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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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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있다간 쓸만한 무기를 잃을 것 같아 아이리스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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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하지 아이리스. 빨리 그거 이리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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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아이리스가 검을 등 뒤로 숨기더니 고개를 마구 저었다. 나는 떼쓰는 아이를 달래는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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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 그건 장난이었어. 아이리스가 갑자기 울어서 깜짝 놀라서 그랬던 거야. 미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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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의 표정이 쭈글쭈글하게 일그러졌다. 저런 표정으로도 귀여울 수 있다니 역시 주인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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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목에 칼 가져가고 안 그럴 테니까. 빨리 주자. 마…아니, 검이 힘들어하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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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아이리스가 슬쩍 검을 앞으로 가져왔다. 내 피를 잔뜩 흡수하여 길이가 5cm 정도 길어져 21cm가 되었던 마검은 어느새 검신의 길이가 10cm로 줄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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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잡이 길이까지 합치면 약 25cm쯤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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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살려줘…제에발…이대로,이대로 있다간 소멸할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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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산소호흡기를 단 중증 환자처럼 헥헥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소멸해버릴 것 같아 아이리스에게 성큼 다가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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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이리스, 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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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경계가 심한 강아지를 달래는 듯한 말투였지만, 생각보다 그 말이 잘 통했는지 마검을 노려보던 아이리스가 마지못해 내 손에 검을 쥐여주었다. 나는 곧바로 아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잔뜩 칭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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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잘했다! 말도 잘 듣고 아이리스는 착한 아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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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얼굴을 옅게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면서 내 옷자락 끝을 잡아당기는 모습이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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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이렇게 귀여운 딸 가지고 싶다. 아,지금은 내가 아이리스를 반쯤 키우고 있으니까 반쯤은 아이리스의 아빠라고 볼 수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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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듯한 표정으로 아이리스를 바라보고 있을 때 마검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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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끄흐흑.. 이번에야말로 소멸하는 줄 알았다. 드래곤 로드조차 두려워하던 이 몸이 고작 여자아이의 손에 소멸해 버리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엄청난 수치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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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방구석 히키코모리처럼 중얼중얼 무어라 떠들어대고 있었다.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는 모습에 마검을 대충 침대에 던져두었다. 그러자 아이리스가 진심으로 안도했는지 옷을 놓고 내 손을 잡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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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으아앗…! 가,감히 위대한 마검을 이렇게 다루다니! 아니, 그런 것보다! 이봐 인간! 저 인간 여자는 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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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이 검신을 웅웅 울리며 소리치자 아이리스의 시선이 마검을 향했다. 혼자서 온갖 난리를 치던 마검이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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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런 건 내버려 두고 간식이나 먹으러 가자. 오늘 간식으로 크림빵이 나온대. 빨리 가서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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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와 손을 꼭 잡고 방을 빠져나갔다. 뒤에서 마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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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나는? 나도 피 좀 주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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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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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마검의 말을 무시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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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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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과 아이리스가 그럭저럭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과 달리 노아네 쪽 상황은 최악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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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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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제 발치에 떨어진 가죽 가방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올리자 싸늘한 표정을 한 흑마법사 미아가 노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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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녀석이 지금까지 해준 게 있어서 챙겨주는 거니까 가져가세요. 그리고 이왕이면 저택으로 돌아오지도 기웃거리지도 마세요. 기분 나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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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사라지고 일주일, 미아가 리안을 포기하고 노예를 버리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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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기본적으로 노예를 벌레 취급하는 흑마법사 중 하나였다. 리안처럼 없으면 불편하고, 몸 전체가 신비 덩어리인 노예라면 모를까 평범한 노예에겐 가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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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를 포함한 다수의 노예를 받아들인 건 전부 리안 때문이었기에, 리안이 없어진 이상 미아가 노예들을 데리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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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요 없어진 노예들을 노예 시장에 팔아버리면 꽤 두둑한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아는 노예들을 풀어주겠다는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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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의 호출 때문에 빨리 떠나야 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미아를 열심히 보필했던 리안의 모습이 떠올라 노예들을 잔혹한 노예 시장에 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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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를 챙겨 숲에 풀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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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쯧, 지소님 쪽에 넘어간 게 아니었으면 어떻게든 가져보려 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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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도반을 통해 납치되어 지소 쪽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정보원에게 듣게 된 후 미아는 깔끔하게 리안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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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니아 쪽에 부탁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라니아는 현재 마왕의 명령으로 꽤 바쁜 상태였다. 