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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결계가 깨졌다고? 설마 빈센트가 탈출에 성공한 건가?”

        “아니, 저건 밖에서부터 깨진 거야.”

        “뭐? 그럼 위에서 내려온 누군가가 공역에 침입을…….”

        “어이, 저기 봐!”

        “세상에……!”

       

        플랫폼에 서 있던 마법사들은 망연자실한 기색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44층에서 부유 중인 거대한 지각판.

        그것을 감싸고 있던 안개가 걷힘과 동시에 보이기 시작한 결계 밖에는 거대한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말도 안 돼.”

        “누구야? 대체 정체가…….”

        “점성학파인 건 확실하군. 게다가 이렇게 압도적인 실력이라면…….”

        “젠장, 어쩐지 일진이 안 좋더라니.”

       

        한 개의 층 전체를 완전히 집어삼킨 압도적인 마력.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이 마치 먹잇감을 찾는 괴수의 눈처럼 번뜩였다.

        격이 다른 위계의 차이에 미처 공역을 떠나지 못한 마법사들이 벌벌 떠는 사이.

       

        시엔은 갑자기 조사실 안에 나타난 소녀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기울어진 천칭과 붉은 꽃무릇.

        점성학파의 칠현자이자 고결의 층에 머물고 있는 실낙원의 주인이 분명했다.

       

        “호, 혹시 현자 리브라 님 되시나요? 실례가 안 된다면 어째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걸음하시게 된 건지…….”

        “중층에 오려면 정보부에게 허락도 받아야 해?”

        “아뇨!! 전혀 문제 없지만 현재 공역에서는 급행에 테러를 사주한 용의자의 심문이 진행 중이어서…….”

        “난 살아있는 이의 사정을 들어줄 정도로 한가하지 않은데?”

        “죄, 죄송합니다!”

       

        황급히 허리를 숙이는 시엔에게 리브라는 히죽 웃으며 다가갔다.

        그리고 바짝 얼어있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농담이야, 마법제 재밌게 봤어.”

        “네?”

       

        폭포처럼 흐르는 검은 머리칼에 작은 맹수를 연상케 하는 연녹색 동공.

        균형잡힌 신체 전반에는 마력회로가 빼곡이 구축되어 있다.

        근래 보지 못했을 정도로 재능이 충만한데다 전지의 비석에서 갈라져 나온 빛 중 개를 붙잡고 있는 듯 한데.

        중간에 손이 찢어지지 않는다면 분명 마탑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인상이었다.

       

        “갤러리에서 도는 떡밥은 전부 확인하거든. 4강에서 해주학파에게 졌지?”

        “개, 갤러리요?”

        “졌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분해하는 거 같더니 이번엔 같은 상대에게 마법까지 줬네? 아직 입술도 못 맞춰 봤는데 마음 씀씀이가 너무 헤픈 거 아니야?”

        “어, 어어어……!?”

       

        자신의 기억을 속속들이 들춰내는 듯한 리브라의 행동에 시엔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분명 천칭으로 기억을 읽어낸 듯한데 그 수준이 마치 머릿속을 칼로 도려냈다 틈없이 다시 붙인 것처럼 정교하고 날카로웠다.

        점성학파의 신비는 언제나 등가 교환을 요구하기에 중층에 오른 마법사에게서 정보를 빼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텐데.

       

        눈앞의 마법사가 얼마나 높은 경지에 있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가? 별로 바치지도 않았는 걸. 네가 그 상대를 좋아하는 걸 누가 봐도 알 수 있다는 뜻이야. 혹시 밤에 침대에 누울 때마다 이상한 상상 같은 거 해?”

        “아아아아아!! 그런 적 없어요!!”

        “이렇게 쉬운 걸 보니 아마 같이 지내는 룸메이트는 짐작을 넘어 확신하고 있나 보네. 어쨌거나…… 이름을 꺼내보지 않는 건 작은 배려.”

       

        솔직히 주딱 외엔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리브라는 빙글 몸을 돌려 바닥에 넘어진 빈센트에게로 향했다.

        창밖을 바라보자마자 정신을 잃은 부하와는 다르게 그는 아직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치, 칠현자……! 아니, 리브라 님!”

        “너구나? 주딱을 사칭한 게.”

        “사, 사칭이라뇨! 접니다! 제가 갤러리의 주인이 맞습니다!”

       

        눈치빠른 마법사답게 그는 조금 전과는 전혀 반대되는 주장을 펼쳤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결계를 찢고 들어온 점성학파의 칠현자는 그가 주딱 행세를 하고 다녔다는 것에 극도의 불쾌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지금 당장의 목숨을 부지하는 게 앞으로 평생 정보부의 감시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중요했다.

        허나 리브라는 바닥에 떨어진 위치노트를 집어들어 내용을 확인하더니 그에게 물었다.

