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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이제 곧 학기말 평가일세.”

        

        

       오르핀관 A 클래스 강의실. 아침 수업을 들으러 온 최상위권 5명의 학생들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다. 학생 수에 비해 공간은 쓸데없이 넓은 듯했다.

        

       그들이 주시하고 있는 건 교탁 앞에 서 있는 붉은 머리칼을 가진 중년 남자 교수, 필립 멜트런이었다.

        

       그는 뒷짐을 진 채 점잖은 목소리로 공지사항을 전하고 있었다.

        

        

       “학기말 평가는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으로 나뉘어져 있네. 필기시험은 하루 9시간씩 총 5일간 치러지고, 실기시험은 구 아카데미 부지에서 5시간 동안 진행되지. 그대들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이자 귀족 중의 귀족이니, 마지막까지 훌륭한 성적을 거두리라 믿네.”

        

        

       ‘귀족 중의 귀족’. 학생들 사이에서 신분차별주의자로 유명한 필립 교수가 A 클래스 학생들을 치켜세우기 위해 주로 쓰는 표현이었다.

        

       물론 5명의 A 클래스 여학생들에겐 별 감흥이 없는 칭찬이었다.

        

       여성이지만 남자 교복 차림으로, 셔츠 단추를 풀어헤치고 다니는 리제타 라이온하트.

        

       항상 이유 모를 음흉한 미소를 흘리고 다니는 케리드나 화이트클락.

        

       언제나 졸고 있는 시엘 카르네다스.

        

       초롱초롱한 눈빛을 지녔으나, 마치 군인 같은 기개가 느껴지는 카야 아스트레앙.

        

       그리고 누구에게나 냉담한 1학년의 정점, 루체 엘타니아.

        

       필립 교수는 자신이 싫어하는 평민이 없으면서도, 전부 뛰어난 실력자들로 구성된 A 클래스를 흡족해하고 있었다.

        

        

       “시엘 카르네다스, 자네는 학기말 평가 때도 그렇게 졸고 있을 텐가?”

        

        

       물결처럼 굽이치는 청색 단발머리의 미소녀, 시엘 카르네다스는 고개를 꾸벅거리면서 힘겹게 눈을 떴다.

          

       그녀가 수업 시간마다 조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이는 태도 점수가 깎일 만한 불성실한 태도이나, 평민에게 옹졸하고 귀족에게 관대한 필립은 매번 별문제 없다는 듯이 넘어가는 편이었다.

        

       조금 전 그가 꺼낸 말도 반은 농담조였다.

        

       시엘은 흘리고 있던 침을 소매로 슥 훔치더니, 힘없이 뜬 눈을 비비적거리며 필립을 쳐다보았다.

        

        

       “아마도….”

        

        

       타인에게 관심 없는 루체를 제외하고, 나머지 3명의 학생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으나.

        

       필립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흘리기만 했다.

        

        

       “뭐, 그럼 수업 시작하겠네.”

       

       

       이제는 괴짜뿐인 A 클래스에 적응한 필립 교수였다.

        

        

        

       * * *

        

        

       

       “지금부터 학기말 평가 실기시험, ‘펠 카드 쟁탈전’ 의 룰을 설명하겠다.”

       

       

       드디어 <메르헨의 마법 기사> 「3막 3장, 학기말 평가」 파트가 시작되었다.

        

       저번 주까지는 하루 9시간씩 총 5일간 필기시험을 치렀다. 게임에선 그냥 넘어갔던 걸 실제로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특히 과목이 스트레스였다. ‘기초마법개론’, ‘기초원소학’, ‘마수생태학’, ‘마도구학’, ‘법진분석학’ 등…. 문과 출신이라 계산 문제 풀려니 죽겠더라.

        

       단련과 병행하면서 공부하는 건 한계가 있었기에, 모든 내용을 숙지하고 시험을 치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부딪쳤으니 나름 괜찮은 성적이 나올 거라 예상하고 있다.

