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70

   크라슈의 백염에 당한 오베론이 새하얗게 불타올랐다.

     

   아무리 숲의 주인인 정령왕이라 해도.

   신기를 머금은 크라슈의 백염 앞에 멀쩡히 있을 수는 없었다.

     

   크라슈는 다 타버린 오베론을 지나쳐 끝내 나무의 꼭대기 위에 도달했다.

     

   그곳에 도달한 크라슈의 눈에 나무줄기가 이리저리 엉겨 붙은 거대한 씨앗 하나가 보였다.

   거세게 빛을 내뿜고 있는 씨앗의 정체는 다름 아닌 최흉의 씨앗이었다.

     

   최흉의 씨앗이 깃든 오베론의 나무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진다.

   크라슈는 녀석이 더 복구되기 전에 씨앗 위로 손을 올렸다.

     

   이윽고, 크라슈가 블랙 후드를 발동시켰다.

     

   발동된 블랙 후드의 대상은 정령왕의 숲.

   그리고 빼앗을 것은 최흉의 씨앗이다.

     

   그 순간 최흉의 씨앗이 에너지의 형태가 되며 크라슈에게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라슈는 이를 전부 흑염으로 불태워 버린 뒤 세이블을 열어 그곳에 담아냈다.

     

   이미 한 번 해봤던 일이기 때문일까.

   비의 잔등 때 보다 크라슈는 수월하게 최흉의 씨앗을 흡수해 나가기 시작했다.

     

   입에서 달띤 숨이 흘러나온다.

   몸 내부에 흘러 들어온 후끈한 열기가 머리를 어지럽힌다.

     

   하지만 크라슈는 이를 꽉 문 채 흡수를 반복했다.

     

   크라슈가 최흉의 씨앗을 흡수해갈수록.

   오베론의 나무가 조금씩 생기를 잃어 가기 시작했다.

     

   비록, 인간과 어우러질 수 있는 정령이라는 침식종을 만들어 내는 금역이라곤 하나.

   이렇게 폭주해버린 이상 더는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크라슈는 최흉의 씨앗을 전부 흑염으로 불태워 버렸다.

     

   쿵!

     

   모든 생기를 잃은 오베론의 나무가 바짝 마른 채로 무너져 내렸다.

   더불어 주위 숲들도 마찬가지다.

     

   정령의 빛을 매일 같이 내뿜던 숲들은 점차 빛이 없어져 가고, 이내 평범한 숲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는 본래 세계가 가져야 할 본연의 모습이었다.

     

   ‘이것도 나름 익숙해지기 시작했나.’

     

   마곡, 세계의 틈 때부터 이번까지 벌써 세 번째다.

   그러니 크라슈도 힘을 불태워 세이블에 담는 것이 상당히 능숙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금역이 한참 남았다는 거겠지.

     

   크라슈가 나무 위에서 도약하며 내려왔다.

   그러자 곧 그의 눈에 이카루스 단과 아슬란이 보였다.

     

   아슬란은 어깨에 올린 정령 도로시와 함께 저물어가는 정령왕의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로시에게 있어 정령왕의 숲은 고향과도 같다.

   그런 고향이 저물어가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들게 할 것이다.

     

   아슬란은 손을 들어 도로시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녀는 곧 아슬란의 볼에 머리를 기대었다.

     

   세계의 두 번째 정령사 아슬란.

   어쩌면 세계에서 마지막 정령사가 될 아슬란은 그렇게 무너져 가는 정령왕의 숲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쩌면 두 사람에게는 모든 게 시작됐을 이곳에서 말이다.

     

   곧이어 아슬란의 시선이 이쪽에 닿았다.

   그는 크라슈를 보더니 이내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로시도 이를 받아들였기에 협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크라슈도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크라슈가 이카루스를 돌아봤다.

   그들은 크라슈의 전력이 상상 이상이었는지 다들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금역의 주인을 내지른 일격 하나로 정리했으니.