고작 노예 하나 때문에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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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뭣보다 노예 하나 때문에 사천왕끼리 적대하게 만드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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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식으로든 라니아와 지소가 부딪치게 된다면 작지 않은 피가 흐르게 될 터다. 대륙을 정복하기 위해 마왕군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국에 내부에서 싸움이 터진다면 마왕이 직접 움직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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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몸이 매우 흥미롭긴 했지만, 큰 분쟁을 만들 정도의 가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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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됐다. 어차피 나도 오래 집을 비워둬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잘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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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아쉬움을 털어내고 몸을 휙 돌려 덜덜 몸을 떨고 있는 노예들을 죽음의 숲에 두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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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혀,형…우리 이제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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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거리며 노아의 손을 붙잡았다. 넋을 놓은 듯 미아를 바라보던 노아는 뒤늦게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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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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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10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을 데리고 마왕의 땅 위에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냥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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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라는 삶의 목표를 잃은 충격,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 등으로 노아의 정신은 붕 떠오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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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해서 느끼는 부유감이 아니었다. 연속으로 이어진 끔찍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느끼는 부유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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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윽…흑…”
   “리안,리안 혀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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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카맣게 말라붙은 땅, 기괴하게 생긴 나무, 쿠웩,쿠에엑하는 기묘한 소리가 울리는 숲은 아이들을 겁먹게 만들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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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고목처럼 안락한 보호자 역할을 해주던 리안이 사라지자 아이들은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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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노아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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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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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볼에 붉은 자국이 남을 정도로 볼을 거칠게 때려 몽롱하게 풀려있던 정신을 현실로 끌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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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야 정신이 드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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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가 불퉁한 목소리로 노아의 근처로 날아왔다. 옆에서 아무리 떠들고 정신을 차리게 해주려 노력해도, 정신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노아의 모습에 줄리아나는 줄곧 입을 다문 채 그녀의 곁에 둥둥 떠 있기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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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뒤늦게 줄리아나가 자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떠올리곤 고개를 숙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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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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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라도 정신을 차렸으면 됐지 뭐. 그것보다 이제 어떡할 거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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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을 차린 것 까진 좋았지만,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마물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잔혹한 숲에 버려진 상태였다. 정신을 차렸다고 해서 이런 곳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떠오를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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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에휴, 내가 이럴 줄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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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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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건 먹고 잘 수 있는, 쉽게 말해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거야. 이대로 있다간 애들 다 죽을 테니까. 그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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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의 땅은 아니지만, 줄리아나는 위험한 지역에서 야영을 했던 경험이 풍부한 용병이었다. 그 덕분에 줄리아나는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인 조언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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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이후에 -…리안을 찾으러 가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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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줄 늘어놓은 말끝에 툭 튀어나온 ‘리안을 찾으러 가자’라는 말에 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탁하게 가라앉아 있던 눈동자에 반짝거리는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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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리안이 돌아올 곳이 필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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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당장이라도 리안을 찾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목표를 상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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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살아남는다. 살아남아 그들이 머물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만들어진다면 그때 리안을 찾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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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리안도 이런 선택을 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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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자신을 돌보기보단 아이들을 먼저 챙겼던 리안이라면 분명 노아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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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지키려고 했던 것을 이젠 자신이 지킬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라져버린 리안을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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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왕과 마왕군 조차 경계하게 될 무시무시한 거대 조직의 씨앗이 그렇게 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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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정신을 차리고 울고 있는 아이들을 달래기 시작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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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쭈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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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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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스러운 틈을 타 제스가 코끝을 찡긋거리며 숲 쪽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혈소연님! 익명님! 후원 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9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오후 10시 반쯤에 한편더 올릴 예정입니다.

