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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0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에서 군도는 일종의 부가컨텐츠였다.

   

   군도에 존재하는 섬마다 존재하는 14개의 던전은 본편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그와 별개로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했고 본편의 모든 던전을 공략한 후 아쉬워하던 이들은 더 많은 던전을 찾아 여기를 방문했다.

   

   던전의 수준이 얼마나 좋았냐면 그냥 좀 숨겨뒀다가 규모를 더 크게 만들어서 DLC로 내줬으면 좋았을거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 사람들을 보며 본편에 이 정도를 보여줬으면 DLC는 더 어마어마한 게 나오지 않겠냐고 이야기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멍청했음을 알게 됐지.

   

   설마 몇 년 동안 DLC가 나오지 않을 줄이야.

   

   그 때 당시 소울 아카데미 제작진이 마지막 불꽃을 태운 거란 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이걸로 돈 많이 벌었으니까 그만큼 더 투자할 줄 알았지!

   

   설마 매일 소울 아카데미 게시판에 꾸준글을 쓰던 애가 사라질 때까지 아무 소식이 없을 거란 걸 과거의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 때는 사장이 돈 먹고 날랐다느니. 너무 빡세게 굴려서 직원들이 집단 퇴사했다느니. 회사가 불에 탔다느니하는 온갖 괴담이 튀어나왔지만 게임 속 세상에 발을 디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좀 의미심장하네.

   

   그건 평범한 게임이 아니었고 그렇다면 그 게임을 만든 제작자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을 테니까.

   

   어쩌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누군가일지도 몰라. 만약 제작자를 만날 수 있다면 그 새끼한테 꼭 물어보고 말겠어.

   

   왜 DLC안 냈냐고. 내가 게임컨텐츠를 다 파먹고 할 일이 없어서 온갖 컨텐츠를 제조하는 동안 왜 업데이트 한 번 안 해줬냐고.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알른 영애?”

   

   개발자를 감금시킨 후 군만두만 먹이면서 개발을 시킨다면 새로운 작품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망상을 하던 나는 바닷바람을 지나치며 걸어오는 이사벨 아르테아를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군도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이 곳은 육로를 통해 갈 수 없는 장소다. 또한 흙에 이상한 마법저항력 같은 게 깃들어 있어서 순간이동의 마법도 사용하기 어렵지.

   

   파트란 공작 수준의 대마법사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감히 접근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이기에 군도로 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를 타야 한다.

   

   이를 위한 루트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에 내가 택한 것은 아르테아 가문의 범선이었다.

   

   왜냐고? 이거 말고는 탈 수 있는 배가 없었거든.

   

   악명 높은 알른 가문의 영애부터 시작해서 파트란 공작 가문의 영애랑 왕국의 3왕자저하에다 켄트 가문의 백작 영애까지 기꺼이 감당해 줄 사람이 어디 흔할 것 같아?

   

   무언가 잘못돼서 사고라도 나는 순간 자신의 목은 물론이고 일가족의 목숨까지 위험해질 게 분명한데 누가 이런 일을 맡으려 그러겠어!

   

   물론 우리 쪽 인원하고 연을 쌓고 싶은 사람들은 이야기가 다를 테지만 그런 잡배들은 우리 쪽에서 사양이야.

   

   결국 이 사람 거르고 저 사람 거르고 하다 보니 남은 선택지가 이사벨밖에 없더라. 얘라면 내가 기도를 해주겠다 말하기만 해도 배를 띄워줄 게 분명했으니까.

   

   “출항 전에 영애께 축복을 부탁드리고 싶어서 말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부디.”

   

   ‘이 배에 축복을…’

   “언제 침몰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 낡아빠진 배에 축복을 해달라고? 쓰잘데기 없는 짓 같아서 별로이긴 하지만 못 해줄 건 없지.”

   

   매일 같이 허접 주신을 향한 기도를 올린 덕분일까. 이제는 이런 부탁에도 거부감이 없었다.

   

   뱃머리에 선 나는 여러 선원들의 기대 어린 시선을 받으며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나의 안에서 자연스레 신성이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위대하신 주신이시여.’

   “관음증 걸린 개허접주신님.”