   그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크라슈로서는 유리 대포에 가까운 전심전력의 필살기긴 하나.

   그들의 눈에는 손쉽게 처리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라크라디온은 크라슈를 보며 존경심 섞인 눈을 했다.

     

   예전에도 그녀가 스스로 크라슈의 기사가 되기를 청했던 만큼.

   그는 크라슈를 누구보다 믿고 따르고 있었다.

     

   ‘기사단인가.’

     

   크라슈는 이카루스 단을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언젠가는 이카루스처럼 세계 여러 곳에서 모은 이들로 기사단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사건 사고가 끊이지를 않는 이 세계를 위해 검을 들 수 있는 녀석들로 모아서 말이다.

     

   ‘물론 그렇게 모아 봤자 결국 나중에 변질하기는 하겠지만 말이지.’

     

   힘이 집중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크라슈는 전회차에서 보았다.

   기사단을 모으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겠지.

     

   ‘아직 생각할 시간은 많다.’

     

   이제 해치운 금역은 고작해야 두 개.

   당장 해야 할 일은 나머지 금역들도 전부 닫는 것이다.

     

   “이카루스, 우리는 다음 구역으로 향할 거다. 가는 길 동안 최대한 휴식할 수 있도록.”

     

   크라슈가 명하자 이카루스 전원이 대답했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녹초였다.

     

   세계 침식의 힘을 역으로 흡수해버리는 크라슈라면 모를까.

   금역이라는 곳은 괜히 인간이 발을 들이면 안 되는 곳이라 정해진 게 아니다.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그들도 시간이 지난다면 금역을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적응하겠지.

     

   “아슬란, 넌 어쩔 생각이야?”

     

   크라슈는 돌아가고자 움직이는 이카루스를 두고, 아슬란을 돌아봤다.

     

   아돌프는 아슬란이 돌아오면 이야기하자고 하였다.

   거기에 관해 아슬란에게 어떻게 할지 묻자 그는 잠시 침묵했다.

     

   “크라슈, 넌 계속 금역을 닫을 생각이지.”

     

   크라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널 따라갈게. 난 아직 이그리트로 가고 싶지 않거든.”

     

   아슬란은 정령왕의 숲의 끝방향 할그람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담긴 원한은 여전히 조용히 들끓고 있었다.

     

   “그러냐.”

     

   크라슈는 아슬란의 뜻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아돌프와의 관계는 개선할 수 없겠지.

     

   ‘아마.’

     

   크라슈는 어렴풋이 느꼈다.

     

   미래는 바뀌었다.

   본래는 아슬란이 아돌프와의 일을 해결하기 전에 그가 죽어버리니까.

     

   아슬란이 언젠가 시대가 바뀌어 그가 천하십강을 넘은 경지에 오르고, 아돌프가 물러난 그때.

   그때가 된다면 아돌프와 정면에서 맞서 이야기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때 아슬란이 아돌프를 끝장을 낼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할지.

   이에 관해 크라슈는 알 수 없다.

     

   단지, 이건 아슬란이 생각하고, 해결해야 할 몫이다.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건 그가 조언을 바랄 때 한 두 마디 해주거나 함께 있어 주는 것뿐.

     

   하지만 그 또한 아슬란에게는 큰 도움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아슬란은 크라슈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크라슈의 곁에 있다 보면 꽤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 좀 유용하잖아?”

     

   아슬란은 금역에서조차 활약한 자신의 마법을 언급하며 씩하니 웃었다.

   이 천재 놈은 자신이 천재라는 걸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아슬란의 말마따나 실제로 아슬란의 마법은 확실히 도움 됐다.

   괜히 마황에게 직접 지도를 받은 게 아니겠지.

     

   “내 옆을 따라오면 엄청나게 구를 거다.”

   “각오하고 있어.”

     

   아슬란의 굳은 각오를 느낀 크라슈는 그를 받아들여 주기로 했다.

