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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새끼, 정보상 아니랄까 봐 날카롭다. 그러나 이걸 티 내면 안 되겠지. 나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시치미를 뗄 생각인가?”

       “나는 공녀님의 명을 받고 움직일 뿐이다.”

         

       일도 잘 풀려가고, 프란체도 잘 성장하고 있는 와중에 괜히 셀다스의 의심을 받아서 좋을 게 없다. 이럴 때는 모르는 척하는 게 상책이지.

         

       그러나 셀다스는 어떻게든 알아야겠는지, 계속 잡고 늘어졌다.

         

       “진 바렌베르크. 이미 너의 계획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시치미를 뗄 생각인가?”

         

       뭐래. 내 계획이 뭔 줄 알고. 셀다스는 살기 어린 시선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제국의 상단을 장악하고 경제부터 무너트릴 셈이지? 데카르트 공녀를 이용하는 것도 그 이유고. 인제 와서 바렌베르크 왕국의 복수라도 할 생각인가?”

         

       ……착각을 해도 대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군. 역사 속으로 사라진 왕국을 재건?”

         

       저벅. 나는 셀다스가 앉아있는 책상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섣불리 일어나며 살기를 내뿜는 셀다스. 나는 그에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다스릴 백성이 없는 국가가 무슨 의미가 있지? 이미 무너져버린 왕국을 재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나?”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물러나는 셀다스. 내가 소드 마스터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지 가면 사이로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제국에 복수할 생각도 없고, 왕국을 재건할 마음도 없다.”

       “…진심인가? 그게 진정 부모를 눈앞에서 잃은 바렌베르크 왕족으로서 할 말인가?”

         

       사실 나도 모른다. 게임에서도 진 바렌베르크는 제국에 복수 같은 건 하지 않았다. 흩어진 바렌베르크의 사람들을 모으지도 않았고.

         

       그는 그저 프란체의 곁에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에 따라, 옮겨진 진의 기억 일부에 의존해 행동하는 것뿐.

         

       셀다스는 그런 내가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고개를 내저었다.

         

       “…나로서는 너의 행보가 이해가 가지 않는군.”

         

       나도 진 바렌베르크의 행적이 이해 가지 않는 건 매한가지다. 그는 어째서 프란체의 곁에 남았고, 어째서 마지막에 분노하였는가. 왜 최종 보스가 되었는가.

         

       내가 그의 기억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정보. 나는 무표정으로 셀다스를 굽어보며 입을 열었다.

         

       “이해가 가지 않으면 이해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너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고개를 까딱이며 말을 이었다.

         

       “네가 나를 이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나? 우리는 그저 정보상과 의뢰자 사이로 남으면 되는 거다.”

         

       내게 전혀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 걸 깨닫고, 그제야 매만지던 칼자루에서 손을 뗀 셀다스.

         

       “…그래, 그렇겠지.”

       “알아들었으면 다행이군.”

         

       나는 발걸음을 돌려 문을 열었다. 셀다스는 아무 말 없이 내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 * *

         

         

       시간이 지나 늦은 점심. 전서구가 부리로 창문을 두드렸다.

         

       “정보상에서 의뢰를 완료했나 봅니다.”

       “맡긴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빠르구나.”

         

       그러게. 그 매물들을 입수하는 것도 일이었을 텐데. 셀다스가 완전 만능이긴 해.

         

       ‘게임에서도 얘가 일 처리의 대부분을 맡았으니.’

         

       부디 소미레가 아니라 프란체 쪽에 붙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서브 남주의 특성상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 그러니 이용할 수 있을 때 이용하는 게 장땡이다.

         

       “안드레아를 만나러 가시죠.”

       “그래, 일단 결과물이 나와야 뭐라도 하니까.”

         

       맞는 말이다. 셀다스에게 보여줘서 신임을 얻는 것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공작의 신임을 얻는 거다.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도 있지만, 공작의 허락이 없으면 프란체는 사업을 진행할 수 없을 테니까.

         

       “가자꾸나.”

