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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

        “무림에 들어선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별호를 얻으시다니…대단하십니다. 대협.”

        ​

        무광이 눈을 반짝이며 감탄했다.

        ​

        너 검 말고 다른 것도 관심을 갖긴 갖는구나? 수레에 앉아서도 검로가 어떻고 초식이 어떻고 하던 얘가. 하도 백장로한테 꾸지람을 들어서 그런가.

        ​

        “너도 곧 얻게 되겠지.”

        ​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별호란 게 얻고자 하면 얻기 어렵고, 얻지 않고자 하면 얻어지는 법이지 않습니까?”

        ​

        “그러니 위 대협 귀찮게 하지 말고 검술이나 더 수련하거라.”

        ​

        “예 스승님.”

        ​

        백장로에게 핀잔을 들은 무광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몸을 돌려 야영지로 돌아갔다.

        ​

        야영지에는 혜령이가 홀로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을 보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

        “사저씨 왔어요?”

        ​

        “사저씨는 뭐냐.”

        ​

        “청안사자 아저씨니까 줄여서 사저씨!”

        ​

        뭐라 말하기 미묘한 별명이네. 

        ​

        까놓고 말하면 무협지에서 붙을 만한 별명은 아닌 것 같은데. 

        ​

        사실 혜령이도 빙의자가 아닐까.

        ​

        아니면 환생자라거나.

        ​

        중세 중원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이질적인 감성을 뽐내는 혜령이의 언동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옆에 앉았다. 하진이는 어디 갔지?

        ​

        “하진이는 어디 갔나?”

        ​

        “사냥을 해온다며 잠깐 멀리 나갔어요! 전 불 지키고 있구요.”

        ​

        “넌 안 따라가고?”

       

        “전 사냥을 정말 못하거든요…아래가 잘 안 보여서…”

        ​

        혜령이 고개를 푹 숙였다. 왠지 자기 가슴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

        하긴, 저렇게 큰 가슴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붕대로 고정한다 쳐도 도망치는 동물을 쫒아가기 쉽지 않겠지. 아무리 무림인이라고 해도 인대가 단련되는 건 아니잖아.

        ​

        전에 보니 먹을 때도 양념 같은 게 가슴에 떨어져서 불편해하던데.

        ​

        혜령이 입장에서는 저 큰 가슴이 정말 불편하기는 하겠네.

        ​

        “너무 시무룩해 하지 마라. 너도 잘하는 거 있잖아.”

        ​

        “있어요?”

        ​

        “음…말 잘하는 거?”

        ​

        “헤헤.”

        ​

        생각나는 게 별로 없어서 대충 질러본 거였는데, 좋아하는구나. 뭐, 본인이 좋으면 좋은 거지. 나는 피식 웃으며 롱소드를 꺼내 들었다.

        ​

        지금까지는 몸 풀 때 빼고는 꺼낸 적이 없었던 검. 

        ​

        내 애병이 불꽃이 내뿜는 따스한 빛에 감싸여 노을빛으로 반짝였다. 맨날 이렇게 기름칠만 하고 있는데 휘두를 날이 언제 올까.

        ​

        가능하면 싸움은 피하려 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검을 뽑아 들 수밖에 없을 터. 가능하면 무림맹 근처에서 쓸만한 야장을 찾아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해야지.

        ​

        아예 검투술에 특화된 글라디우스나 무난무난한 아밍소드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

        내가 배워온 아츠가 한두 개도 아니고,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수단이 하나라도 늘어나면 유리하니까.

        ​

        롱소드 검술이 범용성 하나는 좋지만 때로는 범용성보다 특정 검로에 특화된 무기가 더 유리할 때도 있으니.

        ​

        그런 생각을 하며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으니, 하진이 잘 손질된 토끼를 손에 쥐고 풀숲을 헤쳐나왔다. 그는 몸에 붙은 나뭇잎들을 털어내고는 가지고 있던 물로 토끼를 씻더니, 나무 꼬챙이에 꿰어 불 위에 올려놓았다.

        ​

        “손질 좀 많이 해봤나?”

