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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기사 개인전을 시작하겠습니다! 황실 기사단 최고 실력자 기사들을 박수와 함께 맞이해 주십시오!”

     

    콜로세움 관중석을 채운 황실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 분위기를 띄운다.

     

    황궁의 기사, 시종 등.

    외부 귀족도 일부 모였다.

     

    아셀라는 다른 황자, 황녀들과 함께 중층 귀빈 관중석에 앉았다.

     

    나는 조금 뒤쪽에 그림자처럼 위치한다.

     

    고개를 들어 윗 단차를 바라보니 황제도 흥미진진하게 경기장을 지켜보고 있다.

     

    참가한 여덟 파벌에서 대표 기사들이 나와, 넓은 경기장에서 일대일로 대련을 겨룬다.

     

    황제에게는 눈과 귀가 즐거운 여흥이지만, 참가자인 승계권자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전투다.

     

    “첫 상대는 1황자파, 일성궁의 기사예요. 소드익스퍼트, 젊은 신예로 유명하지요.”

     

    시녀장이 내게 설명해줬다.

     

    타종과 함께 경기가 개시했다. 타냐와 상대 기사가 검을 부딪치며 검기를 뿜어낸다.

     

    객석까지 생생하게 전해지는 투기에 관중도 홀린 듯 눈을 떼지 못한다.

     

    기사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실력 좋은 검사는 흔치 않다.

     

    제국에 소드마스터는 두 명뿐일 정도니, 익스퍼트끼리의 대련은 가히 진귀한 광경이 틀림없었다.

     

    “오오…!”

     

    황제가 예상 밖의 명경기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슬아슬하게 검이 서로의 신체를 스쳐 지나가고 공격과 방어 합이 동시에 이뤄진다.

     

    ―채앵!

     

    타냐의 검기가 날카롭게 상대 기사를 제압하며 타격한다.

     

    손쉽게 타냐를 제압하리라 예상했던 상대 기사는 점점 열세에 밀려 혀를 찼다.

     

    슬슬 변칙을 쓸 때가 됐지.

    그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바닥에 던져 터트렸다.

     

    ―콰앙!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검은 연기가 두 사람을 덮친다.

     

    연막탄이다.

     

    검 외에도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 아티팩트는 모두 대련에서 허용된다.

     

    제국의 전투 방식이다.

     

    연기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실루엣.

     

    적 기사는 타냐의 시야를 가린 동안 뒤로 돌아가 등을 칠 셈이었다.

     

    “칫…!”

     

    아셀라가 혀를 차는 소리가 내 귀까지 들려왔다. 타냐가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채챙!

     

    검이 격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나며 동시에 화아악! 연기가 걷힌다.

     

    “결과는!”

    “어떻게 됐지!”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타냐가 당당하게 상대를 쓰러트리고 그의 목에 검을 들이밀고 있었다.

     

    “오오오! 월광궁이 일성궁에게 승리했다!”

    “저 기사는 대체 누군가!”

    “어둠 속에서 어떻게 반응했지?!”

     

    관객들이 감탄하며 타냐에게 주목했다.

     

    황제 역시 흥미로워하며 수염 가득한 턱을 쓰다듬었다.

     

    ‘연막탄은 제국군의 가장 기본적인 전술이니까.’

     

    당연히 대책은 준비해두었다.

     

    품에서 주황색 비약이 든 작은 유리병을 꺼낸다.

     

     

    ―――――――――――

     

    시력 강화제 앰플 [이중 강화됨]

     

    섭취 시 효과 : 밤눈이 밝아집니다. 어둠 속에서도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

     

     

    각종 비타민제를 만들다가 탄생한 비약 되시겠다.

     

    황궁으로 들어오는 질 좋은 당근 이백 개를 갈아 넣어 비타민A를 추출하다 보니, 기묘한 효과만 남은 비약이 완성됐다.

     

     

    아셀라가 나를 돌아본다.

     

    “흥.”

     

    그녀의 코웃음은 알아서 칭찬의 문장으로 번역해 듣기로 했다.

     

     

    타냐는 4강 상대도 손쉽게 제압해 결승에 진출했다.

     

    지구력도 곧 전투력이다. 개인전은 쉬는 시간도 없이 연속으로 진행된다.

     

    “결승전 상대는 토진궁이군요.”

     

    “네. 게오르크 2황자님의 파벌 기사에요. 익스퍼트지요.”

     

    아무리 황실 기사단이라도 익스퍼트 급이면 단장이나 황제 직속 호위를 맡고 있을 정도인데, 어째 참가자가 죄다 익스퍼트다.

