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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축하할 일이 많은 날이다.

       

       첫 방송의 시청자는 무려 1,600명을 달성했으며,

       

       불과 2시간 사이에 도적홍보운동 후원금으로 287,000원이 입급됐다. 기부금 처리를 해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 아크 방송의 강퇴반사권도 얻었고.

       

       방송에서 부당하게 퇴출당할 뻔하는 경험은 도댓 방송 한 번으로 족하다. 아크 방송에는 결투재판 제도도 없으니까.

        

       젖어버린 속옷과 셔츠를 빨래통에 곱게 넣어둔 후,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어 에스프레소 잔과 함께 세팅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꾸준히 쓰다보니 손잡이도 있어서 소주잔보다도 오히려 좋았다. 용량이 미묘하게 더 큰 것도 마음에 들었고.

        

       그렇게 알록달록한 에스프레소 잔이 찰랑찰랑 찰 정도로 가득 따른 소주 한 잔을 쭈욱 들이키고 나니, 만족스러웠지만……

        

       뭔가, 부족했다.

        

       그래.

        

       이 정도의 성과를 자축하는데 더하여, 작은 실수에 대하여 스스로를 위로해주기까지 하는 자리라면, 역시 무언가 안주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름 파티니까. 손님은 없더라도.

        

       이제와서 배달을 시키긴 늦었지만, 편의점에서 냉동이라도 사와서 구색을 맞추고 싶어졌다.

        

       이럴 땐 고민을 길게 해 봤자, 시간만 지체될 뿐이다.

        

       셔츠 위에 후드티를 하나 더 걸치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로 현관으로 나가 신발에 발을 욱여넣었다.

        

       그러나 현관문을 여는 것과 거의 동시에,

        

       – 띵동.

        

       어째서인지 초인종이 울렸다.

        

       그렇게 이미 열려버린, 이미 내 체중이 실려 점점 벌어지고 있는 문의 틈새로, 익숙한 얼굴이 점점 드러나고 있었다.

        

       차가운 눈매와 대비되는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조금은 놀란 듯한 사람.

        

       “아. 어, 언니.”

        

       내 얼굴에서 발까지 훑듯이 살펴본 그녀의 시선이, 이내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내 어깨 너머로 보이는 방 안쪽으로 옮겨갔다.

        

       ……저 각도에서, 테이블에 깡소주 세팅한 거 안 보이……겠지?

        

       “……예나야……?”

        

       보이는구나.

        

       오늘, 진짜 되는 일이 없네.

        

       * * * *

        

       인간의 정체성은 영혼과 육체 중 어디에 있을까. 

       

       나는, 지난 6개월 동안 그러한 고민을-

       

       “예나야. 듣고 있어?”

        

       부드러우면서도 폐부를 찔러 들어오는 목소리가, 망상으로 도피하려던 나를 다시 현실로 끌어내렸다.

        

       “응…….”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조금씩 배가 고파지는 걸로 봐선, 30분은 지난 것 같아.

        

       식어버린 소주병의 표면에서 또르륵 흘러내리는 물방울만이 내 심경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언니가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잖아. 혼자, 안주도 없이 소주를 마시는게 얼마나 위험한 징조인데…….”

        

       언제 끝나는 걸까-라는 의문은, 끝나기는 하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변했다가, 그냥 하고 싶은 생각이나 하자-로 진화한지 오래였다.

        

       나는 고개를 숙여 바닥을 바라보며 다시 사과의 말을 입에 담았다.

        

       “응……미안해.”

        

       바라건대 저기,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소주를 딱 한 모금만 할 수 있다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앞에 두고 갈증으로 사망하는 이들이 이런 심정일까.

       

       목이 타는 건지, 속이 타는 건지 모르겠지만. 

        

       “약은 잘 챙겨 먹고 있어?”

        

       “응.”

        

       이제는 달리 생각하지 않아도, 타이밍에 맞춰서 자동으로 대답이 되는 느낌이다.

        

       일종의 리듬게임과도 같다.

