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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38. 뛰는 놈 위에 나는 놈(4)

       

       

       ‘역시, 제국은 제국이라 이건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요즘 들어 검은 송곳니한테 당하면서 저평가당하는 느낌이 있지만. 역시 절대 무시할 만한 집단은 아니다.

       

       마력열차의 탑승역.

       불안한 분위기가 감돈다.

       

       이유는 무척이나 단순하다.

       

       검문이지 뭐긴 뭐겠어.

       

       ‘진짜 지독할 정도로 철저하다니까.’

       

       검은 송곳니쯤 되는 단체가 블랙마켓에 방문할 때, 마력열차라는 수단을 사용할 리가 없다.

       

       출입기록이 남으니까.

       비밀조직이 그리 허술하게 행동할 리 없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이쪽은 오히려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제국은 그 한치의 가능성마저 허투로 넘기고 싶지 않았던 모양.

       

       ‘곤란하네…….’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 의심병 걸린 놈들이 생각없이 전부 찔러 보고 있는 거지만. 우연찮게도 그놈들이 당첨을 뽑고 말았다.

       

       이럴 바에는 열차를 타지 말 걸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안 타는 게 더 수상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마력열차의 탑승기록.

       거기에 분명 루비아 씨와 우리가 이곳으로 온 기록이 남아있을 거다.

       

       근데 돌아갈 때만 열차를 안 탄다고?

       

       그냥 의심해달라고 노래를 부르는 수준이다.

       

       물론, 처음이야 사상자인가 하고 넘길 수는 있겠지. 돌아가는 열차를 안 탄 거 보니까 블랙마켓에서 죽었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근데 루비아 씨 정도 되는 귀족에게 이목이 안 끌릴 리가 없잖아.

       

       당연하게도 언젠간 생존사실이 밝혀질 거다.

       

       그럼 루비아 씨는 갑자기 검은 송곳니로 오해받겠지.

       

       그러니 열차를 타는 판단은 확실히 옳았다.

       그냥 운이 없었을 뿐.

       

       하지만…….

       

       ‘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

       

       당연한 이야기다.

       

       내가 병신도 아니고. 아무런 대책도 안 세워두고 검은 송곳니를 사칭했을 리는 없었으니까.

       

       물론 이럴 때를 대비한 계획 정도는 세워두었다.

       

       나는 빠르게 주변을 살피며 상황을 파악해나갔다.

       

       “우, 우리 아이가 다쳤다고요!”

       

       “안 됩니다. 검문이 끝나기 전까진 나가실 수 없습니다.”

       

       마침 그런 실랑이 소리가 들려온다.

       테러 도중에 다친 아이가 있는 귀족 부모와, 이 역의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와의 싸움.

       

       상처가 악화되기 전에 빨리 열차를 타고 신전에 가야 한다는 모양이다.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하늘이 도우신 건지, 그야말로 딱 알맞은 타이밍에 딱 좋은 사건이 터졌다.

       

       나는 빠르게 다투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나섰다.

       

       “저기… 죄송하지만 검문에는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요?”

       

       최대한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그리 묻는다.

       그러자 남자는 여전히 무뚝뚝한 말투로 전형적인 대답을 돌려주었다.

       

       책임 면피용 답변.

       언제가 될 지 모른다든지, 절차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 어떠한 이유로도 이곳에서 이탈할 수 없다든지.

       

       원칙은 원칙이라든지 하는 말들.

       

       “정말 죄송하지만… 저희 동생도 많이 아파서요.”

       

       나는 그리 말하며 시엘을 가리켰다.

       시엘에게는 딱히 연기를 지시할 필요도 없었다.

       

       그야, 걔 진짜 아프니까.

       내색을 안 하는 성격이 이럴 때 곤란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길래 괜찮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까 무리를 하고 있던 것이다.

       

       걸어가다 갑자기 픽 쓰러졌을때는 진짜 식겁했었지.

       

       심지어 저번 채굴장 때보다 힘을 더 썼는지 저번보다 더 상태가 심각했다.

       

       ‘뭐, 다행히 쓸만한 체력 보조 아티팩트를 세 개나 끼워 놨으니까. 안정만 취하면 별일은 없겠지만.’

       

       시엘은 겉모습만 보아선 누가 봐도 반송장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안 됩니다. 규정 상 어쩔 수 없습니다.”

       

       다시금 돌아오는 완고한 반응.

       이쪽도 진짜 독하긴 독하다. 이쯤되면 그냥 넘어가 줄 법도 한데 말이지.

       

       저 모습을 보고도 동정심이 하나도 안 드는 건가?

       

       하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지금 이 검문, 검은 송곳니가 숨어들었을까봐 그러시는 거죠?”

       

       나는 다시금 그리 물었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어느새 동료의식이 생겼는지, 그게 말이나 되냐며.

       

       그런 테러리스트가 태연하게 열차나 타고 다니겠냐고, 그런 것 때문에 우리 애를 죽이려는 거냐고 노발대발 화를 낸다.

       

       저 아주머니처럼 나서진 않았지만, 비슷한 입장의 사람들도 꽤 있던 상황.

       

       거기에 다들 자기보신 하나는 기가 막히게 신경쓰는 귀족들이니까.