       

        “그래? 그럼 주딱이 최근에 들인 장난감의 이름이 뭐야?”

        “예……?”

        “거 봐, 모르잖아. 그거 아니? 지금 나는 천칭에 올리기 위한 너의 대가를 가져왔어.”

       

        리브라는 천칭의 한쪽 추에 올려놓은 꽃다발을 가리켰다.

        새하얀 비단에 쌓인 꽃들은 그가 가문을 위해 지금껏 공역에서 희생시킨 이들의 몫이었다.

        꽃봉오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적시자 천칭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빈센트가 다급히 소리쳤다.

       

        “혀, 현자님께서 이러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백가 내에서의 분쟁이었는데……!”

        “그러게 주딱이 소중히 여기는 갤러리를 더럽히지 말았어야지. 마음 같아서는 내 몫의 대가까지 올리려는 걸 참고 있는 거야.”

       

        땡그랑! 땡그랑……!

       

        새하얀 소매에서 금화가 떨어졌다.

        마탑에서 통용되는 돈과 크기와 발색이 다른 것으로 보아 안달루시아에서 통용되던 주화 같았다.

        의아해하던 시엔과 반대로 그것을 본 빈센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왕성 내 보물방의 소유권을 얻는 조건은 그곳에 도달한 이들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무(無)에 바치는 것.”

        “제, 젠장! 가까이 오지 마!!”

        “분명 금화 하나당 10년이었나? 이 정도면 네게 죽임을 당한 영혼의 무게와 같을 거야.”

       

        리브라는 피가 묻은 금화를 주워 하나씩 천칭에 담았다.

        반대쪽 추에 올라간 금화의 양이 늘어날수록 빈센트의 몸도 점점 굳어갔다.

        마침내 스무 개의 금화가 그녀의 손을 떠났을 때 천칭의 균형이 정확히 맞춰졌다.

       

        “이백 년 뒤에 보자, 원한이라는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호수의 깊이를 너무 얕게 생각했던 아이야.”

        “아, 안 돼…….”

       

        더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그의 발치에 시들어 버린 꽃다발을 내려놓으며, 리브라는 두 손을 모아 헌화와 명복을 빌어 주었다.

       

        “꺼져버린 횃불의 불씨가 아직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면, 어쩌면 너는 새로운 시대에서 눈을 뜰 지도 몰라.”

       

       

       

        *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던 열차에서 내린 지 보름 정도가 흘렀다.

        정보부에서는 빈센트가 열차 테러 사주에 대한 혐의를 인정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갤러리의 주인은 아니었으나 실제로 갤러리 내에서 그를 사칭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 역시 밝혀졌다.

       

        정작 대학원에서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의아해 했으나, 그 이상의 추가 발표는 없었다.

       

        허나 비슷한 시기, 그가 형을 면제받는 대가로 등반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히 돌았다.

        운드라 가문이 소유한 한 비밀 별장에 빈센트의 동상이 생겼다는 재보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기숙사 입구에 세워진 위인들과 달리, 멀쩡히 살아있거나 탑을 오르는 중인 이들을 마법사들은 굳이 기리지 않는다.

        그를 꼭 닮은 동상이 안뜰에 위치한 정원에 있는 사진이 유출되며 소문은 반쯤 기정사실화 되었다.

        꽃이 피는 계절이면 꿀벌들이 날아 다니는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

        프리나나

        [이번 사건은 결국 참다 못한 주딱이 나서서 해결한 거네]

       

        백가 내에서도 상당히 질 나쁜 가문이었고

        실제로 희생자들도 많았는데 지금까진 쉬쉬해 왔던 거 터뜨린 거지

       

        심지어 자기 사칭 계정으로 꿀벌 게시판에서 이상성욕 글이나 싸지르고 다니는데 정상인이면 어케 참음?

        가문 하나를 척질 걸 각오하고 대의를 위해 칼을 빼든 게 틀림없음

       

        — 우리 주딱 불쌍해서 어떡해 ㅠㅠㅠ

        — 마음이 너무 여려서 차단도 못 했나봐 퓨ㅠㅠㅜ

        — 그게 아니라 걍 평소 하던 분탕질 가면 벗고도 한 번 해본 거 아님?

         ㄴ ㄹㅇ 프로필도 바꾸고 꿀벌단들 내버려두는 거 보면 본인도 즐기는 모드던데

         ㄴ 너 씨발 공감 못해?

         ㄴ 우리 주딱이 이런 놈들 때문에 매번 마음 고생해

        ====

        ====

        [주딱아, 또 사람을 찔렀느냐]

       

        이젠 죄의식도 반성도 없구나

       

        — 그…… 원래 없었는데요

        — 아 이젠 갤질도 재미없어져서 현실에서까지 노는 거냐고 ㅋㅋㅋ

        — ??? : 제가 저격을 하긴 했는데 걔가 우연히 악질이었다니까요?

