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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하, 하하.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그래?”

       

       “네에. 저는 그곳에 들어간 적이 없어서.”

       

       

       일단 주인공에게 대충 둘러댔다.

       

       미심쩍은 듯한 눈빛이다.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걸까?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갑자기 사라진 나. 그리고 몰살당한 자리에 피로 그려진 거미.

       

       내 능력은 실을 조종하는 능력이니까, 의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그때.

       

       그 은신처를 벗어났을 때, 작가님이 이상한 행동을 했던 적이 있더랬지.

       

       혹시나 주인공의 활약을 중간부터 보게 된다면 또 울까 봐 빨리 가려고 적당히 넘겼었는데.

       

       ···설마 그사이에 그런 짓을 벌였을 줄이야.

       

       뭐? 아라크네 왔다 감?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지···?

       

       머리를 최대한 굴리고 있던 찰나, 주인공이 말을 걸어왔다.

       

       

       “그래? 뭐,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케이크 좋아해?”

       

       “네? ···네, 뭐. 좋아하긴 하는데.”

       

       “그럼 케이크나 먹을까. 목숨값이라기에는 조금 싸지만, 아직 학생이라서. 일단 이걸로 봐줘.”

       

       “네, 네···?”

       

       

       어라?

       

       ···왜 추궁하질 않지? 이상하다.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보통 연관성이 있다고 여기고 더 질문을 하지 않나?

       

       잔뜩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주문한 케이크가 도착했다.

       

       새하얀 생크림과 초콜릿이 듬뿍 올라가 있는 화려한 조각 케이크.

       

       으, 으음. 맛있어 보이긴 한데. 먹어도 되나?

       

       

       “자, 먹자. 좋아한다며?”

       

       “어, 네···. 잘 먹겠습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유시우는 주인공이면서 이런 일은 사소한 일이라며 신경 쓰지 않는 걸까?

       

       뭐, 좋은 게 좋은 건가.

       

       생각보다 주인공이 날카롭지 못한 건 감점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좋았다.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으니까.

       

       ···음, 이거 맛있네.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자 입안에 단맛이 퍼져나갔다.

       

       으음, 여기 맛집이네. 여기도 기억해놔야겠다.

       

       여기에 빙의되고 가장 마음에 드는 게 바로 이런 거지. 남들 눈치 안 보고 디저트 마음껏 먹기.

       

       남자였을 때는 너무 눈치 보였단 말이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살도 안 찌더라. 마음껏 먹어도 문제가 없어서 마음이 편했다.

       

       

       “아, 저 조금만 더 시켜도 될까요?”

       

       “으, 응···? 그, 그래. 마음껏 시켜.”

       

       

       그리고 그날, 유시우의 지갑은 너덜너덜해졌다.

       

       조각 케이크와 달콤한 음료수를 잔뜩 시켰기 때문이었다.

       

       지갑을 열며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조금 불쌍했지만, 목숨값 이야기를 꺼낸 걸 보니 그때의 보답이었던 게 분명하니까.

       

       조금 많이 먹어도 괜찮잖아. 목숨값치고는 싸지 않을까?

       

       

       

       

       

       

       

       

       그리고 그날 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나는 작가님에게 잔소리를 쏟아냈다.

       

       

       “도대체 왜 그런 걸 말도 없이 한 거에요?”

       

       [그, 그게.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시간?! 시간?! 지금 장난해요?”

       

       [하지만···! 머, 멋있잖아요! 일단 떡밥 뿌려두면 나중에 설정 추가해서 회수하면 된다고요! 암약하고 있는 누군가···! 멋있잖아요!]

       

       “그러면 나중에 말이라도 해주시던가! 유시우가 이걸로 이상한 오해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벌인 거에요?!”

       

       [그, 그건···! 혼날 것 같아서···. 히잉···.]

       

       

       아악, 머리야.

       

       애도 아니고, 혼날 게 무서워서 그런 걸 숨겨?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안 재울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히, 히익. 살살 부탁드립니다···.]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아.

       

       역시 작가님은 내가 없으면 안 돼.

       

       

       

       ***

       

       

       

       “···그래? 성공적이었네!”

       

       “서, 성공적···?”

       

       

       시우는 아멜리아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성공적이었다고? 그게? 왜?

       

       

       “너랑 대화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고. 이게 데이트가 아니면 뭐야?”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

       

       “모르겠으면 그냥 시키는 대로 해!”

