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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사람이 없는 고층 빌딩 옥상을 뛰어넘다 잠시 후 그 위에 착지했다.

       

       “크르르르…”

       

       우리가 처음 만난 허허벌판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층 빌딩이었다.

       

       저 멀리 저택이 있었던 곳으로 구급 헬기부터 시작해 수많은 구호 인력이 그쪽으로 향하는 게 보였다.

       

       한편.

       

       “……”

       

       사람들 눈은 속였으니까.

       

       이제 체란 씨 눈은 어떻게 속여야 할까.

       

       일단은 정체를 들키자마자 막무가내로 그녀를 납치한 꼴이었다.

       

       혹여라도 여기서 내 정체가 꼬리에 꼬리를 잡고 전세계로 퍼진다면 나는 앞으로 인간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될 테니까.

       

       게다가 잘못하면 지금까지 한 일들…

       

       헌터 지부의 지부장한테 덤볐다거나, 세계 10대 가문의 여식을 속였다는 죄목까지 겹쳐 아예 인류의 배신자 즉 ‘괴인’으로 낙인찍힐 가능성도 존재했다.

       

       ‘그것만큼은 안 된다… ‘괴인단’ 루트만큼은 제발 안돼…!’

       

       괴수 취급을 받는 인간.

       

       통칭 괴인(怪人).

       

       그들은 국제 수배전단에 이름을 올린 대악당들이었다.

       

        인권 말소는 물론이고 죽을 때까지 전세계의 헌터 협회와 각국이 모여 만든 세계 정부에 쫓기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가 바로 <헌터즈 블러드> 세계관의 대표 악의 조직인 ‘괴인단’이었다.

       

       ‘원작에서도 캐릭터들 대부분을 차후 DLC로 판다면서 실제로 만난 사람은 몇 안 되지만…’

       

       말 그대로 ‘사연 있는 악당’들의 본거지.

       

       1차원적인 나쁜 놈은 없고 죄다 눈시울 붉어지는 사연을 가진 세탁형 악역들의 모임이었다.

       

       그리고 원작에서 나와 만난 괴인단 맴버들의 최후는 모두 좋지 못했다.

       

       마치 세탁기 멈춰! 라고 게임 제작사가 말해주듯 모두 원통하게 작렬이 죽어버렸다.

       

       ‘…그런 괴인단 루트를 현실에서 보게 된다면 분명히 내 멘탈이 견디지 못할 거야.’

       

       무엇보다 괴인단 루트는 초 하드코어 고인물 전용 루트다.

       

       게다가 엔딩은 반드시 베드엔딩.

       

       겨우겨우 결말에 도달해도 동료가 됐던 괴인단 맴버들은 이미 전멸한 상태였고 그냥 인류 자체가 싸그리 멸종하는 최악의 결말이었다.

       

       …라는 열린 결말식 엔딩으로 확정된 루트였기에.

       

       “크르르륵!”

       ‘어떻게든 체란 씨를 설득한다!’

       

       진짜 여기서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체란 씨께 무릎 꿇고 제발 좀 살려달라고 비는 수밖에 없었다.

       

       “그… 신우 님. 일단 좀 내려주시겠어요?”

       “크륵!”

       ‘네!’

       

       나는 시키는 대로 우선 체란 씨를 조심히 옥상에 내려놔 줬다.

       

       그리고 어색하게 눈을 마주쳤다.

       

       “신우 님.”

       “……”

       “지금 그 상태로 대화는 불가능하죠?”

       “크륵.”

       

       끄덕끄덕.

       

       인간형 괴수라도 턱관절 구조는 인간의 것이 아닌지 내 대답은 언제나 똑같은 ‘크륵’이었다.

       

       그래서 무리라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러면 일단 인간으로 다시 돌아와 주시겠어요?”

       

       일단 대화 좀 하자며 나를 원래 모습으로 변신시키려는 체란 씨.

       

       …혹시 함정이 아닐까.

       

       이대로 내가 인간폼으로 돌아온다면 곧장 명치에 주먹이 꽂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거짓말 안 하고 나는 그대로 죽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내게는 딱히 이렇다 할 선택지도 없었기에.

       

       나는 오늘 두 번째로 몸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한신우로 돌아왔다.

       

       그러자 자기가 하라 해놓고 진짜로 하자 놀라서 눈을 크게 뜬 체란 씨가 보였다.

       

       “…! 정말로, 되는 군요. 변신이…”

       “네, 뭐, 그렇죠…”

       “…태어나실 때부터 그러셨던 건가요?”

       “네. 그렇게 됐습니다…”

       

       짧게 대화한 후 다시 몇 초의 정적.

       

       분명 뭐든 따지면서 죄인 취급을 받을 줄 알았는데 이건 좀 의외였다.

       

       ‘왜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거지?’

