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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빌헬름이 그렇게 엄포를 놓은 것과 달리, 성국으로 가는 길 자체는 그리 험하지 않았다.

        ​

        애초에 제국의 수도에서 성국으로 가는 길은 그리 험한 길이 아니었다. 제국이 특별히 신경 써 길을 잘 닦아두었다기보다는 그냥 성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대로를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대로 주변에서 강도가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갑자기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 정도야 6위계의 마법사와 소드 익스퍼트에게는 위협조차 되지 못했다.

        ​

        그러한 여정 위에서, 마리아는 마차 뒤 칸에 앉아 가만히 빌헬름을 바라봤다.

        ​

        항상 두 다리로 걸어 다닌 탓인지, 그는 마차를 모는 데는 썩 소질이 있진 않았다. 그래도 기사라고 말을 모는 건 잘했지만, 여하간 그 탓에 마차가 좀 많이 통통 튀었다.

        ​

        다만 마리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정도는 3위계 아래 단계의 마법으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였다. 그걸 얼마나 오래 지속 가능한가는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

        “에잇, 이놈의 축생 놈이. 빌린 말만 아니면 확 잡아먹어 버렸을 텐데.”

        ​

        귀족이 하는 말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흉흉한 말에 마리아는 웃음을 흘렸다.

        ​

        ‘오랜만이네요. 이런 것도.’

        ​

        옛날, 그러니까, 마리아와 그가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때가 있었다. 아직 서로 말도 놓지 못하고 쭈뼛거릴 무렵, 그때도 서로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이렇게 빌헬름 혼자 이상한 소리를 떠들곤 했었다.

        ​

        “추억이네요.”

        ​

        “응?”

        ​

        “아뇨. 혼잣말이에요.”

        ​

        그것도, 벌써 2년도 더 전의 이야기였다.

        ​

        ――

        ​

        지금이야 마리아가 이래저래 칼같이 황제의 명령을 수행하며 철혈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수도 바깥의 저택에 살 때만 해도 마리아는 굉장히 소심한 편에 속했다.

        ​

        정확히는, 바깥으로 자신이 드러나는 걸 굉장히 두려워했다.

        ​

        괜한 우려는 아니었다. 마리아의 어머니가 병마로 돌아가시고, 그녀의 인생은 줄곧 험난했다.

        ​

        아직 어렸던 마리아는 새 황후를 진짜 어머니로 여기진 못해도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했고, 황후도 처음에는 아직 어린 마리아를 그럭저럭 잘 받아들여 주었다.

        ​

        하지만, 황후가 아들을 낳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

        아들을 황제로 올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황후는, 아들의 모든 경쟁자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

        가장 먼저 노린 것은, 이미 어느 정도 머리가 굵고 지지기반을 마련한 태자가 아닌 다른 자녀들이었다.

        ​

        물론, 황후도 수도에서 황족을 죽였다간 소란이 일어날 거란 걸 잘 알았기에 우선 그들을 수도에서 쫓아내길 시도했다.

        ​

        안타깝게도 아직 어렸던 마리아는 거기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 하물며 유모조차 그리 배경이 탄탄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가장 먼저 수도 바깥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

        “안 돼, 유모. 나만 두고 가지 마아….”

        ​

        “죄송합니다…. 황녀 전하….”

        ​

        그리고 유모 또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건강이 악화되어 수도에서 벗어난 지 오래지 않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

        “마틸다, 황녀님을 부탁할게.”

        ​

        “…알았어.”

        ​

        결국, 그녀에게 남은 것은 유모와 친분이 있던 시녀장 마틸다와 아주 어릴 적부터 그녀와 함께해온 시녀들 뿐이었다.

        ​

        문제는, 그녀들만으로는 마리아를 지키기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나마 마리아의 외가가 호위를 제공하긴 했지만, 그들도 계승 순위가 높은 태자와 마리아 위의 형제자매를 지키는 데 집중했다.

        ​

        마리아는 방치되어버린 것이다.

        ​

        그리고, 황후의 마수는 머지않아 마리아가 도망친 저택에까지 도달했다.

        ​

        “케흑!”

        ​

        어느 날, 시녀 한 명이 원래 목록에 없던 케이크가 배달 온 것을 수상쩍게 여겨 맛을 봤다 쓰러졌다. 그녀는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

        그 이후로 마리아에게로 향하는 모든 음식이 철저하게 관리를 받기 시작했다.

        ​

        “죽어!”

        ​

        “아, 안 돼!”

        ​

        “꺄아아악!”

        ​

        산책을 위해 저택 주변을 돌아다니던 중, 미처 호위들이 파악하지 못한 틈을 파고든 암살자가 달려들었다. 이 무렵 이미 4위계를 달성했던 마리아가 바람을 뿜어내 암살자를 밀쳐냈지만, 반응이 늦어 그녀를 감싼 시녀를 구할 순 없었다.

