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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예사라의 행동은 ‘예상 밖’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껏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고등학교로 들어온 순간부터, 예사라의 행동이 다소 이상하긴 했다.

        

       같은 중학교를 나온 학생들은, 예사라와 같은 반이었건 아니건 예사라가 어떤 인물인지 조금씩은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사람들 곁으로 절대 먼저 다가가지 않는 존재. 초등학생 때는 다른 이들의 관심을 갈구하며 온갖 이상행동을 했다고 하지만, 결국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수긍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이상 바라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사실, 같은 반 아이들 처지에서는 그게 편했다. 상대방에게서 별다른 반응을 볼 수 없다면, 당연히 자신들이 무시하기도 그만큼 편하니까.

        

       그런데, 그런 예사라의 행동은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을 기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수아가 예사라에게 말을 걸었다.

        

       심지어 예사라는 그 말을 받아주었다.

        

       둘은 졸업식 때 함께 사진을 찍었다.

        

       ……졸업앨범에조차 실리지 않은 예사라의 사진을, 둘이 함께 찍었다는 것이다.

        

       이건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이수아는 이미 교내에 많은 친구를 만들어 놓았고, 인기도 상당히 좋은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사실상 금기나 다름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그런 이수아라는 존재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다른 학생들이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이수아도 함께 무시하면 될 일이다. 이수아와 예사라가 엮이게 된 이상, 이수아와 대화를 하면서 예사라와 엮이지 않는 방법이 없었다.

        

       처음에는 이수아와 대화를 하며 예사라를 무시하는 시도를 해본 아이도 있었지만, 이수아와 대화하며 예사라의 이야기를 피해 가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금방 드러났다. 이수아는 자신이 중학생이었던 시절 예사라를 무시했던 것을 마음의 짐으로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과 대화할 때마다 이수아는 일부러 예사라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은 그럴 때마다 입을 다물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이수아도 예사라처럼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예사라는 입학 후에 또 다른 친구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무시하기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그 아이는 외부 입학생이었으니까. 그러니 교내에 지인이라고 할만한 사람도 없었다. 애초에 외부 입학생은 무시당하기 쉬운 위치에 있었고, 예사라와 함께 싸잡아 무시하기도 쉬웠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둘은 친해도 너무 친했다.

        

       유하늘은 예사라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가갔다. 예사라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유하늘을 받아들였다. 둘은 쉬는 시간에는 언제나 대화를 나누었고, 유하늘은 예사라에게 장난을 치기도 했다.

        

       예사라와 반의 다른 아이들은 서로 무시하는 관계다. 하지만 그 관계 때문에 예사라의 그 예쁜 얼굴마저 완벽히 무시하는 것은 어렵다.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그 외모. 접근하기는 힘들지만, 다소 차가운 외모에 분위기를 더해주는 도도함. 애써 무시하고는 있지만, 예사라의 그 ‘절벽 위의 꽃’이라는 분위기만큼은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하지만, 유하늘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분위기를 깨부숴버렸다.

        

       예사라의 옆구리를 찌를 때마다, 예사라는 괴상하지만 귀여운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기존의 분위기와 너무나 상반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 모습은 웃겼다.

        

       웃음은 생리현상이다. 철저하게 훈련받으면 억지로 참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아이들은 웃음을 참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다. 어차피 그저 서로 무시하는 관계였으니까.

        

       ……최근 들어, 예사라 주변에 앉아있는 아이들은 짜증 나게 구는 상대나 소리 지르는 상대보다 웃긴 상대를 참아내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

        

       예사라는 그 후로도 많은 일을 일으켰다. 교내에서 굉장히 인기 많은 남자 둘과 대화를 나누었다. 심지어 이 둘은 함부로 무시하기도 힘들었다. 한쪽은 이 나라에서 유진 그룹 다음으로 큰 호명 그룹의 후계자였다. 잘생겨서 인기도 많았다.

