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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프로텍 가문 일원이 직접 지시한 일을 하면 보수가 몇 배나 뻥튀기 된다.

         

        거기에 한 자리에서 일하는 미인 대회 스태프라면 꿀도 이런 꿀이 없었다.

         

        하릴없이 방향키만 움직여서 작업하고 미션 달성해야 하는 구간이기에 본래의 메인 에피소드를 따라간다면 린은 루시와 함께 기뻐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알바의 목적은 폐쇄적인 섬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마검을 탐색하는 것이었고 린의 글러먹은 운빨과 루시의 집착 어린 행동으로 3일 중 하루를 소실하고 말았다.

         

        그리고 또 하나, 린은 루시를 이용해 마용사 파티의 존재도 확인해야 했다.

         

        즈라문 군도에 있는 건 에피소드 설정상 확실하다.

         

        그리고 나타나는 직업군도 고정값이라 변수에 대처하느라 골치 아플 필요도 없었다.

         

        다만, 마족은 섬에 있는 사람들 중 하나로 둔갑해서 숨어들어와 있었다.

         

        오랜 휴식에서 깨어나 쇠력한 마용사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사람을 습격해서 기력을 취하고 힘을 회복한다.

         

        따라서 그냥 둬버리면 3일의 축제 기간 동안 힘을 모두 회복하고 알아서 정체를 밝히며 강제 전투에 돌입한다.

         

        일종의 보스전인 셈.

         

        반대로 미리 누구인지 파악한 다음, 모르는 척하며 사람을 습격하는 걸 교묘하게, 때로는 대놓고 방해하면 불완전한 상태로 등장한다.

         

        괜히 직업군을 고정해준 게 아니었다.

         

        이미 난이도가 충분히 어려우니까 취해준 밸런스 조치에 불과했다.

         

         

        “다 옮겼어요.”

         

        “그 다음에는 이 철골들을 가지고 가서 구조물 설치하세요. 미인 대회 무대 바닥과 단이 될 겁니다.”

         

         

        루시는 린이 있는 곳을 흘끔거렸지만 린은 시선도 주지 않았다.

         

        손을 잡고 오긴 했지만 각자 작업으로 인해 갈라지게 되자 린은 일에만 집중했다.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입을 다물어버린 린이 루시는 너무나도 무서웠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철렁했지만 자신이 허튼 짓 할까 두려워 말도 못 붙이고 애끓는 속만 태우고 있었다.  

         

         

        “춘식 씨? 이 상자들 좀 백스테이지로 옮겨주세요. 미인 대회에 사용할 액세서리들이니까 느리더라도 조심해서 들고 가주시구요.”

         

        “아가씨, 그건 아가씨 개인 물품….”

         

        “쉿, 쉿!”

         

         

        루시를 더 복장 터지게 하는 건, 바로 아이비스 프로텍의 행동이었다.

         

        루시가 힘 꽤나 쓴다는 걸 알자 바로 무대설치 쪽으로 보내서 떨어뜨려 놓더니 시종일관 린 옆에 붙어서 이거 옮겨달라 저거 옮겨달라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잠깐 손잡은 거 외에는 린의 기운을 받지 못했으니 루시는 불안 증세를 억누르기 위해 반강제로 무대설치에 온신경을 쏟았다.

         

        날씨는 무더웠고 루시도 린도 옷이 젖을 만큼 땀을 흘렸다.

         

        젖으면서 자연스레 드러난 루시의 폭력적인 몸매에 주위 남정네들이 입맛을 다셨지만 정작 루시는 린의 땀에 입맛을 다셨다.

         

        한 번만이라도 핥을 수 있다면 오늘 하루 내내 힘낼 수 있을텐데.

         

         

        “자아! 점심 시간! 순서대로 줄서서 도시락 받아가세요. 하지만 내가 고용주니까 내가 1등!”

         

         

        물주의 권력으로 도시락을 2개 받아낸 아이비스는 곧장 린에게 다가갔다.

         

         

        “배고프죠? 같이 먹어요.”

         

         

        아냐, 린 그러지 마. 내가 있잖아.

         

        하지만 린은 루시의 간절한 시선을 무시했다.

         

        애초에 지역 유지가 함께 하자는데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죠.”

         

        “좋아요! 아 그런데 가면 쓰고 어떻게 먹죠? 조금만 위로 올려야 하나?”

         

         

        쉬지도 않고 재잘거리는 아이비스.

         

        귀족 영애라기보다는 갓 혼기 찬 동네 아낙에 가까웠다.

         

        거기에 묵묵히 있다가 필요할 때만 적당히 대답하는 린까지.

         

        둘의 모습은 정말 잘 어울리는 부부 같았다.

         

         

        “아가씨, 혼자 왔어요? 저기 그늘 있는데 다같이 모여서 먹지 않을래요?”