        ​

        “몇 년 전에 무림맹에 갈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때 익혔습니다.”

        ​

        “무림맹이라…이제 반나절만 더 가면 장사에 도착하니 곧 얼마 안 가 호북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여기가 지금 장사 바로 아래쪽에 있는 산이니 그렇게 되나? 사실 그냥 지금 달려가도 되지만 서두를 필요가 없어서 느긋하게 가는 중이니.

        ​

        애초에 지금쯤이면 호북성에 있는 무림맹에도 마교의 해남검문 습격과 벽력탄 등장 소식이 쫙 퍼졌을 테고, 우리가 도착할 때쯤이면 대책을 세우고 있겠지.

        ​

        …세우고 있는 거 맞겠지?

        ​

        쓸데없이 회의한답시고 시간만 잡아먹는 꼴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서역에서 기사 노릇할 때 그 짓거리 하는 연합군보고 얼마나 빡이 쳤는데.

        ​

        전쟁에서 정치질하는 새끼부터 일단 효수하고 시작해야 굴러간다니까.

        ​

        그걸 못 해서 우리 기사단이 전멸했지만.

        ​

        “호북이라…”

        ​

        “대사형, 가는 길에 동정호를 볼 수 있을까요?”

        ​

        “먼발치에서 볼 수는 있을 거다.”

        ​

        “허허, 동정호라. 아주 몽환적인 곳이지. 정말 신선이 살 것 같은 호수란다.”

        ​

        “에이, 신선은 무슨, 술 먹고 나자빠진 주정뱅이들만 넘치는 곳이잖아요?”

        ​

        “하경아.”

        ​

        “아, 알았어요.”

        ​

        대사형은 근엄한데 둘째는 촐싹거리는 게 어디 가서 칼 잘 맞을 관상이네 아주. 나는 깝죽대는 하경에게서 시선을 돌리곤 불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기 시작하는 토끼구이를 바라보았다.

        ​

        일곱 명이서 먹기엔 양이 좀 미묘해 보이는데. 뭐 대충 조금씩 먹고 나머지는 전 마을에서 사 온 음식으로 대충 때우면 되니 뭐…

        ​

        “슬슬 다 익었군요.”

        ​

        하진은 책임자답게 고기의 살을 발라내 일곱 명에게 분배했다. 

        ​

        우리는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가져온 모포를 펼치고 자리에 누웠다.

        ​

        밥 먹고 바로 눕는 건 좀 그렇긴 하지만, 무림의 아침은 빠르니 일찍 자는 게 좋았다.

        ​

        뭐 여기에 스마트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밤놀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아저씨…”

        ​

        그렇게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니, 옆에서 혜령이가 나를 불렀다. 나도 간신히 들을 만큼 작은 목소리. 나는 혜령이의 부름에 작게 입을 열어 대답했다.

        ​

        “왜.”

        ​

        “잘 자요.”

        ​

        “…그래, 너도 잘 자라.”

        ​

        헤헷, 하고 웃음소리가 들린다. 

        ​

        그 웃음소리를 끝으로 내 의식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저기가 장사인가.”

        ​

        “전에도 본 적이 있지만, 이 경치를 볼 때마다 압도당하는 기분입니다.”

        ​

        하진의 말대로, 장사의 경치는 사람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

        이 시대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초대형 도시라서 그런 걸까. 여기가 중세인지 현대인지 모를 정도로 높은 건물들이 즐비해서 그런 건가.

        ​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

        나는 끊임없이 발을 놀리면서도, 장사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

        보고 있으면 새삼 내가 중원에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고 할까.

        ​

        서양 쪽 마을은 진짜 작아서 장사에 비교하면 한 줌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

        성을 끼고 있는 영지쯤 되어야 아 이게 사람 사는 마을이구나 싶은 수준이었으니까.

        ​

        빙의 전에 나왔던 농담처럼 한 나라가 도봉구만 하다 동작구 왕이다 이런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걸 느낀다.

