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7

   “제군들, 모든 전장 중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전장이 무엇인 줄 아나?”

   수업 시작 첫날부터 학생들을 죄다 데리고 운동장으로 나갔던 제니퍼답게도, 자기 수업 시간이 되자 당연하다는 듯 우리를 데리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 사람 머릿속에는 ‘교과과정’이라는 것이 들어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분명 학교 들어올 때 교재를 받았던 것 같은데, 우리는 그 교재를 펼쳐보지도 못했다. 아니, 애초에 교재가 필요 없으면 주지를 말라고. 아침마다 가방 무거워지잖아.

   다만, 그래도 나는 이미 이 제니퍼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제니퍼는 ‘수업 시간’에 ‘게임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종의 장치 역할을 하는 캐릭터이기도 했으니까.

   학생이라는 존재의 본분은 당연히 공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게임상에서 학생들이 공부만 하면 게임 자체가 엄청나게 지루해진다. 무슨 미연시 하는 것도 아니고, 설정 놀음 퀴즈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기에, 이 게임은 공부하는 부분을 확실하게 줄여버리고, 수업 시간 안에 ‘싸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넣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캐릭터 간의 갈등 요소가 두드러지도록 했고, 그 갈등 요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캐릭터가 바로 제니퍼 윈터필드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수업 시간마다 이렇게 학생들을 모아두고 대련하는 것만 주야장천 나오면 그건 그거대로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으니, 초반부에 캐릭터 소개하는 부분만 그렇게 모아두고 뒷부분에서는 사건 사고가 펑펑 터지는 것으로 해두었지만.

   “흠.”

   학생 중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제니퍼가 누굴 지목할지도 잘 알고 있었다.

   제니퍼가 지목한 상대는—

   “레오 그레이스!”

   그렇다. 레오 그레이스였다.

   주인공이었고, 설정상 그레이스 남작은 제니퍼의 어린 시절 롤모델이기도 했으니까. 대놓고 편애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더라도, 제니퍼가 어느 정도 친밀감을 느끼는 것 같은 묘사는 종종 나왔다.

   물론 레오 그레이스는 그런 뒷설정 따위 모르기 때문에, 그저 선생이 무작위로 지목한 것으로 알고 있을 뿐이지만.

   아,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도 선택지에 따라 레오는 제니퍼와 대련하게 되기도 했다. 어쩌면 이게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제니퍼와 레오가 대련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무작위 선정’에 레오가 걸리게 된 것도 딱히 우연으로 보이지는 않을 테니까.

   실제로도 우연은 아니었고.

   “아, 네.”

   레오는 잘못 걸렸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제니퍼는 딱히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가장 영광스러운 전장이 어디라고 생각하나?”

   “아……”

   여기서 선택지가 뜬다.

   다만, 어느 것을 골라도 상관없다. 세 개의 선택지 모두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모두 다 틀리기도 한 선택지였으니까. 적어도 제니퍼의 질문의 의도와는 맞지 않는 선택지들이었다.

   “북부의 전장, 이 아닙니까?”

   그래도 성실한 성격답게 곰곰이 생각하던 레오는 고심 끝에 그 대답을 내놓았다.

   과연, 첫 번째 선택지인가.

   나머지는 각각 남부와 서부였다. 남부는 아직 개발이 덜 진행되었고, 지역 부족민과 소규모 충돌이 지속해서 일어나고 있었고, 서쪽은 해안가였다. 해안가는 안전해도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신대륙으로 향하는 교역선을 노리는 해적선들이 바글바글했다.

   세 선택지 모두 제국의 치안유지를 이유로 드는 선택지지만, 유독 ‘원주민’과 마찰을 일으키는 남쪽 전장의 선택지에서 풍기는 그 제국주의적 색채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모여있는 마이너 갤러리에서는 ‘제국주의 루트’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애초에 이런 것으로 엔딩이나 전개가 바뀌는 것은 아니니 루트고 뭐고 아니긴 했지만.