       

       아니면 즉결 처형으로 역시 여기서 바로 죽일 생각이신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괴수화 헌터 말고 다른 헌터 직업으로 빙의했으면 좋았겠다고 그런 생각이 들던 찰나.

       

       “정체를 들키면 많이 곤란해지는 상황이신 거죠?”

       “…네?”

       

       대뜸 내 사정을 묻는 체란 씨.

       

       이에 일단은 맞아 고개를 끄덕이자.

       

       “알겠습니다. 그러면 비밀로 해드릴게요.”

       “……네?!”

       

       갑자기 내 편을 들어주시는 체란 씨.

       

       대체 뭔 일인가 싶어 나는 연신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아니, 까놓고 말해서 헌터측에는 내가 인간인 척하는 괴수로 보일 수도 있을 텐데.

       

       이런 나를 무슨 야생 고라니 마냥 놔주겠다고?

       

       대체 왜?

       

       이유가 뭘까.

       

       나는 그게 궁금해서 그냥 여기서 입 다물고 있으면 끝나는 상황이건만.

       

       혹시 내가 놓친 떡밥 같은 게 있나 싶어 고인물 버릇을 못 이겨 마주 본 체란 씨에게 물어봤고.

       

       “왜 저를 놔주시는 거죠?”

       

       그 말을 듣자, 눈을 크게 뜨는 체란 씨.

       

       그러더니 잠시 후 내게서 시선을 돌린 후 갑자기 생뚱맞 소리를 했다.

       

       “…혹시 절 기억하시나요?”

       “……네?”

       

       그야, 기억하죠.

       

       우리 엄마 제자신데 내가 어떻게 까먹을까.

       

       게다가 구면인 사이끼리 갑자기 기억하긴 뭘 기억해.

       

       그렇게 나는 대답이 늦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

       “그냥… 그냥 신우 님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인류의 편이라고 믿고 있기에 눈감아주기로 한 겁니다.

       

       그 사이 다시 내게로 시선을 맞추며 활짝 웃는 얼굴로 돌아온 체란 씨는 무려 사실상 반쯤 괴수인 나를 믿는다 지지해줬다.

       

       “신우 님은 인류측인거죠?”

       “…!! 네! 물론이죠!”

       “후후. 그거면 된 겁니다. 그럼 슬슬 의심받지 않게 아래로 내려가도록 하죠.”

       “아, 네!”

       

       그렇게 유체란은 먼저 옥상 문을 열고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뒤쪽의 신우 님.

       

       정확히는 그때 그 사건에서 자신과 가족을 구해줬던 잠실의 괴수를 돌아보면서.

       

       “당신은 언제나 제 롤모델이었습니다. 신우 님.”

       

       유체란은 나지막이 감사 인사를 하며 얼굴에 붉은 홍조를 띄웠다.

       

       

       ***

       

       

       한국 지부의 1층 로비.

       

       갑작스런 러시아의 국가권력급 헌터 등장과 쿠루미 공주 납치 건으로 바빠진 그곳에서.

       

       “……”

       

       홀로 쭈그려 앉아 감히 헌터들도 거리를 벌린 채 차마 접근을 못하게 하는 인물이 단 한 명 있었다.

       

       그녀는 바로 신변 보호를 위해서라지만 인간을 한가운데에 둘러싸여 패닉상태가 온 쿠루미 공주였다.

       

       “으읏… 읏…!”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아르마딜로처럼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다.

       

       헌터들은 그런 공주의 반경 5미터 밖으로 전부 거리를 벌린 채였고 동시에 모두 뭔가를 해줘야만 했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현 지부를 맡고 있는 이진아 역시도 마찬가지.

       

       “지부장님. 저희는 뭘 하면 되죠?”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니 가만히 짜져서 대기나 하고 있어라.”

       

       뭘 해주고 싶어도 다가가는 순간 역효과를 일으키는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도가 없었다.

       

       그 예시로 자신의 옆쪽.

       

       오늘따라 바쁜 사건들로 특히나 북적해진 로비 탓에 숙련됐다지만 쿠루미 공주와 같은 비스트 헌터 체질이라.

       

       “으… 으…”

       “언니, 괜찮아?”

       “…….응.”

       

       로비 구석에서 소환한 새끼 괴수에게 위로를 받은 채 몸을 떠는 소피아를 보며 이진아는 한숨만 나올 따름이었다.

       

       ‘골때리네… 그렇다고 귀하신 분을 저택이 수리될 때까지 바닥에 앉혀만 놓을 수도 없는 입장이고…’

       

       무엇보다 저런 패닉상태가 계속 이어진다면 자칫 영구적인 공황장애를 일으킬 가능성도 존재했다.

       

       즉 이건 한일 외교에 있어서도 상당히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러면 임시방편으로 로비에 있는 헌터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내 봐?

       

       ‘…아니야. 그랬다가는 공주를 이곳으로 데려온 의미가 없어지잖아.’

       

       결국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가.

