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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0

       앞서 한 가지를 얘기하자면.

         

       백우진은 무척이나 피곤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혈교의 본거지에 몸을 숨긴 순간부터 단 한 순간도 마음 편히 잠들었던 적이 없었거니와 심지어 때때로 시체 더미에 몸을 숨긴 채 쪽잠을 자야 했기에.

         

       그뿐인가?

         

       현경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화경에 올라서며 한계를 초월한 육신을 산산이 깨부술 정도로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두르지 않았나.

         

       제아무리 초월적인 육신과 정신을 지녔다고 해도, 피로를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제아무리 초월하고 초월한다 해도 백우진은 여전히 이 땅 위에 메인 인간이기에.

         

       그런데도 백우진은 제갈연지와 뜨거운 밤을 보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뒤로는 숫자를 세는 게 의미 없어질 정도로 많이.

         

       동이 틀 때까지.

         

       그만큼 어젯밤 제갈연지는 대단했다.

         

       사내의 마음을 사르르 녹이는 목소리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애간장을 태우기 위한 몸짓까지.

         

       그 결과.

         

       “…죽겠다, 진짜.”

         

       백우진은 하룻밤 사이에 걸어 다니는 송장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몸 상태가 별로였던 제갈연지는 최고의 상태로 발돋움했다.

         

       생기 도는 피부와 표정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녀를 보며 백우진은 생각했다.

         

       “나 몰래 흡성대법이라도 익힌 건 아니겠지…?”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기운이 쪽쪽 빨렸다.

         

       제갈연지가 떠나간 침상 위에서 조금 더 쉰 뒤, 그는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객잔으로 나아가는 도중.

         

       함께 탕에 들어갔다 나온 듯, 뽀송뽀송한 피부를 한 당선영과 도경, 그리고 설수연을 만났다.

         

       길에서 백우진을 마주한 세 사람은 그를 힐끔거리며 바삐 속삭였다.

         

       “저게 사람이야, 종마야?”

       “백 가가나, 연지 언니나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언니. 피곤하다던 사람들이 어떻게 밤새 그짓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저, 저기이…, 제 차례는 혹시….”

         

       궁금했다.

         

       저들은 과연 자신이 들을 걸 알면서도 대놓고 속삭이는 걸까, 아니면 정말 자기들끼리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겠다.

         

       ‘모르는 척 그냥 지나가자.’

         

       그들의 마음이야 어찌 됐든, 일단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자고.

         

       “어머머, 저 뻔뻔한 것 좀 봐.”

       “들었으면서 저렇게 당당하게 지나쳐 갈 줄은….”

       “역시 영웅님…, 뻔뻔함도 영웅급인가 봐요.”

       “…….”

         

       끼니를 때우기보다 쥐구멍을 찾아 숨고 싶어졌다.

         

         

       * * *

         

         

       “흐엑취-!”

       “켈록켈록!”

         

       꼭 들어 달라는 듯이 콜록거리는 장삼과 구왕수를 지나 도착한 객잔.

         

       허해진 속을 채우기 위해 속이 꽉 찬 만두와 국물이 진한 소면에 술까지 한 잔 곁들여 배를 채워가고 있을 즈음.

         

       “…….”

         

       웬 귀신이 눈앞을 지나쳤다.

         

       귀신치곤 땅이 발에 붙어 있고, 키가 무척 작기는 했지만.

         

       “…….”

         

       심지어 둘이다.

         

       키가 작고 가슴이 큰 귀신 뒤로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귀신이 지나갔다.

         

       아니, 지나간 게 아니라 어느 한 곳에 멈춰서서 이쪽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다.

         

       백우진은 두 귀신…, 신예화와 유화연에게 눈을 부라렸다.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그러자 유화연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이내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리곤 힘없이 떠나간다.

         

       이제 남은 것은 신예화뿐.

         

       그녀는 도망 대신 당당히 묻는 것을 택했다.

         

       “조, 좋았냐?!”

         

       얼핏 화나 보이는 말투 속에 담겨 있는 것은 호기심이었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정사.

         

       그것이 과연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해 참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

         

       백우진은 소면의 국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음에 답해주었다.

         

       “좋았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으, 으으이으…!”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끙끙거리던 신예화는 이내 성난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분하고, 자기도 하고 싶은데 차마 아직은 그 말을 꺼내선 안 된다는 걸 아는 모양.

         

       “난감하네, 정말.”

         

       백우진으로서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저 둘을 도대체 어쩌면 좋을지.

         

       솔직히 이는 자신의 독단으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영술서를 빨리 찾아야 할 텐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영술서를 찾아 죽은 ‘백우진’의 영혼을 불러내어 그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뿐.

         

       그리하면 그들도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터다.

         

       어떤 쪽으로든 변화를 보일 수밖에 없을 터.

         

       자신의 선택은 그러한 변화를 눈으로 확인한 다음이어야 할 테지.

         

       ‘일단 접어두자.’

         

       그러니 두 사람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은 혈교를 상대할 생각만으로도 벅차기에.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백우진은 빠르게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 * *

         

         

       객잔의 별채에서 하루를 휴식한 백우진과 신룡조원들은 중원을 질주했다.

         

       목적지는 정사연합.

         

       수백 리 길을 단숨에 주파한 그들은 먼지 구덩이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몰골로 정사연합의 두 머리인 사흑련주 도굉과 무림맹주 현학을 찾았다.

         

       “혈교의 본거지를 찾았습니다.”

         

       그들 앞에서 이 이야기를 꺼낸 순간, 정사연합의 무인들은 출정 준비를 시작했다.