        

       

       이곳은 구 메르헨 아카데미의 광장. 이전에는 쓰였으나 지금은 폐쇄되어 버린 곳이다.

       

       나를 포함한 마법학부 1학년생들은 전원, 광장에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주변엔 미려한 외관을 지녔으나 폐쇄되어 버린 건물들과, 관리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정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학생들 앞에 있는 무대 위에선 페르난도 교수가 확성기를 들고 떠들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교수들과 시험 감독관들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룰은 간단하다. 바로 이 ‘펠 카드’를 5장 모아 제출처에 갖다 주면 시험 통과다.”

       

       

       페르난도 교수는 카드 한 장을 염동 마법으로 띄워 학생들에게 내보였다. 마도서와 마법사를 표현한 심볼이 그려져 있는 세련된 카드였다.

       

       

       “펠 카드는 이 드넓은 구 아카데미 부지 이곳저곳에 숨겨져 있다. 아주 미약한 마나만 발산하고 있어서 찾기 어려울 거다.”

        

        

       구 메르헨 아카데미의 부지 반경은, 정확한 비교 대상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여의도 수준이라 봐야 할까. 아무튼 넓었다.

        

        

       “제출처는 펠 카드 5장을 모으면 바로 알게 될 거다. 어디로 뜰지는 무작위로 정해지니, 우연히 제출처를 발견했다고 좋아할 필요는 없다. 참고로 펠 카드는 빼앗는 것도 가능하다. 펠 카드를 가지고 있는 학생을 기절시키면 알아서 너희에게로 옮겨질 거다. 염동 마법이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나 싸움 못 하는데 어떡해’? ‘이것도 서바이벌 룰이었어’? 이런 대화들이 오가고 있었다. 딱 반 배정 평가 때와 같은 레퍼토리였다.

        

       그 와중에 문득 페르난도 교수 뒤에 서 있는 시험 감독관, 도로시 하트노바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햇볕처럼 밝은 미소를 흘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귓불에 달려 있는 별과 달 모양 귀걸이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내 최애캐 너무 귀여운 거 아니냐고~.’

        

        

       나는 아빠 웃음이 흘러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슬며시 손을 흔들고 인사했다.

        

       그런데 어째 내 주변에 있던 건방진 남학생들이 도로시의 미소를 보고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저 인사는 내 것이다, 새끼들아.

        

        

       “그리고 이번 학기말 평가의 가장 큰 특징은.”

        

        

       페르난도 교수는 검지를 위로 뻗었다. 학생들은 그의 손가락질을 따라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실시간으로 1위부터 5위까지의 정보가 공개된다는 거다.”

       

        

       티 없이 맑은 하늘에, 모래처럼 보이는 대량의 마나 알갱이들이 새겨져 있었다. 커다란 사각형이 두 개 있었고, 각 사각형 안에 ‘-’가 하나씩 세로로 총 다섯줄 새겨져 있었다. 엄청난 규모였다.

       

       

       

       –

       –

       –

       –

       –

       

       처치

       –

       –

       –

       –

       –

        

        

       “왼쪽 칸에는 누가 몇 장의 펠 카드를 지니고 있는지 알려주고.

       오른쪽 칸에는 누가 몇 명의 학생을 처치했는지 알려 준다.”

        

        

       카드 보유 수량과 킬(Kill) 횟수로 각각 1위부터 5위까지가 누구인지 생중계된다는 얘기였다.

        

        

       “다음, 우리가 나눠준 팔찌를 보거라.”

        

        

       학생들은 페르난도 교수의 지시에 따라 학사 측에서 나눠준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저마다 손목에 착용한 채였다.

       

       팔찌에는 ‘펠’과 ‘처치’라고 새겨진 버튼이 각각 있었다.

        

        

       “그 팔찌는 학기말 평가가 끝날 때까지 풀 수 없다. 그게 있는 이상, 너희들의 위치는 실시간으로 우리 쪽에 전달된다.”

        

        

       이 팔찌는 마법의 힘을 빌린 GPS 같은 거다.

