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7

       2황자 이리드의 집무실은 전 창관 로자리아, 현 제국수호방위국 은닉 거점, 대외적으로 알려지기로는 수상할 정도로 서비스가 안 좋은 여관 『맥주와 노래』에 있었다.

       

       이리드는 3층 구석진 곳에 있는 어느 방에 책상만 새로 들여놓고는, 화병에 로즈마리 한 송이만 장식해 두고 업무를 보았다. 황실의 품격과는 거리가 먼 집무실이었다.

       

       제국에서도 가장 고귀한 혈통인 2황자가 어째서 허름한 여관에 자신의 집무실을 차렸는가는, 방위국 요원 내부에서도 추측이 갈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황위계승경쟁에서 밀려났을 경우를 대비해, 검소한 생활 습관을 익히기 위해서라고도.

       

       누군가는 득도한 2황자가 백성의 고통에 공감해 주고 싶은 마음에 궂은일을 자처하는 것이라고도.

       

       누군가는 방위국의 약점을 잡아 부서를 날려버리려는 것이라고도 추측했다.

       

       그러나, 진정한 이유를 아는 요원은 단 한 명뿐이었다.

       

       ‘너희들의 추측은 전부 다 쓰레기다.’

       

       방위국 요원 C는 이리드의 업무를 보조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다음.”

       

       “예, 다음 안건으로는 아카데미 인근에서 발견된 미확인 던전이 있습니다. 탐사대의 조사에 따르면 던전 곳곳에서 흑마법사의 사인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것만으로는 내게 보고서가 올라올 것 같지 않은데. 특이 사항이 있나?”

       

       “네. 엘리트 마크가 발견되었습니다. 여신교로부터 악성표총람(惡成票總覽)을 대여하여 확인해 본 결과, 마크의 주인은 『공포 먹는 시체꽃』입니다.”

       

       “⋯⋯기억에 있군. 누님이 읽어주었던 동화에서 들어본 적 있다. 흰 까마귀와 검은 백조, 단신으로 성 하나를 하룻밤 만에 불태웠다는 흑마법사⋯⋯. 이번 건은 보류해 두지. 손 패를 좀 더 끌어올 필요가 있겠어. 다음.”

       

       

       “예, 다음 안건으로는. 이번에도 적색 마탑에서 황실 지원금을 늘려달라는 탄원서가 도착했습니다.”

       

       “황실 지원금 책정 권한은 황손들에게 없다는 걸⋯⋯ 이번에도 알렸겠지?”

       

       “예. 그리고 이번에도 왔습니다. 이번에는 한술 더 떠서 비행 허가구역의 상공에 인쇄한 탄원서를 뿌리더군요.”

       

       “나는 가끔, 마법사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은 종교시설에 처박아버려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시해. 다음.”

       

       

       “예, 다음 안건으로는. 1황녀 일레인 님으로부터의 편지입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방문하시겠다고⋯⋯.”

       

       “무슨 용무인지 모르겠군. 우선은 귀찮아지는 기밀문서를 숨겨라. 내게 충성 맹세를 한 요원들은 외근을 보내 두고, 센트라의 초상화는 지하 금고에 보관──”

       

       투쾅.

       문에서 나면 안 되는 소리가 나며 열렸다.

       

       그리고 붉은 드레스를 입은 습격자가 당당하게 발을 내디뎠다.

       

       “안녕, 내 동생-!”

       

       “뭐, 뭐냐, 기습인가⋯⋯?! 아니면 함정?! 무력을 통한 황위 경쟁은,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금지──읍!!”

       

       꽈아악-!

       

       흉악한 1황녀의 손아귀가 이리드를 낚아채고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꽉 안았다. 반가움과 사랑을 잔뜩 담은 허그였다.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방위국 요원 C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둥근 해가 산골짜기 사이로 저물듯, 2황자의 얼굴 또한 그러했다’고.

       

       일레인은 제자리에서 35바퀴를 빙글빙글 돈 뒤에야 이리드를 내려주었다. 

       

       ===============================================================

       

       이리드는 방위국 요원 C에게 뻐근해진 어깨를 주무르게 시키며 테이블에 앉았다. 인간 원심분리기에 피격당한 후유증이었다.

       

       일레인은 처음 테마파크에 방문한 어린이처럼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가감 없이 물었다.

       

       “왜 이렇게 좁아터진 방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거니?”

       

       “그건 누님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방이 이렇게 좁으면 회피 공간이 안 나와. 습격을 당했을 때 여러모로 불리한 데다가, 폭발 마법 한 번에 날아가니까.”

