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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

       

       “시간이 없어요.”

       

       “얼마나 남았는가?”

       

       “이미 아이들이 약해졌고, 곧…”

       

       “아이들이라고 했는가?”

       

       클로셀 영감의 눈길이 나의 얼굴을 훑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엘프들에게서 친근감이 느껴졌다.

       

       작고 소중한 느낌이었다.

       

       로메넬이 떠오를 때는 안타까움이 가장 강했다.

       

       아이린의 얼굴에서는 나에 대한 고마움이 느껴졌다.

       

       “벌써 많은 아이들이 죽었어요.”

       

       산봉우리의 정상.

       

       내가 보고 겪은 것이 아니었지만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저곳에서 무슨 참상이 벌어졌는지를 말이다.

       

       엘프 하나를 망가트리기 위한 지독할 정도로 잔인한 방법이었다.

       

       사박 –

       

       발을 내딛는다고 하기에는 이질적인 소리였다.

       

       풀과 풀이 스치며 나는 소리.

       

       사박 –

       

       그사이로 영감들의 발 소리가 어우러졌다.

       

       “누군가 닦아 놓은 길 같군.”

       

       반쯤은 맞는 말이다.

       

       나무와 풀들, 그리고 땅이 만들어 놓은 길이었다.

       

       가장 빠르게 그곳으로 도착할 수 있도록.

       

       끄덕.

       

       “저번에 자네가 걸었던 숲의 길과 같은 것인가?”

       

       끄덕.

       

       “호오…”

       

       끄덕.

       

       “이번엔 질문하지 않았…그렇군.”

       

       클로셀 영감이 무언가를 이해했다는 듯 주변을 살폈다.

       

       나의 끄덕임은 영감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주위에 엘프의 영혼이 가득했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영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부름에 대한 답이었다.

       

       끄덕.

       

       흐릿해져가는 모습일지 언정 그들은 나에 대한 인사를 멈추지 않았다.

       

       길을 따라 걸어가던 나는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온몸에 화상이 가득한 영혼.

       

       목에는 흉측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떠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뱉어냈다.

       

       “고생이 많았구나.”

       

       절절한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분노와 안타까움.

       

       연민과 증오.

       

       그사이에서 놀랍도록 균형을 지키고 있는 영혼이었다.

       

       조화를 깨지 않은 모습.

       

       “기특하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흐음…”

       

       영혼들과 인사를 나눌때 부터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나와 영감들을 둘러 싸고 있는 마나의 흐름.

       

       어떤 용도로 사용한 마법인지는 알겠으나 굉장히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

       

       대충 흐름을 보니 없앨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딸랑 –

       

       “허…”

       

       “필요 없어요.”

       

       방울을 한번 휘두르니 마나의 흐름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비틀어진 흐름보다는 이편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다.

       

       “알고 있겠지만… 이 앞에는 네크로맨서들이 있다네. 마법이 해제 되었으니 우리를 느꼈을 것이야.”

       

       “상관없어요. 이게 더 자연스러우니까.”

       

       그냥 뱉어낸 말이었는데 클로셀 영감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무언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자연’이라. 또 엘프 같은 말을 하는군.”

       

       끄덕.

       

       점점 더 불쾌한 기운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강신을 하기 전에는 더럽게 느껴졌다면, 이제는 불쾌하게 느껴졌다.

       

       “빨리 가는 것이 어떻겠나?”

       

       “그건 안 돼요.”

       

       “그렇군.”

       

       영감들은 내 말에 다른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늘 있는 일인 듯 무언가 이유가 있겠거니 하는 표정이었다.

       

       “조금만 더 천천히.”

       

       “알겠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계속 들리고 있었다.

       

       간질거리는 감각이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 나와 연결된 세계수라는 신이 무언가를 가르치는 중인 것 같았다.

       

       끄덕.

       

       상처 입은 엘프의 영혼을 마주할수록 그 장면이 뚜렷해져갔다.

       

       그들이 겪었던 저주 의식이 온몸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런 식으로 한 거구나.”

       

       정체를 알고 나니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 방법도 원리도 너무나 저급한 방식이었다.

       

       원초적이다 못해 원시적이다.

       

       제대로 된 체계도 없이 흉내나 내는 수준.