        

       다른 한쪽은, 어쩌면 한국 축구계의 신성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의 남학생이었다. 정작 본인은 축구에 목숨을 걸 생각이 없는 모양이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인기가 많았다. 잘생기고 운동 잘하고 성격 좋은 인간을 싫어하는 여자는 동성애자 뿐일 테니까.

        

       성적인 본능은 그만큼 참기 어려운 것이다. 이 두 사람을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여학생은 이 학교 내에는 없었다. 그래서 그저, 그 둘에게 말을 걸면서도 그 둘이 예사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를 빌 뿐이었다.

        

       그렇다. 예사라의 겉을 억지로 감싸고 있는 그 침묵의 감옥은, 그 감옥의 수문장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얇고 약했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 것이 오늘이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학교를 자신들의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생각은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일하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세상에 나와 수많은 악의와 부딪히고,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처세술이 고작 사회 초년생의 서투른 몸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 위해선 학교 밖으로 나가 일을 해보는 것이 제일이다.

        

       아니면 외부인이 억지로 알려주거나.

        

       어떤 정신 나간 사진가가, 예사라의 사진을 찍었다. 심지어 어떤 정신 나간 언론사가 그 사진을 구매해 기사를 쓰기까지 했다.

        

       심지어 그 기사는 열애설이었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대문짝만하게 박히기까지 했다.

        

       물론, 유명 연예인의 열애설만큼 대단한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학교’라는 닫힌 사회 내부에 소문이 퍼지기에는 충분한 사건이었다.

        

       게다가, 그 열애설의 주인공 둘이 모두 한 반에 있기까지 했다.

        

       ……두 사람에게 시선이 빼앗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 학교 내에서 아무리 예사라를 투명 인간 취급해도, 학교 바깥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다.

        

       기사가 다른 언론사로 퍼지고, 커뮤니티로 퍼져 올라가고, 사람들이 예사라와 유하늘의 얼굴과 몸매, 입고 있는 옷을 두고 품평하더라도, 고작 고등학교 내의 학생들이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이 학교 안에 있는 아이들도 아직 성적인 호기심이 왕성한 십 대 청소년들이다.

        

       누군가 연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궁금해진다. 심지어 그 연애하는 두 사람이 동성이라면, 더더욱 신경 쓰인다.

        

       그리고, 자신들에 대한 걱정도.

        

       반에 동성애자가 둘이나 있다면, 체육 시간에 옷은 어떻게 갈아입는가? 반 아이들이 무시하더라도, 두 사람의 시선은 반 아이들을 향할 텐데.

        

       투명 인간 취급이라고 해도, 결국 ‘취급’일 뿐이다. 두 사람이 진짜로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그런 걱정에 쐐기를 박아버린 사건이 터졌다.

        

       “자, 와서 앉아.”

        

       예사라는, 유하늘을 보면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예사라가 눈웃음 짓는 것을 훔쳐본 아이들은 많았지만, 그렇게 환하게 웃는 표정은 처음 보았다.

        

       그 순진무구한 표정은 너무나 예뻤다. 순간 그쪽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눈길을 미처 제어하지 못했을 정도로.

        

       게다가, 이건 일종의 선언이기도 했다.

        

       루머가 어쨌건, 열애설이 어쨌건.

        

       우리는 실제로 이런 사이인데 어쩌라고.

        

       그런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 반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예사라 본인의 진짜 뜻이 어떻든.

        

       *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던 유하늘이, 갑자기 양손으로 자기 뺨을 짝! 때렸다.

        

       “흡!”

        

       그리고 그렇게 기합을 주며 정신을 차리더니, 저벅저벅 당당한 걸음으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붙여둔 옆자리 의자에 털퍼덕 앉았다.

        

       그래, 너라면 그렇게 나와야지.

        

       기사 내용이 아주 오해하기 좋게 나오긴 했지만, 우리 둘은 친구 사이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그걸 굳이 증명해 보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주변 시선 같은 거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뭐.

        

       예사라가 뭘 하건, ‘없는 거’ 취급이었으니까.

        

       앞으로도 한 번 잘해보라지.