     

    파벌 대표들이 얼마나 이 비무대회에 진심인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하, 아셀라의 기사가 상대구나. 이상한걸. 아셀라, 네게 소드익스퍼트가 있었어?”

     

    가벼운 톤의 목소리였다.

    액세서리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20대 중반의 남자였다.

     

    게오르크 2황자였다.

     

    아셀라는 경기장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귀찮은 파리를 떼어내듯 쏘아붙였다.

     

    “당신이 알 바 아니야, 게오르크.”

     

    “아이구, 무서워라. 너무 매몰차게 굴지 마. 오라버니라고 불러야지.”

     

    아셀라는 대답도 하지 않고 처형식에나 보이던 썩은 표정을 한 번 보여줄 뿐이었다.

     

    와, 이건 좀 무섭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게오르크는 아셀라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행동이 나중에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겠지.

     

    그는 오히려 아셀라의 반응을 즐기며 우렁차게 웃어댔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라고.

     

    2황녀, 라우가가 게오르크의 어깨를 탁 치며 그를 나무랐다.

     

    “오빠, 왜 아셀라 기를 죽이고 그래.”

     

    “우리 아셀라를 보면 대견해서 그렇지. 황가의 일원으로서 귀엽게 열심이잖아.”

     

    “모욕적인 표현은 쓰지 마.”

     

    조용히 있으려던 아셀라가 게오르크에게 한 마디 반박했다.

    승계권자가 아니라 귀염둥이 막내 취급을 받은 게 역린을 건드렸다.

     

    “모욕이라니, 아셀라.”

     

    슥.

    게오르크도 정색하며 아셀라를 향해 커다란 덩치를 기울였다.

     

    경박한 행동거지를 가졌어도 황제의 피를 이은 자다. 지배하는 인간의 아우라를 타고났다.

     

    “사람은 자기 위치에 서 있는 게 가장 중요해. 분수를 안다고 하지.”

     

    아셀라의 바로 위 나이인 라우가조차 스무 살이다.

    그들이 보기에 아셀라는 소꿉장난을 하는 것처럼 보일 터다.

     

    “이런 자리에서는 막내답게 얌전히 좀 있어. 헛짓거리 안 하면 머리 쓰다듬어주면서 어부바도 해줄 테니까.”

     

    “게오르크.”

     

    아셀라가 앞에 놓여있던 황금 물잔을 집어 들었다.

     

    “플레임.”

     

    화르륵!

     

    순식간에 마법진이 새겨지더니 황금 잔이 불꽃에 휩싸인다.

     

    뚝, 뚝.

    화려한 문양이 새겨 있던 황금 조형물은 녹아내려 형체를 잃고 바닥에 흘러내린다.

     

    그 모습을 보고 정색하는 게오르크를 향해 아셀라가 덤덤하게 경고했다.

     

    “내 머리를 만지면 네가 이렇게 될 거야.”

     

    “쯧, 마도병기가 귀찮게 자존심만 강해서는.”

     

    게오르크가 고개를 젓고는 등을 의자에 기댔다.

    다시 여유로운 척 미소를 짓는 게오르크.

     

    “우리 아셀라가 준비를 열심히 했나 본데. 하하, 방심할 수 없겠어. 저 기사가 실력은 좀 좋은 모양이야. 그렇죠? 형님.”

     

    “어? 어, 뭐, 그랬지.”

     

    게오르크가 부르자 체격이 왜소한 남자가 조용하게 대답했다.

     

    타냐에게 1회전에서 순식간에 깨졌던 1황자, 권터였다.

     

    현 승계 내정자치고는 어울리지 않는 소심한 태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소드익스퍼트에도 체급 차이가 있는 법이거든. 아셀라의 기사 정도에 패배하면 얼마나 창피하겠어.”

     

    게오르크가 꺼드럭대며 목소리를 키웠다.

    아셀라가 별 반응이 없으니 1황자로 공격할 목표를 변경해 신경전을 이어나간다.

     

    “하하, 우리 휴크는 차기 소드마스터가 될 거라고 정평이 나 있는 기사거든. 똑똑히 지켜보세요, 형님. 황제의 자식이라면 이 정도 수준의 기사는 운용할 줄 알아야 한단 걸요.”

     

    게오르크는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는 여유로운 태도를 웃었다.

     

    그 어깨를 툭툭, 라우가가 두드린다.

     

    “오빠, 오빠네 기사 방금 쓰러졌어.”

     

    “뭐라고?!”

     

    게오르크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경기장에서는 이미 결승전이 끝나는 모래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그 가운데에 게오르크의 기사는 엉덩이를 하늘로 뻗은 채 엎어졌고, 타냐만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뭐, 대체 무슨…!”