     

   아슬란이 크라슈를 따라 걸었다.

   그가 걷는 모습을 보던 크라슈는 왜인지 과거가 떠올랐다.

     

   아슬란, 아스트리아.

   이 두 명과 유달리 친했던 크라슈였으니까 말이다.

     

   그때의 연은 지금으로도 이어져 크라슈는 둘과의 관계를 쌓았다.

     

   아니, 지금은 훨씬 더 많은 관계를 쌓았다.

     

   크라슈의 옆을 걷고 있는 아슬란과 아스트리아만이 아니다.

     

   전 세계 전역에 지금 크라슈와 연을 쌓은 여러 이들이 자기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하늘 위 매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어디서 날아 온 지도 모를 매는 거침없이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창공의 세대.”

     

   크라슈가 가만히 그 말을 중얼거렸다.

     

   “응? 뭐라고 했어?”

     

   아슬란이 크라슈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크라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냥 날개가 다치지 않고, 훨훨 잘 날아갔으면 해서.”

     

   매를 올려다본 크라슈는 혼잣말하였다.

     

   날개가 처참히 찢어져 바닥에 추락했던 창공의 세대.

   그러나 이번만큼은 부디 그 날개가 온전하기를 크라슈는 바랐다.

     

   “다음 금역으로 가자.”

     

   그 날개의 중심에 서게 된 크라슈가 제일 먼저 날개를 펼쳤다.

     

     

   * * *

     

     

   세계 각지에 있는 금역.

     

   금역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세상이었으나.

   혼란 속에서 난세의 영웅이 탄생하는 법.

     

   크라슈와 이카루스에 관한 이야기는 순식간에 세계 전역으로 퍼지며 시민들은 그들을 영웅이라 찬가했다.

     

   그 결과, 이카루스의 명성은 무럭무럭 커졌고.

   세계 각지에 있는 이름난 이들이 이카루스의 참가 의사를 밝혀 왔다.

     

   세계를 지키겠다는 사명을 지닌 이카루스는 영웅의 새 시대를 열었던 덕분이다.

     

   이카루스의 중심이자 단장인 크라슈는 이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금역을 막기 위해서는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한 마당.

   한 명이라도 더 전력을 굴릴 수 있다면 좋았다.

     

   크라슈는 악착같이 인원을 어떻게든 끌어모았다.

     

   그 결과 크라슈는 금역 돌파 부대를 적절히 나눌 수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이들이라 한들 금역을 돌파하다 보면 부상과 체력적 한계를 피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크라슈는 효율적으로 로테이션을 돌리고자 이카루스를 여러 부대로 나눈 것이다.

     

   이 효과는 금역을 멈추지 않고 돌파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돌파한 부대를 쉬게 하고, 새로운 부대와 함께 금역을 나아간다.

   이로써 정말 쉬지 않고 금역을 무한 돌파 시도를 할 수 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크라슈의 평가는 더더욱 날이 가면 갈수록 치솟고 있었다.

     

   사실 당연한 순서긴 했다.

     

   분명 금역을 돌파하는 것은 이카루스의 단원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금역을 돌파한다 한들.

   돌파한 금역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크라슈밖에 없었다.

     

   이는 크라슈는 다른 이들과 달리 단 한 번을 쉬지 않고, 끊임없이 금역을 나아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다들 상황이 급하니 크라슈를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어느새 다들 점차 크라슈를 보며 이건 슬슬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보기 시작했다.

     

   그는 정말 한시도 쉬지 않고, 매일 같이 금역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괴물이로군.”

   “최연소 천하십강이라더니. 이건 나이가 문제가 아니지 않나.”

   “대체 저 정신력은 어디서 나오는 거죠?”

   “이쯤 되면 인간이 맞긴 하는가 싶은데.”

     

   날이 가면 날이 갈수록 크라슈를 향해 여러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크라슈의 독종적인 면만큼은 이카루스의 마음을 굳세게 했다.

