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70

   *** ***

   광산의 아침은 빨랐다.

   무인으로서 새벽이슬을 맞는 것은 익숙하지만 대충 그보다도 반 시진 이른 시각.

   시간으로 따지면 새벽 4시쯤일까.

   “아우님! 이름이 뭔가?”

   “아, 제 이름은 박대구입니다.”

   “그래, 대구 아우. 소장이 꼽을 줄 텐데 발끈하지 말게나. 신참이라고 후려치기 당하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감안하고.”

   “예, 형님만 믿겠습니다.”

   나와 함께하고 있는 여광수는 나름대로 광산업계 고인물인지 나를 향해서 이런 저런 팁을 배출하고 있었다.

   “이런 새벽에 촛불이 두 개 켜진 곳은 대부분 사무소야. 저기 저 ‘신입광부모집 당일 일당지급’이라고 쓰여진 곳이 있지? 저런 곳은 신참 광부들 등쳐 먹으려고 작정한 놈들이야. 일당의 반, 아니 반의 반이나 지급할까 모를 양심 없는 녀석들이지.”

   “오….형님께서 알려주지 않았다면 저도 꼼짝없이 당했겠군요.”

   가벼운 아부에 입꼬리를 말아올리는 여광수.

   뉴비의 감탄사. 이거 고인물이라면 완전 환장하는 거거든요.

   “에휴, 본래같으면 괜찮은 사무소들 찾는 방법을 알려줘야 하는데…여긴 그런 곳이 없어.”

   “형님 눈에 차는 곳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런 게 아니고…에휴. 괜찮은 사무소라는게 말이야 돈 따박따박 주거나 뭐 편의를 좀 봐주거나 아니면 떼어 가는 돈이 적거나 뭐 이런거란 말이야.”

   “그렇겠지요.”

   “그런데 여기는 그냥 다 상장놈들 인맥 타고 차린 사무소나 뇌물 바치는 사무소가 아니면 일거리를 안 줘! 그러니 사무소를 양심적으로 운영할 리가 있나.”

   시작부터 건수 하나 잡았군.

   다만 뭐 대단한 건수는 아니었다. 학연, 지연, 혈연을 동원한 인재채용이 당연시되는 시대니까. 모용세가의 광산이 공공기관도 아니고 청렴결백해야 할 이유도 없지.

   “다 그놈이 그 놈이야! 어휴. 그냥 오늘은 이곳으로 들어가세.”

   “예!”

   땀내와 탄내가 진동하는 사무실로 들어가니 오늘 일감을 받기 위한 광부들이 바닥에 앉아 대기중이었다.

   여광수는 소장실로 보이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소장님. 아이구~ 안녕하십니까요.”

   소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딱 봐도 악덕업주 같이 생겼다. 옛날에는 현장에서 뛰었을 것 같이 떡대는 있지만 지금은 뱃살과 턱살이 두둑하고 옷 역시 깔끔한 비단옷을 입고 있는 것이 딱 봐도 돈을 두둑하게 벌고 있는 티가 났다.

   “흠. 여씨 아닌가? 무슨 일이지?”

   “요새 작업량도 많이 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신참 한 명 데리고 왔습지요.”

   “신참?”

   날 위아래로 훓어 보는 소장. 나는 넙죽 고개를 숙였다.

   “딱 봐도 비리비…흠흠. 딱 봐도 금방 도망칠 것 같은데?”

   무공으로 다져질 대로 다져진 내 체격을 보고 흠을 잡으려던 소장이 재빨리 말을 바꿨다.

   “헤헤, 다른 곳에서는 힘좀 썼습니다요.”

   “크흠…요새 인력 충원 시기가 아닌데 말이야. 사람 뽑을 생각도 없었고. 그런데 이렇게 불쑥 찾아오니 곤란하구만.”

   이런저런 말을 주워섬긴 소장의 목적은 간단했다.

   “보수의 6할만 받아! 안 그럼 채용할 수가 없네.”

   나는 어쩔 수 없는 척 고개를 끄덕였고 여광수는 소장의 방을 나오며 인상을 구겼다.

   “아우, 미안하구만. 저 돼지 자식이 욕심만 많아가지고.”

   “괜찮습니다. 형님.”

   “자자! 집결들 해!”

   총 스무 명의 광부가 소장 앞에 모여들었다. 소장은 주머니에서 무슨 패 같은 것을 건네주었다. 아무래도 광산에 입장하기 위한 신분증 같은 것인 모양.

   “오늘 작업할 곳은 이십칠 번 갱도다! 모두 이동!”

   스무 명의 광부들이 우르르 바깥으로 나가 광산으로 향했다.

   다른 인력소 소속 광부들도 비슷한 시간에 빠져나오는지 광산으로 향하는 길은 광부들로 북적였다.

   산을 오르며 여광수는 나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호언장담을 했는데 막상 사무소에 데려가서 일당을 떼인 채 일을 시작하게 만들었으니 미안했던 모양이다.