        —  드디어 갤주 잡혔다며 신나서 지껄이던 놈들 바로 컷!

         ㄴ 주딱이 진다는 건……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어

        ====

        ====

        [한줌 남은 꿀벌단들 꿀벌의 왕 빈센트 님 그리우면 개추]

       

        다시 여왕벌 생길 때까지 변방 게시판에서 벌벌 떨고 있어야 하면 개추

       

        [추천 489 / 비추천 731]

       

        — 우이이잉…….

        — 부이이이잉…….

        — 꼴 보기 싫었는데 속 시원하네

        — 범죄자는 우리들 왕이 아닌 거에요

        — 주딱이 바톤 이어받아 주는 거 내심 기대하는 중

         ㄴ 아직까지 꿀벌 프로필 안 바꾼 거 보면 솔직히 합리적 의심 들거든요

        — 응 또 튀어나와 봐~ 바로 말벌단 만들어서 숙청 들어갈거야~

         ㄴ ㄹㅇ 다음 포인트 상점 열리면 바로 말벌 게시판부터 만든다

         ㄴ 너무해요이이이잉…….

         ㄴ 무서워요이이이잉…….

        ====

       

        “오랜만이군 클락.”

        “오, 전보다 조금 넓어졌네요?”

        “계단을 때려 부수면서 공간을 확장 중이지. 자넨 어떤가? 간섭기 연습은 잘 되어가나?”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요.”

       

        11층 계단 사이에 끼어 있던 해주학파 라운지는 근처에 있던 창고 벽을 허무는 확장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과연 허가받고 벌이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덕분에 발 뻗고 앉을 공간 정도는 생겼다.

       

        공사를 감독하기 위해 내려왔다는 루퍼트는 내가 조력자를 구했다는 말을 듣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떨어지는 돌가루가 슈가파우더처럼 뿌려진 찻잔을 들며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다른 마법과 다르게 해주는 언제나 대상이 필요하지. 자네가 선택한 이들과 깊은 관계를 맺을수록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걸세.”

        “프리나 선배는 어떤가요?”

        “크흠, 그녀는…… 세상에는 인간관계를 맺는 것보다 그걸 끊는 쪽에 더 재능있는 인간도 있는 법이지.”

       

        친구가 없는 그녀는 결국 저주로 길을 틀어 등반을 선택했다는 뜻이었다.

        뭐, 어느쪽이든 선배인 건 변함없으니 기회가 되면 수련의 층에서 도움이라도 구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후로 적당히 이야기를 나눈 내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계단 밑에서 쿵쾅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어이, 여기에 짐 놓지 말라고 했지……! 응? 너는?”

        “누구시죠?”

        “열차에서 봤잖아! 그때 분명…… 잠깐, 너 해주학파였어? 젠장……!”

        “둘이 아는 사이인가?”

       

        열차 테러범으로 대학원에 수감되었던 토비였다.

        보아하니 해주학파에서 데려와 공사를 시키고 있는 듯했다.

        저쪽은 한눈에 나를 알아본 반면, 나는 그를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어째서인가 했더니 위치노트를 들고 있지 않아서였다.

       

        “노트는 잃어버리셨나요?”

        “등반도 못 하는데 그딴 게 왜 필요해? 게다가 갤러리라면 이제 지긋지긋해!”

        “흠…… 어쨌거나 지금은 해주학파 소속 노, 아니 대학원생이라는 뜻이군요.”

        “그게 뭐 어때서?”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건네었다.

        갑자기 날붙이가 들이밀어지자 놀란 그였지만 내가 입을 열자 다시 원래의 불퉁한 태도로 돌아왔다.

       

        “작은 심부름입니다. 가끔 제 검을 맡길 테니 관리를 해주세요.”

        “난 대장장이가 아닌데?”

        “싫으면 아래로 내려가시면 되겠네요.”

        “젠장 이래서 저주술사 놈들은…….”

       

        토비는 투덜거리면서도 얌전히 검을 받아들었다.

        고급스러운 장검은 그의 손에 들리자마자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야, 이거 방금 움직인 거 같은데?”

        “기분탓입니다. 혹시 누굴 찌를 것 같으면 제게 연락하세요.”

        “기분 탓이라며!? 에고 소드인가 뭔가 맞지?”

        “살살 다루면 괜찮습니다. 아, 그리고 이름은 살살이입니다.”

       

        프란츠 가문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으나 그래도 남매는 목숨을 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닿을 때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두 사람이 다시 헤어질 일은 없을 터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Dimos582님 후원 감사합니다.
    후원 메시지가 바뀌어서 구체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진 건 아쉽지만, 응원해주시는 마음만큼은 여전히 잘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다음 챕터도 독자분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내용으로 구성해 보겠습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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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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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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