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7

    <37 – 신입생기숙사>

     

    조나는 오크노디에게서 온 보고서를 받았다.

    동글동글한 글씨체가 앙증맞은 오크노디를 쏙 닮아서 절로 마음이 푸근해졌다.

     

    ━━━

    *입학식 전 준비사항

     

    ①교복구매✔

    -재단에서 지원해준 물건 받았어요!

    -치마 너무 허전해요!

     

    ②신입생기숙사 입주신청✔

    -111호 입주성공!

    -실수로라도 111.1호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

     

    ③반입물품신청✔

    -신청목록 : 나침반, 야광석, 사탕주머니, 돌주머니, 넓고 두꺼운 천, 구조거울, 나이프, 삽, 금속막대, 로프, 공책, 와이어.

    -허가목록 : 사탕주머니, 돌주머니. 나머지 반려.

     

    ④재단에 요청할 지원물품✔

    -없음.

    ━━━

     

    보자마자 한숨이 나오는 물품이 있다.

    돌주머니.

    아직도 그 버릇은 못 고친 건가?

     

    ‘주목을 받겠군요.’

     

    재단의 장학생은 아카데미의 주목을 받는다.

    수많은 사건이 있었고, 그들도 경험으로 이해했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위험성을.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장학생의 말로를.

    아카데미의 학생에게 마음을 준 교수들은 항상 선택을 강요받는다.

     

    아이의 성장이 정체되어 가혹한 지령에 휘둘리는 꼴을 감내하거나.

    억지로라도 성장을 이어나가게 만들어 더 높은 위치로 끌어올리거나.

     

    지독한 인질극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제자를 만들고, 제자의 성장과 미래를 이용해 은근한 협력을 강요한다.

    이번에는 또 어떤 교수가 재단의 덫에 휘말리고 피를 볼 것인가.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다.’

     

    조나는 눈을 감았다.

    자신의 옛 은사에 대한 기억도.

    스승과 자신, 재단 사이에 일어났던 사건들도.

    전부 눈을 감는다.

    떠올려서 좋을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신경을 써야 한다면 이쪽인가.’

     

    ④재단에 요청할 지원물품

    -없음.

     

    보통 하나라도 더 많은 지원을 요청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이들이거늘.

    도움을 요청하기를 두려워한다.

    아니, 병적으로 거절한다.

    오크노디는 그런 아이였다.

    뭐든지 혼자 해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버림받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서두르는 아이.

    훈련을 시작할 때는 그런 모습도 대견했지만 이제는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이 또한 그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가 어찌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했다.

     

    -실수로라도 111.1호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

     

    잠꼬대라도 한 건지.

    보고서에 낙서라도 한 건지.

    아이의 장난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또한 한때 아카데미의 신입생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단언할 수 있다.

    신입생기숙사에 111.1호 따위는 없다고.

    저것이 무엇이든 오크노디가 불안해한다면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 *

     

     

    기프트 아카데미는 외딴 섬에 자리해있다.

    학생들의 빠른 성장을 위해 마나분포가 높은 섬에 아카데미를 세웠기 때문이다.

    <차원관문> 없이 보통의 방법으로 섬에 도달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상당한 실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찾아올 수 없는 위험지대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륙의 수많은 나라들도 아카데미에 물리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아카데미에 관심이 많은 조직들은 생각했다.

     

    -침공이 힘들다면 스파이를 심고 정보라도 얻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래서 아카데미에는 수많은 스파이들이 돌아다닌다.

    그 중 하나는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스파이였다.

     

    ‘지령인가.’

     

    특수한 방법으로 정해진 날, 정해진 장소에서만 외부와의 연락을 취하는 스파이 에이프릴.

    그녀는 이번 지령이 참 별나다고 생각했다.

     

    「신입생기숙사 여성동 111.1호의 실체를 확인하고 위험사항을 보고하라.」

     

    조사를 위해서는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고 기숙사에 접근할 명분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스파이 에이프릴에게는 이럴 때를 위해 준비된 위장신분이 있다.