         

       프란체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저택을 나와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렇게 노동자들이 머무는 건물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람들은 물건들을 정리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재료들을 확인하고 있던 안드레아가 우리를 발견하곤 다가왔다.

         

       “아, 오셨군요.”

       “바빠 보이는데. 도와줄 거 있나?”

       “아뇨, 아뇨. 이건 저희가 할 일이니까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할 일 하러 가는 안드레아. 프란체가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좀 빨리 온 거 같네.”

       “그렇긴 하죠. 재료가 도착하고 바로 온 거니.”

         

       나는 프란체에게 제안했다.

         

       “일단 여기는 이들에게 맡기고 나가서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기다리시죠.”

         

       프란체는 “그래.”하고 대답한 뒤, 열린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그렇게 근처에 있는 찻집으로 향하고, 간단한 디저트와 차를 두 잔 주문했다. 프란체는 신문을 보며 눈썹을 좁혔다.

         

       “어떻게 되려나.”

       “프리다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하아, 불안함이 가득한 한숨을 내쉬는 프란체.

         

       “만약 잘못되면 우리도 여기 신문에 실릴 거야. ‘제국 최고의 의류점, 프리다를 습격한 데카르트 공녀.’ 이러면서.”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함이 생기고 곧 두려움으로 바뀌어 다가온다. 나야 뭐. 크게 걱정하지 않지만, 프란체는 다르겠지. 사회 경험은 처음이니까.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약의 사태가 일어나서 법정에 서야 한다면 프리다 의류점의 관계자들을 전부 암살하고 오겠습니다.”

         

       내 말에 경악하는 프란체.

         

       “제발 그런 살벌한 소리는 안 하면 안 되겠니?”

       “따로 방법이 없으면 이게 상책이죠.”

         

       본래 힘은 쓰라고 있는 법. 소드 마스터까지 되어서 그런 걱정을 해야 하나. 이미 사람을 죽인 경력도 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나.

         

       옆에서 말리는 프란체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사람 여럿이 죽었을 거다. 그만큼 내가 가진 힘은 강력하니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만 더 의심받을 뿐이야. 나중의 일은 생각하고 말하는 거니?”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런 가정은 어디까지나 최악의 사태니까요.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본다는 생각입니다.”

         

       선택지가 없을 때는 억지로라도 만들어야지. 이렇게 악착같이 살지 않으면 이 험난한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후. 그래. 다음 얘기로 넘어가자. 지금 프리다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단체로 패닉이 왔을 겁니다. 곧 의류점 프리다는 문을 닫을 거고, 팔 수 있는 보석과 장신구만 취급하겠죠.”

         

       프란체가 물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데?”

       “차근차근 프리다를 흡수할 겁니다.”

       “전에 말했던 계획 말하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떻게 하려고?”

       “첩자를 한 명 만들 겁니다.”

       “첩자?”

         

       프란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경쟁 상단, 프란체 코퍼레이션에서 엄청난 대우를 해준다. 이 소문 하나면 쉽게 정리될 겁니다.”

         

       그렇게 하나, 둘씩 사람이 옮겨오면 그게 촉진제가 되어 핵심 인력 대부분이 넘어올 거다. 이 방법은 현대의 업체에서도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흐응. 그러면 우리는 일단 계속해서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거네.”

         

       톡. 톡. 프란체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런데 그때까지 자본이 버틸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사용한 금액만 10억이 넘어. 아무리 내가 공작가에서 받은 돈과 빼돌린 돈이 있다고 해도 오랜 시간은 무리야. 공작님께서 지원을 안 해주실 수도 있고.”

         

       이미 그것도 염려해둔 문제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공작님의 지원이 없다고 해도 프란체 코퍼레이션은 혼자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프란체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해가 가지 않는 듯했다. 나는 설명을 덧붙였다.

         

       “세공사를 데려오기 전에 의류 사업은 대성공을 할 겁니다. 안드레아가 만든 결과물을 보신다면 바로 이해하실 거예요.”