     

    게오르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뻐끔댔지만 어쩌겠어, 이미 결과는 정해졌다.

     

    타냐를 얕봤는지, 자기 기사를 과신했는지.

     

    “휴크가 저리 쉽게 질 리가 없어. 대체 무슨 수작을 부렸어, 아셀라!”

     

    아셀라는 게오르크가 궁금한 대답은 해주지 않고, 눈을 흘기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이, 얄미워라.

     

    “오빠는 저 정도 수준의 기사를 운용하는구나? 구경 잘 했어.”

     

    라우가가 깔깔대며 게오르크의 화를 돋웠다.

     

    “폐하가 지켜보시는 자리에서 이게 무슨 사고냐! 팔켄하인! 기사의 상태에 문제라도 있었나!”

     

    게오르크의 주치의, 팔켄하인이 내 근처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서 대답했다.

     

    “황자님, 기사 휴크의 건강상태는 아무 문제 없었다고 아뢰옵니다. 전염병은 내의원에서 치유를 완료했고….”

     

    “그럼 대체 어째서!”

     

    게오르크가 위를 올려다본다.

     

    황제는 결승전이 마음에 들었는지 중후하게 껄껄대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사회자가 타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우승하신 기사님의 소감을 한 말씀 들어보겠습니다.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확성마법으로 콜로세움 전역에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타냐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낮게 톤을 깔고 대답했다.

     

    ―월광궁 소속 기사, 타냐라고 하오이다.

     

    말투가 왜 저래?

    타냐가 무대 울렁증이라도 있었나.

     

    ―본래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않으셨던 기사님 같습니다만, 황실 기사단에는 언제 입단하셨습니까?

     

    ―한 달 전이오. 아셀라 황녀님의 주치의이신 고트베르크 선생님의 호위를 맡고 있소.

     

    ―주치의님의 호위기사셨군요. 고트베르크 선생님이라면 새로 부임하신 주치의시지요.

     

    ―그렇소이다. 북부에서 고트베르크 선생님과 함께 왔소.

     

    ―북부라! 북부에서 단련한 검술 실력으로 우승을 차지하실 수 있었던 겁니까?

     

    타냐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소인의 검도 올곧게 뻗었으나, 선생님의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오. 선생님께서 기사들을 상대할 전술과 의학 비약을 준비해주셨소.

     

    ―황궁에서 유행 중인 마스크를 만드신 선생님이지요. 잘 압니다. 그럼 기사님께서는 본래 주치의님을 섬기셨는지요?

     

    살짝 예민한 질문이다.

    저 사회자는 뭐 저런 질문을 하고 저래?

    다른 파벌 소속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정치에 문외한인 타냐였기에 의도를 모르고 오히려 침착하게 대답한다.

     

    ―소인은 주치의 선생님께 충성하는 건 맞소이만, 고트베르크 선생님을 주치의로 뽑아주신 건 아셀라 황녀님이오. 함께 은혜를 받았소이다. 소인은 월광궁을 대표해 나온 기사요.

     

    ―그렇군요. 우승자, 월광궁의 소드익스퍼트 타냐 기사에게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환호와 갈채가 콜로세움 벽에 울려 퍼진다.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대답이었다.

     

    “허허, 아셀라의 기사가 우승했는가.”

     

    황제가 즐거워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자식들의 경쟁이 좋은 안주거리인 마냥.

     

    “큭…!”

     

    게오르크가 쿵, 의자 손잡이를 내려치며 이를 갈았다.

     

    “우연은 한 번뿐이야. 최종 우승은 종합 점수로 결정되니 한 번쯤은 2위도 괜찮아. 다음 경기는 이번 같은 불행은 없겠지.”

     

    게오르크가 아셀라를 슬쩍 쳐다본다.

     

    아셀라는 그의 시선을 무시하고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트베르크 주치의.”

     

    갑자기 왜?

     

    내 이름을 들은 다른 황자와 황녀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고트베르크, 안녕!”

     

    라우가가 내게 스스럼없이 인사하기에 예를 갖추어 답했다.

     

    “저 남자인가, 고트베르크 주치의.”

     

    게오르크가 나를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는 시종 무리를 빠져나와 아셀라의 앞에 섰다.

     

    “어쩐 일로 호명하셨는지요, 황녀님.”

     

    “다음 경기가 뭔지 알려줘.”

     

    비무대회 스케줄이야 아셀라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다른 승계권자 앞에 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이어서 기사들의 단체 모의전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셀라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내게 보일 정도로만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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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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