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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결론만 말하자면, 이한과 오드왈은 학장에게 불려가서 혼이 났다.

         

       이한의 경우 오드왈의 손목을 꺾었다는 이유로.

       다만 이건 오드왈이 먼저 옷깃을 잡았고, 그가 떼어 놓으려가 일어난 우발적 실·수였기에 정상 참작 되었다.

         

       오드왈의 경우는 학장에게 크게 혼이 났다.

       멋대로 타 학부 영역에 쳐들어간 것도 그렇지만, 행패를 부렸다는 점에서 도저히 좋게 볼 사안이 아니었으니까.

       기어이 6개월 감봉 처리를 받은 오드왈이었으나.

         

       ‘막대한 후원금이 있는 놈에겐 벌도 아니겠네.’

         

       일반 교원의 한 달 월급 따윈 기별도 안 가는 막대한 후원금이 주급 단위로 주머니에 꽂힌다는 소식을 진즉 들었던 이한으로선 저 벌이 그다지 큰 타격이 아님을 안다.

       아마 학장도 알고 있을 터.

       한데도 학장이 이러한 징계를 준다는 건.

         

       ‘이 영감쟁이도, 돈 받아 처먹었나?’

         

       이한으로선 그러한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노릇.

         

       그러나 이는 오해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학장님이 귀족들 눈치나 볼 위치는 아니시죠.”

       “학장님 가문 부잡니다. 그것도 왕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웬만한 거대 상단 다섯이 압박해도 끄떡도 없을 겁니다.”

       “오히려 뒷돈 같은 거 내미는 귀족들이 있으면 내일이라도 단두대로 보내실 분이지요, 하하.”

         

       …알고 보니 더 터무니없는 인간이네?

         

       이한은 새롭게 친분을 나눈 교원들에게 모르던 사실을 들으며 눈을 끔뻑거렸다.

         

       “그럼 그 양반은 왜 그 정도 처벌밖에 안 준 겁니까?”

       “터틀 경을 지키기 위해서지 않겠습니까.”

       “저를요?”

       “예에. 터틀 경이야 물론 오드왈 공도 무섭지 않을 분이겠지만, 그밖에 인원들. 그러니까 오드왈 공을 후원하는 귀족들까지 상대하는 건 까다롭지 않겠습니까?”

       “…?”

         

       제가요?

         

       이러한 발언이 목젖까지 치고 왔으나, 일단 이한은 계속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아마 학장님은 터틀 경이 귀족들에게 피해 입는 것을 막아주시려고 그러한 판단을 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귀족들과의 싸움은 아무리 터틀 경이 강해도 여러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골치 아픈 이들이니까요, 귀족들이란.”

         

       그들은 어딘지 씁쓸한 기색을 보였다.

       아마 귀족들에게 밉보인 경험이 있나 보다.

       하긴, 평민 혹은 몰락귀족 출신들인데, 능력이 비범하니 그로 인해 여러 트러블이 발생했을 테지.

         

       “뭐, 학장님께서 현명한 판결을 내리신 겁니다. 터틀 경도 이만 화를 삭이시죠. 웬만한 뒷배가 없는 이상 오드왈 공을 건드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으음.”

         

       그를 진정으로 위하는 그들의 토닥거림이었고, 이한은 슬며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에 교원들은 생긋 웃었다.

       역시 입학식 때만 좀 그랬지, 마냥 난폭한 사람이 아니라 이지적인 기사라며.

         

       ……다만.

         

       ‘뒷배라고 했지?’

         

       이한은 그날 밤 드물게도 편지지 한 장을 꺼냈고, 백지 위에 한 문장을 적은 후 밀봉하여 백치미 넘치는 시녀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네놈이다! 네놈이야…! 네놈밖에 없단 말이다…!!”

         

       오드왈이 다시금 발광하며 검술학부 수업을 방해했고, 이한은 그런 마법사에게.

         

       “뭐래?”

         

       어깨를 으쓱일 따름이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는 그저.

         

       ‘아는 사람한테 [고민 상담]을 했을 뿐인데, 왜 저래?’

         

       이한은 미친놈 보듯이 오드왈을 보았고, 기어이 그는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반나절 후, 오드왈을 후원하던 귀족들이 후원을 끊었다는 소식이 은밀히 돌며 아카데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독제독(以毒制毒).

