청까지 쭉 걸었다. 호위라고는 비서 한 명뿐이다.

       

       “자기 한 몸도 지키기 어려우시면서….”

       “제가 마나 고갈증이 있다는 걸 돌려 말하고 싶으신 건가요?”

       “아, 아뇨…!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비서가 횡설수설하며 변명할 말을 떠올린다.

       

       “혹시 암살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저 한 명 죽어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아요.”

       

       유피엘은 더욱 당당히 걸어갔다. 시청에 가까워짐에 따라 시위대가 경찰과 싸우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유피엘은 근처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시위대의 머리가 어디인지 찾기 위함이었다.

       

       그때였다.

       

       우우웅.

       

       모든 공무원에게 지급되는 단말기가 울렸다.

       

       ‘무슨 일이지?’

       

       단말기에는 자그마한 화면이 있어, 그 화면을 통해 나라의 중대사를 문자로 전할 수 있다. 공직자들에게 부여되는 이동통신기라 할 수 있었다.

       

       유피엘은 단말기를 열어 확인했다.

       

       [오후 4시 37분, 계엄 선포]

       

       “뭐, 뭐?”

       

       툭, 하고 단말기를 떨어뜨렸다.

       

       “의원님.”

       

       비서도 같은 문자를 받은 것인지 낮빛이 딱딱해졌다. 유피엘은 떨리는 손으로 단말기를 주웠다.

       

       [현 시간부로 시위대와 대치 중인 모든 경찰과 헌병은 시위 주동자를 전원 색출하여 인근의 교도소로 이송할 것.]

       

       [이행하지 않을 시 관련 법률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음.]

       

       카우렐리아에서 계엄령을 선포하려면 행정부 말고도 입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

       

       즉, 대통령이 선포한다고 그냥 되는 게 아니다. 군대를 이용하여 시민의 권리를 한시적으로 제한하는 조치가 국가와 사회 안녕에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의회에서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계엄이 선포되었다는 건, 의회에서 해당 투표가 재적의원 수의 3분지 2를 넘어 가결되었다는 소리였다.

       

       유피엘은 떨리는 눈으로 시위대가 흘러가는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수백 명이 이끄는 시위대의 중심이 팔방에서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그 주위를 둘러싼 경찰과 군인들이 금안족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 마수를 때려죽여라!

       

       여기저기서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유피엘은 쏜살처럼 내달렸다.

       

       “의원님! 지금 가시면 안 됩니다!”

       

       막아야 한다.

       

       ‘계엄? 웃기는 소리하지 마. 시위하는 사람들이 과격해도 그렇지, 그렇게까지 심하게 다룰 일이냐고. 금안족이 그렇게 심한 짓을 저질렀어?’

       

       유피엘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레니냐.

       

       자신을 괴롭히던 동급생에게도 아랑곳하지 않고 별사탕을 나누어주던 선량한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이런 시대에도 차별받고 있다. 그녀가 속한 종족이 탄압당하고 있다. 사회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불평등을 겪고 있다.

       

       마나 고갈증이 있기 때문일까?

       

       유피엘은 그런 조국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멈추세요! 멈추시라고요!”

       

       한창 쌈박질이 일어나는 장소에 도착한 유피엘은 국회의원 배지를 보여주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러나 듣지 않는다.

       

       여러 소리가 뒤엉켰다. 비명, 욕설, 파괴. 유피엘의 목소리로는 닿지 않을 정도로 폭력적인 음원들.

       

       “제발 멈추라니까요!”

       “공무집행 방해입니다. 물러나 계십쇼.”

       “이 사람들아! 나는 이 지역구 국회의원이야!”

       “엇, 뭣들 하고 있어? 빨리 의원님 보호해 드려!”

       

       유피엘이 국회의원이라는 걸 안 경찰들이 그녀를 높은 곳에서 끌어내어 경비대 속에 숨겼다.

       

       “난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어!”

       “의원님, 그러지 말고 저기를 보십쇼.”

       

       헌병이 바리케이드 너머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분노에 찬 금안족들이 전격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파지직─!!

       

       경찰들이 한 무더기씩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그 앞으로 시위대가 스태프를 들며 들이닥친다.

       

       처음에 평화적으로 시작했던 시위는 조금씩 다툼의 양상을 보이더니, 이윽고 물리력과 마력이 오가는 시가전으로 번졌다.

       

       그리고 그런 혼란한 상황에서, 유피엘은 보았다.

       

       “저, 저건…!”

       

       낫과 망치를 쥐고 있는, 붉은 머리의 금안족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밤을 섔ㅅ습니다

    죽을 맛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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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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