   뭐 소장이 내 일당을 떼어먹기로 작정한 상황이니 여광수라고 별 뾰족한 수는 없었겠지.

   “그래도 이십 칠 번 갱도면 오늘 작업은 나쁘지 않은 편일세. 뚫린 지 오래되지 않은 곳이라서 아직 깊게 들어가진 않을 거야.”

   “그렇군요.”

   “입구에는 광차도 깔려 있고 하니…”

   한참 산을 타고 올라가니 목적지인 갱도에 도착했다. 감독관으로 보이는 자들에게 패를 지급받기 위해 줄을 섰다.

   “오늘 써야 할 도구 대여비를 내야 하니 동전 세 개를 미리 꺼내놓게나.”

   아니 도구 대여비도 받아?

   내 시선에 뭐라고 입을 열려던 여광수.

   “거기! 뭘 떠들어!”

   그러나 눈을 부라리며 소리치는 감독관의 서슬 퍼런 태도에 입을 다물었다.

   동전 세 개를 건네고 허름한 바구니와 곡괭이를 건네받고 줄을 섰다.

   “오늘 할당량은 광차 열 수레다! 작업량이 적지 않으니 빨리빨리 움직여야 할 것이야!”

   광부들이 웅성거렸다.

   “아니? 열 수레라고?”

   “아무리 새 광맥이라 동선이 짧다고는 해도…”

   “시끄럽다! 불만 가질 시간에 어서 움직여라!”

   감독관의 채근을 들으며 입장한 갱도.

   바깥과는 다른 정체되고 묵직한 공기가 나를 반겼다.

   여광수가 내 곁으로 와서 투덜거렸다.

   “오늘 아주 재수가 옴 붙은 모양이야.”

   “예?”

   “저 게으른 놈들이 눈을 부라리는 이유가 뭐겠나? 신규 갱도라고 높으신 분이라도 방문하는 모양이지. 그러니 저놈들이 눈이 뒤집혀서 저 지랄을 하는 게 아니겠나.”

   높으신 분들의 방문이라.

   확실히 감독관들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으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감독관들의 채근에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곡질을 알려주고 싶지만 지금 이 분위기에서 자네에게 붙어 있을 수가 없구만. 여기가 철광이 있는 곳이니 이쪽만 파면서 주변 눈치를 보면서 행동하게나.”

   “예.”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 다른 광부들과 비슷한 속도로 벽에 곡괭이를 찍었다. 곡괭이로 암반을 분쇄하고 있자니 그 뒤로 촛불을 든 광부가 다가와 내가 분쇄한 암반에서 철광석을 골라 다시 바구니에 담았다.

   “뭐야! 왜 철광석이 이거밖에 안 나와!”

   “아이고, 철광석이 그냥 때리면 나옵니까요…”

   “그러면 빨리 다른 곳을 파란 말이야!”

   바닥에 떨어진 암반들 사이에서 철광석을 골라담는 작업자들을 따라다니며 광부들을 윽박지르던 감독관이 내 앞까지 다가왔다.

   살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내 앞에 떨어져 있는 암석들을 살피던 감독관이 별 말 없이 돌아섰다.

   아무래도 형님이 잡아준 지점이 광맥이었던 모양.

   슬쩍 여광수 쪽을 바라보니 시선이 마주쳤다.

   소장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했기에 내심 입만 산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는데 대충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정확한 광맥을 파악할 수 있는 숙련공이었던 모양이다.

   그래. 응애는 역시 고인물 곁에 착 붙어서 꿀 빨아야지.

   역시 고인물!

   그런 시선을 담아 고개를 끄덕여 주니 여광수가 코밑을 쓱 비비며 씨익 웃었다.

   나와 여광수 사이에서 훈훈한 공기가 감도는 것과 별개로 갱도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대충 작업을 시작한지 한 시진이 지났는데 이제야 광차 한 대를 채웠기 때문이었다.

   어두컴컴한 광맥.

   안력을 돋구면 광부들의 안색을 확인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만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이 죽상일 것이 뻔했다.

   왜냐하면 감독관의 입에서 폭탄 선언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작업 시간 내에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작업 증표를 지급하지 않겠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그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이요!”

   “시끄럽다! 불평할 시간에 어서 움직여!”

   오늘 처음 광산에 들어온 내가 보기에도 무리한 할당량이었지만 광부들은 속으로 욕을 퍼부으면서도 손을 빠르게 놀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감독관들이 갑이고 광부들이 을이니까.

   감독관들의 태도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여광수의 예상대로 높으신 분이 방문할 예정인 듯 싶었다.

   그냥 광석을 많이 캐야 하면 잔업을 시키면 그만이다.

   그런데 어떻게든 시간 안에 광부들을 쥐어짜려고 난리를 치는 것을 보면 높으신 분의 방문시각에 맞추어 그림을 만들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흐음.”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곡괭이와 벽 그리고 내가 캐낸 철광석을 바라보았다.

   화경의 경지란 무엇인가.