         

       독은 독으로 제압하듯이, 권력자는 권력자로 제압해야 했음이다.

         

       ……너무 센 독을 사용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

       *

       *

         

       아카데미는 최근 들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시선을 집중시키는 화제가 연이어 발생하여 이를 주제로 떠들기 바빴다.

         

       -오드왈 교수가 검술학부 기사에게 시비를 걸었다더라.

         

       -검술학부 교관이 오드왈의 손목을 꺾었다더라.

         

       -오드왈 교수와 검술학부 기사가 갈라하드 공작의 수양녀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 중이라더라.

         

       -사실 검술학부 기사는 대귀족의 총애를 받고 있더다라.

         

       카더라, -식의 소문이란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 했는 법.

         

       항상 유흥과 재미, 자극에 굶주려 있는 혈기왕성한 젊은 생도들에겐 마법사와 기사의 싸움이 더할 나위 없는 유흥으로 다가왔다.

       과연 둘 중 누가 이길까 싶었고, 마냥 흥미롭다.

         

       그리고 이러한 떠들썩한 화제를 들은 회색머리칼의 어느 생도는 고민에 휩싸였다.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회색머리 생도가 고민에 휩싸인 건, 다른 이들처럼 마법사와 기사 중 누가 이길까 내기하는 유치한 유흥 때문이 아니었다.

         

       …확연히 달라진 ‘스토리’ 때문이었지.

       

       ‘오드왈이라면 분명 악역 영애를 도와 주인공을 몰아붙이는 메인 악역 중 하난데, 벌써 무대에 등장한다고?’

         

       원래대로라면 [메인 스토리]가 시작되기까지 아직 반년이란 기간이 남았었다.

       한데 벌써부터 진행이 심상치가 않았으며, 회색머리칼 생도는 자기가 아는 정보가 자꾸만 틀리게 된다는 것에 한없이 머리가 복잡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아는 게 다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어.’

         

       회색머리칼 생도는 머리가 좋았고, 머리가 돌아가는 속도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기에 지난날 일어난 모든 사건에 어떠한 장애물이 끼어있는지를 확인하며 결론을 내렸다.

         

       ‘…검술학부 교관.’

         

       이한 터틀.

       화제의 중심이자, 그가 유일하게 존재를 몰랐던 생뚱맞은 [등장인물]

         

       어딘지 친근한 이름을 가진 교관을 떠올리며 소년은 고민했다.

       그를 한번 만나봐야 하나 싶어서.

       만나서 대화만 해볼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의문을 풀 수 있을지 모르니까.

         

       …다만 문제는.

         

       “얘.”

       “!!?”

       “어머? 왜 그러니?”

       “아, 아니요. 그, 그냥 좀 놀라서요.”

         

       소년은 극도로 사람과 대화하는 게 어려운 의사소통장애가 있었다.

       그뿐 아니라.

         

       “그래, 어? 혹시 너 감기 걸린 건 아니지? 얼굴이 왜 이렇게 붉어졌어?”

       “그, 그게….”

       “……어머.”

         

       귀족 영애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자 생도가 접근할수록 소년의 얼굴은 붉어졌고, 신선하기 그지없는 반응에 여자 생도는 생글거리며 다가왔다.

         

       아무래도 장난기 많은 소녀는 소년의 상태를 눈치챈 모양이었고, 소년은 이를 깨달으며 눈을 질끈 감고 속으로 마법이 주문을 외웠다.

         

       ‘도,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소년은 의사소통에 대한 장애뿐만 아니라, 이성에 대한 면역력이 제로였다.

         

       남학생 다섯과 남자 선생님만 있던 시골 초등학교를 거쳐 남중, 남고, 공대, 군대, 남초 게임 회사까지.

       소년의 인생 테크 트리였으며, 지금까지 살면서 이성과 제대로 된 대화조차 해본 적이 없는 소년이었다.

       소년은 그렇게 4절까지 주문을 외우며 자신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아무래도.

         

       “너 이름이 뭐니?”

       “…!!”

         

       이 장난기 많은 소녀는 소년을 그냥 놔둘 생각이 없나 보다.

         

       여성면역력 제로에겐 너무나 자극적인 라일락 꽃향기가 덮쳐왔고, 소년은 즉각 등을 돌리며 도망쳤다.