   참고로 후속작 중 제국 남부의 마찰이 중심이 되는 분도 있긴 한데, 거기서는 저런 선택지를 생각해본 적 없다는 듯 레오는 열심히 원주민들을 돕는다.

   “호오.”

   바로 그 북부에서 군 복무를 하다가 온 제니퍼는 그런 레오의 대답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예. 북부는 리클란트 자치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치국은 그 치안이 극도로 불안정하여 제국 국경 근처를 제대로 관리할 여력이 없고, 그래서 그곳의 군벌들이 종종 제국의 국경을 침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국 신민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언제나 눈에 불을 켜고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이 있는 그 전장이야말로 가장 영광스러운 전장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가.”

   제니퍼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군벌이라고는 하나, 사실 고용주 없는 용병이나 다름없는 자들이다. 누군가에게 돈을 받으면 무슨 짓이건 하지. 그게 어떤 더러운 일이라도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아. 그런 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분명 영광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허나.”

   제니퍼는 레오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영광 또한 살아 돌아온 뒤에나, 혹은 죽어서 시체가 되어 돌아온 뒤에나 누리는 것이다. ‘전장’ 그 자체의 영광은 아니지. 하지만 좋은 대답이었다. 앉아라.”

   레오는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전장은— 아, 그렇지.”

   설명하다 말고, 제니퍼는 말을 끊었다.

   음.

   원래 여기는 바로 자기가 생각하는 지론을 설명하는 부분인데. 이런 식으로 말을 끊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말을 하다가 멈춘 제니퍼의 눈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실비아 팬그리폰. 일어나라.”

   “…….”

   아니, 왜요?

   물론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선생이 학생을 호출하는 것은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 적어도 황제가 열네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녀를 자기 대리로 세워 무려 국가 간 회담에 내보내는 것 보다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일어나자, 제니퍼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가장 영광된 전장은 어디라고 생각하나?”

   “…….”

   나는 발표 같은 거 엄청나게 싫어하는데.

   대학 수업 시간에 조별 과제를 할 때도, 내가 슬라이드쇼를 혼자 전부 떠맡는 한이 있더라도 발표만큼은 다른 애 시켰다. 발표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게 유리한 곳이었는데도 나는 그걸 엄청나게 싫어했다.

   그야, 잘못 말하면 쪽팔리잖아.

   물론, 나는 제니퍼가 원하는 대답을 알고 있다. 3, 4회차쯤 가서는 이벤트 신은 죄다 건너뛰긴 했지만, 그래도 2회차까지는 스토리를 복기하는 셈 치고 다시 플레이하기도 했고, 대사를 제대로 하나하나 번역하기 위해 다시 보기도 했으니까.

   특히 세 선택지 중 제대로 된 답변이 뭔지 알아보기 위해서 몇 번이나 돌려봤던 장면이다.

   “……영광된 전장은 없습니다.”

   그래, 이게 제니퍼가 원하는 답변이었다. 만약 옆에 교장인 에이브러햄 윈터필드가 있었다면 바로 노발대발했을 답변이었다.

   “호오.”

   제니퍼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제니퍼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대답이 마음에 들기라도 했나?

   틀려서 쪽팔린 것과 맞춰서 쪽팔린 선택지가 있다면 차라리 맞춰서 쪽팔린 선택지를 고르겠다는 생각으로 고른 답변이었다.

   사실, 여기서 제4의 대답을 했을 때의 제니퍼의 반응을 보고 싶기도 했고.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제니퍼가 재차 물었다.

   “전장은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영광된 장소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 영광스러울 수는 있어도.”

   아직 시기는 전간기에 가깝다.

   그것도 막 전술이 전열 보병에서 엄폐상태를 유지하며 멀리서 총질하는 현대전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

   그럭저럭 현대적인 분위기의 탱크나 전투기가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필요한 부분만 정확하게 날리는 스마트한 첨단무기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철조망을 치고, 땅을 파고, 벙커를 짓고. 상대방의 참호로 수천 명의 병사가 돌진하다가 기관총에 육편이 되어 쓰러진다. 머리 위에서는 곡사포탄과 박격포탄이 잊을만하면 떨어지고, 제대로 맞았다가는 시체도 찾지 못하게 된다.