        

       위에서 내려오는 노트를 보면서, ‘왼손 검지-중지-약지-검지 순으로 눌러야 해’라는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손가락이 움직이듯이,

        

       ‘응’, ‘미안해’, ‘그럴게’, ‘신경 쓸게’ 등이 타이밍에 맞게 자동으로 입에서 굴러 나오는 느낌.

        

       “오늘도 먹었고?”

        

       “아, 응.”

        

       “설마 술이랑 같이 먹은 거야?”

        

       “어?”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사고는 ‘자동화되었으니 이제 신경을 안 써도 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터졌다.

        

       “예나야아……! 우울증 약이랑 알코올 같이 섭취하면 큰일난다고, 의사 선생님도 정말 여러 번 당부하셨잖아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예리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오른손을 꼭 쥔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은 손으로 빠르게 손사래를 치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 아! 그 약 얘기였구나. 요즘 괜찮아서, 우울증 약은 잠시 쉬고 있어.”

        

       “……그래? 그럼 무슨 약을 먹으려 했던 건데?”

       

       “요즘 속이 자주 안 좋아서. 위장약.”

        

       특히 지금, 안 좋아. 라는 말은 애써 씹어 삼켰다.

        

       내 불찰이다.

        

       얼마 전부터, 이예리를 대하는 태도를 본질적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너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집으로 찾아와서, 페이스가 말렸다.

        

       이예리는 공격력이 너무 강하다.

        

       능동을 취하게 내버려두면, 도저히 방어해낼 수가 없다.

        

       어차피 대화를 해야 한다면, 차라리 대화 주제라도 내가 선정해야 한다.

        

       “밥, 먹으러 갈래?”

        

       일단, 입에 음식을 넣는 동안은 잔소리가 멈추지 않을까.

        

       복스럽게 많이 먹으면, 안심할지도 모르고.

        

       극한의 연비를 자랑하는 이예나의 몸에는 평소 음식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먹방이라도 찍어볼 요량이었다.

        

       “밥?”

        

       “나 저녁 못 먹어서. 주변에 아직 하는 식당 많을텐데.”

        

       “지금 시간이 벌써 10신데 왜 아직도-“

        

       “그냥.”

        

       또 다시 공수를 전환하려는 이예리의 움직임을 빠르게 차단하고, 바들바들 떨리는 입꼬리를 애써 올리며 웃어보였다.

        

       “왠지 오늘 언니가 저녁 안 먹고 올 것 같아서. 안 먹고 있었어.”

        

       ……나는 임기응변에 약한 체질인 걸까.

        

       떠오르는 대로 던진 아무말이 논파당하기를 기다렸으나, 이예리는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어내기는 어려웠지만, 일단 잔소리는 멈췄으니까.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 * *

        

       ‘평소에도, 혹시 언니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저녁을 미루던 거였을까?’

        

       이예리는 설마 동생이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예고 없이 방문하는 것이 본의 아닌 희망고문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을 떨치기 힘겨웠다.

        

       ‘앞으로는……미리 정한 날에만 가야지.’

        

       미안함과 고민으로 버무려진 후회에 정신이 팔린 채 동생이 이끄는 데로 멍하니 따라나간 그녀는, 어떤 24시간 설렁탕 집에 도착하고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여기, 도가니탕도 맛있어.”

        

       독립을 한 덕분일까. 그녀의 동생은 못 본 사이에 음식 취향의 폭이 꽤나 넓어진 모양이었다.

        

       파를 듬뿍 넣은 설렁탕을 입에 야무지게 밀어 넣고는, 깍두기까지 시원하게 베어 무는 이예나.

        

       탄수화물과 나트륨 모두 과다하다는 이유로 선수 시절 입에도 못 대게 했던 음식이어서 좋아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순간 들었지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런 복잡한 이유 따위를 상상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자기도 모르게 흐뭇하게 웃어 보인 이예리는, 앞에 놓인 설렁탕을 크게 한 술 떠서 입에 넣었다.

        

       ‘맛있네.’

        

       바쁜 일과에 저녁은 샐러드로 때우거나 건너뛰는 게 일상이었던 그녀의 몸에, 뜨끈한 국물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듯 했다.

        

       “……입에, 맞아?”

        

       조금 불안한 듯이 물어보는 이예나를 보고, 이예리는 다시 한번 작게 웃어보였다.

