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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던전 공략을 위한 팀을 배정받기 위해 줄을 서는 동안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앞 뒤로 있는 사람들은 저들끼리 소곤소곤 이번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내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내 시선이 닿으면 말을 멈추는 것도 그렇고 괴롭힌다기 보단 무서워하는 느낌이었다.

   

   <이래서야 이 곳에서 친구 하나를 사귈 수 있겠느냐?>

   ‘아픈 구석이니까 찌르지 마세요.’

   

   친구? 그런 것 따위 나에게는 사치다.

   

   여러 히든 피스들을 찾아내고 효율적으로 소울 아카데미를 공략하는 것이야말로 썩은물의 사명.

   

   친구와 일상을 보낼 여유가 있다면 그 시간에 메이스라도 한 번 더 휘두르는 것이 옳다!

   

   외톨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외톨이를 선택한 것이다!

   

   게임의 효율성을 위해서!

   

   정작 소울 아카데미에서 제일 효율적인 플레이를 위해선 여러 캐릭터의 호감도작이 필수적이지만.

   

   빌어먹을.

   

   그렇게 할배와 잡담을 나누며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면접관의 앞에 도착했다.

   

   전투학 교수 중 하나인 루카는 나를 보고는 경계 대신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안녕하세요. 알른 영애님.”

   

   나를 처음 보고 웃어주는 사람은 베네딕 이후로 처음이었기에 반가울 만도 했지만 난 루카의 관심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이 인간은 재능은 시련 속에서 피어난다고 생각하는 광인이니까.

   

   루카는 자신의 마음에 든 학생에게 달콤한 말로 접근해서는 그 사람에게 신용을 심는다.

   

   그리고 나서는 그 신용을 이용해 학생을 자신이 준비한 시련 속으로 밀어 넣지.

   

   이 시련이라는 게 학생의 입장에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그를 광인이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루카가 준비하는 시련은 그런 게 아니다.

   

   루카가 준비하는 것은 이겨내는데 실패하는 순간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시련이다.

   

   그의 아래에서 명성 높은 제자들이 많이 배출된 것도 그러한 이유다.

   

   시련을 극복한 자는 재능을 개화했기에 당연히 성공을 할 것이고,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이름 모를 곳에 묻혀 사라져 버리니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 놈이 저지른 일을 폭로하고 싶지만 당장은 불가능하다.

   

   증거도 없고, 평판의 차이도 극심한지라.

   

   지금 내가 엿을 먹이려 해도 미친 년이 또 개소리를 하는 구나라는 시선으로 바라볼 걸.

   

   물론 지금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머잖아서 난 이 놈을 반드시 끌어내릴 거다.

   

   루카의 존재는 변수 투성이고 지금의 난 변수를 내버려 두는 걸 엄청나게 싫어하니까.

   

   “대련하시는 걸 유의 깊게 봤습니다. 대단하시더군요.”

   

   ‘그래서 어쩌라고요.’

   “그래서 어쩌란 거야? 음흉한 쓰레기.”

   

   “아하하. 이거야. 소문처럼 날이 잔뜩 서 있으신 분이군요. 그냥 인사를 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웃음을 흘리는 루카를 보고 있자니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 새끼 설마 벌써부터 날 눈독 들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자 종이를 뽑아가시죠.”

   

   상자 안에 손을 넣어서 종이를 하나 뽑았다.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은 ‘13’이라는 숫자였다.

   

   “13번. 좋은 팀을 뽑으셨네요!”

   

   ‘좋다뇨?’

   “좋다니. 무슨 소리야.”

   

   “가보면 아실 겁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루카는 거기까지만 말을 할 뿐 더 이상 무어라 하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가보면 알게 될 일이니까.

   

   그리 생각을 하며 내 번호가 적힌 깃발의 아래로 향하던 나는 그 곳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발을 멈췄다.

   

   아니지? 내가 지금 잘못 본 거지?

   

   내가 분명 후방에서 공격을 지원해 줄 사람을 원했고 거기에 최적의 인선이 저 곳에 있는 사람이 맞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왜 얼빵영애가 저기 있는데!

   

   <적과의 동침인가.>

   ‘엄밀히 따지면 적은 아니죠.’

   

   얼빵영애와 내기를 하고는 있지만 난 딱히 내기에서 이기고 싶은 생각도 없고 얼빵영애를 미워하지도 않으니까.

   

   아. 나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얼빵영애라고 해버렸다.

   

   …이게 다 메스가키 스킬 때문이야.