   

   첫 마디가 내뱉어지기 무섭게 웅성이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지만 그를 웃으면서 흘려들었다.

   

   이게 이상하지 않음을 변명해봐야 메스가키 스킬에 의해 오해만 깊어질 뿐이야. 어차피 기도가 끝날 즈음이면 자연스레 축복이 성공했음을 알게 도리 텐데 무얼 하러 변명의 말을 할까.

   

   ‘오늘 우리들이 나아가는 이 길에 평온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쓸데없이 화려하기만 할 뿐인 배에 탄 겁쟁이들이 오줌을 지리지 않게 해주세요. 허접한 선원들 때문에 이 낡아빠진 배가 위험하지 않게 해주세요.”

   

   …어. 그냥 선장실에 가서 아무도 모르게 기도를 할 걸 그랬나? 주변의 웅성이는 소리가 한층 더 커지는 바람에 잠시 말을 멈췄던 나는 길게 숨을 내쉬고는 다시금 기도를 이어나갔다.

   

   부디 이 기도가 끝날 때에는 분위기가 달라지기를 바라며.

   

   *

   

   루시 알른이 제안한 군도행은 그녀가 가문으로 돌아온 바로 다음날에 출발을 알렸다.

   

   따로 준비할 것은 없었다. 일행이 가지고 온 짐을 제외한 나머지는 루시가 미리 준비해 둔 상태였으니까.

   

   근 2주 만에 세 시간 이상 잠을 잔 그들은 아침부터 일어나 루시를 따라 아르테아 영지로 향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서는 루시가 아르테아 가문과 연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해안에 위치한 아르테아 영지는 여러 실력 있는 뱃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이니만큼 그 곳에서 적당한 배 하나를 구했겠거니 생각할 따름이었지.

   

   그래서 아서는 이사벨 아르테아가 직접 나와 루시를 환영하는 것을 보고 진심으로 놀랐다.

   

   황송하다는 듯 루시를 대하는 그녀의 모습은 단순한 친분관계라 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르테아 가문의 주인이 루시 알른에게 쩔쩔매는 거지?

   

   아서는 황송하다는 듯 루시를 대하는 이사벨을 보다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귀족 간의 알력관계에 대해 잘 아는 조이라면 무언가 아는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에. 에? 엑?”

   

   사람의 말을 잊어버린 조이를 본 순간 아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이 녀석이 모를 정도라면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나보군.

   

   뭐 나쁜 일은 아니다. 이사벨 아르테아가 친히 자신의 배를 내어준다면 군도로 가는 여행길이 편해질 테니.

   

   군도에 도착하면 루시 알른을 따라 하루에 두 개씩 중형 던전의 끝을 봐야 할 터인데 그 때까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환영해야지.

   

   그렇게 아르테아 가문의 범선에 탑승한 아서는 배를 타는 건 처음이라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프레이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다 옆으로 고갤 돌렸다.

   

   거기에는 실시간으로 죽어가고 있는 조이가 있었다.

   

   “배멀미를 했었나?”

   “…네. 그것도 엄청 심하게요.”

   “큰일이군. 군도에 도착한 후엔 쉴 틈 따위 없을 텐데 말야.”

   “영애께선 정말 일주일내에 모든 던전을 공략하시려는 걸까요?”

   “조이. 다른 누구보다 그대가 제일 잘 알지 않나. 루시 알른은 불가능한 일을 입에 담는 사람이 아니다.”

   “그쵸…”

   

   아마 하루에 두 개라는 것도 우리를 배려하여 결정한 내용일거다. 루시 알른의 상식은 다른 이들과 괴리된 부분이 있으니.

   

   아서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조이에게 말을 해주진 않았다. 지옥에서 빠져 나와 또 다른 지옥에 굴러 떨어져 좌절하는 그녀가 이 사실을 알면 진짜로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으니까.

   

   멀미가 시작되기 전에 방에 들어가서 자란 말을 하려던 아서는 갑판 쪽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말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이 기운은 분명 성녀님께서 축복을 베푸실 때에 느꼈던 것과 비슷해.

   

   하지만 달라. 그보다 더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이야. 무언가에 홀린 듯 아서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다른 두 사람도 아서의 뒤를 따랐다.