        ​

        “허허, 장사도 볼거리가 많은 곳이지만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볼 수 있는 동정호는 호남의 대표적인 절경 중 하나라네. 일이 잘 해결되면 한 번쯤 들러보는 것도 좋을 걸세.”

        ​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뭐, 잠깐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장로님?”

        ​

        “해야 하는 일이 많지 않으냐. 당장 모습을 드러낸 마교에 대한 이야기도 끝마쳐야 하고, 용봉지회에서도 친분을 다져야 하지 않느냐? 가까운 시일 내에 비무대회도 열릴 예정이니 그곳에서 성과도 거두어야 하지 않겠느냐?”

        ​

        할 일 많긴 하네. 

        ​

        근데 마교 이야기 나오면 전부 정지해야 하는 거 아닌가.

        ​

        “마교가 준동했는데 행사가 그대로 진행이 되는 겁니까?”

        ​

        “그럴 걸세. 단순히 보면 마교를 경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행사가 그대로 진행된다는 건 ‘우리는 마교 따위에게 겁먹어서 행사를 취소하지 않는다’는 선언이기도 하니 말일세.”

        ​

        기세를 과시한다 이건가. 

        ​

        그렇게 보면 나쁘지 않은 계책 같기는 했다. 그러다 뒤통수 맞으면 훅 갈 수 있어서 문제지. 

        ​

        그러니 아마 대 마교회의에 대한 주요 주제는 마교놈들의 수작질을 어떻게 알아내고 대처할지에 대한 게 될 확률이 높았다.

        ​

        물론 내가 회의실에 들어갈 일은 없으니 결국 백장로에게 결론만 듣게 되겠지.

        ​

        원작 그대로 따라가면 마교가 수작질을 부리지는 않을 테니 무난하게 진행되겠지만…

        ​

        만약 저쪽에도 변수가 생겼다면?

        ​

        해남 검문을 멸문시키지 못한 게 엉뚱한 방향으로 눈덩이가 구른다면?

        ​

        그 눈덩이는 어디로, 어떻게 굴러갈까?

        ​

        나는 불안감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백장로의 말에 수긍했다.

        ​

        “비무대회는 누가 나갑니까?”

        ​

        “하경이와 무광이가 나갈 겁니다.”

        ​

        “제가 콧대 높은 놈들 다 꺾어버리고 올 테니까 대사형은 맡겨만 두시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저도 봉황비무에 참가할 생각이에요!”

        ​

        여성 무인들만 나가는 비무대회가 따로 있는 건가.

        ​

        혜령이는 의욕이 넘치는 얼굴로 꼭 멋진 별호를 얻을 거라고 선언했다.

        ​

        “응원해주실 거죠?”

        ​

        “물론.”

        ​

        “헤헤.”

        ​

        “이번 우승 상품이 귀한 영약이라 하던데, 기대되는구나. 혜령아, 해남검문의 검술이 얼마나 매서운지 중원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라.”

        ​

        “네!”

        ​

        그거 주인공이 비무대회 우승하고 먹을 텐데.

        ​

        아니지, 이쪽은 따로 여니까 상관없나.

        ​

        위험한 건 하경이지.

        ​

        나는 속으로 주인공에게 탈락 당할 하경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

        “그런데 위 대협. 위 대협은 비무대회에 참가하지 않으십니까?”

        ​

        “나 말인가?”

        ​

        “예. 분명 낭인 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을 겁니다.”

        ​

        참가라…하지만 어차피 주인공이 나와서 쓸어 먹을 거 알고 있는데 참가할 필요성은 못 느끼겠는데. 내가 고개를 젓자, 하진은 아쉬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

        “한 번 비무를 해보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

        “그런건 시간 날 때 하면 되는 거지. 그것보단…지금은 장사 어느 객잔에 묵을 건지 생각을 좀 해보자고.”

        ​

        “허허, 그건 이 늙은이에게 맡기게. 내가 좋은 객잔을 하나 알고 있으니.”

        ​

        또 일에 휘말리는 건 아니죠?

        ​

        약간의 불안감을 품은 채로, 우리는 장사에 도착했다.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벌써 수요일이네요.

    시간 참 빨라요 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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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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