마검..에 관한 다양한 의견은 참고해두도록 하겠습니다 ^^…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어..)

선작과 추천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이대로 있다간 쓸만한 무기를 잃을 것 같아 아이리스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착하지 아이리스. 빨리 그거 이리 줘.”

그러자 아이리스가 검을 등 뒤로 숨기더니 고개를 마구 저었다. 나는 떼쓰는 아이를 달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그건 장난이었어. 아이리스가 갑자기 울어서 깜짝 놀라서 그랬던 거야. 미안해서.”

아이리스의 표정이 쭈글쭈글하게 일그러졌다. 저런 표정으로도 귀여울 수 있다니 역시 주인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목에 칼 가져가고 안 그럴 테니까. 빨리 주자. 마…아니, 검이 힘들어하고 있잖아.”

그 말에 아이리스가 슬쩍 검을 앞으로 가져왔다. 내 피를 잔뜩 흡수하여 길이가 5cm 정도 길어져 21cm가 되었던 마검은 어느새 검신의 길이가 10cm로 줄어있었다.

손잡이 길이까지 합치면 약 25cm쯤으로 보였다.

[ 사,살려줘…제에발…이대로,이대로 있다간 소멸할 거야… ]

마검은 산소호흡기를 단 중증 환자처럼 헥헥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소멸해버릴 것 같아 아이리스에게 성큼 다가가며 말했다.

“우리 아이리스, 착하지?”

마치 경계가 심한 강아지를 달래는 듯한 말투였지만, 생각보다 그 말이 잘 통했는지 마검을 노려보던 아이리스가 마지못해 내 손에 검을 쥐여주었다. 나는 곧바로 아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잔뜩 칭찬해주었다.

“아이 잘했다! 말도 잘 듣고 아이리스는 착한 아이네!”

“…”

아이리스가 얼굴을 옅게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면서 내 옷자락 끝을 잡아당기는 모습이 귀여웠다.

‘나도 이렇게 귀여운 딸 가지고 싶다. 아,지금은 내가 아이리스를 반쯤 키우고 있으니까 반쯤은 아이리스의 아빠라고 볼 수 있지 않나?’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듯한 표정으로 아이리스를 바라보고 있을 때 마검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끄흐흑.. 이번에야말로 소멸하는 줄 알았다. 드래곤 로드조차 두려워하던 이 몸이 고작 여자아이의 손에 소멸해 버리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엄청난 수치라고.. ]

마검은 방구석 히키코모리처럼 중얼중얼 무어라 떠들어대고 있었다.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는 모습에 마검을 대충 침대에 던져두었다. 그러자 아이리스가 진심으로 안도했는지 옷을 놓고 내 손을 잡아 왔다.

[ 으아앗…! 가,감히 위대한 마검을 이렇게 다루다니! 아니, 그런 것보다! 이봐 인간! 저 인간 여자는 뭐냐! ]

마검이 검신을 웅웅 울리며 소리치자 아이리스의 시선이 마검을 향했다. 혼자서 온갖 난리를 치던 마검이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저런 건 내버려 두고 간식이나 먹으러 가자. 오늘 간식으로 크림빵이 나온대. 빨리 가서 먹자.”

아이리스와 손을 꼭 잡고 방을 빠져나갔다. 뒤에서 마검이.

[ 나,나는? 나도 피 좀 주면 -… ]

탁.

리안은 마검의 말을 무시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

리안과 아이리스가 그럭저럭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과 달리 노아네 쪽 상황은 최악으로 향하고 있었다.

툭.

노아는 제 발치에 떨어진 가죽 가방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올리자 싸늘한 표정을 한 흑마법사 미아가 노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녀석이 지금까지 해준 게 있어서 챙겨주는 거니까 가져가세요. 그리고 이왕이면 저택으로 돌아오지도 기웃거리지도 마세요. 기분 나쁘니까.”

리안이 사라지고 일주일, 미아가 리안을 포기하고 노예를 버리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미아는 기본적으로 노예를 벌레 취급하는 흑마법사 중 하나였다. 리안처럼 없으면 불편하고, 몸 전체가 신비 덩어리인 노예라면 모를까 평범한 노예에겐 가차 없었다.

노아를 포함한 다수의 노예를 받아들인 건 전부 리안 때문이었기에, 리안이 없어진 이상 미아가 노예들을 데리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필요 없어진 노예들을 노예 시장에 팔아버리면 꽤 두둑한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아는 노예들을 풀어주겠다는 선택을 했다.

마왕의 호출 때문에 빨리 떠나야 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미아를 열심히 보필했던 리안의 모습이 떠올라 노예들을 잔혹한 노예 시장에 팔지 못했다.

대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를 챙겨 숲에 풀어주기로 했다.

‘쯧, 지소님 쪽에 넘어간 게 아니었으면 어떻게든 가져보려 했을 텐데.’