   참호와 참호 사이의 무인 지대에는 시체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화염방사기, 독가스, 지뢰, 기관총…… 인간의 맨몸으로 맞서기에는 너무 충격적인 무기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그 무기들을 정확하게 타격해 날려버릴 수단은 극히 한정되었던 시기.

   내가 살던 지구의 현대전도 지옥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전면전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이 세계의 전장은 또 다른 형태의 지옥이었다.

   “…….”

   제니퍼의 얼굴에서 표정이 살짝 지워졌다.

   제니퍼는 내 쪽으로 몇 걸음 걸어와,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렇군.”

   그리고 뭔가 혼자 납득하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다. 전장은 지옥이지. 검과 검을 맞부딪히는 기사 간의 전투 따위 옛날이야기에서나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검과 검을 맞부딪히던 전쟁 또한 다른 의미로 지옥이긴 했겠지.

   “자리에 앉아라.”

   제니퍼의 말에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주변에서 시선이 날아와 꽂히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제군들은 전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나는 알 수 없다. 솔직히, 그런 것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지. 내가 아무리 나의 노하우를 가르친다고 해도, 그것을 완벽하게 익히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야전에서의 행동은 각자 편한 쪽으로 변해가기 마련이니까.”

   제니퍼는 진중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너희 중 몇 명이나 군인이 될지도 알 수 없지. 하지만, 적어도 내 담당 과목은 군인을 키워내는 과목이다. 그리고 군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어떤 예측할 수 없는 시련에서도 살아남는 생존능력이지.”

   제니퍼가 첫날부터 우리를 불러서 대련을 시킨 이유도 거기 있었다. 제니퍼는 언제나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고 다니니까.

   전장을 직접 겪어본 사람으로서.

   “그러니, 오늘, 너희는 예측할 수 없는 시련과 맞서는 법을 배운다.”

   제니퍼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돌아왔다.

   싱글벙글 웃으며, 제니퍼는 마치 극단장이 무대 위의 배우들을 소개하는 것처럼 손바닥을 위로 해서 팔을 옆으로 뻗었다.

   “오늘 너희의 대련 상대는, 저쪽에 있는 평민 반이다.”

   마침 타이밍 좋게 평민 반인 C반이 건물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째서 우리보다 늦게 나왔느냐 하면, 제니퍼가 갑자기 수업 시간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수업 기회를 빼앗았다기보다는 A반과 C반의 스케쥴이 겹치도록 다른 교사와 협의를 보았다고 하는 쪽이 옳으리라.

   “……교관님?”

   “무슨 일이지?”

   학생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제니퍼를 불러, 제니퍼는 그 학생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저 반의 아이들은 평민이 아닌가요?”

   “그래. 평민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불안한 표정으로 이쪽으로 향하는 C반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다시 그 학생이 물었다.

   “평민들은…… 제대로 된 유파에서 수련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평민들이 싸우는 방식이 저희에게 ‘시련’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말에 몇몇 학생들이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호오.”

   제니퍼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그런가? 저기 계신 실비아 황녀께서 쓰시는 것도 딱히 ‘유파’라고 할 것이 없는 병기다만.”

   “…….”

   제니퍼의 잔뜩 비꼬는 말에, 학생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렇다.

   평민 중에서 제대로 된 유파에 소속되어 검이나 창, 마법을 배우는 인물은 극소수다.

   바꿔말하자면, ‘딱히 훈련받지 않아도 쉽게 쓸 수 있는 무기’를 쓰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다가오는 학생들의 모습이 확실하게 보인다.

   학생 대부분의 등에는 소총이나 사냥용 엽총이 매여 있었다. 군대에서 쓰는 것이라기보다는 민간용이 더 많기는 했지만—

   “…….”

   그것만으로, 귀족 학생들이 입을 다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