         

       거기에 곧 열릴 황실 파티에 프란체가 그 드레스를 입고 참여한다. 그렇게 되면 가십거리는 프란체의 드레스로 쏠릴 것이다. 홍보의 최적기는 그때.

         

       한 달이면 모든 준비가 끝날 테니 주문이 폭주하겠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업이다.

         

       프란체가 말했다.

         

       “만드는 과정은 그때 봤고, 그가 만든 드레스는 나도 알고 있어. 한창 가면을 쓰던 시절 프리다 의류점을 자주 이용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정말 그렇게 대단한가? 생각해보면 아니란 말이야. 정말 사업이 손쉽게 풀릴까?”

         

       그런 의문 정도야 뭐. 쉽게 설명해줄 수 있지.

         

       “안드레아가 프리다에서 만들었던 드레스는 마담이 주도한 틀에 박힌 드레스입니다. 안드레아가 만들었다고 해도 아이디어는 그의 것이 아니죠.”

         

       나는 그리고, 라고 말하며 말을 이었다.

         

       “그때 공녀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창작자의 자율성을 존중하겠다고. 천재들은 대개 느낌으로 체화해서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해진 대로 만드는 건 그들의 천재성을 무시하니까요.”

         

       안드레아의 마음 가는 대로 만든 의상. 직접 구상하고 상상해서 만든 의상은 그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의상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다.

         

       프란체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뭐…. 그래도 결과물은 봐야 알겠지만.”

         

       그래. 결과물을 보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그럼 이제 안드레아를 만나러 가봅시다. 지금쯤이면 정리도 끝났을 거예요.”

       “그래, 그러자꾸나.”

         

         

       * * *

         

         

       프란체 코퍼레이션 건물로 들어오자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전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작업이 끝났나 보다. 나는 곧장 안드레아를 찾아갔다.

         

       “안드레아. 드레스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다만.”

         

       아, 하며 고개를 돌리는 안드레아.

         

       “공녀님께서 한 달 뒤 열릴 황실 파티에 참여하신다고 하셨죠?”

       “그래. 시간이 부족한 건 알고 있다만, 맞출 수 있겠나? 그때가 가장 중요해서.”

       “으음. 좀 무리해서 만들면 가능하긴 해요. 대신 제 전부를 보여드릴 수 없을 것 같지만요.”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안드레아가 만든 드레스라면 특별한 장식 없이도 특출난 디자인을 하고 있을 테니까.

         

       “그거라도 상관없어. 부탁하지.”

       “정말 괜찮으신가요? 공녀님이 입으실 드레스인데…….”

         

       내가 대답하려던 순간, 프란체가 구두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상관없단다. 어차피 드레스는 그걸 소화하는 사람의 문제기도 하니까.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드레스라도 그걸 소화해내지 못한다면 특별하지 않게 되지.”

         

       촤락. 프란체는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만든 드레스는 내가 완벽히 소화할 테니 부담 갖지 않아도 좋단다.”

         

       프란체의 말에 안드레아의 눈빛이 일렁였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그래, 그런 마음가짐이면 됐단다.”

         

       그녀 나름대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한 건가. 좋은 선택이다. 괜히 부추겼다간 결과물이 이상하게 나올 수도 있으니까.

         

       “바로 작업 들어갈게요. 자극을 받아서 그런지 벌써부터 손이 근질거리네요.”

         

       미소를 지으며 바로 재료를 챙겨 작업실로 향하는 안드레아. 프란체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 용건도 끝난 거 같은데. 이제 돌아가자꾸나.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도 좋지 않아.”

         

       나는 예, 라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마차를 타고 공작저로 돌아오고, 프란체의 방으로 들어왔다.

         

       “네가 그렇게 장담한 드레스가 어떨지 기대되는구나.”

         

       보면 깜짝 놀랄걸. 안드레아는 제국을 뒤집어엎을 재능이니까.

         

       “많이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내가 씩 웃던 그 순간. 예고도 없이 문이 열렸다.

         

       “프란체 데카르트! 대체 뭐 하는 짓이지?”

         

       에덴 데카르트가 눈썹을 좁히며 들어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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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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