        

       자리에 앉은 유하늘은 부스럭거리며 가방을 뒤졌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초콜릿 한 봉지를 꺼냈다. 작은 초콜릿이 사탕처럼 하나씩 포장되어 들어있는 제품이었다.

        

       큰 봉투를 뜯고, 안에 있는 초콜릿을 하나 꺼내, 말없이 나에게 들이민다.

        

       잠깐 그 초콜릿을 바라보다가, 나는 입으로 받아먹었다. 내 입술이 손가락에 살짝 닿은 것 같았지만, 유하늘은 크게 신경 쓰는 표정이 아니었다.

        

       “맛있어?”

        

       언제나처럼 유하늘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주변의 아이들은 어떨지 잘 모르지만, 저 멀리서 누군가가 목을 길게 내빼고 이쪽을 보는 것이 느껴졌다.

        

       수업 직전인데도 책상을 대놓고 붙이고 앉아있었으니까.

        

       만약 조금이라도 오지랖이 있는 녀석들이라면, 이건 흘끗거리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광경일 거다. 오히려 주변에 있는 애들은 나를 보면 대놓고 티가 나니까 억지로 참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만.

        

       수업 시간에는 어떻게 될지 보자고.

        

       *

        

       교실로 들어오던 교사는 붙어 앉아있는 나와 유하늘을 보더니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뭐라고 말이라도 하려는 듯 몇 번 입을 벙긋거리다가 이내 다물었다.

        

       그래, 뭐라고 하겠어.

        

       적어도 나를 지적하지는 못한다. 그러면 나를 무시한다는 원칙에 어긋나니까.

        

       그렇다고 유하늘을 지적하기도 어렵다. 지적하면 왜 그러고 앉아있냐는 말부터 나올 텐데,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면 내가 걸릴 수밖에 없거든.

        

       나는 투명 인간이지만, 그렇다고 나를 ‘완벽하게’ 무시할 수도 없다. 나에게 성적을 줘야 하고, 출석부에는 내 이름도 적혀있으니까. 학교에 다 나가지 않아도 개근상을 받을 정도로 유진 그룹이 돈을 먹이고 있으니, 유하늘이 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내가 이곳에 실존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유하늘, 당장 책상을 옮기지 않으면 태도 점수를 깎겠다.”

        

       그래, 이렇게 다짜고짜 협박조로 나오거나.

        

       높은 성적 때문에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유하늘은, 태도 점수 1점 감점도 큰 타격이다.

        

       하지만, 유하늘은 그런 선생의 말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저는—앗.”

        

       그리고 반항하려는 유하늘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유하늘을 보고 고개를 젓는다.

        

       “…….”

        

       유하늘은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

        

       내가 자신의 책상을 붙이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유하늘을 따라 일어나, 무거운 책상을 다시 원위치시키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유하늘의 의자를 가져다 둔 다음—

        

       그 의자에 그대로 앉아버렸다.

        

       “…….”

        

       교실이 침묵에 감싸였다.

        

       “……자리에 앉아라.”

        

       선생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말했다. 유하늘에게 한 말이었다. 아마, 그렇게 하면 유하늘이 나를 쫓아내고 자신의 자리에 앉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

        

       유하늘은 잠시 고민하다가, 내 자리로 가서 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걸음은 한 걸음도 가지 못해서 멈췄다.

        

       내가 몸을 돌리는 유하늘의 소매를 붙잡고 있었으니까.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유하늘에게, 나는 고개를 한 번 저어 보였다.

        

       그리고 손으로 내 허벅지를 두드렸다.

        

       “……어……?”

        

       유하늘의 입이 딱 벌어진다.

        

       그리고 반에 있는 모든 사람의 입이 딱 벌어진다.

        

       나는 유하늘을 올려다보며 빙긋 웃어 보였다.

        

       그래, 나는 이 반 안에서 없는 사람이다. 지난 수 년 동안 그래왔다.

        

       그렇다면, 당연히 내가 앉아있는 이 의자도 비어있는 거 아니겠는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식은땀으로 서서히 앞머리가 젖어가는 선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 한 번 무시해 보시지.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이는 나를 보고, 교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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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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