        

       학기말 평가를 통과하면 알아서 풀어 줄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이 팔찌를 통해서 1위부터 5위까지의 학생들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도 체크할 수 있다. 펠 카드를 빼앗든지 도망치든지 알아서 해라. 너희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전부 평가에 반영되니 신중하게 행동하거라.”

        

        

       즉 이것은 서바이벌 게임이자, 눈치 게임이자, 쟁탈전 게임.

        

       마법사로서의 마나 감지력과 전투 능력, 전술 능력, 문제 해결 능력 등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제한 시간은 5시간. 그 안에 펠 카드 5장을 모아 제출처에 도착하면 된다. 그때는 팔찌 풀고 돌아가도 좋다. 펠 카드를 5장 초과해서 가져와도 가산점은 없으니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도록.”

       “교수님, 만약 시험 통과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한 남학생이 손을 들고 묻자, 페르난도는 여느 때와 같은 얼음장 같은 얼굴로 설명해주었다.

        

        

       “만약 전투불능 상태가 되거나 제한 시간 안에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학생들은… 오늘 늦은 시간까지 강제 보충수업을 들어야 한다.”

       “예에에?!”

        

        

       학생들은 경악했으나, 페르난도 교수가 가볍게 손을 내밀자 이내 조용해졌다.

        

        

       “페널티다. 도망칠 걸 대비해서 팔찌도 풀어 주지 않을 거다.”

        

        

       너희들의 불만사항 따윈 관심 없다는 듯 아예 못 박아버리는 페르난도 교수.

        

       학생들은 기겁하거나 질색하는 반응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오늘로써 너희들의 첫 학기가 마무리된다. 부디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란다. 이상.”

        

        

       페르난도 교수의 설명이 끝나자, 옆에 있던 진행자가 전부 마차를 타라고 지시를 내렸다.

        

       학생들이 투덜대며 떠나가기 시작하고, 나도 걸음을 옮기려 할 때.

        

       대뜸 도로시가 나를 향해 입가에 손을 모으고 ‘화이팅’이라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그 후, 오른팔을 위로 쭉 뻗어 조용히 흔들어 주었다.

       

       아으, 귀여운 것. 나 죽어.

        

       광장 뒤에는 경차처럼 개량된 작은 마차들이 떼 지어 대기 중이었다. 아무 마차에나 탑승하면 그 마차가 정해진 위치로 승차한 학생을 데려가는 식이었다.

        

       나는 아무 마차나 골라 탄 뒤, 정해진 위치로 가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1학년 1학기 마지막 파트, 학기말 평가와 뇌신조 토벌전. 이를 위한 계획은 미리 세워둔 상태였다.

        

       학기말 평가 도중, 루체가 시험에 통과하고 저녁놀이 져갈 때쯤.

       

       마족, ‘사역의 베라’가 루체의 사역마를 빼앗기 위해 출현한다.

        

       사역마에 한정해선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세계관 최강자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극강의 지배력을 자랑하는 마족이다.

        

       그 마족은 루체의 사역마인 뇌신조-갈리아를 강제로 소환시켜 자기 휘하에 두고.

        

       시험장으로 가서 주인공, 이안 페어리테일을 죽이려 했다가 도로시의 난입으로 실패한 뒤.

        

       도로시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 작전상 후퇴하자 이곳, 구 메르헨 아카데미 부지를 뒤덮을 만큼 광범위한 뇌신조의 결계를 펼칠 것이다.

        

       그 전에 내가 학기말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최적의 타이밍에 사역의 베라를 처치한다’라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 터.

       

       

       ‘즉, 내 목적은.’

       

       

       학기말 평가에 최대한 빨리 통과해 팔찌를 풀고 자유의 몸이 된 다음.

        

       <메르헨의 마법 기사> 「3막 4장, 뇌신조 토벌전」 파트에 대비하는 것이 된다.

       

       여담이지만 시험에 불참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마르크스 약조에 정해진 사항 이외의 사유로 시험에 불참했다간 자동 퇴학이니까.

        

        

       “쓰읍, 하아.”

