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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루즈의 경찰관은 관광객들에게 친절하기로 유명했다.

       호텔을 찾는 투숙객들을 숙소 앞까지 직접 데려다주는 것은 물론이요, 여행자들이 부탁하면 야밤에 호위를 맡아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한할 것 같던 그들의 친절도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며칠 내내 연이어 터진 사건들.

       몇 가지 우스운 것과 몇 가지 심각한 것이 있었다.

       그것들이 매일 매일 소재를 조금씩 달리하며 반복됐다.

         

       우리에서 도망친 사자, 변기에서 불쑥 얼굴을 내미는 광대, 허공에 매달린 부서장, 찌그러진 철창, 저 혼자 돌아다니는 외발자전거, 밟으면 반드시 미끄러지는 바나나껍질 등.

         

       도시 곳곳에서 말썽이 끊이질 않았다.

         

       지금까지 대개의 문제는 경찰관들이 곤봉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고쳐주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며칠간 경찰관들이 깨달은 게 있었다.

       평소 그들이 다루는 비상식적인 행동들은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선원이나 무전취식범, 소매치기, 성난 주먹패 같은 것 말이다.

         

       그것들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경찰서 안에는 그러한 것들에 대한 상세한 지침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발생하고 있는 비상식적인 사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곤봉을 휘둘러야 사태가 진정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에서 도망친 호랑이, 솥에서 불쑥 엉덩이를 내미는 광대, 허공에 매달린 부서장, 찌그러진 마차 바퀴, 저 혼자 굴러다니는 공, 잡으면 뻥 터지는 사과 등.

         

       한 번 발생한 것만으로 한 달 내내 경찰서의 안줏거리가 될 수 있는 사건들이 매일매일 끝도 없이 터졌다.

         

       -너무 거칠게 밀지 마시죠!

       -루즈의 경찰들은 친절하다고 들었는데 영 아니구먼!

       -나 키예프 황실의 궁정 광대였던 사람이야!

         

       또 한 무리의 곡예사들이 수갑을 찬 채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기마경찰대의 부사관은 내년에 있을 선거에서, 서커스 그랑프리를 유치하는 결정을 내린 현 시장은 경찰관들의 표를 크게 잃었음을 확신했다.

         

       “거기 자꾸 수갑을 벗지 말라니까!”

       “헤헤, 수갑이 자꾸 벗겨지는 걸 어떡합니까?”

         

       유치장에 들어가던 중 실랑이가 발생했다.

       한 곡예사의 손에 채워진 수갑이 자꾸 흘러내리는 것이다.

       수갑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곡예사의 손이 마치 고무처럼 쭉 늘어나며 수갑 사이로 자꾸 빠져나갈 뿐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경찰관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불과 한 달 전이라면, 재밌는 광경이었다고 다들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다들 그런 여유를 잃어버렸다.

         

       “연체술사군.”

       “상당한 경지인걸.”

       “인스피라까지 터득한 거 같은데.”

       “뼈를 무르게 하는 능력인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곡예사들은 자기네들끼리 말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경찰관들이 보기에는 기가 찬 상황이었다.

         

       ‘이런 게 당연한 일상인 듯 말하지 말라고.’

         

       부사관은 그들을 향해 빽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는 구석의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노인을 향해 다가갔다.

         

       “신부님, 신부님의 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끙. 또 왔습니까?”

         

       백발의 신부가 눈을 껌뻑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원래도 머리가 하얗게 세고 쭈글쭈글한 노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며칠 새 흰 머리도, 주름도 더 늘어난 것 같았다.

         

       그는 사제복을 가지런히 정리하고는, 경찰관들에게 농을 던지고 있는 연체술사에게 다가갔다.

         

       “어어, 당신 뭐요?”

         

       신부는 대꾸도 하지 않고 그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마신의 냄새가 나.

       인스피라가 맞군.

         

       신부는 눈을 감고 기도문을 외기 시작했다.

       근처에 서 있던 신앙심이 깊은 경찰관 몇이 신부의 기도문을 따라 했다.

         

       수갑을 가지고 장난치던 남자는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간다는 걸 깨달았다.

         

       “어어, 영감님? 시, 신부님? 그거 하지 마쇼! 응? 내 수갑 단단히 찰 테니까!”

         

       남자가 서둘러 수갑에 다시 손을 밀어 넣었다.

       그러나 신부는 기도문을 외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 이보쇼!”

         

       성교회의 사제들이 가진 힘은 세상에 잘 알려져 있었다.