        

       “맛있네. 뭐 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시켜. 수육 시켜 줄까?”

        

       “아! 그러면-”

        

       “술은 빼고.”

        

       “응…….”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이예리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인 채 다시 국밥에 열중하는 그녀의 동생에게 한 차례 더 잔소리를 하려다가, 스스로를 제지하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술이 몸에 나쁘다지만, 혼자 마시는 것보단 낫겠지.’

       

       그런 생각과 함께 텅 빈 식탁에 덩그러니 놓인 소주병이 다시 떠오른 그녀는, 마침 지나가던 종업원을 불러세웠다.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이슬, 빨간 거요.”

        

       어느 새 고개를 들고 눈을 빛내는 이예나의 신속한 대답으로 소주 종류가 정해졌다.

        

       그렇게 소주를 한 잔씩 서로 따라주며, 지금은 언니가 같이 있으니 괜찮지만 앞으로 술은 적당히 마시라는 애정어린 조언을 해주려던 순간-

        

       “오늘 금요일인데, 시간 괜찮아?”

        

       호흡의 틈새를 끊어내는 듯한 절묘한 타이밍으로, 이예나가 툭-하고 질문을 던졌다.

       

       “아, 응. 내일 출근할 거니까 괜찮아. 술은-”

        

       이어서,

       

       “요즘도 많이 바빠?”

        

       “늘 비슷해.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런데-”

        

       계속.

       

       “잠은 충분히 자는 거야?”

        

       “……최대한? 사무실에서 낮잠도 자니까 너무 걱정하지는않아도-”

       

       반복해서,

        

       “밥은 잘 챙겨먹고 있어?”

       

       “응? 그, 렇지?”

       

       반문의 기회를 허용하지 않는 타이밍.

       

       나오나였다면, 멋진 모션과 함께 패링 판정이라도 뜨고 있었을 것이다.

        

       “바쁘다고 건너뛰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아, 가끔……?”

        

       “그러면 안 되지. 과일이라도 챙겨 먹어.”

        

       “응……그럴게.”

        

       “오늘도 저녁 안 먹은 거지?”

        

       선수를 치듯 계속해서 들어오는 이예나의 질문에 대답하다보니, 어느새 역으로 걱정받는 입장이 되어버린 이예리.

        

       술이 한 잔 한 잔 들어갈 때마다 혀를 더 매끄럽게 굴리는 그녀의 동생을 향해 손을 들며, 끊길 기미가 안 보이는 질문의 연쇄를 잠시 제지했다.

        

       “아. 저녁, 하니 생각났어.”

        

       “……뭔데? 평소에도 저녁 안 먹는 거지? 그러면-”

        

       “예나야. 그, 지금 컴퓨터 전에 언니가 사줬던 그 컴퓨터지?”

        

       이예리는 무언가 곤란한 표정으로 갑자기 입을 다문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을 이었다.

        

       “어제 회사 후배들이랑 밥 먹다가 우연히 게임 얘기가 나왔는데, 후배가 나오나하려면 좋은 컴퓨터 써야 한다고 하더라고. 안 그러면 하는 맛이 안 난다나?”

        

       가난한 로스쿨생 시절, 용돈과 과외비를 모아서 동생에게 선물해줬던 컴퓨터.

        

       사랑은 담겨있었지만, 그 스펙을 들은 후배에 의하면 나오나를 즐기기엔 턱없이 부족한 성능이었다.

        

       “언니가 후배한테 물어봐서 이렇게 새 컴퓨터 주문해 뒀으니까, 한 번 써봐. 앞으로 필요한 거 있으면 그렇게 숨기지 말고 얘기해 주고.”

        

       그렇게 스마트폰으로 곧 배송될 컴퓨터의 상세한 스펙이 담긴 ‘주문내역’ 화면을 보여주자,

       

       “아.”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그 내용을 살펴본 그녀의 동생은, 어째서인지 그 때부터 질문 공세를 멈추고는, 이어지는 이예리의 이야기에 성심성의껏 대답하기 시작했다.

       

       

       고도의 보상이 수반된 잔소리를 듣기 좋은 조언과 구분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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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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