       

       “허…”

       

        영혼들을 위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한을 풀어 주는 법을 알게 된다.

       

       그것을 악용한 것이 저주인데, 이 방법은 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놈이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그러니 모이지 못한 한들이 나에게로 전해지는 것이겠지···.

       

       끄덕.

       

       또 하나의 영혼이 스쳐 지나가며 장면을 전달했다.

       

       그에 맞춰 영기들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만들어 냈다.

       

       파라몬 영감이 한 곳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네크로맨서들이 오고 있는 것 같네.”

       

       “팬텀 스티드인가 보군. 3써클이나 겨우 만든 쭉정이들이니 신경 쓰지 마시게나.”

       

       하늘에서 네크로맨서 세 명이 내려왔다.

       

       말의 영혼을 타고 있었다.

       

       “엘프가 아니라 인간이군.”

       

       “노인 둘과 청년 하나라…”

       

       그들을 보자마자 영기가 제멋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가르침이었다.

       

       앞으로 나서려는 두 영감을 막으며 내가 걸어 나갔다.

       

       “자네에게는 위험한 존재들이네.”

       

       우려하는 기색이 잔뜩인 파라몬 영감과는 다르게 클로셀 영감은 조용히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라몬, 기다리게. 어쩌면…”

       

       “음?”

       

       어떻게 영혼을 타고 있는 것일까?

       

       말의 영혼이 분명해 보이는데···.

       

       “이제 하다 하다 동물 영혼을 가지고…”

       

       레이스와 같은 상태인 것 같았다.

       

       강제로 묶여 울부짖는 말들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선명했다.

       

       딸랑 –

       

       방울 소리가 울리며 내 정신이 선명해졌다.

       

       실습시간이다.

       

       “거기 썩을 놈 세 마리.”

       

       “음?”

       

       “허?”

       

       “좋은 말로 할 때 그거 가져와.”

       

       사박 –

       

       사박 –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가는 내 몸.

       

       그들이 같잖다는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커즈 피어.”

       

       “….”

       

       “공포에 휩싸여 죽거라.”

       

       내가 쓰러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듯 그들의 얼굴은 일말의 걱정도 담고 있지 않았다.

       

       사박 –

       

       탁한 마나가 내 몸을 감쌌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마법인 것 같았다.

       

       진짜 공포가 아닌 착각으로 불러일으키는 방식.

       

       악귀들이 쓰는 방법보다 한참이나 저급한 방법이었다.

       

       내 발걸음을 멈춰 세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박 –

       

       “어떻게…? 팔시! 다크니스!”

       

       몇 개의 마법이 나를 향해 날아왔지만 똑같이 효과는 없었다.

       

       간질거리던 영기를 같은 방향으로 인도하니 저들의 마법이 너무나도 쉽게 사라졌다.

       

       “…이익! 다크 애로우!”

       

       탁한 검정색의 화살이 허공에 생겨났다.

       

       휘익 –

       

       투둑.

       

       툭.

       

       다크애로우가 내 몸을 두드리며 느껴지는 둔탁한 느낌.

       

       “우리 집 대가리도 이거보단 잘하겠네.”

       

       신이 들렸을 때는 작두조차 내 몸에 상처를 입힐 수가 없다.

       

       하물며 잡스러운 기운을 뭉친 이런 것들이 나에게 영향을 줄 리 만무하다.

       

       순수한 마나라면 모를까 이건 숫제 잡귀들이 장난을 치는 모양새였다.

       

       “네놈, 어떻게 한 것이냐?”

       

       내가 알던 저주랑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지금까지 역살을 날렸던 저주와도 달랐다.

       

       이건 저주라기보다는 마나를 사용해 현상을 일으키는 느낌.

       

       그 마나마저도 탁한 사기들을 모아 만든 마나였다.

       

       저주를 닮았으나 저주가 아니었다.

       

       “커스 피어! 커스 피어!”

       

       녀석이 믿기지 않는지 연신 저주 마법을 나에게 퍼부었다.

       

       “하…너희가 타고 있는 말. 전부 위로해 줘야 하니까 내려오지?”

       

       더러운 기운들이 몸 주위를 돌아다니니 굉장히 정신이 사나웠다.