   

   조이는 터덜터덜 걸어오는 나를 보고서 눈썹을 살짝 치뜨더니 날선 목소리를 냈다.

   

   “안녕하세요. 망나니영애님, 저희의 연이 참 깊은 것 같네요.”

   

   ‘그으러게요.’

   “그러게요. 얼빵영애님.”

   

   나를 노려보는 조이의 시선을 피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조이랑 대화를 나누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았으니까.

   

   이제부터 같이 던전에 들어가야 하는데 더 이상 악감정을 쌓으면 뒤에서 화염구가 날아올 지도 모르잖아.

   

   나 개인의 사정을 떼어놓고 생각을 해본다면 조이와 나라는 파티 구성은 꽤 괜찮은 축에 속했다.

   

   도발이 가능한 탱커인 나에다가 얼음과 불을 다룰 줄 아는 마법사인 조이라는 조합은 정석적인 전위와 후위였으니까.

   

   거기에 더해 수많은 노력 끝에 가문의 기사단에게도 인정받은 전사인 나와 소울 아카데미 게임 안에서도 최상급 캐릭터로 취급받았던 조이는 서로 기량도 좋은 편이었다.

   

   여기에 누가 끼더라도 던전 공략은 수월하겠네.

   

   물론 이 사이에 끼어버린 사람의 위장이 그리 좋지는 않겠지만 그건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높은 점수와 자신의 위장을 등가교환 하는 셈 치라고 해야지.

   

   얼마 있지 않아서 마지막 파티원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척 보기에도 엑스트라인 게 분명한 그 남자아이는 나와 루시가 아무런 대화도 없이 서로를 외면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발을 멈췄다.

   

   그리곤 자신의 번호표와 우리 근처에 꽂혀있는 깃발의 번호표를 몇 번이나 비교하더니 세상이 무너질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불쌍한 녀석.

   

   어쨌건 외모만 보면 차갑고도 아름다운 공작영애님과 베네딕의 묘사에 따르면 인형처럼 예쁜 백작영애님이니까 눈호강 한다 생각해.

   

   어쨌든 둘 다 속은 무해한 사람이라고.

   

   평판은 전혀 무해하지 않지만.

   

   “아..아.. 안녕하십니까! 전 리즈 남작 가문의 장남! 제이콥이라고 합니다!”

   

   제이콥 리즈? 들어본 적 없어.

   

   스쳐지나가는 엑스트라 이름으로도 말이야.

   

   정말 게임의 스토리에 아무런 지장도 없는 사람이구나?

   

   신경 써 줄 이유도 없겠네.

   

   잔뜩 겁을 먹고 있는 걸 보면 딱히 방해를 할 것 같지도 않으니 그냥 가만 내버려 둘까.

   

   “조이 파르탄입니다. 들어보셨지요?”

   “네! 물론입니다!”

   

   ‘루시 알른입니다.’

   “내 이름 알지. 허접? 알아서 기어.”

   

   “옙! 알겠습니다!”

   

   건방지다 못해 오만한 인사에 조이가 눈총을 보냈다.

   

   나보고 어쩌라고. 메스가키 스킬이 제멋대로 이야기를 하는데!

   

   조이는 보라는 듯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목소리를 냈다.

   

   “조금 있으면 던전에 들어가야 할 텐데 지휘는 어떻게 할 거에요?”

   

   ‘그건 제가 할게요.’

   “제가 하죠. 얼빵영애.”

   “당신이요?”

   

   조이의 의심어린 시선이 나를 관통한다.

   

   내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건 인정해.

   

   던전에 대해 잘하니 마니 이전에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스러운 인간이니까.

   

   그래도 한 번 믿어주라! 나 진짜 잘할 수 있어!

   

   “저어 그건 좀…”

   

   옆에서 기어들어가듯 나온 목소리에 눈을 돌렸더니 제이콥이 기겁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꼬와? 그럼 어디 한 번 네가 나랑 이 얼빵영애님을 지휘해볼래?

   

   한 번 실수하면 큰 일이 날거라는 위기감에 벌벌 떨면서 처음 보는 던전 공략을 할 수 있냐고!

   

   내가 노려봐 주었더니 제이콥은 자기 주제를 알고 뒤로 물러났다.

   

   ‘조이님…’

   “얼빵영애. 당신 던전 공략 해본 적 있어요?”

   

   없을 거다. 이건 게임에 존재하는 설정이기에 기억하고 있다.

   

   조이와 같은 파티를 맺고서 던전에 들어가면 아카데미 입학시험에서 들어가봤던 던전 이후로 처음이라는 소리를 하거든.