       

       인간을 싫어하신다면 자신의 랜슬롯을 소환해 위로해 주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를 소환하기에 이곳에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렇기에 지금은 일단 지켜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나.

       

       “헉, 헉, 헉!”

       

       이진아가 작게 한숨만 내쉬고 있던 그때.

       

       “소피아, 괜찮아?”

       “…! 한신우!”

       “……한신우?”

       

       조금 전 소피아 양이 있었던 로비 구석에서 들려온 반가운 목소리.

       

       비스트 헌터가 이렇게 인파가 몰린 구역에서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나 돌아보니 그곳에는.

       

       “아, 저 아이가…”

       

       롤링이 10년 전에 주워 왔다는 아들내미가 쭉 떨고만 있던 소피아 양을 위로해 주는 게 보였다.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바보야! 그건 내가 너한테 할 말이라고!”

       “하하. 그런가?”

       “오빠, 어서 와!”

       “응. 그래. 다녀왔어. 리아.”

       

       그런 두 사람과 한 괴수를 보며 이진아는 눈을 크게 떴다.

       

       

       ‘비스트 헌터의 얼굴에서 저런 표정을 보게 될 줄이야…’

       

       

       자신도 술자리에서 듣기만 한 이야기라 역시 실제로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원래 소피아 양과 나중에 대면할 기회를 얻게 된다면 왜 연구동의 새끼 괴수가 당신의 사역괴수가 됐는지, 이런 것부터 물어보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흥미가 좀 가네.’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

       

       

       터벅터벅.

       

       

       “…! 으, 으우…!”

       “리아, 왜 그래?”

       

       그런 셋에게로 당장 걸어가기 시작한 이진아.

       

       그녀가 거의 코앞까지 당도하자 리아는 과거의 안 좋은 트라우마를 떠올리곤 곧장 신우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그제서야 두 사람도 누가 왔는지 대강 눈치챈 표정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두 분.”

       “아, 지부장님…”

       “……”

       “개인적으로 두 분한테는 흥미가 있어서요. 특히나 한신우 군이었던 가요? 당신한테는 좀 더 흥미가 있어요.”

       “…그러신가요?”

       

       신우는 인간 상태로 이진아와 만난 게 이번이 처음인지라 가능한 이번이 초면 같은 어색한 연기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그날의 전투를 떠올리자 역시 적의를 숨길 수가 없었다.

       

       ‘음? 나를 엄청 째려보네? 내가 무슨 짓이라도 했던 걸까?’

       

       그런 신우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진아.

       

       허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진아는 신우의 반응이 어떻든 싱긋 웃더니 검지손가락을 펼쳐 문득 신우에게서 휙 돌아간 왼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신우 군한테 저분을 좀 맡겨도 될까요?”

       “…? 저 분이요?”

       “네. 그도 그럴게 저렇게 내버려뒀다가는 공황장애가 와서 자칫 뇌가 망가져 유아퇴행이 올 수도 있거든요.”

       “……?!”

       

       그제서야 신우는 인파들 사이로 뻥 뚫린 공간.

       

       그곳에 쭈그려 앉아 있는 쿠루미 공주를 발견했다.

       

       “그, 그런 걸 왜 신우가…”

       

       소피아는 자신과 맞잡고 있는 신우의 손이 풀려나자 조금 억지를 부려서라도 그를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열 때는 이미.

       

       타다다닥.

       

       지금 자신이 진짜로 필요한 사람에게로 달려가.

       

       “공주님.”

       “…에?”

       

       도울 수 있는 내 사람이라면 최선을 다해 활짝 웃으며 손을 내미는 신우.

       

       붉게 물든 혐오스러운 기척 속에서 혼자만 하얀빛을 내뿜는 이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다.

       

       마치 하늘의 동아줄 같은 그 손을 붙잡자마자.

       

       “흐, 흐아아아아아아앙!”

       “옳지옳지.”

       

       쿠루미 공주는 정말로 무서웠다는 듯, 차라리 죽고 싶었다는 듯, 이빨을 딱딱 떨고 고귀한 혈통답지 않게 눈물에 콧물까지 흘리면서 그 즉시 신우에게 안겼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속에 모아놨던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주, 죽은 줄…! 아, 알았, 어요…! 나, 나아…! 너무…! 무, 무서…!”

       “걱정마세요. 저는 살아있으니까요.”

       

       한편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로비의 인파들.

       

       헌터와 접수원 심지어는 신우의 선배 마이스터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저 입이 쩍 벌린 채 놀라고만 있었다.

       

       단 한 명.

       

       “어, 언니…”

       

       리아가 걱정스레 올려다본 그녀.

       

       소피아의 눈가에서만 왠지 모르게 분하다는 뜻의 물방울이 고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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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Catastrophic Monster Instead of a National Power

I Became a Catastrophic Monster Instead of a National Power

Status: Ongoing Author:
I was transported into a hunter genre game. Not as a national power, but as a catastrophic mon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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