       

       딸랑 –

       

       방울이 흔들리며 기운들이 조화를 찾아갔다.

       

       “내 말 안 들려? 내려 오라니까?”

       

       네크로맨서들의 눈이 찢어질 듯 벌어져 있었다.

       

       “디스펠 마법도 쓰지 않고 어떻게…?”

       

       “모두 언데드를 소환하라.”

       

       네크로맨서들이 일제히 주머니를 풀어 바닥에 무언가를 쏟아 냈다.

       

       촤르륵 –

       

       투두둑 –

       

       “얼씨구?”

       

       사람의 뼈였다.

       

       미련이 붙어 있지 않은걸로 봐서는 한참전에 성불한 사람들의 뼈를 모아 놓은 것 같았다.

       

       “너희 무덤도 파고 다니냐? 그러면 살기가 힘들 텐데…”

       

       장담컨대 남의 무덤 파헤치고 잘 사는 사람 못 봤다.

       

       이놈들은 이미 사람처럼 살기는 힘들겠지만.

       

       “서먼 스켈레톤!”

       

       따다닥 –

       

       해골들이 서로 맞물리며 일어났다.

       

       수십기나 되는 스켈레톤들이었다.

       

       죽음의 기운이 물씬 풍겨 왔다.

       

       “이건 또 이런 원리였어? 영혼이 남아나지가 않겠네.”

       

       네크로맨서의 영혼과 스켈레톤들이 서로 연결 되어 있었다.

       

       마치 종속되어 있는 모양새였다.

       

       아주 미약한 연결이었지만 이런 것과 이어지면 영혼 자체가 더럽혀진다.

       

       딱딱 –

       

       스켈레톤들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아마 평범한 사람들이 이 광경을 봤다면 까무러쳤을 것이다.

       

       해골이 걸어오는 풍경은 그다지 유쾌한 것이 아니니까.

       

       “이 분들도 싹 달래드려야 하니까 얌전히 내려놔.”

       

       딸랑 –

       

       영기가 조용히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이 방법이 아닌 것 같다.

       

       간질거리는 느낌이 강해졌다.

       

       딸랑 –

       

       이게 바로 나에게 가르치려던 방법일까.

       

       조화로움 그 자체였다.

       

       영기가 지나간 자리에 균형이 찾아오며 스켈레톤들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우뚝.

       

       “비록 몸밖에 남지 않았으나… 곧 달래드릴 테니 잠깐 기다리세요.”

       

       제법 많은 양의 영기가 빠져나갔다.

       

       그동안 영기가 쌓이지 않았더라면 또 탈진했을지도 모른다.

       

       “이익!!”

       

       스켈레톤 주위의 마나가 강해지며 움직임이 생겨났다.

       

       그극 –

       

       우드득 –

       

       “흐음…”

       

       딸랑 –

       

       이건 또 무슨 조화일까.

       

       머릿속에 방울 소리가 가득했다.

       

       우리 집 대가리를 후드려 패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아…그러네. 이래서 방울로 영혼을 때릴 수가 있었구나.”

       

       아마 신령님이 이렇게도 쓰라고 방울을 주신 모양이다.

       

       나는 방울을 움직여 스켈레톤의 머리를 후려쳤다.

       

       빠악 –

       

       딸랑 –

       

       “커헉…!”

       

       충격을 받은 쪽은 네크로맨서였다.

       

       신기하게도 스켈레톤에게는 맞은 흔적조차 없었다.

       

       육신이 아닌 영혼을 때렸기 때문이리라.

       

       빠악 –

       

       딸랑 –

       

       “이 영혼의 주인이…너구나?”

       

       빠악-

       

       단 세 번.

       

       그것으로 충분했다.

       

       네크로맨서들이 바닥에 뻗어 꿈틀거리는데 까지는.

       

       “허…”

       

       “허허…”

       

       영감들의 허탈한 웃음이 들렸다.

       

       “천적이로군.”

       

       후두둑 –

       

       주인을 잃은 스켈레톤들이 무너져 내렸다.

       

       “이제 빨리 가시죠. 배울 거 다 배웠으니.”

       

       “이 앞에는 언데드가 더 많을 것이네. 방금 보니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싹 다 위로해 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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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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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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