   

   “없어요. 그러는 당신은요?”

   

   ‘전 있어요. 그리고…’

   “전 있죠. 알른 가문의 기사단에게 던전 공략을 어찌해야 할지도 배웠고요.”

   

   내 말을 들으면서도 계속 눈에 들어간 힘을 풀지 않던 조이는 알른 가문의 기사단이라는 단어를 듣고는 처음으로 흥미를 들어냈다.

   

   나는 못 믿어도 가문의 기사단은 믿는단 건가?

   

   험악하게 생겼지만 바보같고 친절하던 그 아저씨들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들이었구나.

   

   하긴 괴물 같은 베네딕과 포셀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대단하지 않을 리가 없나.

   

   “사실이겠죠?”

   

   ‘네! 믿어주세요!’

   “못 미더우면 어떡하시게요? 얼빵영애. 당신보단 나을 텐데.”

   

   메스가키 스킬이 왜곡해버린 말을 내 귀로 듣고서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런 식으로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하. 그렇군요.”

   

   그녀의 찌푸려진 미간은 오해 같은 게 아니다.

   

   거기에 새겨진 건 진심을 담은 분노다.

   

   게임 내에서도 진심으로 화를 내는 일이 두 번 밖에 없는 조이에게서 진심어린 화를 이끌어 내다니 메스가키 스킬의 도발 성능은 장난 아니라니까.

   

   근데 그 도발 성능을 몹한테 써야지 왜 아군한테 써먹냐고. 이 쓰레기 같은 스킬아!

   

   “좋아요. 어디 한 번 지휘를 해보시죠. 그 자신감만큼 환상적인 지휘를 선보이는 걸 기대하겠습니다.”

   

   이거 조이한테 새겨진 오해를 푸는 걸 불가능할 것 같은데?

   

   미운털이 너무 많이 박혀서 조이의 마음 속 나는 검은 색 오리가 되어있지 않을까?

   

   <그 전에 네 머리에 마법이 꽂히는 걸 걱정해야 하지 않겠느냐.>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아카데미 시험에서 오사를 했다간 그대로 탈락하게 될 텐데 착하디 착한 조이가 그런 일을 할 리 없다.

   

   …아마도.

   

   *

   

   말 한마디 오가지 않는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떼우다 보니 어느새 우리가 던전에 들어갈 차례가 됐다.

   

   아카데미의 면접관이 우리를 향해 주의사항을 무어라무어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를 한 귀로 흘려들었다.

   

   어차피 이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건 간에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은 최단기록이니까.

   

   <팀원 내에 불신이 가득한데 그런 일이 가능할까?>

   ‘괜찮아요. 믿게 만들면 되니까.’

   

   신뢰란 어디에서 생기는가.

   

   바로 실적!

   

   던전 안에서 알른 가문의 기사들도 감동한 내 화려한 지휘능력을 보게 된다면 아무리 조이가 날 밉게 볼지라도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 희망적인 관측이라고 본다만.>

   

   꼰대 할배가 지껄이는 헛소리를 무시하고서 면접관의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당부드립니다만 혹시나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저희 측에서 지급해드린 마도구를 사용해 복귀하시면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면접관이 몸을 비켰고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던전은 소울 아카데미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서 그런지 에반스의 중소던전과는 달리 섬뜩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섬뜩함은 아그라와 관련된 무언가인 걸까?

   

   그래서 난 망설임없이 가장 먼저 던전의 내부로 발을 들였다.

   

   던전의 안은 벽에 여러 개의 마광석이 박혀 있어서 꽤나 밝았다.

   

   덕분에 난 느긋이 던전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정체 모를 잔해로 가득한 바닥과 거뭇거리는 색이 여기저기 덧씌워진 회색의 벽.

   

   한 때는 사람들이 이용했을 반토막이 난 탁자.

   

   그 위에 늘어진 유리조각들.

   

   무언가 사고가 있었던 연구실이라는 느낌이 드는 섬뜩한 느낌의 던전은 내가 아는 곳 중 하나였다.

   

   ‘연금술사가 머무르던 곳’

   

   소울 아카데미 실기 던전 중에서는 난이도가 높은 편에 속하는 곳임과 동시에 여러 숨겨진 통로가 있어서 그를 잘 이용하면 기록을 얼마든 줄일 수 있는 장소.

   

   이 곳이 어떤 던전인지를 확인한 순간 난 입맛을 다시며 머릿속으로 최단 경로를 그려나갔다.

   

   이거 진짜 날로 먹을 수 있겠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인물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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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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