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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세븐라이브 3기생.

       분명 그 자리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을 캐릭터가 쏙 빠져있었다.

       

       세븐라이브 3기는, 인외를 컨셉으로 잡은 기수로.

       일반적으로 판타지에서 등장할 법한 캐릭터들을 컨셉으로 가져온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빠진 캐릭터는 ‘노래를 못부르는 하피 공주’라는 설정의 라미엘.

       사실 외형만 보면 하피보다는 천사에 가까운 외형을 지닌 판떼기였다.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천사인 줄 알았고.

       특히 라미엘은 3기생 중에선 특출나게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목소리가 굉장히 미성이었다는 것과 뛰어난 방송센스까지.

       소위 대기업이라 불리는 위치까지 금방 위로 올라갔다.

       

       참고로 노래를 못부른다는 컨셉과 달리, 의외로 평범하게 할 수 있는 편.

       RP는 으레 그렇듯, 기본만 지키는 편이었지만 설정과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주요 컨텐츠는 소통방송.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고, 말재주가 특히 좋아 인기가 많았다.

       

       “…….”

       “주서연, 너 왜 그래?”

       

       혹시, 만약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세상은 참으로 가혹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나.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애써 부정해왔는데.’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는 이지연을 보았다.

       처음 의문을 품은 건, 이지연과 함께 성우 학원을 다닐 때였다.

       

       일반적인 발성일 때는 괜찮았으나, ‘애니메이션’ 더빙을 위한 목소리가 문제였다.

       앳된 목소리였지만, 분명 들었던 목소리.

       거기에, 그 목소리로.

       

       「주서연?」

       

       하고 부르면 그대로 털썩.

       ……그런 시점에 사실 알지만 부정하고 있었던 건지도.

       

       왜 하필 이지연인지.

       이지연이 어떻게 그 천사 같은 라미엘인지 납득할 수없었다.

       내 고민 상담을 열심히 듣고 위로해준 라미엘은 어디로 간 거야.

       

       ‘뭔가, 뭔가 잘못됐어.’

       

       흔히 빨간약이라는 말이 있다.

       버튜버의 실제 모습을 보고 환상이 깨지는 걸 지칭하는 말이다.

       솔직히 환상이 깨졌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눈앞의 이지연과 내가 아는 라미엘은 실상 전혀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그와 별개로 언젠가 볼 수 있겠지, 라고 마냥 생각하던 오시가 갑자기 졸업해버렸으니 말 그대로 눈앞이 깜깜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보고 싶었는데.’

       

       전생에 버튜버를 볼 때 품은 감정은 ‘미지’의 무언가였다.

       현실이 아닌 환상,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서 나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

       정상적인 감정을 지니지 못한 나로선,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시간이 되면, 실시간으로 보았지만.

       대부분은 키리누키로 정리된 부분, 짧은 클립 위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때 알지 못했던 그 미지(未知)를 느끼고 싶었는데.’

       

       뭔가 우울했다.

       누군가는 뭘 그런 것 가지고, 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여러 가지 의미로.

       

       「주서연.」

       “~~~!!”

       

       갑자기 귓속에 들려오는 익숙한 속삭임에 나는 부르르 떨며 옆으로 털썩 쓰러졌다.

       그나마 벤치여서 망정이지 평범한 의자였으면 옆으로 굴러떨어졌을 것이다.

       나는 방금 귓속말을 들은 한쪽 귀를 손으로 막으며, 드물게 당황하며 말했다.

       

       “무, 무슨 짓이야?”

       “계속 불러도 대답하지 않은 건 너잖아.”

       

       흥, 하고 이지연은 팔짱을 끼며 눈을 찌푸렸다.

       마치 이런 내 태도가 무척 마음에 안든다는 듯이.

       

       “예전부터 너 내가 이런 목소리 내면 당황하더라? 그렇게 이상해?”

       “……아, 아니.”

       

       내 말이 사실인지 떠보는 듯한 눈빛.

       전과 달리 뭔가 눈치챘는지 흥미가 담긴 시선이다.

       그런 이지연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말을 덧붙였다.

       

       “싫어하진, 않아.”

       

       정말이다. 그냥 순수하게 깜짝깜짝 놀라는 거지.

       다른 건 다 달라졌지만, 저 목소리는 완전히 똑같다.

       

       ‘그래도 만에 하나, 똑같은 목소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어제부로 끝.

       이 세계의 라미엘은 정말 천사가 되어버렸다…….

       하피지만 말이야.

       

       “흐음.”