     

    “청소부? 잘됐네요. 제 방의 시트도 바꿔주세요.”

    “아줌마. 가는 길에 이것도 버려주세요.”

     

    버르장머리 없는 신입생들이 귀찮게 굴기도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참아줄 수 있다.

     

    “거기 여자. 잠시 내 방에서 시종을 들어라.”

    “??”

    “브라우니 가문의 장녀, 옐친 브라우니의 이쁨을 받을 기회를 허락하마.”

     

    이렇게 선을 넘는 경우가 곤란하다.

    여색에 눈을 뜬 귀족가의 장녀라니.

    기분 나쁜 건 둘째 치고 조금은 수치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재단의 스파이에게는 이럴 때에 대비하여 세워진 지침이 있다.

     

    -재학생이 귀찮게 굴거든 이 말을 해라.

     

    상급자의 충고를 떠올리며 에이프릴은 입을 열었다.

     

    “저는 기프트 아카데미에 소속된 직원입니다. 아카데미 재학생이 직원의 업무를 방해할 시, 상부에 보고하여 불이익을 행사할 권리가 있습니다.”

    “…내 말은,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뜻이었지. 딱히 업무를 방해하려던 건 아니다. 흠흠. 시종을 들라던 말도 농담이었다.”

     

    마법이 없어도 마법사가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했던가.

    효과 하나는 정말 발군이다.

     

    <신입생기숙사>

    <좌동 – 여성전용구역>

    <111호>

     

    기숙사는 층당 20개의 방이 들어선다.

    그중 편의성이 가장 좋은 1층은 모든 방이 1인실.

    4인실이 기본인 2층부터의 방과는 명백히 차별화된 혜택이 주어져있다.

     

    ‘그만큼 아카데미에서도 관리감독에 신경을 쓰는 특별플로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나?’

     

    개인적으로는 반신반의했지만 그걸 알아보기 위해 파견된 것이 자신이다.

     

    똑똑.

     

    “계십니까?”

     

    보통의 신입생들이 방을 비우고 이곳저곳 빨빨 돌아다니는데 비해 111호실의 입주생은 방 안에 얌전히 있었는지 노크소리를 듣고 벌컥 문을 열었다.

    밖으로 빼꼼 내민 고개가 뱁새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며 호기심을 표했다.

     

    “신규이벤트?”

    “청소부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쓰는 암호라도 되는 걸까.

    의아함은 접어두고 청소를 해준다는 명목 하에 방에 들어왔다.

     

    “벽에 얼룩이 있군요.”

    “헉! 제가 한 거 아니에요!”

    “그런 생각은 안했습니다.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문제는 이 벽 너머에 뭐가 있는가.

    11번째 객실과 12번째 객실 사이에는 약간이지만 빈 공간이 있다.

    평수로 따지자면 약 0.5평 남짓.

    하중을 고려하여 설계된 층과 층을 지탱하는 벽이 있는 공간이다.

     

    꾹꾹.

    똑똑.

     

    손으로 누르고 가볍게 두들겨보아도 느껴지는 감상은 그저 평범한 벽이다.

     

    똑똑.

     

    옆방에서 노크소리를 들었는지 마주 노크하는 소리도 들린다.

    오크노디 입주생은 어쩐지 안절부절 못하는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혹시 방에서 생활하는데 문제라도 있습니까?”

    “전혀요!”

     

    경계심이 높다.

    이 아이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

    청소를 마친 뒤, 이번에는 112호에 들렀다.

     

    “청소요? 상관없어요.”

     

    이번에도 시트를 갈다가 벽의 얼룩을 핑계 대며 조사해보는 에이프릴.

     

    똑똑.

    똑똑.

     

    노크 소리에 노크가 되돌아오는 것 말고는 그리 대수로운 일도 없었다.

     

    “풋. 귀엽네. 옆방에 사는 애가 한 거죠?”

     

    노크소리를 재밌다고 여긴 걸까.