       

       

       이게 맞는 걸까.

       

       아니, 애초에 성공적이었다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내 지갑을 성공적으로 털어갔다는 뜻인가?

       

       대화 좀 나누면서 디저트 먹은 게 데이트라고?

       

       진짜로?

       

       

       “원래 다 그러면서 친해지는 거야. 자연스럽게. 서로의 애정을 키워가는 거지. ···뭐, 아르테는 원래 애정이 넘치는 것 같긴 하지만.”

       

       

       아멜리아는 지속적으로 내게 말해왔다.

       

       아르테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고.

       

       처음에는 아멜리아의 말에 홀린 듯이 속아 넘어갔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티는 전혀 나지 않았는데.

       

       아멜리아가 착각한 게 아닐까?

       

       그런 이야기를 꺼내자, 아멜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동정은 또 무슨 말을 하는 거랑. ···그런 이야기를 하는듯한 눈빛이었다.

       

       

       “있잖아. 아르테가 네게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 이건 저번에도 얘기했지?”

       

       “···응.”

       

       

       또다시 묵직하게 진실이 날아들었다.

       

       별 볼일 없다···고 보기에는 최근 사건에 많이 휘말리기는 했지만, 아르테가 나에게 관심을 가질 무렵에는 그런 것도 없었다.

       

       그저 성적이 조금 좋은 학생일 뿐이었지.

       

       사건에 휘말리기 시작한 건 아르테가 내게 관심을 가진 이후였다.

       

       

       “그런 너를 굳이 위버멘쉬의 습격으로부터 살려주고, 위로해주고. ···딱히 사랑 말고는 생각할 방법이 없다니까?”

       

       “하, 하지만···. 만약 진짜 아니라면?”

       

       “아니면 뭐 어때. 그러면 다른 방법 찾으면 되는 거지. 이미 그것 말고도 계획은 있잖아?”

       

       

       이것저것 반박하고 싶은 말이 정말로 많았다.

       

       하지만 그 당당한 목소리와 언변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젠장.

       

       

       “아, 그리고 그 일에 대해 넘어간 것도 좋았어.”

       

       “···역시 그렇지?”

       

       “응. 깊게 파고들었다가는 위험할 수 있으니까.”

       

       

       아르테의 그 모습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아라크네 라는건 아르테를 뜻하는 거라고.

       

       ‘저는 그곳에 들어간 적이 없어서’? 거짓말이다. 당황해서 내뱉은 말이겠지.

       

       애초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는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해야 정상인데, 들어간 적이 없다니. 이미 그 단어 선정 자체로 자신이 그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다는 걸 드러내고 있었다.

       

       당황해서 그녀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그런데 조금 이상하네. 그렇게 당황할 거면 왜 그런 걸 새겨놓은 거지?”

       

       “···글쎄. 어쩌면, 본인이 그린 게 아니라던가?”

       

       “···그 ‘작가님’의 소행일 수도 있다, 이거야?”

       

       “추측이지만.”

       

       “하아. 결국 알 수 있는 건 아직도 없구나. ···슬슬 계획 하나로는 힘들겠네. 우리도 슬슬 움직여야지.”

       

       

       그녀가 자랑스레 환자복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무언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물건. ···저게 뭐지?

       

       

       “아빠한테 졸라서 받은 거야. 어디다 쓸 건지 묻는 거 얼버무리기 진짜 힘들었다고.”

       

       “그래서, 이게 뭔데?”

       

       “마력 탐지기. 그 선배에게 받은 거랑은 품질 자체가 다르다고. 무려 아빠가 직접 쓰던 거니까.”

       

       “···!”

       

       

       마력 탐지기라면 그거다.

       

       카멜레온 수인을 찾기 위해 사용했던 그 물건.

       

       하자가 많아서 범인 찾기로밖에 사용하지 못했지만, 이게 있다면···!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시도는 해볼 수 있겠지.”

       

       “비밀의 방.”

       

       “그래. 뭐,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러니까 우리는 두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거야.”

       

       

       그녀가 두 개의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아르테 꼬시기, 아르테보다 먼저 비밀의 방 찾기. 결국 최종 목표는 아르테를 막는 거니까. 둘 중 하나만 성공해도 충분해.”

       

       “···그래.”

       

       

       아르테가 모든 사건의 배후라는 우리의 생각.

       

       이게 허무맹랑한 헛소리일지, 아니면 충격적인 진실일지.

       

       그건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겠지.