       

       나를 위아래로 살피며, 또 목을 가다듬고 그 목소리를 낼까 고민하던 이지연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보다 궁금한 건 그게 아니니까.”

       “궁금한 거?”

       “연극 오디션 말이야. 그거 정확히 언제하는 거야?”

       

       이지연은 늘 내 복귀를 신경 쓰곤 했다.

       그런데 여태 가만히 있던 내가, 드물게 반응을 보였으니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다음주 월요일.”

       “……응?”

       

       무슨 말이냐는 듯, 묻는 이지연에게.

       

       “바로 다음주 월요일이야.”

       

       시간에 맞지 않으면, 선생님에게 말하고 움직이려 했지만.

       다행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마침 오디션은 늦은 저녁에 시작될 예정이었으니까.

       

       ***

       

       종로, 대학로에는 연극 시설을 비롯한 여러 예술시선들이 모여있다.

       연극 공연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다양한 극단이나.

       동아리 등등이 활발하게 연극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그리고 이곳에, 오늘 내가 목표로 한 연극의 오디션이 예정되어 있었다.

       예전은 어땠는지 몰라도,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간단히 신청이 가능했으니까.

       

       보통 연극 배우들은 1차, 그리고 2차로 나뉘어 심사한다.

       1차는 자유연기를 촬영한 영상. 거기에 간략한 프로필을 확인하는 게 보통.

       

       ‘혹시나 1차에서 떨어졌으면 대참사였는데.’

       

       남에게 보여주는 연기는 아무래도 오랜만이라 긴장한 감이 있었다.

       심지어 이 자유연기는 상대역도 없이 홀로 찍어야 했으니까.

       

       “분명 이 근처…… 아!”

       

       그리고 2차는 대면 오디션.

       장소는 대학로에 마련된 연습실이었다.

       솔직히 연극에 대해선 많은 건 알지 못한다.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전생에선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으니까.

       내가 이 연극을 안 것도, 이후에 연계된 일 때문이었다.

       

       ‘연극 오디션이면 몇 명 정도 오지?’

       

       막상 찾아도 그런 정보는 잘 나오지 않았다.

       특히 오늘 오디션을 볼 배역은, 악역.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적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끼익.

       

       조심스레,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순간 나는 굳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많아?’

       

       나름 돈이 투자된 연극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러니, 경쟁률도 꽤 된다고 들었지만 얼핏 보면 50명이 넘어 보일 지경이었다.

       저마다 나름대로 배역을 해석하여 의상을 입은 여배우들이 건물 내에 가득 차 있었다.

       

       ‘2차 합격자만 이 정도면, 정말로 지원자가 몇백 명은 있었다는 거네.’

       

       내심 긴장됐다.

       솔직히 나는 오디션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아역 때 겪은 두 번의 오디션이 전부.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모여있는 오디션은 처음이다.

       

       ‘거기다, 역시 성인 배우, 아니 배우 지망생들이라 해야 할까.’

       

       저마다 1차 오디션이 끝나고 전달받은 대본들을 손에 쥐고 목을 푸는 이들이 있었고.

       감정을 잡는 이들도 보였다.

       모두가 배우였기에, 외모도 다들 출중한 편이었다.

       

       “고등학생?”

       

       누군가, 나를 보고 무심코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배역은 딱히 나이 제한은 없었다.

       다만 배역의 연령대를 생각하면 ‘성인’으로는 보일 필요가 있었으니, 나는 아슬아슬하게 그 기준점을 넘은 셈이다.

       

       “진짜네.”

       “고등학생이잖아?”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시선들이 날아와 꽂힌다.

       고등학생이 이곳에 있다는 의문.

       경계심.

       그리고 신기함.

       

       다행인 점은 그 시선이 길게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그래.’

       

       나는 챙겨온 대본을 꺼냈다.

       이미 몇 번이고 보아, 조금 해진 대본.

       

       이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본이 주어진 건 일주일. 허투루 준비해선 안 됐다.

       보통 오디션은 경우에 따라 즉석에서 주어지는 경우도 많으니.

       

       무려 일주일 전에 대본을 줬다는 건, 심사의 기준도 그만큼 높다는 뜻이니까.

       

       ‘……좋아.’

       

       심호흡을 한다.

       오늘 내가 맡을 배역을 상기하며, 감정을 잡는다.

       메소드……는 넘어가자.

       아직은 감정을 과하게 소모할 때가 아니었다.

       

       ‘오늘 내가 맡을 배역은, 「눈을 감고」에서 나오는 홍정희.’

