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7

       *

        

        

        “5월은 푸르구나아, 우리들은 자란다아….”

        “요즘 애들은 그런 노래 모르거든요?”

        “지도 요즘 애인 척하네. 이반 씨가 우리 중엔 제일 요즘 애들이거든? 빙의 시점이 제일 어렸어.”

        “…?!”

        

        

        아직까지도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이 기괴한 빙의자 동아리실엔 고통과 슬픔이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 사이로 떠다니고 있었다.

        

        세 빙의자들은 넋 나간 얼굴로 각자 책더미 사이에 엎어져 있었다.

        

        

        “난 기사학부인데 대체 왜 필기시험을….”

        “난 상태창이 있는데 메모 기능이 없어….”

        “마법을 증오한다….”

        

        

        이 전근대 판타지 세상에서 5월은 가정의 달이 아니다. 하지만 지구와 이세계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대학교엔 시험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전 이반 씨가 부러워요. 과제도 없고 시험도 없는데 돈도 많은 어른이잖아.”

        “그 말 형님한테 하면 다음날에 변사체로 발견될 수도 있어, 유리 양.”

        “부모님 곁으로 갈 좋은 기회네요.”

        “와 진짜 이젠 패드립을 셀프로 쳐버리니까 뭐라 반박을 못 하겠네.”

        “아닌데, 지구로 돌아간다는 뜻인데.”

        

        

        슬프게도 얀스크 대학은 명문이다. 대학 1학년 신입생 첫 중간고사는 술 마시며 보내는 것 아닌가, 하는 당연한 상식을 파괴할 정도의 명문.

        

        살인적인 시험 범위와 끔찍한 과제더미 앞에서, 빙의자들은 녹초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학의 모든 빙의자들이 냉혹한 전근대 사회에 치를 떨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반은 지금….

        

        

        “끄으아아아악!!”

        “쉿, 조용히.”

        

        

        한 학생의 상처에 힐링 포션을 흘려 주고 있었다.

        

        

        “사, 살려…! 끄으으윽!!”

        “네가 해야 할 말은 그게 아닐 텐데.”

        “나, 나는…. 자작가의…!”

        “쉿. 다음 할 말을 신중히 골라라.”

        

        

        그는 거품 물고 흐느껴 우는 학생의 곁에 앉아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말해.”

        “다시는… 다시는 담배 꽁초를… 바닥에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가로수를… 훼손하지 않겠습니다…!”

        “훌륭하군.”

        

        

        정원사 앞에서, 가로수 아래에 담배 꽁초를 버리는 행위는 국제법상 사형에 준하는 끔찍한 악행이다.

        

        이반은 상대가 아직 어린 학생이란 점을 감안하며 총 열세 명의 학생들에게 무료 금연 클리닉을 실시해주고 있었다.

        

        

       

       

       ep9. 아카데미 현장학습에선 반드시 습격이 일어난다.

       

       

        

        

        “어! 아저씨!!”

        

        

        이반이 열세 명의 환경파괴자들을 파괴한 이후의 일이다.

        

        평화를 되찾은 캠퍼스에서, 이반은 힐링 포션 뚜껑을 닫고 있었다.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에서 이자벨이 손을 흔들며 뛰어오고 있었다.

        

        

        “음.”

        “인사는 보통 안녕, 좋은 아침이야, 밥은 먹었니? 요즘 좀 어때? 같은 단어로 이루어져요!”

        

        

        이자벨은 활달하게 웃으며 다가와서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녀는 피와 힐링포션이 엉겨붙어 있는 관목을 한 차례 일별한 뒤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 마족이 습격했나요?”

        “비슷하지.”

        “고생 많으셨네요! 누가 시험 기간에 비명을 질러대길래 혹시 아저씨가 또 누굴 죽였나 싶어서 와봤어요!”

        “네가 생각하는 내 이미지가 퍽 걱정이 되는군.”

        

        

        아하하, 하고 웃던 이자벨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아 참, 저 좀 도와주세요! 아저씨 도움이 좀 필요한데….”

        “도움?”

        “그, 실기 평가가 하나 있는데 너무 어려워서요. 아니, 첫 학기 중간고사 실기가 이래도 되나 싶어요.”

        “음.”

        

        

        이반은 기사학부 중간고사에서 그가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포로 심문이나 정보 은폐, 사보타주 같은 것을 가르치진 않을 텐데.