         

       “어, 얘…, 버, 벌써 저기까지 갔어?”

         

       회색머리의 소년은 무척이나 빨랐고, 이를 보며 소녀는 눈을 끔뻑거렸다.

         

       소년이 유독 빨라서 놀란 게 아니었다.

       그저 소녀의 예민한 귀가 소년이 내뱉은 말을 포착했기에 끔뻑거리는 것이었지.

         

       “[가속], 이라고 외치지 않았나?”

         

       안타깝게도 소녀의 의문에 대답해 줄 소년은 이미 저 멀리 도망간 지 오래였다.

         

       * * *

         

       탁!

         

       “주워라, 칼잡이!”

         

       “……드디어 미쳤나 보네.”

         

       최근 나흘 동안 오드왈과 이한의 관계는 견원지간보다 더욱 사나운 적대관계를 형성해가며 갈수록 험악한 기류가 형성되었다.

       뭐, 일방적으로 이한에게 시비를 걸다가 오드왈이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저 자존심 강한 마법사가 기사에게 당하는 굴욕을 어찌 참고만 있으랴.

         

       후원금이 끊기고, 갖은 굴욕과 함께 치욕을 겪은 마법사는 기어이 이성을 놓은 건지, 이한에게 장갑을 던지러 왔다.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관습.

       장갑을 던진다는 의미는 ‘대결’ 또는 ‘결투’를 신청한다는 의미였다.

         

       이한은 땅바닥에 던져진 장갑과 주문쟁이를 번갈아 확인하며 조소를 머금었다.

         

       “살기를 포기했나 보지?”

         

       스릉.

         

       장갑을 잡는 대신 목검을 겨누었다.

       목검 따위를 겨눈다고 해서 겁을 먹을 이유는 없지만, 일순 오드왈은 서늘함을 느꼈다.

       하잘 것 없는 낡은 목검이다.

       한데 그 목검이 그를 향하는 순간 날이 바짝 선 창촉이 그를 찌르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오드왈은 몽글몽글 맺히기 시작한 땀을 닦으며 손을 내저었다.

         

       “오, 오해가 있었군, 물론 칼잡이 너와 싸운다는 얘기는 아니다.”

       “개소리 지껄일래? 아까부터 뭔….”

       “나의 생도와 너의 생도의 대결을 의미하는 거다!”

       “…뭐?”

         

       한차례 뭔 헛소리인가 싶었으나, 마냥 헛소리가 아니란 것처럼 빠르게 놈이 변명을 내뱉었다.

         

       “나, 나 또한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교원끼리의 싸움은 아카데미에서 허락되지 않는다. 이는 왕실에서 직접 내린 칙명이다.”

       “…….”

       “큼.”

         

       이한이 드디어 목검을 내리고 말없이 얘기를 들어주자 오드왈은 말을 이었다.

         

       “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것이다. 교원끼리 대결은 불가능하지만, 생도끼리의 대결은 그다지 큰 장애는 없다. 아니, 도리어 경쟁을 권장하는 편이지.”

       “흠.”

         

       무한경쟁주의.

       경쟁을 통해 사람은 성장한다는 아카데미의 지론.

       뭐, 딱히 이상한 건 아니다.

       지혜나 기술을 겨루는 경우는 즐비하고, 겨루는 항목이 ‘무력’인 것도 이상한 게 아니니까.

         

       다만.

         

       “그러니까, ‘대리전’을 하자는 거냐?”

       “그렇다.”

       “…찌질한 놈. 지가 못 이길 것 같으니까 제자들을 파냐….”

         

       아무리 봐도 자신이랑 직접 싸우면 가망이 없으니, 생도들을 끌어들이는 것 같아 어처구니가 없다.

       이한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고, 이에 오드왈은 발끈하며 소리쳤다.

         

       …소리쳤으나.

         

       “이놈!”

       “너 나보다 어리다며. 어디서 놈이야! 이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아.”

       “…….”

         

       금세 제압당하고 말았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어디서…!”

       “새, 새파란 것은….”

       “어허! 어디서 형님한테!”

       “…….”

       “팍 씨!”

       “…….”

         

       이한의 안에 잠들어 있던, 실로 오랜만에 깨어난 유교의 힘 앞에서 마법사 따윈 실로 무력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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