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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당소영이 괴짜임에도 당가에서 내쳐지지 않은 이유 두 번째.

         

        지식뿐만 아니라, 영물을 다루는 재능 자체가 탁월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그녀는 동물, 특히 독을 다루는 짐승을 비롯한 영물들과 잘 교감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냥 교감이 잘 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당가의 사람들이 그런 재능의 편린을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독과 무를 수련하는 대신, 지식과 그녀의 능력에 집중하게 했다.

         

        당가의 지원에 그녀의 재능이 꽃을 피워 지금의 능력이 되었다.

         

        영물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당가의 장로보다 뛰어났다. 그녀가 영물의 관리를 맡은 건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능력은 단지 영물의 상태를 알아보는 것이다.

         

        심상을 보는 건 그녀의 능력이 아니다.  내재된 힘, 단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내단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그녀의 한계였다.

         

        그녀가 심상을 볼 수 있는 건 영물 그 자체가 허락해 주거나, 파장이 잘 맞는 경우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단편적인 장면만 볼 뿐이었다.

         

        일렁거리는 화염, 세찬 해일, 떨어지는 벼락.

         

        그런 것들이 그녀가 볼 수 있는 심상의 한계였다.

         

        해석하는 건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본 심상은 그녀가 지금까지 봤던 것과 달랐다.

         

        심상이 너무 구체적이었다.

         

        아니, 노골적이라는 표현이 맞으리라.

         

        숨기려는 의지도 없었다. 보통의 심상은 흐릿한데 그녀가 본 건 너무나 선명했다.

         

        발톱 하나하나, 가죽의 질감 하나.

         

        수상한 영물과 더 수상한 인간과의 조화.

         

        그녀는 오늘 본 것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새로운 취향을 눈 뜨게 했다는 건 역시 언젠가는 깨달을 것이다.

         

         

        *

         

        억울하다.

         

        그게 나의 사명이라고?

         

        아니. 그건 악의적인 편집일 거다.

         

        내가 죽기 직전, 그리 간절히 바랐던 소원이 있다.

         

        내 하드에 있는 마공서들을 전부 불태울 힘을 달라고.

         

        그러니까, 당소영이 본 그 이미지들을 없애는 게 내 사명이다.

         

        일부만 보고 날 폄하하는 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손을 갖다 댄다고 그걸 알 수 있다니.

         

        딱 봐도 사기다.

         

        그런 고결한 능력을 사용할 위인으로 보이진 않는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잡아먹지 말아 주세요. 축축한 거 싫어요….”

         

        반쯤 삼킬 뻔한 당소영을 뱉어냈다.

         

        다시는 그 일을 입 밖으로 내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였다.

         

        “푸헥! 후우…. 역시 고 대협이에요. 침 범벅이 됐는데 독이 하나도 안 묻었어요! 내공이 심후한 만큼 독 같은 것도 조절하실 수 있는 거군요.”

         

        큰일 났다.

         

        이제 날 그리 무서워하지 않는다.

         

        메이드복 스피노와 스쿨미즈 테리지노를 본 탓일까, 공포의 역치가 올라간 거 같다.

         

        당소영은 조금 빨개진 얼굴로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아냈다.

         

        “고, 고 대협의 심상은 정말 대단하네요…. 경지에 다다른다는 건 이런 거구나. 저 같은 범인은 그냥 지금에 만족해야겠어요….”

         

        콱.

         

        “흐엑! 축축해요!”

         

        그렇게 한바탕 해프닝이 끝나고, 당소영은 모닥불에 젖은 몸을 말렸다.

         

        “긴가민가했는데, 역시 고 대협은 고모도가 맞으셨군요.”

         

        난 고 씨도 아니고 코모도도마뱀도 아니다.

         

        대체 무슨 이유로 나를 그걸로 착각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긴가민가하다가 확신하게 된 것도 또 이상하다.

         

        말투만 보면 꼭 스피노 테리지노 더블 믹스를 보고 확신한 거 같잖아.

         

        코모도는 스피노와 테리지노의 사진을 모으고 다닌다는 괴담이라도 있는 걸까?

         

        정말 끔찍한 이야기다.

         

        그런 사진을 모으고 다니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악마겠지, 악마.

         

        “방금 본 심상은…. 고모도가 아니라면 보일 수 없던 거였어요.”

         

        어쩐지 당소영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난 코모도가 아니라 악어왕도마뱀이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 쓰이진 않는다.