         

         

        다부진 몸을 가진 청년이 루시에게 도시락을 건넸다.

         

         

        “됐어요.”

         

        “아… 그래도 도시락은 받으세요. 밥은 드셔야지.”

         

        “…….”

         

        “자요, 받아요.”

         

         

        땅바닥만 보고 있는 루시에게 강제로 도시락을 쥐여준 사내는 코를 쓱 훑으며 그늘 아래 일행들에게 돌아갔다.

         

         

        “뭐래?”

         

        “생각 없대.”

         

        “너무 튕기네.”

         

        “튕기는 맛이 있어야지. 쉬운 여자면 쓰나. 그래도 내가 건넨 도시락 받더라.”

         

        “오오~! 아직 경계하면서 탐색전 펼치고 있는 거 아냐?”

         

         

        자기들끼리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는 동안, 루시는 근처에 있던 쓰레기통에 도시락을 처박았다.

         

        그리고는 땅바닥의 모래를 한 움큼 잡고서 사내의 손이 닿은 손목에 비볐다.

         

         

        “빌어먹을 자식이….”

         

         

        린이 봤으면 어쩌려고?

         

        다른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온 장면을 린이 봤으면 어쩌려고?

         

         

        “더러워더러워더러워더러워더러워더러워.”

         

         

        살이 짓뭉개지고 피가 흐를 때까지 루시의 흙 세척은 이어졌다.

         

         

        “저기요, 혹시 목 마르면 이거라도… 우왓! 피! 피나잖아요!”

         

         

        아까 그 사내였다.

         

        또 수작질을 걸어보려 마실거리를 들고 온 사내는 피투성이 손목을 보고 놀라 호들갑을 떨었다.

         

         

        “괜찮아요?! 여기 구급상자 좀….”

         

        “꺼지라고!”

         

         

        결국, 참지 못하고 성질을 부려버렸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사내의 손이 루시의 어깨에 또 닿았으니까.

         

         

        “뭐 이런 미친년이 다 있어?!”

         

         

        비상식적인 반응에 사내는 진저리를 치며 멀어졌다.

         

        그러거나말거나 루시는 다시 흙을 퍼서 어깨를 거칠게 문댔다.

         

        봐줘, 린.

         

        나 노력하고 있어.

         

        달라지려고 하고 있어.

         

        다시는 걸레짓 따위 하지 않아.

         

        일부러 돌아서서 열심히 손목과 어깨를 씻어냈지만 린의 시선이 루시에게 향하는 일은 없었다.

         

        루시도 느끼고 있었지만 작업반장과 프로텍 가의 하녀가 와서 다시 일을 시키기 전까지 멈추지 못한 채 일그러진 기대감만 품고 있을 따름이었다.

         

         

         

        —

         

         

         

        무더위는 도저히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비스의 은근한 배려로 무대 설치가 아닌 대회용품들을 나르기만 하는데도 린은 등까지 푹 젖어버렸다.

         

        아무리 쉽다 해도 남한테 돈 주고 시키는 일 자체가 수고롭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땡볕에서 열 받아 달아오른 철골 들고 다니는 루시에 비하면 자신은 천막 아래에 있지 않은가.

         

         

        “후우.”

         

         

        이래봬도 짐꾼을 업으로 삼은 남자다.

         

        한번에 나무상자 2, 3개씩 잡아들고 옮기길 수차례, 드디어 마지막 상자였다.

         

        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굽혀 상자를 잡아 반쯤 일어서는 순간, 누군가 그의 등을 밀어버렸다.

         

        콰-당!

         

         

        “끅!”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볼썽사납게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리… 춘식아!”

         

         

        달려오려는 루시를 제지하며 린은 위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또 번쩍하고 별이 보였다.

         

         

        “어이쿠 미안! 내가 발 밑을 제대로 못봤네? 괜찮어?”

         

         

        정신차릴 틈도 없이 멱살을 잡혀 들어올려졌다.

         

        간신히 앞을 보니 짙은 감색 머리칼의, 근육질이면서 느끼하게 생긴 남자가 그를 붙잡고 있었다.

         

         

        “프로텍 영애가 직접 뽑았다길래 뭐 좀 되나 싶었는데, 별 거 없잖아?”

         

        “저, 일을 해야 하니 놔주시지 않겠습니까?”

         

        “아앙?”

         

         

        얼굴을 잔뜩 구긴 느끼남은 린에게 속삭였다.

         

         

        “외지에서 온 천민으로 보이는데, 엄한 욕심 부리지 말고 일이나 하다 곱게 나가라.”

         

        “네, 급여를 많이 주는만큼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하, 이놈 봐라?”

         

         

        모욕을 당했는데도 차분하게 받아치자 괜시리 자기가 더 열받은 남자는 주먹을 치켜들었다.

         

         

        “왠지 모르게 어딘가 꺼림칙하니 경비대 일원으로서 미리 손 좀 봐주마.”