   크라슈는 정말 세계를 지키기 위해 순수하게 금역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세계를 지키겠다는 광적인 의지.

   이 의지는 여러 이들에게 옮고 또 옮아가기 시작했다.

     

   라헬른 아카데미에서 크라슈와 같은 생활을 했던 이들이 자기 몸을 사리지 않고, 앞다투어 나아가던 것처럼.

   이카루스 내에서도 그런 크라슈의 영향이 깃들기 시작한 것이다.

     

   [ 가관이군. 아주 또라이 같은 집단이 되고 있잖나. ]

     

   크림슨가든은 이를 보고, 광신도도 이 정도는 아닐 거라며 질린 기색을 보였다.

     

   이카루스는 세계를 구원하기 위한 광신도 집단에 가까워졌다.

     

   그들은 명성이고 자시고, 집어치운 채.

   최대한의 효율로 악착같이 금역을 뚫고, 금역을 어떻게든 닫아낸다.

     

   이 하나의 목표로 귀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실제로 금역은 끊임없이 닫아나갔다.

   이카루스의 행보는 각 국가도 놀랄 만큼 엄청난 속도였다.

     

   그렇게 세계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금역을 닫았을 때쯤.

     

   꼬박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슬슬 위험한가.’

     

   크라슈가 감기는 눈을 손으로 누르며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반년간 크라슈는 거의 쉬지 않고, 금역을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 때문일까.

     

   침대 위, 몸을 일으킨 크라슈는 슬슬 반동이 오는 것인지 흐릿한 눈을 느꼈다.

     

   ‘무엇보다 금역의 난이도가 점점 더 올라가고 있다.’

     

   최흉의 씨앗이 더 크게 뿌리를 내리면 내릴수록.

   금역의 난이도는 더더욱 크게 올라간다.

     

   더불어 최대한 빨리 닫을 수 있는 금역을 효율적으로 우선시했던 만큼.

   규모가 큰 금역을 등한시했던 것이 영향이 컸다.

     

   ‘각 나라들이 어떻게 아슬아슬하게 틀어막고 있긴 하지만.’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카루스는 지금 나아갈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금역의 확장 속도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 이카루스의 부상자도 더 늘어났다.

     

   마음 아픈 이야기지만 전사자도 적지 않다.

   금역이라는 곳은 모든 이가 살아 나갈 수 없는 곳이니까.

     

   그리고 이는 최흉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며 금역의 힘이 더 강해진 영향이 컸다.

     

   ‘쉴 때가 아닌데.’

     

   크라슈는 자꾸만 감기려는 눈에 의해 고개를 저었다.

     

   [ 아무리 그래도 이건 한계지 않느냐. ]

     

   크림슨가든 조차 크라슈를 걱정하듯 말했다.

     

   하지만 크라슈는 아랑곳하지 않고 옷을 챙겨 입었다.

   이카루스의 이름이 커진 만큼 임시로 만든 제복이었다.

     

   “여기서 내가 쉬면 금역을 닫아낼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크라슈의 말대로 금역의 최흉의 씨앗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크라슈밖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 명 더 있긴 하지.’

     

   크라슈가 문뜩 아서를 떠올렸다.

     

   아서의 빛의 검은 어떤 원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흉의 씨앗조차 정화 시켜 놓았다.

   아서가 있었다면 최소한 둘이었겠지.

     

   ‘그럼 그때의 아서도 이와 같은 기분이었나.’

     

   전 회차에서 아서도 쉴새 없이 금역을 오가며 금역을 닫았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아서는 딱 크라슈의 꼴과 다를 바 없었다.

     

   ‘남 말할 처지는 아니네.’

     

   아서를 탓했던 과거의 자신을 힐난하며 크라슈는 문을 열었다.

     

   그 순간 크라슈의 눈앞에 백색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것을 마주한 크라슈는 두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고개를 내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냉담한 얼굴을 지닌 미녀가 한 명 서 있었다.