       다른 곡예사들은 바람 빠지는 풍선 소리 같은 것을 내며 뒤로 물러났다.

         

       기도문이 끝나자 신부의 앞에는 은빛의 십자가가 떠올랐다.

         

       거룩함이 느껴지는 십자가.

       그 기다란 끝부분이 뾰족했다.

       그 전체적인 형상은 말뚝과 같았다.

         

       “성정(聖釘, 신성한 말뚝, Sacred Stake)!”

         

       몇몇 곡예사들이 은빛 십자가를 바라보며 비명을 내질렀다.

       일부는 벌벌 떨며 십자가에서 멀어지려고 애썼다.

       그것을 코앞에 둔 연체술사도 이빨을 딱딱 마주쳤다.

         

       “안 돼! 신부님, 잘못했습니다! 부, 부디 그것만은!”

         

       남자가 사정하는데도 불구하고, 신부는 무심한 표정으로 손을 휘둘렀다.

       은빛 십자가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날아가 남자의 어깨에 박혔다.

         

       “으아악!”

         

       단단한 몽둥이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 어깨를 때렸다.

       피가 나거나 상처가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성정은 진짜 물리적인 힘을 지닌 말뚝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성정에 박힌 남자는 차라리 진짜 말뚝에 맞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수갑 사이로 흐느적거리던 그의 손이 딱딱하게 굳는 게 느껴졌다.

       물컹거리는 느낌이 사라졌다. 그의 손이 평범한 손으로 변한 것이다.

         

       “여, 연결이 끊겼어!”

         

       남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인스피라가……키르쿠스로부터 받은 그의 축복이……사라진 것이다!

         

       다른 곡예사들이 불안한 목소리로 웅성거렸다.

         

       “소문이 사실이었군.”

       “말뚝 박는 건 처음 봤어.”

       “정말로 인스피라를 잃어버린 건가?”

       “너무한 거 아냐?”

       “맞아. 뭔 큰 잘못을 했다고.”

         

       그들이 문제를 일으킨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며칠 갇혔다가 벌금 좀 내고 말 일이었다.

       그런데 성교회의 사제를 불러서 종교재판처럼 자신들의 신앙을 박탈하다니.

         

       경악, 공포, 모욕감.

       심상치 않은 적대감이 곡예사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분위기를 눈치챈 부사관이 재빨리 그들 앞에 나섰다.

         

       “인스피라가 사라진 게 아닙니다. 그저 며칠 정도 못 쓸 뿐이에요.”

         

       부사관의 말에 눈물을 흘리던 남자가 신부를 올려다봤다.

         

       “저,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대주교나 이단심문관 정도 되는 분들이 작정하면 아예 소멸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럴 능력이 못 됩니다. 지금은 잠시 차단한 것 정도라 보면 됩니다.”

       “오오!”

         

       남자가 펄쩍 제자리에서 공중제비를 한 바퀴 뛰어 보였다.

       어깨에 박힌 은빛 말뚝은 전혀 걸리적거리지 않는 듯했다.

       그것에는 물리적인 힘이 없었다.

         

       “키르쿠스의 영광이 있기를!”

         

       남자의 외침에 유치장 안팎의 곡예사들이 와 하고 함성을 내질렀다.

         

       늙은 신부는 마땅찮은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키르쿠스, 키르쿠스, 키르쿠스.

       요 며칠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였다.

         

       그런 잡신을 왜들 그러게 좋아한단 말인가?

       아무리 놈이 사람들에게 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역시 어비스에 기거하는 마신 중 하나에 불과한데.

         

       마신 따위 아무리 많은 사람에게 섬김을 받는다고 해도, 어비스의 힘을 배제하는 성교회의 힘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늙은 신부는 자신의 신앙에 다시 한번 믿음을 확고히 하며 지친 표정으로 자리에 가 누웠다.

         

       부사관은 그보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갑니까?”

       “장미 풍차 쪽으로 갑니다. 브왈레 씨가 조용히 처리할 일이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허허, 그렇습니까? 또 저 광대들 문제겠군요. 거기도 힘들겠습니다. 그랑프리니 뭐니 감당할 수 있으려나…….”

       “하하, 같이 노력해봐야죠.”

         

       부사관은 미리 모아두었던 자료들을 챙겨 나갔다.

       최근 몇 년간 실종되었던 10대 소녀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

         

         

       하나의 몸에 머리가 셋 달린 쌍둥이, 트라이머리.