    112호 입주생 헤스티아는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에이프릴이 보기엔 이쪽도 귀여웠다.

     

    “아까의 답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까라니요?”

    “옆방에서 노크를 할 때 먼저 노크를 돌려주셨잖습니까. 그때도 지금처럼 제가 노크를 했습니다.”

    “저 노크 안했는데요?”

    “?”

    “아~ 알았다. 지금 어수룩한 신입생이라고 장난치시는 거죠? 하하. 안 속아요, 안속아. 용병대에서도 이런 문화 있었거든요.”

     

    에이프릴은 심각한 얼굴로 벽에 대고 말했다.

     

    “오크노디양. 들리십니까?”

    “…….”

    “들리십니까?”

     

    잠시 후.

    흐릿하게 “들려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뭐야. 역시 장난이잖아.”

     

    112호 입주생 헤스티아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놀라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잠시 착오가 있었습니다.”

    “됐어요. 간만에 심장도 쫄깃하고 재밌네.”

    “이후로는 기숙사에서는 기본적으로 면학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기에 옆방에 말을 거는 행위는 지양해주시기 바랍니다.”

    “방금은 실컷 했잖아요.”

    “확인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절차로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았어요. 조용히 지낼게요.”

     

    방을 나온 에이프릴.

    그녀는 조용히 손으로 팔뚝을 쓸어내렸다.

    팔의 소름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다.

     

    ‘잠깐이지만 분명히 들어서 기억하고 있어.’

     

    방금 벽에서 돌아온 대답.

    그건 오크노디양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111호와 112호의 사이.

    복도에 선 에이프릴은 심각한 얼굴로 방 사이를 노려보았다.

    사람이 살기엔 터무니없이 좁은 공간.

    저 안에는 대체 뭐가 있는 걸까.

    불길한 상상이 멈추질 않는다.

    두려움을 참을 수가 없다.

     

    “으으.”

     

    겁에 질려서 급히 걸음을 돌리는 에이프릴.

    그녀는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같은 층 입주생들이 저 청소부는 뭘 보고 저리 겁을 먹고 달아나는 걸까, 하고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 *

     

     

    휴, 들키는 줄 알았네.

    111호와 112호 사이에 있는 벽.

    111.1호에는 입주생은 물론이고 아카데미 관계자들도 모르는 존재가 살고 있다.

     

    <대답하는 문>

     

    상호작용을 시도하면 대답이 돌아오는 문이다.

    그리고 이 문은 1학기 중간고사가 되면 아주 발칙한 일을 저지른다.

    옆방의 입주생, 헤스티아.

    그녀를 첫 번째 메인보스.

    <광란의 헤스티아>로 각성시키는 것이다.

    경위는 간단하다.

    그녀는 1학기 내내 자신이 대화를 나누었던 옆방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느 날을 기점으로 미치광이가 된다.

    안 그래도 광전사 클래스였던 헤스티아가 완전히 미쳐버렸으니 그 뒤에는 참사가 벌어진다.

    동급생 십 수 명이 부상을 입고 더러는 죽기까지 하는 큰 사고가 벌어진다.

    이 비밀을 아는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청량한 개울물들은 지레 겁먹고는 바로 교수한테 제보해서 <대답하는 문>을 없애버리지만 고일대로 고인 고인물은 절대 그런 짓을 안 한다.

     

    ‘말이야 대충 내가 해줬던 것처럼 맞춰주면 되잖아?’

     

    그럼 헤스티아는 미치지 않는다.

    덤으로 <대답하는 문>도 멀쩡하게 계속 남는다.

    원작게임의 경우.

    그렇게 중간고사가 시작된다면.

     

    -이번 중간고사 ㅇㅇ교수의 기출문제와 예상답안을 알려줘.

    -알았어.

     

    이 기특한 문이 공부를 도와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익명의 후원자님 7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챕터보스의 흑막도 고인물 앞에선 그저 기출문제집!
    하지만 남에게 들키면 벽에 대고 말거는 아이…!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