   크라슈는 그녀에 관해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비앙카 하덴하르츠.

   크라슈의 아내 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크라슈를 빤히 올려다보더니 이내 크라슈를 방으로 밀었다.

     

   “비앙카?”

     

   이곳은 이카루스의 임시 거점이다.

   비앙카는 라헬른 아카데미 생들과 함께 금역의 확장을 막고자 지원하러 다니고 있었다.

     

   그러니 최근 마주칠 일이 거의 없긴 했으나.

   임시 거점을 찾아올 줄은 몰랐다.

     

   비앙카는 대답하지 않고, 크라슈를 그대로 끌고 가더니 이내 침대 위에 털썩 눕혔다.

   그러고는 그의 위에 올라타 이불을 끌어당기곤 같이 누워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의 크라슈가 눈을 깜빡였다.

   이게 무슨 상황이람.

     

   “눈 감으세요.”

     

   크라슈가 고개를 돌리려 하자 비앙카가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비앙카의 압박은 금역의 주인들 보다도 더했다.

     

   크라슈는 결국 그녀의 말에 못 이겨 눈을 감았다.

   그러자 비앙카가 꼬물거리며 크라슈를 그대로 끌어안았다.

     

   따스한 온기가 비앙카를 타고 크라슈에게 흘러 들어왔다.

     

   “크라슈 님, 내일 3학년들의 라헬른 아카데미 졸업식이에요.”

     

   벌써 그렇게 됐나.

   금역을 닫기 위해 매일 같이 고군분투했던 만큼.

   크라슈는 이를 전혀 몰랐다.

     

   “그랬구나. 나 벌써 졸업이네.”

     

   라헬른 아카데미 졸업이라니.

   예전과 다르게 수석 졸업이었던 만큼 꽤 감개무량하긴 하다.

     

   벌써 18살의 해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총장님이 졸업식은 안 와도 상관없데요. 졸업한 거로 쳐준다고 했어요.”

   “듀란달 님께는 감사해야겠네.”

     

   학기 중에 절반 이상을 결석한 사람을 졸업시켜주다니.

   참으로 후한 총장이시다.

     

   “그러니까 크라슈 님, 오늘은 쉬어요.”

     

   다음 말을 듣고, 크라슈는 왜 비앙카가 임시 거점을 찾아왔는지 이제야 눈치챘다.

     

   크라슈의 곁에는 꽤 여러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비앙카와 연이 닿은 이들도 꽤 있다.

     

   아스트리아라던가 아슬란이라던가.

   다들 이런저런 식으로 연이 닿아 있으니 말이다.

     

   비앙카는 그들에게 크라슈가 얼마나 무리하는지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말려도 크라슈는 멈출 생각을 안 하니.

   기어코, 비앙카까지 불러들인 것이다.

     

   크라슈는 서서히 몰려오는 잠을 느꼈다.

   크림슨가든의 말마따나 한계였다.

     

   ‘강박증인가.’

     

   세계를 지켜야 한다는 과한 강박증.

   이에 따라 크라슈는 쉬지를 못했다.

     

   세계가 멸망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까.

   자신이 쉬는 시간에도 얼마나 세계가 변할지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런데도 사람은 쉬어야 했다.

   영웅이라 할지언정 사람이니까.

     

   크라슈는 손을 들어 비앙카를 감싸 안았다.

   비앙카는 몸을 움직여 크라슈의 품에 깊게 파고들었다.

     

   그 온기는 크라슈의 강박증마저 조금은 완화 시켜줬다.

     

   “……금역 간다고 준비한 녀석들에게 혼나겠네.”

   “크라슈 님을 혼내면 제가 그 사람들 혼낼게요.”

     

   무척이나 든든한 아내다.

   크라슈는 그 말을 듣고, 짧게 웃더니 이내 스르륵 잠이 들었다.

   

   

   

   

     

   반년간 금역만을 닫기 위해 달려온 크라슈가.

   참으로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든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