        

        아, 혹시 군략 쪽인가? 다행히 야전지휘 경력이 있으므로, 그 부분은 몇 가지 조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이반이 생각에 잠겨 있자, 이자벨은 웃으며 말했다.

        

        

        “암습 대응이요!”

        “…음.”

        

        

        대학 1학년에게 가르치기엔 조금… 다소 특별한 수업이로군.

        

        이반은 이 대학의 쓸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런 학교가 정말 필요할까?

        

        어쨌건, 도와줄 수 있는 범위였다. 급습과 급습 대응 모두 병과 특기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엔리케의 수업이겠지?”

        “네. 세상에, 그런 걸 가르쳐서 어디 쓰려는 걸까요.”

        “그건 나도 궁금하군.”

        

        

        이반은 선뜻 고개를 끄덕이곤 앞장서 걸었다.

        

        

       *

        

        

        프리첸카야는 연합왕국 내에서도 대단히 발달한 대도시에 속한다. 그리고 이 미개한 전근대 시기의 대도시는 드넓은 광역 생활권 전체를 아우르는 단어다.

        

        즉, 농경지나 평야, 숲이나 강과 같은 몇몇 생활 자원이 인근에 충분히 깔려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프리첸카야 또한 그랬다.

        

        프리첸카야 외성 밖 동부 방면에 펼쳐진 숲. 이반은 이자벨과 함께 숲의 입구에 도착해서 간단히 몸을 풀었다.

        

        

        “여기 오니까 그때 생각이 나네요. 와, 그날은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음.”

        

        

        이반의 마음 속 양심의 삼각형이 어딘가를 살짝 긁었다. 실제로 이반은 이자벨을 이용해 실험을 했었다.

        

        과연 주인공이 튜토리얼에서 죽을 것인가…라는 종류의.

        

        굳이 따지자면 필요한 일이었지만, 이반은 정직한 사람이었으므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아저씨 지금 되게 재수 없는 표정 짓고 있는데요.”

        “나는 원래 웃는 상이다.”

        “진짜 때려주고 싶네.”

        

        

        이자벨은 눈을 가늘게 뜨며 투덜거렸다.

        

        

        “음. 근데 시험장 자체는 아직 공개가 안 됐거든요. 어디서 뭘 한다던지… 굳이 여기 온 이유가 뭔가요?”

        “엔리케에겐 상상력이 부족하니까.”

        “…네?”

        “엔리케가 암습 훈련을 한다면 둘 중 하나다. 프리첸카야 지하수로, 아니면 이 숲. 그 둘 중 보다 어려운 곳을 선택하라면 여기서 하겠지.”

        

        

        엔리케는 굉장히 고지식하고 독선적인 미치광이다. 이반은 옛 시절 엔리케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살아온 노인들이 으레 그렇듯이 엔리케 또한 자신의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반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가 굳이 ‘암습 대응’이란 시험을 출제한다면 그녀의 성격상 숲 전체에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건 수험생의 기본이 아닌가.”

        “와, 아저씨 공부 잘했어요?”

        “못하진 않았지.”

        

        

        이 판타지 세상 학생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지만, 대한민국의 수험생들은 무려 만 7세부터 의무교육을 12년간 받는다.

        

        

        “저도 필기는 좀 치거든요? 실기도 거의 다 A 받을 자신 있는데, 이상하게 엔리케 교수님 수업이 너무 어려운 거 있죠. 평소에도 실습 평가를 하는데 얼마나 가차 없으신지.”

        “엔리케는 원래 그랬다.”

        “와, 아저씨도 얀스크 대학 출신이셨어요? 선배?”

        “아니 난 대학 안 나왔다.”

        

        

        김선우도 대학 졸업장을 따진 못했다. 전역 후 3학년에 이세계에 들어와 20여년 동안 군생활을 더 했던 탓이다.

        

        순간 내면의 김선우가 각혈하며 비명을 질렀다. 이반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아무튼! 그래요, 음… 음. 뭐어, 엔리케 교수님한테 뭘 배웠으면 다 선배죠. 그쵸? 음음….”

        “위로하지 않아도 된다.”

        

        

        이 전근대 원주민이 어딜 감히.

        

        

        “네에… 공부 잘하는 무학력 아저씨. 그래서 엔리케 교수님 시험 준비는 어떻게 시작하나요?”

        “시작?”

        

        

        이반은 피식 웃으며 품 안에 손을 넣었다. 작은 쇠구슬 하나가 잡혔다.