        ​

        그 이후로 마리아는 항상 저택에 틀어박혀 있어야만 했다. 사람에게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된 것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마법 수련에 힘을 쓴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

        마리아를 노리는 비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시녀가 한 명씩 쓰러질수록, 저택의 묘비가 늘어날수록 마리아는 점점 더 말수를 잃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싸늘해져 갔다.

        ​

        어느 순간, 시녀의 죽음을 마리아가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무렵, 마틸다와 시녀들은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목숨이야 상관없었다.

        ​

        어차피 아직까지 남아있는 이들은 마리아에 대한 측은지심과 충성 때문에 따라온 이들이었기에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

        “호위를 고용해야 해요.”

        ​

        마틸다의 말에 시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

        “전반적인 암살 시도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암살자들에게 대응하려면, 실력도 뛰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

        그녀들은 열심히 토론을 나눴지만, 그 모든 조건을 모아놓고 나니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

        “…이 조건을 갖춘 용병이 과연 있을까요?”

        ​

        “있긴 하겠지만….”

        ​

        마틸다는 입술을 짓씹었다.

        ​

        “돈이 안 될 것 같군요.”

        ​

        현실의 문제가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으니 넘긴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었다.

        ​

        그녀들은 조금이라도 그들이 기억하는 황녀의 모습이 남았으면 하는 마음에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적임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

        실력은 확실하고, 전방위적 대응이 가능하며, 값도 싼 용병, 아니, 귀족이 마침 제국을 떠돌고 있었다. 한 명이라는 게 문제긴 했지만, 오히려 개인을 케어한다는 방면으로는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

        막 이름값을 날리기 시작한 괴물사냥꾼, 빌이었다.

        ​

        ―――

        ​

        사실, 마리아와 빌헬름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처럼 서로를 깊게 생각해주는 사이는 아니었다.

        ​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

        마리아가 정체를 숨긴 채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었다.

        ​

        “안녕하십니까. 한동안 영애를 호위하게 된 빌헬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둘이 처음 만난 때, 빌헬름은 지금과 달리 마리아에게 존댓말을 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기가 좀 먹었다 싶으면 바로 말을 놔버리는 싸가지만 봐온 이들은 잘 상상하지 못하지만, 그도 돈 주고 의뢰를 받은 경우에는 존댓말을 했다.

        ​

        물주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건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온 전직 현대인에겐 때로는 신분제보다 중요하게 작동하는 도덕 원칙이었다.

        ​

        하지만, 이미 여러 트라우마와 상처로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언제 어디서나 시종일관 일관된 태도로 빌헬름을 대했다.

        ​

        철저히 무시했다는 뜻이었다.

        ​

        “…아하하, 아가씨께서 귀하게 자라신지라,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게 어색하시답니다.”

        ​

        “아, 그렇습니까.”

        ​

        다행히 시녀들의 사력을 다한 달래기로 한동안은 빌헬름의 불만을 억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고 이어질 수는 없었다.

        ​

        한 달이 지나갈 무렵, 그러니까, 대충 빌헬름이 암살 시도(주로 독살이었다)를 세 번쯤 쳐냈을 때, 마침내 빌헬름의 불만이 터졌다.

        ​

        “야, 적당히 좀 하지?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나도 나름 선제후 아들이거든?”

        ​

        아직 이 세계 귀족으로서의 눈치가 썩 발달하지 않았을 무렵의 빌헬름이었기에, 그는 마리아가 누군지에 대해 눈치채지 못했다.

        ​

        “…선제후의 아들?”

        ​

        “그래, 내 풀네임이 빌헬름 폰 브란덴이다. 어디 나도 네 이름 좀 들어보자.”

        ​

        마리아도 그 말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선제후의 아들쯤 되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하고 돌아다닐 거라고 어떻게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당황스러운 눈치로 마틸다를 바라봤다.

        ​

        물론 마리아는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자신을 빌이라고만 소개하던 그도 계약서에는 풀네임을 적었다. 자기 계좌로 보수를 받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마틸다도 마리아와 똑같이 놀랐었다.

        ​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마리아에게 이를 전달하지 않았다.

        ​

        이 일 자체가 그녀의 계획이었다.

        ​

        그녀는 단 한 번도 또래와 어울린 적이 없었다. 지금처럼 단단히 틀어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또래(당사자들은 또래라 생각하지 않겠지만, 원래 나이가 많아질수록 또래의 범위도 커지는 법이다)와의 사소한 감정싸움 한 번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녀의 계산이었다.