   

   갑판으로 나선 그들이 보게 된 것은 출항 후 뒷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조차 잊고 멍하니 뱃머리를 바라보는 이들이었다.

   

   아랫사람들을 질책하는 대신 그들의 시선에 동참한 자들이었다.

   

   뱃머리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아르테아 가문의 가주였다.

   

   그리고 그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아내면서도 흔들림 없이 기도를 이어나가는 루시 알른이었다.

   

   “…허.”

   

   아서는 그녀의 모습을 올려보다 헛웃음을 내뱉었다.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할 말이 너무도 많아 그것들을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을 뿐.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포근한 신성. 강건하나 겸허한 자세. 예술 교단의 사도마저도 홀린 얼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조막만한 입술과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봄바람 같은 목소리.

   

   “이 곳의 쓰레기들이 질질 짜면서도 제 목숨을 보전할 수 있기를.”

   

   그리고 경외로운 풍경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어투.

   

   경이에서 빠져나온 아서는 피식 웃으며 루시 알른을 올려다봤다. 저 빌어먹을 어투만 아니었더라도 루시 알른은 성녀님을 이어 교회의 상징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서가 그런 생각을 하며 입가를 삐뚜름하게 만들 무렵 루시 알른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범선 전체에 퍼져 있던 신성이 범선의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온기를 전했다. 루시 알른이 전한 축복이 범선에 깃든 것이다.

   

   저런 불경한 기도가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다니. 위대하신 주신께서는 저런 건방진 여자아이라도 품을 정도로 자비로우시군 그래.

   

   아니면 저런 불경을 선호하시는 걸지도 모르고. 입 밖으로 내면 수많은 비난을 들어야 할 생각에 키득거리던 아서는 문득 과거 루시 알른에게서 느꼈던 무수한 위화감을 떠올리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만약. 만약. 아주 만약에. 루시 알른의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어투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것이라면?

   

   주신께선 그를 알기에 루시 알른의 무례를 듣고서도 자신의 힘을 내어주는 것이라면?

   

   갑작스레 떠오른 발상은 다소 허무맹랑했지만 아서는 그를 알면서도 계속 생각을 이어나갔다.

   

   저 녀석의 어투가 성미와 관련 없이 흘러나오는 것이라면 설명이 되는 부분이 많다.

   

   누구를 앞에 두더라도 시건방진 어투라거나. 신성에 어울리는 고결한 발걸음과는 달리 장난스러운 행동이라거나.

   

   이외에도 루시 알른이 벌였던 여러 기행을 이 강제성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어.

   

   그를 깨달은 아서는 아르테아 가주를 비롯한 뱃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감사를 듣고 있는 루시를 멍하니 바라봤다.

   

   “잠시.”

   

   그러다 뒤편에서 들려 온 목소리에 놀라 다급히 고갤 틀었다. 아예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알른 기사단에서 지옥 같은 훈련을 거듭하며 감각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는데 그걸로도 잡아채는 게 불가능했어.

   

   “실례하겠습니다. 3왕자저하.”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거센 인상의 남자였다. 누구라 하더라도 뱃사람임을 의심하지 않을 무식한 덩치를 지닌 것이 그 남자였으나 정작 그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낮고 예의발랐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괴리 속에서 아서가 할 말을 고르는 동안 남자는 예를 차리며 말을 이었다.

   

   “방금 전 눈치 챈 것을 아직은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영애께서는 아직 이해자를 얻기에 이르니 말입니다.”

   “…뭐?”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만 참아주십시오.”

   “그게 무슨 헛…”

   

   소리냐고 아서는 이야기하려 했지만 그의 말은 뱃사람에게 닿지 못했다. 몸에 힘을 잃은 뱃사람이 무너지듯 쓰러졌으니까.

   

   이후 다시금 뱃사람이 깨어났을 때 아서가 그를 추궁했지만 뱃사람은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루시 알른이 배에 축복을 해주었다는 사실조차도 말이다.

   

   루시 알른이 베푼 축복을 얻은 배가 군도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아서는 넘실거리는 선실 안에서 입술을 곱씹었다.

   

   어째 섬에서 보내는 나날이 수월하지는 않을 것 같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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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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