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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성녀>와 <원소술사>의 대결이 성녀의 기권으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분명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수가 있었을 텐데.”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히어로타임’ 사이트를 돌아다녔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응?”

       

        그런데, 어디서 보았던 게시글이 눈에 밟혔다.

       

        일전에 예선전을 치룰 때 보았던 것과 퍽 흡사한 느낌의 제목 말이다.

       

        [ <현상거절> 여자친구 누군지 알아냈어! ]

       

        “저번에 그 관심종자잖아.”

       

        미간을 미미하게 찌푸린 나는 게시글에 들어가봤다.

       

        이미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려있는 걸 보아하니 다른 유저들도 저 녀석을 퍽 싫어하는 모양이다.

       

        [ <비를 내리는>송수아래! ]

       

        제목처럼 일관적인 게시글 내용. 역시나 예상대로 댓글에 달린 반응들이 제법 살벌하다.

       

        [ 임혜성 또 왔네. ]

        [ 너 대단한 거 알겠으니까 수아 님 그만 건들고 제발 가라……. ]

        [ 무친놈. ]

       

        저번과 달리, 이번엔 나름대로 날 선 반응이 제법 적었다.

       

        소위 말하는 ‘테라포밍’을 당한 건가? 저 관심종자 하나에?

       

        [ 얘들아. 이거 사실 임혜성이 아니라 송수아 아니냐? ]

       

        “……?”

       

        헌데,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의견을 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제법 신선한 접근이다. 임혜성… 그러니까 나와, 송수아가 사실 연인 사이라고 루머를 퍼뜨리는 녀석이 송수아 본인이라는 의견.

       

        [ 지랄하네. ]

        [ 돌았음? ]

        [ <비를 내리는> 님은 남자 같은 거 신경 안 쓰셔. 유일한 친구도 <재창조>님 뿐이라고. ]

       

        대댓글은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비를 내리는>송수아. 그녀석이 제법 아카데미 내에서 인기가 많은 축에 속하는 건지, 온갖 욕설과 비방이 가득하던 것이다.

       

        “지독하다. 지독해.”

       

        뒤로 가기를 누른 나는 쭉 커뮤니티를 훑었다.

       

        대부분 유저들이 승천전, 즉 <성녀>와 <원소술사>의 대결로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었다.

       

        물론, 개중에 ‘분탕’을 열심히 치는 이들도 존재했지만 대부분이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페이지 뒤로 밀려났다.

       

        [ 내일 이 새끼가 우승할 것 같으면 개추. ]

       

        그런 와중, 노골적인 어그로성이 짙은 게시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보나마나 <공간왜곡>이나 <원소술사>를 찬양하는 글이겠거니, 생각하며 제목을 꾹 눌렀다.

       

        그런데.

       

        [ 히어로 아카데미 전체를 아우르며 D등급에게도 한계란 없는 걸 증명한 놈. ]

        [ 검술 실력으로 탑 수준인 <뇌전검>을 압살한 놈. ]

        [ 소문으로는 <신속>, <성녀>, <비를 내리는>, <재창조>와 인맥인 놈. ]

       

        [ 숭배하라. ]

       

        [ 대 혜 성 ]

       

        [ 202X년 01월 XX일 ]

       

        [ <공간왜곡> VS <현상거절> ]

       

        “미친!”

       

        내용을 보자마자 저항 없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 D등급의 능력자가 본선에 진출한 것도 모자라 랭커와 맞붙는다고? 새삼 임혜성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네. ]

       

        밈에 가까운 농담이 제법 유명해진 건지, 댓글창은 온통 나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했다.

       

        “나름 큰 반향을 일으킬 거라는 건 예상했다만.”

       

        나는 D등급의 능력자다. 

       

        애당초 ‘현실조작계열’에다, 히어로 아카데미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조차 되어있지 않던 능력을 각성한 탓에 세간의 기대조차 받지 못한 놈이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승천전의 예선을 전승으로 통과했으며, 64강에서 만난 <뇌전검>양하나를 꺾고 32강에 진출했다. 혜성처럼 등장한 D급의 출현에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일인가.”

       

        컴퓨터 책상에 늘어져있던 나는 핸드폰을 배에 덮어두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앞선 64강은 그다지 어려울 게 없는 싸움이었다. 당장 양하나의 능력이 상상 이상으로 강했지만, 양하나는 아직 검술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상태이니 당연했다.

       

        허나 32강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이제 랭커와의 싸움이 주 컨텐츠가 되겠지.”

       

        역대급으로 많은 랭커가 참여한 이번 승천전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랭커. 그들이 토너먼트의 절대다수를 차지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다음날 아침,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승천전의 32강. 오늘은 내 경기가 예정되어있기 때문이다.

       

        “임혜성이다!”

        “와아아아!”

        “시궁창에서 홀로 일어난 왕이시여…….”