         

        “제가 봤던 그 어떤 심상보다 충격적이었어요. 달 대협의 심상은 그냥 평범했는데….”

         

        한 번 더 내 입속을 구경시켜 주려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달 대협.

         

        저 이상한 이름의 정체가 궁금한 탓이었다.

         

        “아, 저만 아는 이야기를 했네요.”

         

        코모도는 고 대협.

         

        그렇다면 달 대협은?

         

        “달로포라고 당가에서 관리하던 영물이 하나 있어요.”

         

        달로포?

         

        …설마 딜로포사우루스 말하는 거야?

         

        그 독 찍찍 뿌리는 그 공룡?

         

        “사실 이곳에 저 혼자 온 건 아니거든요. 달로포와 함께 왔는데… 마교주를 만나서 결국 뿔뿔이 헤어지고 말았어요.”

         

        저런, 안됐구나.

         

        그런데 마교주라니.

         

        그런 위험한 놈이 이곳에 왜 있는 거야.

         

        여기가 십만대산도 아니고.

         

        “고 대협의 힘도 강대하시지만… 마교주를 보면 바로 도망쳐야 해요.”

         

        당연히 도망가야지.

         

        “무림인의 피로 목욕을 한다는 괴소문까지 있으니, 얼마나 잔인하고 비틀렸는지 아시겠죠?”

         

        어우.

         

        그런 사람이랑 엮이는 것만큼 불쌍한 일은 없을 거다.

         

        “아, 달 대협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게 좋겠네요. 달로포는 제 통제에서 벗어났어요. 나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고 대협이랑 만날 수도 있겠네요.”

         

        만나기 싫은데.

         

        “고 대협을 보면 무작정 달려들 수도 있어요. 고모도의 힘은 독물에게 있어도 탐을 낼 수밖에 없는 거니까요. 조심해야 해요.”

        “그르르륵.”

        “아, 아니. 고모도 대협이 지신다는 건 아니고…. 응, 맞아. 방금 독물이라고 했잖아요? 이건 비밀인데, 달로포 대협은 독공의 고수예요.”

         

        비밀이 맞긴 할까.

         

        볏을 쫙 펼치고 독을 뿌리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데.

         

        “고모도 대협이라면 독을 버틸 수 있을 거예요. 마주치더라도 생포를 할 수 있다는 거죠! …물론 현실적으론 힘들겠죠. 성격이 더럽기도 해서 어쩐지 날 잡아먹고 싶어 하는 거 같기도 하고….”

         

        당소영은 내 이빨을 살짝 쳐다봤다.

         

        “달로포를 잃으면 제 입지가 아주 위험해지지만, 대협의 독을 가져간다면….”

         

        내 독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거 같은데, 이 독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그냥 흔하디흔한 독 이빨이다. 그런데 MP 5를 소모하는.

         

        투스의 진심전력 물기의 효과가 더 뛰어날 수도 있다.

         

        “그, 그래도 최선은 생포예요! 알겠죠?”

         

        아니, 최선은 안 만나는 거지.

         

        난 독 쓰는 공룡이랑 싸우고 싶지 않아.

         

        독 쓰는 놈들은 하나 같이 맛없거든.

         

        둘이서 생긴 일은 둘이 풀렴.

         

        고개를 홱 돌렸다.

         

        이 일에 관심 없다는 뜻이다.

         

        “고, 고 대협!”

         

        당소영이 내게 달라붙었다.

         

        “달로포의 독이 궁금하지 않아요?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아니, 궁금하지 않다.

         

        볏을 펼치고 찍찍 뿌리는 거잖아.

         

        나 그거 많이 봤어.

         

        “평소에는 목의 볏을 접어뒀다가 갑작스럽게 펼치면서 촤작! 어때요? 아, 그리고 다른 독도 있는데요. 미혼독이랑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상대에게 최면이나 환각을…. 고, 고 대협? 지금 자는 거예요? 이, 일어나봐요! 이건 중요한 이야기예요!”

         

         

        *

         

         

        장봉은 풀숲에 누운 채로 말했다.

         

        “후우…. 다들 살아는 있소?”

         

        다섯 명의 무림인은 모두 숨이 붙어 있었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천운이었다.

         

        청록색의 용이 쫓아올 때, 적어도 하나는 죽을 거라 생각했다.

         

        등평도수와 벽호유장공을 펼쳤을 땐 셋이 죽을 거라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입에 검을 문 걸 확인 했을 땐, 한 명이 사는 것도 기적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다들 나 덕분에 산 줄 아시오.”