리안이 도반을 통해 납치되어 지소 쪽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정보원에게 듣게 된 후 미아는 깔끔하게 리안을 포기했다.

라니아 쪽에 부탁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라니아는 현재 마왕의 명령으로 꽤 바쁜 상태였다. 고작 노예 하나 때문에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뭣보다 노예 하나 때문에 사천왕끼리 적대하게 만드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니까.’

어떤 식으로든 라니아와 지소가 부딪치게 된다면 작지 않은 피가 흐르게 될 터다. 대륙을 정복하기 위해 마왕군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국에 내부에서 싸움이 터진다면 마왕이 직접 움직일지도 몰랐다.

리안의 몸이 매우 흥미롭긴 했지만, 큰 분쟁을 만들 정도의 가치는 없었다.

‘하아, 됐다. 어차피 나도 오래 집을 비워둬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잘됐지.’

미아는 아쉬움을 털어내고 몸을 휙 돌려 덜덜 몸을 떨고 있는 노예들을 죽음의 숲에 두고 떠났다.

“혀,형…우리 이제 어떻게 해?”

네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거리며 노아의 손을 붙잡았다. 넋을 놓은 듯 미아를 바라보던 노아는 뒤늦게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이제 10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을 데리고 마왕의 땅 위에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냥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리안이라는 삶의 목표를 잃은 충격,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 등으로 노아의 정신은 붕 떠오른 상태였다.

행복해서 느끼는 부유감이 아니었다. 연속으로 이어진 끔찍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느끼는 부유감이었다.

“흐윽…흑…”

“리안,리안 혀엉…”

새카맣게 말라붙은 땅, 기괴하게 생긴 나무, 쿠웩,쿠에엑하는 기묘한 소리가 울리는 숲은 아이들을 겁먹게 만들기 충분했다.

커다란 고목처럼 안락한 보호자 역할을 해주던 리안이 사라지자 아이들은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터뜨렸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노아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쫘악!

제 볼에 붉은 자국이 남을 정도로 볼을 거칠게 때려 몽롱하게 풀려있던 정신을 현실로 끌고 왔다.

[ 이제야 정신이 드냐? ]

줄리아나가 불퉁한 목소리로 노아의 근처로 날아왔다. 옆에서 아무리 떠들고 정신을 차리게 해주려 노력해도, 정신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노아의 모습에 줄리아나는 줄곧 입을 다문 채 그녀의 곁에 둥둥 떠 있기만 했었다.

노아는 뒤늦게 줄리아나가 자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떠올리곤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송해요.”

[ 이제라도 정신을 차렸으면 됐지 뭐. 그것보다 이제 어떡할 거야? ]

“…”

정신을 차린 것 까진 좋았지만,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마물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잔혹한 숲에 버려진 상태였다. 정신을 차렸다고 해서 이런 곳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떠오를 리 없었다.

“….”

[ 에휴, 내가 이럴 줄 알았다. ]

줄리아나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건 먹고 잘 수 있는, 쉽게 말해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거야. 이대로 있다간 애들 다 죽을 테니까. 그리고 -… ]

마왕의 땅은 아니지만, 줄리아나는 위험한 지역에서 야영을 했던 경험이 풍부한 용병이었다. 그 덕분에 줄리아나는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인 조언을 늘어놓았다.

[ 그 이후에 -…리안을 찾으러 가야지. ]

“…!”

줄줄 늘어놓은 말끝에 툭 튀어나온 ‘리안을 찾으러 가자’라는 말에 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탁하게 가라앉아 있던 눈동자에 반짝거리는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래…리안이 돌아올 곳이 필요할 테니까.”

노아는 당장이라도 리안을 찾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목표를 상기했다.

우선 살아남는다. 살아남아 그들이 머물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만들어진다면 그때 리안을 찾으러 가자.

‘분명 리안도 이런 선택을 했을 거야.’

항상 자신을 돌보기보단 아이들을 먼저 챙겼던 리안이라면 분명 노아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리안이 지키려고 했던 것을 이젠 자신이 지킬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라져버린 리안을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사천왕과 마왕군 조차 경계하게 될 무시무시한 거대 조직의 씨앗이 그렇게 심어졌다.

노아가 정신을 차리고 울고 있는 아이들을 달래기 시작했을 때.

“쭈인님…!”

후다닥!

혼란스러운 틈을 타 제스가 코끝을 찡긋거리며 숲 쪽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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