       

       순식간에 여론이 험악해진다.

       이곳저곳에 웅성거림이 심해진다. 분위기가 조금씩 심각해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자극이 있다간 당장이라도 폭동으로 번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이 말을 꺼내기 위한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이대로 가다간 제 동생이 진짜 죽게 생겼어요……. 혹시 마나 맹세를 하면 보내주실 수 있나요?”

       

       내 말에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조금 당황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마나 맹세는 그리 쉽게 입에 담아도 될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모든 생명에는 미소하게나마 마나가 깃들어 있고, 그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니까.

       

       그냥 어기는 순간 죽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상 목숨이 걸려 있는 맹세.

       

       그런 걸 입에 담았으니 당연히 발언에 무게감이 생길 수밖에 없지.

       

       “저는 검은 송곳니가 아니에요. 이 말은 마나에 맹세컨데 거짓말이 아니라고요…….”

       

       나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그리 이야기했다.

       

       마나 맹세를 입에 담는 게 조금 꺼림찍하긴 하지만. 뭐, 그렇게 큰 상관은 없으리라. 

       

       이건 진짜 거짓말이 아니니까.

       

       내가 검은 송곳니?

       그것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나 같은 놈이 그런 괴물들만 모아놓은 집단이랑 무슨 연관이 있겠어.

       

       “저희 일행은 그런 조직이랑 아무런 관계도 없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좀 보내주세요.”

       

       누가 봐도 동생이 죽을 것 같아 안달복달하는 표정. 거기에 마나 맹세까지 걸고 하는 말.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분위기는 완전히 이 쪽이 휘어잡았다고.

       

       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제복을 입고 있는 책임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우리 일행을 보내 주라고 지시를 내렸다.

       

       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마나 맹세만큼 확실한 검문은 없는 데다가, 이걸 안 받아주면 진짜 여론까지 최악으로 치닫을 테니까.

       

       게다가 이건 저 사람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마나 맹세를 남에게 강요하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일이라 그렇지. 이것만큼 확실한 검증법도 드무니까.

       

       내가 먼저 말을 꺼낸 걸 계기로 저쪽도 사람들에게 마나 맹세를 내걸 수 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우리 일행이 제일 먼저 검문을 통과하자마자, 줄을 서서 차례차례 마나 맹세를 해달라는 직원의 지시가 들려온다.

       

       저쪽도 내심 기뻐하고 있지 않을까.

       굳이 진상 수십 명 붙잡고 욕받이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리 간단한 해결책을 내가 제시해준 셈이니까.

       

       마나 맹세를 꺼림찍하게 여기는 사람은 많긴 하지만.

       

       군중심리라는 게 생각보다 크다.

       다들 하는데 자기만 안 하기엔 좀 그렇잖아. 안 하면 괜히 범인으로 의심받을 것 같고.

       

       아마 다들 얼마 안 가서 마나 맹세를 할 것이다.

       

       그야말로 승객도, 저쪽 직원도, 나도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계획은 그림에 그린 듯 완벽하게 실현되었다.

       

       요즘 진짜 운세가 텄나.

       하는 일마다 성공하는 것 같네.

       

       생각없이 들린 블랙마켓에서 기연을 수십개 주워오질 않나.

       

       성검까지 손에 넣질 않나. 

       그야말로 세상이 내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이렇게 된 거 좀 더 이것저것 시도해 볼까.’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이번 검문 탓에 제국이 더 비호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 계획 안 짜고 왔으면 진짜 크게 문제가 될 뻔 했으니까.

       

       전작부터 하는 짓거리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직접적으로 나에게 피해를 끼칠 뻔 했다.

       

       그 괘씸죄로, 검은 송곳니에 대한 지원을 좀 더 강화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싶다.

       

       선동을 좀 더 대국적으로 해 보자.

       그냥 이번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그 영상을 이용해서 여론을 살짝 주물러 보는 것이다.

       

       ‘진짜 검은 송곳니 단장은 나 있는 곳으로 절이라도 한 번 해야 된다니까.’

       

       처음에는 내가 오히려 사칭하며 이용해 먹긴 했지만. 여기까지 오면 그쪽도 감사인사 정도는 해야 한다.

       

       세상에 이렇게 혜자로운 지원이 또 어디 있겠어.

       

       ‘이쯤 되면 나는 거의 명예 검은 송곳니 회원이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열차를 향해 걸어가는 도중. 루비아 씨의 괴상한 반응이 눈에 들어온다.

       

       “너, 너…. 어떠…. 어떻게…….”

       

       고장이라도 난 듯 버벅거리는 말투.

       떡 벌어진 입에 경악스러운 표정까지.

       

       리액션도 참 풍부하다.

       외국인 붉닭볶음면 반응이라도 본 듯한 기분.

       

       ‘그냥 연기 좀 했을 뿐인데. 저렇게까지 감탄할 일인가?’

       

       나름 매소드 연기이긴 했는데.

       아무리 올려쳐도 저 반응은 좀 아니지 않나 싶다.

       

       저 사람은 진짜 보면 볼수록 뭔가 괴짜 기질이 있단 말이지.

       

       하여간, 루비아 씨 머릿속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목요일은 원래 비정기지만, 내일도 어김없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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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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