       

       “안전은 충분히 신경 쓰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잠깐, 나는 분명 이 방에 보호 역장을 둘러뒀을 텐데.”

       

       “창문도 꼼꼼히 신경 썼어야지?”

       

       이리드는 천장에 매달아 둔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보호 역장을 내뿜어야 했을 수정구는 전원이 끊겨, 예쁜 장식물이 되어 있었다.

       

       2황자의 머릿속에 C가 배신을 때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들락 말락 할 때, 일레인은 자신이 사용한 트릭을 알려주었다.

       

       까닥까닥. 일레인이 손가락을 휘저으니 창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리고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와 수정구의 전원을 켜고 도망갔다.

       

       “⋯⋯이런 능력이 있었다고?”

       

       “차원 마법을 통해서 얻었지. 꽤 나쁘지 않았어.”

       

       “눈에서 독기가 빠져나갔다고 생각했더니, 이유가 있었군.”

       

       “⋯⋯그런 것도 보이니?”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많은 걸 읽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누님이 은근히 체중에 신경을 쓰고 있다거나, 마카롱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집어먹고 후회하는 정도나⋯⋯ 크아아악!!”

       

       인간 원심분리기가 열일곱 바퀴 더 돌았다.

       

       C는 급격한 가속으로 산발이 된 이리드의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흠흠. 이 누님에게 장난도 치고, 많이 변했네. 이리드.”

       

       “정확히는⋯⋯ 누님이 변했지.”

       

       내가 담대해져서 장난을 건 게 아니라, 네가 편해져서 장난을 건 거다. 이리드는 그런 뜻으로 중얼거렸다. 이전까지의 1황녀에게는, 수틀리면 언제라도 모가지를 뽑아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분위기가 느껴졌으므로.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사자에게 장난을 걸어오는 얼간이가 어디에 있으랴.

       

       “2대 8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황자님.”

       

       “황자의 머리로 장난치지 말고, 원래 하던 대로 돌려놔라 C.”

       

       마들렌 2인분을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먹어 치울 수 있는 정예 요원 C에게 주의를 주고 나서, 이리드는 생각에 잠겼다.

       

       자신은 사랑을 얻었지만, 누님은 능력적인 변화가 있었다.

       

       1황녀의 본래 능력은 알고 있었다. 걸어 다니는 폭풍, 전장에 몰아치는 피바람. 전투가 끝날 즈음에는 곱게 갈린 적들의 시체로 붉은 안개가 생길 정도였다고 하는, 파괴 일변도에 자해를 곁들인 극단적인 우화.

       

       여신교 사제단이 매달 1황녀의 자택 앞에서 ‘제발 좋은 말씀 한 번만 듣고 가시라’며 시위를 벌이다가 감옥으로 끌려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극단적인 우화는 극단적인 승화를 낳는다.

       

       그리고 극단적인 승화를 가진 사람은, 미치광이에 가깝다.

       

       역사가 증명해 오고 있었다. 100년 전에 활동했다던 검귀(劍鬼)도, 10년 전 광증으로 인해 학살을 벌였다가 구속되어, 현재는 금색 마탑의 연구동에서 인체실험을 당하고 있는 투귀(投鬼)도.

       

       우화 단계에서는 불안불안하다가, 그 비틀린 심성으로 승화에 닿은 순간. 그들은 제국의 적이 되었다. 누님 또한 그대로 승화에 이르렀다면 혈귀(血鬼)라고 불리지 않았을까.

       

       그러니, 다행이었다.

       

       “⋯⋯한 번 더 안아줄까?”

       

       “됐으니까 용무를 밝혀라. 방문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크게는 두 가지야. 하나는 중요한 이유고, 다른 하나는 중요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말하고 싶은 게 있달까⋯⋯.”

       

       “말이 길군, 전자부터 듣지.”

       

       “어떻게 할 거야? 자색 마탑.”

       

       “의미를 모르겠다만.”

       

       “말 그대로, 처우를 묻는 거야. 아, 해치자는 뜻은 아니란다⋯⋯. 하지만 무작정 비밀로 해 두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해서.”

       

       “확실히, 그래. 아깝군.”

       

       그건, 여러 가지로 응용할 수 있었다. 

       

       직접 들어가서 죽어 본 2황자는 잘 알고 있었다. 안전장치도 확실하고,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는 데다가, 죽음을 겪어본다는 사실 자체로 삶의 태도를 바꿔놓는 무언가가 있었다. 