       왼쪽부터 세어서 각각의 이름이 한스텐, 두네돌, 세브람이었다.

       셋은 서로에게 상하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단 호적상 각각 첫째, 둘째, 셋째가 됐다.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저희야 왼쪽부터 차례대로, 한, 둘, 셋이라 세기 편한데, 형들은 아니잖아요. 왜 오른쪽부터 한, 둘, 셋이라 하지 않은 거예요?”

         

       우몬은 가끔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10살짜리 아이가 가질 수 있는 순수한 호기심.

         

       셋째인 세브람이 따뜻한 미소로 그를 바라봤다.

         

       “보통 이름이라는 건 스스로 붙이고 태어나지 않거든. 우릴 보는 사람이 붙이지.”

       “아.”

         

       우몬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호텔 입구에서 손님들을 배웅한 부단장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세쌍둥이가 어딘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얼빠진 목소리로 각각 말했다.

         

       “다른 곳도 둘러 보고 오겠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곡예랑 방향이 다른 것 같습니다.”

       “동료랑 상담을 해봐야겠습니다.”

         

       단원들이 소리 내어 웃었다.

         

       지난 며칠간 그들이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다.

       다들 어디서 대사를 공동구매라도 한 듯, 하는 말이 비슷비슷했다.

         

       엘라도 멀리서 셋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짜증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동점이야. 1 대 1 대 1.”

         

       지난 며칠간, 원더스타인 서커스단은 새 단원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썼다.

       단장과 부단장이 거리를 쏘다니며 괜찮아 보이는 곡예사를 물색했다.

         

       호텔까지 데려오는 건 쉬웠다.

       그 베르그송 상회의 후원을 받는다는 이름값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불려온 곡예사들은 단원들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안색을 싹 바꾸었다.

       그리곤 위와 같은 변명들을 늘어놓더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단원들도 슬슬 짜증이 날 정도였다.

         

       꺼림칙한 시선.

       경멸 어린 눈빛.

       절로 나오는 한숨.

         

       그들을 대하는 곡예사들의 태도는 일관적이었다.

       어떻게 감히 이런 것들 사이에서 무대에 오를 수 있겠냐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그러게. 노골적으로 실망하지 않아서 혹시나 했는데…….”

       “단장이 세 사람을 도와줬다고 했잖아. 그것에 대한 예의겠지.”

         

       그렇게 시작된 푸념은 점점 자책과 자학의 단계로 넘어갔다.

         

       “나 이제 좀 두려워.”

       “대회에 나가면 얼마나 뒤에서 또 씹어댈지…….”

       “우리가 가능할까? 엘라 외에는 제대로 된 곡예사도 없는데.”

       “욕만 잔뜩 먹을 거야.”

         

       그런 단원들의 모습에 서서히 표정을 굳혀가는 엘라.

         

       그녀가 단원들을 다그치려는 때, 유라크네가 먼저 나섰다.

         

       “괜찮아요. 사람이 많다고 이기는 건 아니잖아요? 엘라가 말했잖아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만 100% 해낼 수 있다면, 우승도 꿈은 아니라고. 우리끼리 더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면 되죠. 실제로 우리 실력이 2주간 크게 상승했잖아요. 안 그래요?”

         

       유라크네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들의 실력은 예전과 비교도 안 되게 향상됐다.

         

       엘라의 장담대로 그들이 익히는 재주는 그들의 신체적 특징에 너무나 잘 맞았다.

       최소 몇 달은 걸린다는 기본 동작을 다들 어제 그제 해서 다 해치웠을 정도다.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좋아. 그깟 놈들 평생 길거리에서 공연이나 하라지.”

       “그래. 서커스 그랑프리에 나가서 우리 실력을 보여주자고.”

         

       의욕을 불태우는 단원들.

       유라크네는 엘라를 돌아보며 미소지었다.

         

       엘라는 겸연쩍은 웃음을 보이며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유라 언니가 없었으면 또 한소리 할 뻔했어요.”

       “후후, 그게 무서워서 내가 먼저 나선 거야.”

         

       유라가 장난으로 눈을 흘기자, 엘라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단장님은 어디 가셨어?”

       “또 광장에요. 다른 곡예사를 찾아본다나. 저는 이제 슬슬 포기했는데 말이죠.”

         

       엘라는 광장 쪽을 바라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쉽지는 않을 줄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애먹을 줄은 몰랐다.

         

       괴물서커스.

       그것에 대한 편견은 곡예사들 사이에서 뿌리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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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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