       

       

       

       ***

       

       

       

       “결과는?”

       

       “일치하는 조건의 빌런은 없습니다. 혈액에서도 딱히 검출되는 건 없었고요.”

       

       “하아···.”

       

       

       인기척이 없는 산장 속.

       

       여러 장정이 부산스레 움직이고 있는 장소에서, 푸른 장발의 미녀가 보고를 받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 골치 아픈데. 위버멘쉬의 배신자인가?”

       

       “그럴 가능성도 있고, 다른 범죄조직의 소행일 가능성도 있죠. 아직 확정된 건 없으니까요.”

       

       

       한숨을 내쉬며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녀가 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녀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부하 직원이 쓰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자신의 범죄를 과시하는 타입의 범죄자 중에서 이런 게 가능한 빌런은 데이터에 없습니다. 아마 새로운 녀석이 아닐까요.”

       

       “이렇게 강한 녀석이 왜 빌런 짓 같은 걸 하는 거야? 마수만 잡아도 평생 칭송받으며 먹고살 것 같은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빌런들의 사고방식은 이해하기 어렵죠.”

       

       

       아직도 피 냄새가 풍기는 것 같은 빌런의 소굴이 떠올라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괜히 떠올렸네. 기분만 잡치게.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는, 자신의 범행을 과시하는 빌런이라···.”

       

       “심지어 200여 명에 가까운 빌런들을 손쉽게 처리했죠.”

       

       “증거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실들이 한가득. 그 외에는 없습니다. 아마 극도로 강화된 실이 사람들을 썰어버린 것 같습니다.”

       

       “너 말 그렇게 할래?”

       

       “아, 죄송합니다. 무심코.”

       

       

       찝찝한 걸 잊으려고 했는데 생생해졌잖아.

       

       그때의 그 장면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같이 갔던 부하 직원 중 비위가 약한 녀석들은 토하고, 정신력이 약한 놈들은 아직도 얼굴이 퀭하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나라고 다른 건 없었다. 한동안 얼이 빠져있었지.

       

       지금껏 수많은 범죄를 보아왔지만, 그 정도로 잔혹한 건 처음이었으니까.

       

       

       “실이라서 거미인가. 하.”

       

       “장난스러운 글씨체로 보아하니 사람을 죽이는 데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던데요.”

       

       “그거야 너도 봤으니까 알잖아. 그런 짓을 벌인 놈이 죄책감이 있을 것 같아?”

       

       “···.”

       

       

       부하도 자신이 봤던 풍경을 무심코 떠올렸는지 표정이 급속도로 썩어들어갔다.

       

       꼴 좋다. 나한테 그런 걸 생각나게 하더니.

       

       

       “상부에 보고해. 새로운 빌런 등록하라고.”

       

       “알겠습니다. 세부 사항은요?”

       

       “빌런 명, 아라크네. 추정 실을 사용하는 능력. 세부 사항 불명. 아마도 여성.”

       

       “···여성이요?”

       

       “아라크네는 여자잖아. 신화 모르냐?”

       

       

       자기를 과시하는 빌런은 이런 사소한 곳에서부터 증거를 남기는 법이다.

       

       아무것도 적어두지 않는다면 수사가 진행되지 않을 게 뻔하지만, 과시하고 싶어서 실수하는 놈들이지.

       

       그런 놈들은 그 녀석들이 남긴 증거를 집중적으로 봐야 한다.

       

       

       “위험도는···A급이면 되겠지. 아, 그리고 협회에 아카데미 경비 병력 좀 늘리라고 해.”

       

       “아카데미요?”

       

       “거기 요즘 사건 많이 터지잖아. 뭔가 불안하다고.”

       

       

       아마 이 사건을 신고한 사람들도 아카데미 학생들이었던가.

       

       오랫동안 빌런 사건을 전담으로 맡아왔던 그녀의 감이 외치고 있었다.

       

       아카데미에, 뭔가 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딱히 할말이 없네요

    Ilham Senjaya 님, 요즘 많이 더우니 더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

    JJH27 님, 3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확인하는 게 너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저도 순애 좋아해요!

    소설너무재밌당 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표지, 엄청 예쁘죠! 저도 가끔 눌러보고 레오타드 쭈쭈를 감상하고는 합니다.

    포도C유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합성섬유로 만들어지는 인조가죽은 사용할 수 있겠지만 천연가죽은 불가능하겠네요. 라텍스도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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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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