         

        아니, 한 명의 낙오자가 있긴 했다.

         

        당소영. 혈사자가 버리고 도망간 여성의 이름.

         

        혈사자는 눈을 부라리며 위협적인 어투로 말을 이었다.

         

        “우린 이제 공범이오. 혹시라도 탈출해서 당가의 여식 이야기를 하다간… 어떻게 되는 줄 안다고 믿겠소.”

         

        그의 말에 무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사자가 당가의 여식을 밀어, 짐승에게 잡아먹히게 했다.

         

        이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가게 되면 혈사자는 무조건 죽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은 살 것이냐?

         

        그것도 아니다.

         

        그걸 방관하고 당소영을 구하지 못한 것에 책임을 지고 죽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제보한다면 살 수 있나?

         

        아니, 그것 역시 아니다.

         

        처음에는 정보의 대가로 막대한 포상을 줄 것이다.

         

        그 돈으로 무언가를 해보려는 순간, 죽고 말 거다.

         

        물을 마시던 중에, 밥을 먹던 중에, 그것도 아니면 잠을 자던 중에.

         

        당가란 그런 존재니까.

         

        “우리가 미쳤다고 그러겠소? 나중에 제사나 한번 지내고 말지.”

         

        당소영이 죽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인들은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했다.

         

        “후우. 그래도 이 정도면 안전한 거 같으니, 휴식을 취해도 좋을 거 같소.”

         

        장봉의 말에 무인들이 동의했다.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던 것이다.

         

        키가 큰 풀 더미에 몸을 숨긴다면 다른 짐승에게 발견될 가능성도 작을 것이다.

         

        무인들은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했다.

         

        “혈사자 공. 배가 좀 고프지 않소?”

        “이 상황에 무슨 말이오.”

        “오다가 열매를 본 거 같은데, 같이 가지 않겠소?”

        “하, 뭐 둘이 가야 하는 이유가 있나?”

        “내 손이 이래서….”

         

        쯧.

         

        혈사자는 혀를 찼다.

         

        저 사내는 최소한의 자존심도 없는 건가.

         

        그러면서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저지른 죄가 있으니까.

         

        당가에게 고발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하는 건 나쁘지 않을 것이다.

         

        혈사자는 장봉을 따라 풀숲을 걸었다.

         

        “에잉. 뭐, 바로 코 앞이었구만. 같이 가자 그러는 거요.”

         

        처음 보는 열매였다.

         

        이름은 몰라도 꽤 먹음직하게 생긴 그 열매를 땄다.

         

        “이제 됐소?”

        “아니, 조금 더.”

         

        혈사자는 장봉의 말대로 앞으로 더 걸었다.

         

        거대한 나무가 보였다.

         

        곳곳에 깃털 같은 나뭇잎이 있는 나무였다.

         

        “장봉. 열매가 하나도 없는데 뭘 본 게요?”

        “조금 더 앞으로 가면 알게 될 거요.”

         

        이게 뭐 하는 짓일까.

         

        혈사자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다시 든 순간,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커다란 영물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보았던 청록색 용보다 더 거대했다.

         

        잠깐 놀랐지만, 혈사자는 곧 그 영물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 그 당가에서 보낸!”

         

        이름이 뭐였더라.

         

        그래, 달 대협.

         

        괜히 반가웠다.

         

        나름 당소영이 먹이를 챙겨주는 모습도 봤다.

         

        비록 그녀는 죽었지만, 저 영물은 그 사실을 모를 것이다.

         

        혈사자는 머리를 굴렸다.

         

        그 작은 여자가 저 영물을 통제했는데, 자신이 못할 게 뭐 있나.

         

        크기는 아까 본 영물보다 크지만, 어쩐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비늘도 반들반들하고, 목 부근에 살짝 붙은 깃털도 복슬복슬해 보였다.

         

        꼭 한번 만지고 싶다는 욕망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

         

        한 번 만져보자.

         

        그렇게 그가 손을 뻗으려는 순간이었다.

         

        “정신 차리게에에에에!”

         

        아주 멀리서 장봉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봉은 분명 옆에 있지 않던가?

         

        분명 팔을 다쳐서 열매를 같이 따려고….

         

        …장봉이 팔을 다쳤었나?

         

        “왜, 왜 거기에! 빠, 빨리 도망가게!”

       

       

        홀렸구나.

         

        그것도 아주 단단히.

         

        그걸 깨달은 건,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제가라아아알! 도, 도망가아아아아!”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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