         

        “겐드리!”

         

         

        다행이 주먹이 꽂히기 전에 아이비스가 나타났다.

         

         

        “지금 뭐하는 거에요?”

         

        “영애님! 오늘은 더더욱 이쁘시군요. 듣자하니 오늘 저녁에 있을 미인 대회에 출전하실거라지요? 영애님이시라면 분명히 1등 하실 겁니다. 1등이 되시면 축제 제일 미인의 파트너 자리를 제게….”

         

        “겐드리, 저는 뭘하고 있냐고 물었어요.”

         

        “…아!”

         

         

        겐드리는 그제서야 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과장된 몸짓으로 그의 옷을 털어주었다.

         

         

        “이 친구가 제 발에 걸려 넘어져 버렸답니다. 하하! 비실비실한 친구가 조심성 없기는. 그래서 일으켜주고 있었습니다.”

         

        “겐드리, 왜 일하는 사람을 발로 찼어요?”

         

        “영애님, 제가 찬 게 아니라….”

         

        “지금 저한테 변명하는 거에요?”

         

        “영애님.”

         

        “내가 바보로 보여요?”

         

         

        작은 체구에 비해 아이비스가 발산하는 압박감은 근육 덩치 겐드리도 쉽사리 흘려 넘기지 못하고 받아내야 했다.

         

        그럼에도 겐드리가 불편한듯 헛기침을 하자 아이비스는 한숨을 내신 뒤 린에게 허리를 숙였다.

         

         

        “미안해요 춘식 씨.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영애님! 영애님께서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조용히 해요, 겐드리. 당신 때문에 제가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는 거에요. 아시겠어요?”

         

         

        겐드리가 기겁하며 말렸지만 영애는 단호하게 그의 제지를 뿌리쳤다.

         

        오히려 날 선 목소리로 그를 질책했다.

         

         

        “경비대장님 아들인 당신의 체면을 생각해서, 나가서 따로, 단 둘이, 이야기해요.”

         

        “후우, 알겠습니다. 단 둘이, 대화하시죠.”

         

         

        왜 단 둘을 강조하면서 린을 쳐다보는지 모르겠다.

         

        아이비스가 억지로 팔을 잡고 끌고가자 겐드리 또 우쭐거리며 따라 나섰다.

         

        린은 루시에게 한 번 더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 뒤 다시 상자를 집어들려했다.

         

        그러나 상자에는 선객이 앉아있었다.

         

         

        “넌 자존심도 없어?”

         

         

        검은 웨이브 진 머리.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어린 소녀였다.

         

        하얗다 정도가 아니라 아예 태양빛을 반사한다고 볼 수 있을만큼 희디 흰 피부.

         

        어린아이 치고 표독스러운 눈빛이 특징적인 여자애였다.

         

         

        “저 자식한테 그런 수치를 당했는데도 가만히 있는 거야?”

         

        “누구시죠?”

         

        “내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소녀는 답답해 하며 일어서더니 검지로 린의 가슴팍을 찔러댔다.

         

         

        “화나지 않아? 기분 나쁘지 않아?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억울하지 않아?”

         

         

        자기가 하는 행동도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자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린은 빤히 소녀를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서였다.

         

         

        “읏….”

         

         

        의외로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먼저 시선을 거뒀다.

         

         

        “비겁하네.”

         

         

        대체 뭐가?

         

         

        “어떤 사람인지 보러 왔는데 완전 재미없는 사람이잖아?”

         

         

        소녀는 냉기를 풀풀 풍기며 힐난했다.

         

         

        “갈래, 인형처럼 솔직하지 못한 사람과는 말 안 해.”

         

        “인형이 아니라 어른이라는 건데?”

         

         

        린이 반박하자 소녀는 멈칫하더니 다시 그를 바라봤다.

         

        이윽고, 여자아이는 코웃음을 쳤다.

         

         

        “흥, 어른이라. 대체 누가 너보고 어른이 되라고 했지?”

         

         

        어떻게든 그의 가슴을 후벼파보려고 작정한 건지 모진 말을 남긴 채 소녀는 자리를 떠났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말야.”

         

         

        그렇게

         

        어둠이 걷혔다.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어둠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소녀가 사라지자 다시 뜨거운 햇빛이 느껴졌다.

         

        그를 발견한 루시가 다급하게 뛰어왔다.

         

         

        “린! 어떻게 된 거야? 아주 잠시동안 린의 기척이 아예 지워지다시피 했어.”

         

         

        도깨비불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루시, 마검을 찾은 거 같아.”

         

         

        드디어 이놈의 운빨좆망겜이 그를 도와주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Abandoned Hero's Only Ally, 버림받은 용사의 유일한 아군이 되었다.
Score 6.8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saved the Warrior who used to ignore and bully me and now she is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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