         

       목적지는 모산.

         

       도교의 성지 아래에 똬리를 틀고 있는 혈교를 멸하기 위하여.

         

       앞서 준비를 마친 선발대가 모산을 향해 출발하려 할 즈음.

         

       마침내 전쟁의 마침표를 찍을 생각으로 기세등등해 있던 그들에게 급보가 날아들었다.

         

       “혀, 혈교도들이 강소를 점령, 그대로 북진하여 산동까지 점령했다고 합니다…!”

       “뭐라…!”

         

       본거지를 들킨 혈교에게 남은 길은 두 가지뿐이었다.

         

       이백 년 전처럼 또 한 번 죽기살기로 흩어져 도망치던가, 아니면 맞붙어 싸우던가.

         

       혈교주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후자를 선택했다.

         

       이백 년의 기다림만으로도 그와 혈교도들의 몸은 달을 대로 달아오른 상태.

         

       더 이상 치욕을 뒤집어쓰고 싶지 않았던 그는 가만히 앉아서 적을 기다리는 것 대신 먼저 선수를 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얻은 것이 강소와 산동.

         

       혈교주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혈교도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으로 두 성을 빠른 속도로 함락시켰다.

         

       “산동을 점령한 혈교의 본대는 그대로 산서로 향하고 있단 급보입니다!”

       “산서…!”

         

       혈교의 쾌진격 소식은 따로 출정을 준비 중이던 백우진의 귀에도 들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은 조원 중 두 사람에게 아주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가, 강소성이 점령당했다니…!”

         

       강소성의 점령당했다는 소식에 구왕수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그곳에는 제 가문, 구씨세가가 있다.

         

       혈교도들이 강소성을 점령했음은 그들에게도 변고가 생겼다는 뜻.

         

       “이 개자식들!”

         

       어머니와 아버지.

         

       가주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탓에 사이는 썩 좋지 않지만, 피를 나눈 형제.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가솔들까지.

         

       제 혈육이 전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그를 분노케 했다.

         

       눈이 뒤집힌 구왕수가 거처를 박차고 나가려 할 때.

         

       “멈춰, 구왕수.”

         

       오직 백우진의 목소리만이 분노한 그의 귀에 닿았다.

         

       발걸음을 멈추고 우뚝 선 구왕수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울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내줘, 조장.”

       “안 돼.”

         

       백우진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미 강소성은 혈교도들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

         

       제아무리 초절정에 오른 그라고 해도, 성을 점령한 집단과 싸우는 것은 무리였다.

         

       뼈가 으스러지도록 주먹을 쥔 구왕수가 이를 악문 채 울부짖었다.

         

       “내 가족들이 전부 그곳에 있어…, 그런데 어떻게 가만히 있냔 말이야…!”

       “가만히 있으라고 한 적 없다.”

         

       위기에 빠진 가족을 나 몰라라 하라고 말할 만큼, 백우진은 냉정하지 못하다.

         

       아니, 냉정할 수 없다.

         

       피를 나눈 가족, 형제에 대한 정은 잘 모르겠으나, 오랜 시간 함께해온 동료의 죽음 앞에서 그는 단 한 차례도 의연했던 적 없었다.

         

       “나는 아직 너희 가족들이 살아 있을 거라 믿는다. 그렇기에 더더욱 신중해야 하고.”

         

       그제야 구왕수는 뒤로 돌아섰다.

         

       “조장….”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구왕수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날 믿어라. 너희 가족은 내가 반드시 구할 테니까.”

         

       구왕수는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떨어대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어.”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부여잡은 구왕수는 백우진을 믿기로 했다.

         

       비록 시작은 악연에 가까웠을지언정, 그 뒤로 그는 단 한 번도 제게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는 이번에도 제 말을 지킬 것이다.

         

       만에 하나…, 제 가족들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필시 세상 모든 혈교도들의 목을 베어 제 가족의 넋을 달래줄 것이다.

         

       구왕수가 아는 조장은, 백우진은 그런 사람이었다.

         

       구왕수의 폭주를 가까스로 막아낸 백우진은 복잡한 시선으로 다른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도 있었다.

         

       당장이라도 폭발하여 이곳을 뛰쳐나갈 것만 같은 사람이.

         

       ‘유화연.’

         

       그녀의 가문은 산서에 있다.

         

       강소와 산동을 단숨에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내달리는 혈교의 세 번째 목적지.

         

       급보가 이곳에까지 다다랐으니, 혈교도는 이미 산서 인근에 도달해 있을 터.

         

       머리가 쭈뼛 서고, 모근에 땀이 맺힌다.

         

       불길한 예감이 든 탓이다.

         

       강소와 산서.

         

       두 곳 중 한 곳에 혈교주가 있을 것 같다는 예지에 가까운 육감이 전신으로 치민다.

         

       어쩌면 불길함을 가장한 악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강소와 산서.

         

       제 동료들의 가문이 자리한 지역을 점령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이끌어내기 위한 포석일지도 모른다.

         

       ‘새끼…, 날 잘도 파악했네.’

         

       그리고 백우진은 이런 것에 아주 잘 넘어가는 인간이었다.

         

       천성이 그러한 것을 어찌할까.

         

       백우진은 바짝 긴장한 조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조를 두 개로 나눌 거야. 한쪽은 강소, 다른 한쪽은 산서로 간다.”

         

       과연 어디일까.

         

       혈교주가 그 독사 같은 혀를 날름거리며 기다리고 있을 곳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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