       

       

       들숨, 날숨으로 긴장 좀 풀었다.

        

       이제 현 상태를 점검해 보자.

        

       허상의 리파를 처치한 날로부터 지금까지 내 능력치에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상시 발동 중인 [빙제]도 아직 활용이 불가능해서, 효과 자체가 나지 않는 수준으로 최대한 억누르고 있었다.

        

       그래도 학기 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성장을 이룩하긴 했다. 재해 개미 군단과 허상의 리파를 처치한 덕분이었다.

        

        

       [ 상 태 ]

        

       이름 : 아이작

       Lv : 57

       성별 : 남

       학년 : 1

       칭호 : 신입생

       마력량 : 1450 / 1450

       – 마력 회복 속도(C)

        

       – 체력(B-)

       – 근력(B-)

       – 지력(C+)

       – 정신력(B+)

        

       잠재력 <<상세>>

        

        

       [ 전투 능력 ]

        

       원소 계열 1 : 얼음

        

       – 원소 화력(B-)

       – 원소 효율(B-)

       – 원소 시너지(B-)

        

       원소 계열 2 (잠김)

        

        

       [ 보유 스킬 ]

        

       액티브

       – (★1) 얼음 생성(B-) / (★5) 흑빙(B-)

       – (★2) 얼음 장막(B-)

       – (★1) 냉기 발산(B-)

       – (★1) 기초 보호 마법(D+)

       – (★4) 서리불꽃(C)

       – (★4) 빙벽(C)

       – (★5) 빙결 폭발(C-)

       – (★2) 싸락눈(C)

        

       패시브

       – (★7) 심리 간파

       – (★5) 마족 감지

       – (★9) 빙제

        

       스킬 트리 <<상세>>

        

        

       [ 고유 특성 ]

        

       – 멸악자

       

        

       내 현재 레벨은 57. 최근에 레벨 1이 더 올랐다. 상위권 학생들과 비교하면 달팽이 만큼 느린 성장 속도이나, 아이작 자체가 이런 몸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냥 감지덕지라고 여길 수밖에.

        

       참고로 새로 얻은 스탯 2는 [학습 효율]에 투자한 상태였다.

        

       

       ‘한 학기 동안 최약체에서 이 정도면 많이 성장했지….’

       

       

       물론 아직은 1학년 중에서 이기지 못 하는 녀석들이 더 많은 느낌이지만 말이다.

        

        

       “도착했어, 학생! 열심히 하라구!”

       “감사합니다.”

        

        

       마부와 인사를 나누고 마차에서 내렸다. 도착한 곳은 ‘세이란관’ 입구. 푸른 잎사귀와 덩굴 식물이 에워싸고 있는 4층짜리 석재 건물이었다.

        

       원래부터 그런 디자인이었으나, 관리가 되지 않은 탓에 이제는 창문들까지도 전부 식물로 가려진 채였다.

        

       내가 찾아야 할 건 펠 카드 5장.

       

       하지만 펠 카드를 보유하게 되는 순간 내 이름은 순위권에 오를 테고, 1학년생들은 전부 내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될 터다.

       

       그리고 나는 모두의 표적이 되고 말겠지. 무조건 쳐발릴 것이다.

       

       즉, 중요한 것은 펠 카드를 5장 모으고 제출처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남는 것’.

       

       그걸 또 최대한 빨리 해내야 하는데, 어느 수준이어야 하느냐.

       

       얼추 계산해 보니 웬만해선 1등이나 2등으로 통과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지랄 맞은 난이도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수도 없이 플레이했던 시험이다.’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제발 계획대로 잘 풀려라….

        

       근심을 없애기 위해 가볍게 스트레칭하면서 몸을 풀었다. 이내.

        

        

       퍼엉!

       

       

       구 메르헨 아카데미 부지 중심부에서 시험 시작을 알리는 폭죽이 요란하게 터졌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서, 바로 뒤에 있는 세이란관을 무시하고 곧장 내달리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선작 2천 돌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검성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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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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