        

        그걸 꺼내 그대로 바닥에 굴리며 입을 열었다.

        

        

        “이미 시작했지.”

        “네? 엑?”

        

        

       -퍼엉!

        

        

        쇠구슬이 곧장 폭발하더니 뿌연 안개가 터져 나왔다.

        

        이자벨은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콜록거렸다. 연막탄…? 아니, 이거…!

        

        

        “미친 아저씨야! 학생한테 화학탄을 터트려!!”

        

        

        이반은 대답 없이 연막 속에서 몸을 도사렸다. 탁, 탁. 발을 두어 번 굴러 나무 위로 솟아 오르며 숲의 그림자 속에 숨어들었다.

        

        그는 그림자 뒤에서 작게 속삭였다.

        

        

        “수준은 맞춰 주마.”

        “진짜 잡히면 죽었어. 면도해 버릴 거야.”

        “…실전처럼 훈련 시켜주마.”

        

        

        절멸부대 장교의 현장 실습, 시작!

        

        

       *

        

        

        이반은 적당히 이자벨에게 총을 쏘아 거리를 벌리며 숲 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굳이 전력을 다할 필요도 없었다. 이자벨은 사선 감지가 거의 다 발달한 탓에, 위협 사격 한 번으로도 충분히 위축시킬 수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탄종은 실탄을 사용했다. 사선 감지를 완전히 개화시키는 데엔 목숨에 직접 위협을 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으니.

        

        

        “미친! 아저씨 진짜 미쳤어요!? 초, 총을 쏴!!”

        

       -타앙—!

        

        

        소리를 지를 때마다 한 번씩 미간을 정조준해 발사한 뒤 퇴각.

        

        이걸로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암습 목표가 되었을 땐 상대보다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암습이란 기본적으로 사냥과 같다. 사냥꾼과 사냥감은 서로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주변 환경에 녹아들 필요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쓸데 없이 하늘하늘하게 차려 입은 이자벨은 이미 시험 시작부터 낙제점을 받아 마땅했다.

        

        이반은 눈 아래에 진흙을 발라 반사광을 차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철컥, 탕.

        

        이자벨의 시선을 교란하기 위해 반박자 뒤에 총성을 울리고 자리를 옮기며.

        

        

        ‘그나저나 외부 현장 실습이라.’

        

        

        이반은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이 숲은, 언젠가 회고했듯이 프리첸카야 수도 방위군의 군영과 가깝다.

        

        즉, 보안 등급이 대단히 높은 안전 지역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엔리케 또한 큰 걱정 없이 시험장으로 활용할 수 있겠지.

        

        그러나 이반은 알고 있었다.

        

        

        ‘외부 현장 실습에서 적습이 일어나는 건 ‘상식’인데….’

        

        

        이반은 대단히 상식적인 사람이었으므로, 이자벨의 훈련과 습격 징후 탐색을 병행하기로 했다.

        

        

       *

        

        

        이자벨은 찢어진 치마자락을 움켜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진짜 이게… 뭐야…!!”

        

        

        왜 진심인 건데! 아니, 상식적으로 10살 어린 여자애가 숲에서 간단하게 훈련하자고 하면 피크닉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정상 아닌가?

        

        데이트…까진 아니라도. 애정이나 호감…이 아니라, 그냥 그때 구해줘서 고맙다고.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저 무뚝뚝하고 괴악한 성격에 친구 하나 없을 게 뻔하니까. 그러니까 잠깐 친구라도 되어 줄 계획이었다.

        

        화학탄과 흙먼지가 휩쓸고 지나간 피크닉 바구니를 멍하니 바라보던 이자벨은, 열린 뚜껑 사이로 엉망이 된 샌드위치를 발견하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아저씨.”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질끈 묶어 올리며 피식 웃었다.

        

        

        “진짜 죽인다.”

        

        

        상식이란 게 결여된 저 미치광이 비밀 요원에게 ‘상식’을 알려주기 위해.

        

        용사, 각성.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ㅠㅠㅠㅠ

    하지만? 아시죠?

    지난주 주7일 연재와 어제 연참.

    이거… 해량… 해주세요?

    사랑해용…

    *

    지난 회차들 오타 수정은 지금 잠깐 밖에 나갔다 와서 한번에 하겠습니다!
    댓글 확인도 아직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금방 올게요!!

    다음화 보기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