        ​

        빌헬름은 계속된 무시에 단단히 뿔이 났는지 빨리 네 신분도 까라고 방방 뛰었다. 하지만 마틸다는 마리아의 시선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

        어떤 일이 있어도 마리아의 신분은 노출될 수 없었다. 계획이 어그러진 건 아쉽지만, 그래도 또래와의 접촉이 계속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

        결국, 그날의 다툼은 마리아와 빌헬름 간의 간극을 더 벌릴 뿐이었다.

        ​

        “…됐다. 이제 나도 신경 안 쓸란다. 딱 호위만 하고 떠야지. 나 참.”

        ​

        빌헬름은 그렇게 말하며 턱을 괬다.

        ​

        두 사람의 사이에 변화가 발생한 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

        한동안 직접적으로 암살자를 파견하지는 않던 황후가 또다시 암살자를 고용해 마리아의 암살을 청부한 것이다.

        ​

        물론, 암살자들의 실력이 소드 익스퍼트를 뚫고 마리아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진 않았었다.

        ​

        하지만, 애초에 암살자는 정정당당하게 기사를 상대하기 위해 육성된 이들이 아니었다.

        ​

        그들은 마리아와 빌헬름이 유일하게 떨어지는 타이밍을 노렸다.

        ​

        그러니까, 두 사람 모두 잠자리에 드는 새벽 시간대였다.

        ​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를 간과했다.

        ​

        이미 오랜 시간 마리아를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지켜온 시녀들은, 밤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

        “꺄아아악!”

        ​

        벌떡.

        ​

        야밤에 저택을 돌며 순찰하던 시녀의 비명에 빌헬름이 번쩍 눈을 떴다. 그는 곧장 문을 열고 나섰다. 이때도 두 사람의 방은 바로 옆으로 붙어 있었다. 다만, 별궁에서와는 달리 방음만큼은 확실히 된다는 차이점은 있었다.

        ​

        그는 곧장 옆에 놓아둔 검을 챙기고 문을 열고 나섰다. 태도는 이런 좁은 공간에서 휘두르기엔 부적절했기에 일반적인 검을 들고 나섰다.

        ​

        그리고 그는, 아마도 시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피가 묻은 채로 마리아의 방문을 여는 암살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쥐새끼들이 어딜!”

        ​

        깡!

        ​

        그는 냅다 검을 휘둘렀다. 암살자 한 명이 검을 맞대려 했지만, 압도적인 소드 익스퍼트의 힘에 검째로 날아가 벽에 박혔다.

        ​

        “젠장, 서둘러!”

        ​

        암살자들이 신속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목표만 달성하면 도망칠 수 있다. 상대는 한 명이고, 목표는 코앞이었기에 그들은 충분히 황녀를 죽일 수 있으리라 믿었다.

        ​

        대부분은 옳은 판단이었다.

        ​

        그들의 답이 오답인 이유는, 한 번도 소드 익스퍼트를 만나보지 못한 탓에 그 전투 능력을 제대로 짐작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

        “…하, 참 내.”

        ​

        자신이 무시받았다는 걸 깨달은 빌헬름은 콧김을 한 번 뿜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

        “크악!”

        ​

        “컥!”

        ​

        “아아악!”

        ​

        “이게, 무슨…!”

        ​

        순식간에 암살자들의 목 여러 개가 하늘을 날았다. 그나마 암살자가 여러 갈래로 움직였기에 한 명이 간신히 마리아의 코앞까지 도착해 칼을 휘두르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

        서걱!

        ​

        다른 암살자들이 모두 목 없는 귀신이 되고, 마지막 암살자의 팔이 몸통과 분리됐다. 암살자란 종자가 얼마나 지독한지는 빌헬름이 잘 알고 있었다.

        ​

        그는 혹시 모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팔을 날리고 다른 손을 내질렀다. 물론 마력은 팔의 안팎으로 가득 담겨 있었다.

        ​

        푸확!

        ​

        “커…, 헉….”

        ​

        빌헬름의 팔이 암살자의 가슴팍을 뚫고 나왔다.

        ​

        암살자를 모두 사살했다. 그걸 확인한 빌헬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 할 때였다.

        ​

        “히, 히끅.”

        ​

        “…어?”

        ​

        불길한 소리가 들려와 빌헬름이 암살자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

        “아.”

        ​

        언제 깨어났는지, 마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빌헬름의 손을, 피와 살점이 묻은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

        촛불에 비친 것으로 보아도 마리아의 얼굴은 이미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빌헬름은 저런 표정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

        저건 기절하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

        “꼬르륵.”

        ​

        “시, 시녀 안 계십니까?!”

        ​

        마리아가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갔다.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낭만 판타지를 꿈꿨는데 로맨스 판타지였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dreamed of a life filled with romance¹ and romanticism, but I didn’t dream of a romance fantasy… —- ¹ The “Romance” here means a feeling or atmosphere of something new, special and exciting, e.g., a hero’s adv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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