       

       또, 차원 마법이 아니더라도 마침 환상 마법사가 필요하긴 했다⋯⋯. 아카데미에서 환상 마법에 대해 강의해  줄 교수가 필요했으니. 

       

       환상 마법을 쓰는 법은 몰라도, 환상 마법에 대처하는 법은 강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또⋯⋯.

       

       촤라락.

       

       2황자 이리드는 서류 뭉치에서 몇 장을 뽑아내었다. 아카데미의 입학명단과, 흑마법사의 동향, 그리고 인근의 미확인 던전.

       

       “연례행사가 터질 때가 됐다.”

       

       “아카데미 습격 말이니?”

       

       “그래. 습격에 앞서서 심증이지만, 아카데미 내부에 흑마법사의 끄나풀이 있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생각한다. 평시였다면 아카데미에 소년 기사를 파견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다만⋯⋯.”

       

       “음, 소란스럽지. 이종족 협의회가 앞으로 금방이잖니. 그분은 그쪽을 신경 써야 할 테니까⋯⋯.”

       

       이리드는 머릿속으로 큰 그림을 그렸다. 아카데미 학생들의 강화, 흑마법사 대비, 그리고 아카데미에서의 파벌 형성과 알력 다툼을 해결할 하나의 수.

       

       번뜩였다.

       

       미치광이 마법사를 투하하는 것이다.

       

       “미친 마법사에게 억제기를 한 명 붙여서, 아카데미로 보내야겠군.”

       

       이리드는 C를 바라보았다.

       

       C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마음속으로 축포를 터트렸다. 아카데미는 생각보다 달달한 근무지였기 때문이다. 유명세가 자자한 디저트 카페도 있었고.

       

       “맡겨주신다면 성심성의껏⋯⋯.”

       

       “? 아니, 너는 내 옆에서 일해야지.”

       

       “그러면 그 시선의 의중이.”

       

       “적당한 사람을 수소문 해 봐라. 살짝 머리가 돌아있지만, 시킨 건 잘하는 사람이 적당할 것 같군.”

       

       “제가 사실 머리가 살짝 돌아있습니다.”

       

       “너는 한없이 정상인이니까 자신을 깎아내리지 마라.”

       

       이리드는 이번 일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명령서를 작성하고, 직인을 찍고, 그렇게 만들어진 서류 더미를 C의 품에 안겨주었다. C는 마음속으로 아카데미 몽블랑과 작별 인사를 하며 일하러 나갔다.

       

       그는 한숨 돌리면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래서?”

       

       동생의 일 하는 모습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일레인은, 동생의 부름에 깜짝 놀라서 쭈뼛거렸다.

       

       “응?”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잖나. 이마에 쓰여 있군.”

       

       “아, 그게⋯⋯ 말이지. 1황자가 범인이었다고 하면, 믿어줄래?”

       

       “이미 그 이야긴 여러 번 했던 거 아니었나.”

       

       “⋯⋯이번엔, 다를 거야.”

       

       이리드는 고개를 돌려 일레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모든 것을 읽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긴 시간 동안 켜켜이 쌓아 온 가면은, 쉽게 벗겨지지 않는 법이니.

       

       그러나 분명히, 바뀐 점이 보였다.

       

       눈동자 속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탁하게 고여 맴도는 피바람이 아닌,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바람이. 그리고⋯⋯ 기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믿어주길 바란다는 솔직한 기대가 보였다. 이리드 또한 기대를 품었다. 지금부터 이어질 이야기는 몇 번이고 듣고, 끝내 불신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의심하고,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끝까지 캐묻고, 정황 증거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 끝에서, 누님을 믿을 수 있게 된다면. 두 사람은 정다웠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

       

       

       “⋯⋯천천히 듣지.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앉아라. 아니, 침대에는 앉지 마라. 거긴 내 지정석이다.”

       

       “그럼 어디에 앉으라는⋯⋯?”

       

       “맨바닥이나, 책상 위.”

       

       “정말 좀 큰 방으로 옮기면 안 되겠니⋯⋯?!”

       

       

       이야기는 꽤 길게 이어졌다. 일레인은 그날의 진실을 풀어내었고, 이리드는 주의 깊게 들어주었다. 서로의 눈을 가리던 비틀린 마음은, 어떤 마법사의 환상이 가져갔으므로. 그것만으로 오해는 풀렸다. 

       

       기쁨의 눈물을 보인 일레인이 이리드를 껴안고 28바퀴를 더 돌아버린 것이 그날의 유일한 비극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갑니다, 우리, 아카데미로⋯⋯ 좀만 더 있다가!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이 시간에, 이 가로등 아래에서!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