   이기를 다룰 수 있는 경지다.

   그렇다면 이기란 무엇인가.

   자연상의 기운을 다룰 수 있는 재주를 말한다.

   그리고 자연상의 기운을 다루기 위해서는 우선 자연상의 기운을 느껴야 함이 당연했다.

   철광석이 풍기는 기운은 나에게 아주 익숙했다.

   당소열에게 검기 특훈을 받으며 깨우친 철의 맥을 보는 법을 깨우쳤으니까.

   나는 내가 캐낸 철광석의 맥을 파악하며 동시에 기감을 개방했다.

   아아 느껴진다.

   암반 곳곳에 매장되어 있는 철광석의 숨결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겉이 아닌 암반 내부에 들어 있는 철광석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었으니 곧바로 어디에 곡괭이를 대야 단번에 이 큰 덩어리를 빼낼 수 있을지 판단이 섰다.

   콰악!

   홀린 듯이 곡괭이를 들어 그 윗부분을 찍었다.

   쿵!

   암반에 밀도 있게 엉겨 있던 철광 덩어리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이야, 왕건이네. 왕건이야.”

   허벅지만한 철광 뭉치가 떨어진 소리에 철광석을 운반하는 광부가 다가와 감탄사를 토해냈다.

   나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콰악! 콰악! 콱!

   쿠웅!

   몇 번 암반을 때리지 않았지만 다시 한번 묵직한 철광이 떨어지며 큰 소음을 냈다.

   광산을 구성하고 있는 암반이라고 해도 단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철광석의 단단함이 돌이라고 한다면 암반의 단단함은 흙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철광의 크기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정확히 그 위의 암반을 공략한 뒤 지렛대의 원리로 뽑아냈다.

   광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른 채 암반에 의미 없는 곡질을 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효율!

   “후.”

   나는 가볍게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지금 이 상태 그대로 곡괭이질을 계속하면 작업 종료 시간까지 광차 열 대를 채울 수 있을까.

   내 직감이 속삭였다.

   가능하다고.

   그렇기에 나는 홀린 듯이 손을 움직였다.

   퍽! 퍼억! 퍽! 콰악!

   쿵! 쿵! 쿵!

   연신 손을 놀릴 때마다 떨어지는 묵직한 철광석들! 광차에 철광석을 골라 넣는 이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주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야! 여기가 노다지군 노다지야!”

   “이거 봐! 이렇게 큰 철광 덩어리인데 떼어 낼 암석도 별로 없군!”

   철광 덩어리들이 마구 떨어지자 광부들이 서둘러 철광석을 나르기 시작했다.

   퍽! 퍽! 퍽!

   쿵! 쿵! 쿵!

   광맥을 찾고, 곡괭이로 찍는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숙련되고 내 곡질과 동선 역시 군더더기가 없어졌다.

   “이야! 정말 대단한 곡질이군!”

   “어찌 저렇게 빠르고 정확하지?”

   “뭐해! 빨리 나르자고!”

   그런 내 뒤로 점차 더 많은 광부들이 붙는다.

   등 뒤로 분위기가 바뀌어 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대로라면 시간 내에 열 대의 광차를 모두 채울 수 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일당도 못 받을 처지를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광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퍽! 퍽! 퍽!

   쿵! 쿵! 쿵!

   그렇게 신들린 듯이 광을 파 내길 한참.

   시간의 흐름조차 잊고 몰두하고 있던 내 어깨를 누군가 꽉 쥐었다.

   뒤를 돌아보니 여광수가 격동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냈네…!”

   “아아…그렇습니까.”

   “그래! 광차 열 대…! 모두 채웠네!”

   뒤를 돌아보자 광부들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광산 속에서 검댕이 된 얼굴 사이로 유독 반짝이는 눈빛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눈에는 어떤 감정이 서려 있었다.

   그건 바로 성취감이었다.

   불가능한 것에 도전해 성공한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한정된 시간안에 광차 열 수레라는 위업을 달성한 광부들은 그 성취감에 취해 고양되어 있었다.

   성질을 부리며 채근하던 감독관들도 광부들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구석에 찌그러진 채 이쪽의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

   음.

   뭐라도 한 마디 해야 할 분위기로군.

   나는 곡괭이를 놓으며 말했다.

   “갑시다. 우리들의 작업 증표를 받기 위하여.”

   “와아아아아!!”

   “곡신! 곡신!”

   “광신! 광신!”

   갱도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곡신과 광신을 부르짖는 광부들.

   좋아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영 어감이 별로였다.

   역시 신은 도신이 제일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나를 떠밀기 시작하는 광부들.

   울퉁불퉁한 철광석이 가득 채워져 차라리 걷는 것이 낫다 싶은 승차감을 지닌 광차에 강제로 수송되어 갱도를 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갱도를 나오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대협, 이곳이 현재 새로 파낸 27번 갱도입니다!”

   “보시다시피 아주 채굴량이 좋지요!”

   “하하하하! 그대들의 노고가 아주 많소!”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모용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