       

       눈을 감고 자체는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연극이다.

       하지만 홍정희는 로맨틱과는 동떨어진 캐릭터였다.

       

       남주인공 역인 ‘인기 아이돌 배성학’의 사생팬.

       사회의 부적응자이며, 배성학을 향한 강한 독점욕을 품은 여인이다.

       후반에는 배성학이 여주인공인 ‘송민서’와 특별한 관계가 되자.

       

       송민서를 노리고 습격한다.

       무려 칼을 들고.

       

       ‘비중은 많지 않지만.’

       

       분명, 강한 임팩트를 주는 역할이다.

       그러니 이 ‘홍정희’의 캐릭터를 보고, 추가적으로 배역 제안이 온 거겠지.

       

       ‘역시 메소드엔 맞지 않는 캐릭터야.’

       

       이런 캐릭터를 메소드로 연기한다면 몇날 며칠은 우울해질 게 뻔했다.

       나는 이내 대본을 덮고 눈을 감았다.

       호흡을 천천히 내쉬며, 머릿속에 캐릭터를 새긴다.

       대본에 적힌 감정들을 통해, 홍정희라는 캐릭터를 상상한다.

       대사는 전부 외웠다.

       

       시간을 보면, 아직 오디션이 시작하긴 조금 여유가 있었다.

       

       ‘한번 연습해보자.’

       

       어차피 주변에서 대사를 읊고 있는 이들은 많았다.

       그러니 홍정희라는 캐릭터를 한번 되새겨보자.

       그리 생각하며, 서연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

       

       오디션장에 모여있던 배우, 그리고 배우 지망생들은 뒤늦게 들어온 여학생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고등학생?’

       ‘1차 시험은 어떻게 붙은 거지?’

       

       복장은 교복, 오디션에는 배역에 걸맞은 옷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시각적으로 자신이 캐릭터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주기 좋았으니까.

       그런데 교복이라.

       

       홍정희라는 캐릭터의 나이는 제대로 나와있지 않다.

       ‘학교에서 휴학중’이라는 설정만이 간략히 적혀있을 뿐이었다.

       

       대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거기다 외모는…….’

       

       검은 긴 흑발.

       그에 대비되는 새하얀 피부.

       아름다운 외모에 익숙한 배우들조차, 무심코 탄성을 내지를 외모다.

       

       아직 고등학생임에도 그 외모는 완성된 배우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연기는 얼굴로 하는 게 아니지.’

       ‘아무리 예쁘더라도 결국 승부는 연기로 갈리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대본을 읽고 있는 여고생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해진 대본.

       적어도 기본은 해온 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뭔가, 얼굴이 익숙하지 않아?’

       

       그런 여고생을 지켜보던 면면은, 묘하게 여고생에게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은 느낌.

       혹시 이미 TV에 출연한 경험이 있는 배우일까?

       아역 출신이라면,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런 외모면 이슈가 됐을 법하지 않나?’

       

       고등학생은 아역에서 막 개화하여, ‘배우’에 출발선에 선 나이다.

       이 여고생 같은 외모라면, 이 좁은 판에서 소문이 나지 않았을 리 없다.

       

       탁.

       대본을 읽던 여고생이 대본을 갑작스레 덮었다.

       확인이 끝난 걸까?

       그런 생각이 들던 순간. 

       

       여고생이 천천히 눈을 떴다.

       

       “……!”

       

       확, 하고 분위기가 달라진 건 아니었다.

       고요했다.

       무표정하고, 담담했다.

       

       딱히 연기를 하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연기, 지?’

       

       배우에겐 흔히 베이스 표정이라는 게 있다.

       연기를 시작할 때, 그 기본으로 삼는 얼굴이다.

       베이스가 되는 얼굴에 감정과 표정을 덧입혀 연기를 한다.

       

       그리고 베테랑 배우라면, 그 베이스 표정만으로 감정과 연기를 나타내는 것도 가능했다.

       

       ‘설마.’

       

       그래,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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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화의 내용이 일부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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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작중 등장하는 드라마, 연극, 영화, 그리고 버튜버 등등 모티브로 따온 것들은 있지만 대부분 작중 오리지널입니다.
    그러니 이름은 비슷해도 전혀 다른 것이라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례적으로 태숨달이 모티브가 된 드라마, 해품달에서 가져온 게 좀 있었는데요.
    그것도 본래 드라마는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동일한 이름의 캐릭터가 있는 것 같아 라니엘->라미엘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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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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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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