       

        거리를 걷는데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이 들이닥쳤다.

       

        나를 향한 관심은 분명 고마운 것이지만, 하나하나 일일이 상대해주면 끝이 없을 것이 뻔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걸음을 계속해서 옮겼다. 이따금씩 나를 찬양하는 목소리가 듬성듬성 들려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어서 오십시오!”

       

        그런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 삼십 분 정도 걸으니 스타디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참가자 전용 출입구’로 향하니 한 양복을 입은 사내가 나를 마중한 것이다.

       

        “……벌써부터 시끄럽네요?”

       

        현재 시간은 오후 한 시 즈음. 경기가 예정된 오후 세 시 까지는 무려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벌써 스타디움 안에선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하하! 아시지 않습니까. 오늘 대결이 큰 관심이 쏠렸습니다. 안전사고를 걱정한 진행부가 조기 입장을 받았거든요.”

       

        참가자 전용 출입구 안으로 들어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의 어마어마한 관심이 일상 생활에서, 또 내 피부로 느껴진다. 협회와 아카데미의 높으신 분들도 충분히 상황을 염려하고 있었겠지.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양복 사내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누가 보아도 고급스러운 가구로 채워진 대기실이었다.

       

        “대기실이 바뀐 것 같은데요?”

       

        문을 열자 보이는 풍경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장 고급 소파에 테이블과 의자, 심지어 식탁에 온갖 전자제품이 가득한 대기실이다. 농담 조금 보태자면 선수 대기실이 아니라 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처럼 보일 지경이다.

       

        “상부에서 언질이 있었습니다. <현상거절>님에게 가장 좋은 대기실을 내어 주라고요.”

        “…상부가요?”

       

        이제껏 찬밥신세…… 아니, 여느 낮은 레벨의 능력자와 같은 취급을 받던 나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호화스러운 대기실을 내어준다고?

       

        “그…… 것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거지요. 당신께서 차기 랭커로 촉망받는 <뇌전검>을 그리 쉽게 꺾을 거라고 말이죠.”

        “…….”

       

        양복 사내의 겸연쩍은 목소리에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예컨대 히어로 협회와 아카데미는 애당초 내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무관심은 예선 전승 우승과 <뇌전검> 양하나와 결투를 치른 이후로 지대한 관심으로 바뀐 거겠지.

       

        ‘늙은 너구리들이 잔머리를 쓰네.’

       

        협회와 아카데미 수뇌부의 생태를 대략이나마 알고 있던 나는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내 환심을 사려고 드는 게 가엾게 보이기도 했고.

       

        “알겠습니다. 안내 감사합니다.”

        “예. 경기 전까지 편히 쉬시길.”

       

        양복 사내가 허리를 꾸벅 숙이더니 조심스레 문을 닫고 대기실을 나갔다.

       

        고급진 선수 대기실을 한바퀴 빙 돈 나는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푹신푹신한 느낌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농담 조금 보태면 우리집 침대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

       

        [ 두려움? 저와는 거리가 먼 단어군요. ]

       

        “응?”

       

        그리 호화로운 대기실의 풍경에 감탄을 흘리고 있는데, 대기실 구석에 걸린 대형 TV에서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튀어나왔다.

       

        [ 그가 태풍을 부르는 폭풍의 눈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

       

        <공간왜곡>김인만. 그의 인터뷰가 방송을 타고 있던 것이다.

       

        [ 하지만 저는 ‘랭커’입니다. 그의 승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

       

        그리 말한 김인만이 카메라를 응시했다. 조금의 장난기와, 조금의 소심함이 어루어진 표정의 그가 나지막히 말을 이어갔다.

       

        [ 그를 밟겠습니다. 아주 철저히요. 제가 주는 벌이니 달게 받아야 할 겁니다. ]

       

        김인만의 선언과 함께 깔리는 무거운 배경음악.

       

        그걸 듣던 나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개오글거리네.”

       

        D등급의 도전자 입장인 덕분인지, 나는 인터뷰 영상 촬영이나 제안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리 보니 차라리 인터뷰를 안 한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게 뭐냐.

       

        김인만의 인터뷰를 끝으로 다른 ‘랭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원소술사> 이성혁이나 <비를 내리는>송수아 말이다.

       

        와중에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 자, 잘 부탁드려욥! ]

       

        잔뜩 긴장한 송수아의 인터뷰 영상이 방송에 탄 직후.

       

        와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함성이 스타디움을 뒤흔들었다. 결투장에서 제법 거리가 먼 선수 대기실에도 함성이 들려올 정도로.

       

        “……인기가 상상 이상인데?”

       

        원작을 읽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비를 내리는> 송수아가 죽음을 피하지 못했고, 한유리가 슬퍼했다는 짧은 설명이 있었을 뿐이니까.

       

        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D등급 능력자와 랭커의 맞대결…… 바야흐로 ‘농민봉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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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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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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